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구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2호)
긍구당은 대략 65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건물로, 영천이씨 안동 입향조(諱, 李軒)가 지었다.
농암선생에게는 고조부가 된다.
농암은 이 집에서 태어났고 역시 이 집에서 돌아가셨다.
농암 당시 퇴락했는데 맏아들 벽오 이문량(碧梧 李文樑)공이 중수했고,
편액은 농암이 ‘긍구당肯構堂’이라고 해서 붙였다.
‘긍구’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는다”는 뜻으로,
이후 종택의 당호堂號가 되었고 중심 건물이 되었다.
모든 문사가 이집에서 논의 되었다.
글씨는 당시 명필인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선생께서 쓰셨다.
그 후 여러 번 중수를 했지만 구조와 방의 크기 등을 보면 최초의 모습에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마루에는 농암 88세 생일에 축하시를 쓴 인친척의 시가 농암의 시와 더불어 판각되어 있다.
사돈 탁청정 김유, 족질 퇴계, 손서 금계 황준량, 예안현감 이봉수, 그리고 다섯 아들들이 시를 지었다.
농암은 이 마루에서 85세인 1551년 7월 29일 생일을 맞이하여 ‘금서띠(金犀帶)’ 두른 굽은 허리로
자제들로부터 수연을 받고 그 회포를 국문시조 ‘생일가生日歌’ 한 수로 표현한 바 있다.
그 시조는 다음과 같다.
생일가:
공명이 끝이 있을까 수요는 하늘에 달린 것
금서띠 굽은 허리 여든 넘어 봄 맞음 그 몇 해이던가
해마다 오는 날 이 또한 임금의 은혜 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