■ 경기도지정 기념물
경기도지정 기념물은 이대원 장군 묘 및 신도비·원균 장군 묘·농성農城·안재홍 생가가 있다. 이대원(1566∼1587) 장군은 임진왜란 직전인 1587년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토벌하다 순절한 무장武將이며, 원릉군 원균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무장으로 선무1등 공신에 녹훈된 인물이다. 농성은 삼국시대 설, 신라하대 설, 고려 초 설 등 축성築城시기가 불분명하지만 팽성 지역 토호세력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문화재다. 민세民世 안재홍은 일제하에서 해방정국까지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언론인·정치가·역사학자로 활약했으며, 일제하 좌우합작운동 단체였던 신간회新幹會 총무를 역임했고 해방 후에는 좌우통합과 분단 상황 극복을 위해 노력했던 평택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무성산성지武城山城址, 자미산성지慈美山城址, 비파산성지琵琶山城址, 용성리성지龍城里城址, 덕목리성지德睦里城址는 2005년 10월 17일 경기도지정 기념물로 지정됐다. 무성산성지는 백제·고려시대 유물이 출토됐고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산만 일대의 방어 및 통치, 토성 축조방식과 활용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자미산성지는 산 정상부 주위를 둘러싼 내성과 능선을 따라 외성으로 이뤄졌으며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방조제 공사로 석재들이 유출됐으며 삼국의 격전지였던 아산만에 위치해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가 있다. 비파산성지는 비파산 중심의 토성으로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북쪽은 자미산성과 접하고 성내에는 문지 등의 각종 시설물이 확인됐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명문기와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고려 초기 현성으로 축조돼 행정치소 및 해양방어의 중심기능을 했던 성으로 당시 지방제도 형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다. 용성리성지는 학술조사 결과 비파산성으로부터 남쪽으로 1km 떨어진 토축형지성으로 방형의 작은 성인 문지·치성이 있다. 경작지 등의 조성으로 훼손된 일부구간을 제외하고는 성벽이 잘 남아있으며 고려시대 이후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규모가 작고 능선으로 연결돼 있으며 비파산성과 연계된 방어시설로 일종의 부성으로 추정된다. 덕목리성지는 원덕목 마을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뉜 장방형 의성으로 동성은 마을이 들어서 완전히 파괴됐고 서성은 경지정리로 만파돼 성 내부와 성벽 일부가 잔존돼 있다. 학술조사 결과 잔존부분에서 원래 형태는 물론, 이후 보수된 흔적과 성 외부에 둘렀던 해자도 확인됐다. 고대적인 축성법에서 중세적인 축성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의 평지토성이다.
[경기도지정 기념물]3)
번호명칭위치지정번호지정일시대
1 | 이대원 장군 묘 및 신도비 | 포승읍 희곡리 산83-6 | 경기도기념물 제56호 | 1980. 6. 2 | 조선시대 |
2 | 원균 장군 묘 | 도일동 산82 | 경기도기념물 제57호 | 1980. 6. 2 | 조선시대 |
3 | 농성(農城) | 팽성읍 안정리 산41-5 | 경기도기념물 제74호 | 1981. 4. 17 | 삼국시대 |
4 | 안재홍 생가 | 고덕면 계루지1길 7 | 경기도기념물 제135호 | 1992. 12. 31 | 일제강점기 |
5 | 평택무성산성지 | 청북면 옥길리 산17-8 외 12필지 | 경기도기념물 제202호 | 2005. 10. 17 | 삼국 ~ 고려시대 |
6 | 평택자미산성지 | 안중읍 용성리 산68 외 14필지 | 경기도기념물 제203호 | 2005. 10. 17 | 삼국 ~ 고려시대 |
7 | 평택비파산성지 | 안중읍 용성리 산6-1 외 24필지 | 경기도기념물 제204호 | 2005. 10. 17 | 삼국 ~ 고려시대 |
8 | 평택용성리성지 | 안중읍 용성리 455 외 28필지 | 경기도기념물 제205호 | 2005. 10. 17 | 삼국 ~ 고려시대 |
9 | 평택덕목리성지 | 현덕면 덕목리 647-1 일원 | 경기도기념물 제206호 | 2005. 10. 17 | 삼국 ~ 고려시대 |
이대원 장군 묘 및 신도비李大源 將軍 墓 및 神道碑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56호(지정일 : 1980. 6. 2)
소 재 지 : 포승읍 희곡리 산 83-6
이대원 장군은 조선 선조 때 무신이다. 1556년(명종 21) 포승읍 내기리에서 출생해 18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1587년(선조 22) 전라도 고흥 지방의 녹도만호로 재직할 당시 왜구와 싸우다 전사했다. 가족들은 장군이 속저고리에 피로 써서 보낸 절명시 28자를 받아 고향 대덕산 밑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장군의 사당에 불을 지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불이 꺼졌기에 소나기 ‘확’자를 써서 ‘확충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 이대원 장군 신도비 |
신도비는 이대원 장군 사당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높이 300cm, 비신 높이 220cm, 너비 85cm, 두께 40cm이고 대리석을 사용했다. 대좌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돼 있고 글씨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비문은 남구만이 찬하고 김진규가 전액 했으며 조상우가 글씨를 썼다. 건립 시기는 1675년으로 추정된다.
| 이대원 장군 묘 |
원균 장군 묘元均 將軍 墓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57호(지정일 : 1980. 6. 2)
소 재 지 : 도일동 산 82
1597년(선조 30) 7월 4일 전사한 원균의 유품을 장군의 애마가 물고 와 가족에게 죽음을 알렸다는 설화가 있다. 묘는 정유재란 이후 고향에 조성됐다. 원균은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책록되고 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원릉군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 兼 判義禁府事 原陵君에 추증됐으며 임금이 책록 봉작 교서와 제문을 내렸다.
|원균 장군 묘|
신도비1기, 문인석 2기, 무인석 2기, 석등 1기, 묘비 2기가 서 있고 설화가 담긴 애마총이 묘 아래쪽에 있으며 사당은 묘의 서북쪽에 있다.
|농성|
농성農城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74호(지정일 : 1981. 4. 17)
소 재 지 : 팽성읍 안정리 산 41-5
팽성읍 안정리 일곱집매 마을 부근에 있는 판축 토성土城이다. 모양은 타원형으로 동·서에 성문지城門地가 있다. 총 면적 14,900㎡, 성벽 높이 평균 6~8m 내외, 둘레 길이 약 300m, 남북 길이 101.9m, 동서 길이 73.2m다. 성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하며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농성 내부는 북쪽이 약 2m 가량 높고 동서 중앙 단면이 높아 전체적으로 볼록렌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토양은 붉은 황토 진흙에 모래가 약간 섞여있다. 축성築城시기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축성설, 고려시대 축성설 등과 신라말 고려초 임林씨 시조始祖인 임팔급林八及이 쌓았다는 설 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토기편이 다수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축조됐을 가능성이 높다.
|안재홍 생가|
안재홍 생가安在鴻 生家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135호(지정일 : 1992. 12. 31)
소 재 지 : 고덕면 계루지1길 7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1891∼1965)이 살던 집으로 완만한 경사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94∼1995년 안채·사랑채·담장·문간채 등이 보수돼 현재의 모습을 형성했다.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보고 있으나 원래는 대문채까지 있었다. 안채는 경기도지방의 전형적인 ‘ㄱ’자형 평면으로 7칸이며 앞쪽에 마루가 있는 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 왼쪽에는 안방이 있으며 그 앞으로 부엌과 부엌광, 나무간이 연결돼 있다. 전통한옥 초가지붕이다. 사랑채는 ‘ㅡ’자형 평면으로 오량구조五梁構造 팔작지붕이다.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오른쪽에 온돌방, 왼쪽에는 대청보다 한 단 높여 만든 누마루가 연결돼 있으며, 대청과 온돌방 전면에 툇마루가 있다. 잘 다듬은 방형 초석 위에 각기둥을 세웠으며 누마루 하부는 장초석을 사용했고 함실아궁이가 설치돼 있다.
평택 무성산성지平澤 武城山城址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202호(지정일 : 2005. 10. 17)
소 재 지 : 청북면 옥길리 산17-8 외 12필지
무성산성지는 무성산(해발 104.7m) 정상부근에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다. 성벽은 동·남·북벽이 능선을 감싸 돌고 있으며 서벽은 계곡을 가로질러 축조돼 성내의 유수가 이곳을 통해 배출 된다. 성벽은 협축식으로 축조됐으며 동벽의 내벽 중간부에 유단시설이 남아있다. 유물은 남벽 부근에서 채집됐는데 기와편 2점, 토기편 25점, 석제품 1점 등이다.
|평택 무성산성지|
토기류는 청동기시대 무문 토기편 12점을 비롯해 백제초기시대 토기편 등이 주로 채집됐다. 특히 무성산성지는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산만 일대의 방어 및 통치, 토성축조방식과 활용에 관한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평택 자미산성지平澤 慈美山城址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203호(지정일 : 2005. 10. 17)
소 재 지 : 안중읍 용성리 산68 외 14필지
자미산성은 자미산(해발 110.8m) 정상부 주위를 토축으로 축조한 내성과 7~8부 능선을 따라 석축으로 이루어진 외성의 2중 구조이며 성 동쪽 능선 110m 거리의 부성副城으로 이뤄졌다. 남북길이 125m, 동서길이 167m이다. 남북 중심축 방향은 정북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성벽 전체둘레는 582m이며 면적은 18,300m²이다.
|평택 자미산성지|
성 내부 시설물은 문지門地 2개소, 치성雉城 3개소, 건물지建物址 9개소, 수구지水口址 1개소가 있다. 유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 시기에 걸쳐 다양하게 수집됐다. 총 126점으로 막새편과 접합부 3점, 치미편 1점, 평기와 122점이다. 자미산성은 삼국의 격전지였던 아산만에 위치해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평택비파산성지平澤 琵琶山城址
지정번호 : 경기도기념물 제204호(지정일 : 2005. 10. 17)
소 재 지 : 안중읍 용성리 산6-1 외 24필지
비파산(해발 102.2m) 북쪽 정상부와 남동쪽 하단부 용성리 뒷골을 포함해 축조된 포무식 토축土築 평산성平山城이다. 동쪽으로는 차령산맥과 평택, 오산시 남쪽으로는 충남 아산과 천안시 일대가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길이 375m, 동서길이 499m이며 성벽전체 길이 1,622m, 면적은 138,800m²이다.
|평택 비파산성지|
현재 시설물은 문지 5개소, 치성 4개소, 건물지 14개소, 음료유구 5개소 등이 있다. 유물은 성 규모에 비해 많지 않으나 동벽 남측 제방부에서 건덕삼년乾德三年, 명銘기와가 채집됐고 파괴된 성벽 단면 판축토 내에서 무문의 고려시대 와편이 채집됐다. 토기류는 주로 성내에서 고려시대 것이 발견됐으며 숫돌 2점과 남서회절부 부근 민묘에서 납석제 용기편 1점이 발견됐다. 고려초 현성으로 축조돼 행정치소 및 해안 방어 중심기능을 했던 성으로 당시 지방제도 형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평택 용성리성지平澤 龍城里城址
지정번호 : 경기도기념물 제205호(지정일 : 2005. 10. 17)
소 재 지 : 안중읍 용성리 455 외 28필지
해발 30~42m정도의 낮은 구릉을 따라 협축식으로 축조된 토축평지성이다. 평면은 북벽이 약간 짧은 사다리 모양이며 남북 길이 128m, 동서길이 87m이다. 성내 시설물은 문지 3개소, 치성 5개소, 건물지 5개소, 수구지 1개소 등이 있다.
『조선보물고적조사 자료』에는 청북면 용성리 토루土壘 260간, 고일간내지3간高日間乃至三間 폭은 넓은 곳이 5간이며 용성현 시대의 향교지라고 전한다.
|평택 용성리성지|
평택 덕목리성지平澤 德睦里城址
지정번호 : 경기도기념물 제206호(지정일 : 2005. 10. 17)
소 재 지 : 현덕면 덕목리 647-1 일원
고등산高等山 북서쪽 끝자락의 낮은 구릉(해발 20m)에 축조한 토축 평지성이다. 원덕목 마을 진입로를 경계로 약 60m 거리를 두고 방형의 동성과 서성이 축조된 독특한 배치를 보인다.
현재 동성은 마을 형성과 경작지로 인해 모두 파괴된 상태다. 잔존기저부를 계측해 복원한 길이는 226m이며 동서길이는 75m다. 서성은 북벽길이가 97m정도인데 덕목리성 성벽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남북길이 42m, 동서길이 100m, 둘레 290m(잔존부 127m)이며 면적은 4,007m²이다. 시설물은 서성 내에 문지 1개소, 치성 1개소, 건물지 1개소가 있다.
고대 축성법에서 중세 축성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의 평지 토성이다.
|평택 덕목리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