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 철학
염 장열
벌써 여름이다. 뜰에도 마당 주위에도 녹차 잎이 무성하다. 덥다. 과수원에서 풀을 베고 돌아와 뜰에 있는 수돗가에 앉는다. 꼭지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이 맑은 물이 나온다. 첫물은 따뜻하더니 이내 시원한 물이 쏟아진다. 손발을 적시고, 얼굴과 목에 덧칠해진 땀과 열기를 훑어 낸다.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리도 좋을까? 더위 속에서 일하고 돌아와 맛보는 수돗가 휴식은 꿀맛이다. 땀에 젖은 양말과 면장갑을 빨아 햇빛에 널고 실내로 향한다. 아무리 여름 한낮이라도 찬물 목욕까지는 무리여서다. 언제부턴가 나는 밖에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수돗가에 앉아 자잘한 빨랫감을 손으로 주물러대면서 피로도 회복하고 지치고 굳은 몸을 풀어주기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거친 일을 하다 부드러운 집안 일로 진입하려면 잠시 짬을 내서 육신의 리듬을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그럴 때면 다른 빨랫감과 섞어 돌리기엔 좀 거시기한 것들을 손으로 빨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흙이나 냄새가 심한 거름 묻은 장갑이나 양말, 겉옷가지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옷가지와 양말을 아예 따로 세탁하였다. 언젠가 친구가 찾아 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유난 떤다고 지적하기에 그 뒤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대충 섞어 빨아왔던 터였다. 대강 철저히 살자는 최근 변화된 내 생활 기조도 작용했으리라. 그래도 버리지 못한 습벽이 아직은 남아 있어서 정도가 심한 것들은 따로 빨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도 따뜻하고 햇볕 좋은 봄, 여름, 가을에나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간혹 나이 들어, 맑고 고운 모습으로 여유 있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대할 때가 있다. 나 또한 노인 축에 들어섰으되 그런 이들을 대할 때면 부럽기도 하고, 무슨 복을 타고 났으면 저리도 곱게 늙어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심도 걱정도 없이, 나처럼 생각에 시달리지도 않고, 당신을 둘러싼 가족들이랑 부드럽고 평화롭게 살아왔겠거니 짐작을 해대며 나와는 딴 세상에서 살아왔으리라 여기고 만다. 그러다가도 가만히 내 주위를 둘러보노라면 내게도 그런 분이 가까이에 계셨다. 나의 할머니. 그리운 할머니다. 굳이 따져보자니 어머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살아냈던 할머니다.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혼인을 하고 나서도 꽤 긴 시간을 할머니 사랑 안에서 살아왔다. 단아한 체구에 종일 꼼지락거리면서 몸을 움직이고, 소식으로 생활하셨던 당신이다.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늘 온화로이 웃는 모습이셨다. 아흔 아홉으로 멀리 떠나시기 사흘 전까지 손수 당신의 속옷을 손빨래 하셨던 할머니, 나는 기어이 내가 손빨래를 좋아하게 된 근원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렇다고 내가 꼭 할머니처럼 한 세기를 살아내고 싶어서 손빨래를 즐겨하는 것만은 아니다. 산골 마을 농부가 고된 일을 끝내고 노동으로 굳은 몸을 풀어내면서 쉬어가고 싶은 것이 첫 마음일 것이다. 시원한 물을 맘껏 틀어놓고 빨랫감을 조물딱거리며 여유를 부려보는 일, 우리네 삶도 그러하면 조금 좋겠는가? 말은 쉬면서, 라고 했어도 어디 그것이 그리 쉬이 되는 일이던가! 손빨래를 하면서 내깐에는 여유를 부린다고는 해도 머릿속은 온갖 상념이 끝없이 맴돈다. 다행히도 그들은 헹굼 물길을 따라 하수구로 쏙쏙 잘도 빨려 들어가 버린다. 빙글빙글 쏘옥 사라져 버리고 나서도 온갖 생각은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지금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쉼 없이 몸을 움직이며 부지런히 나의 생명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소식을 하면서 내 육신과 영혼의 표출을 조화롭게 현현하고 있는가?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가? 무엇보다 나는 내 생명의 신비와 유일성에 걸맞도록 지혜롭고도 여유로이,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가? 그런가?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이런 생각들을 해댄다면 머리가 아플 일이다. 빨래 비누를 물에 젖은 옷감 위에 척척 문지른다. 빨래판에 조물락조물락 문질러댄다. 맑고 깨끗한, 시원한 물에 흙 때, 거름 때를 헹궈낸다. 혼탁해진 비눗물을 쏟아 붓는다. 맴돌던 생각들도 체증 없이 하수구로 쏙옥쏘옥 잘도 빠져 나간다. 시원하고 개운하다. 몸도 마음도 많이 부드러워진 듯 하다.
내 손빨래에 대한 연원이 꼭 당신으로부터만은 아닐 수도 있다. 내 성격에서 일 수도 있으리라. 성격도 당신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허나 본능적으로 내 정체성이랑 짝지어 내 습관의 즐거움에 대한 근원을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새 옷을 사와도 옷걸이에 걸어두고 눈에 익을 때까지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지나야 비로소 몸에 가만히 걸쳐보고 다시 벗어 걸어놓고, 또 눈에 익히고, 그러다가 좀더 친숙해지면 슬며시 몸에 걸치고 밖으로 나가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사다 놓은, 로봇 청소기나 세탁기며 건조기, 거기다 식기 세척기까지가 얼마나 낯설고도 데면스러웠겠는가? 혼자 살림에 설거지할 것이 얼마라고, 어차피 헹궈서 기계에 다시 넣어야 할 것을 번잡하게 할 일인가? 한 겨울에도 꼭지만 틀면 쏟아지는 따뜻한 물에, 세제를 쓰지 않아도 두어 번 헹궈 엎어놓으면 끝나는 설거지는 얼마나 간단하고, 또 마음까지도 깨끗이 씻어주는가? 조그만 손걸레로 엎드려 구석구석 한번 닦아내고, 두번 세번 빨아 깨끗이 닦고 나면 그 성취감이 얼마이고, 마음은 또 얼마나 개운해지는가? 굳어가는 몸은 또 윤활유를 친 기계처럼 여기저기 관절까지도 얼마나 부드러워지는가? 덕분에 지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때 내 마음은 얼마나 떳떳할 것인가. 저 호수에 가득 찬 물은 우리 아이들이 지금 도회지에서 마시고 있는 물이 아닌가! 그러니 내가 살림을 하면서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쯤에서 나는 무겁고 딱딱한, 의미로 가득 찬 내 하루 일과를 지난 생활과 연결하여 뭔가 그럴듯한 의미로 정리해 보고 싶어진다. 오천 년, 일만 년 전, 저 호수 건너 시냇가에서 해 뜨면 사냥을 하고, 어두워지면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신묘한 목숨을 즐기다가 함께 잠들었을 원시인들에게야 삶의 의미니 뭐니가 있었겠는가마는!
아무리 내가 원시인을 자처하며 손빨래를 하면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즐긴다고는 해도 한계는 있다. 자칭 생태환경을 돌보며 살아간다고는 해도 나이 들어가면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체력의 한계에서 오는 무력감, 대충 그럭저럭 살아보자는 가치관과 충돌이 그것이다. 그래 어쩔 수 없이 세탁기와 건조기, 청소기랑은 조금씩 친해져가고 있다. 그래도 내가 손빨래를 즐기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노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즐거운 이 몸짓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 큰 힘도 들이지 않고 노인에게는 딱 좋을 성 싶은 운동도 하면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손빨래는 나에게 당신을 향한 기도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기도를 통해 당신께서 무척 신산하기만 했을 법한 한 세기를 버텨낸 담담한 평화와 사랑을 조금씩 더 깊이 체득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당신 곁에 머무를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 (끝).
첫댓글 자~알 읽었습니다.
옛날, 수돗가에 앉아 빨래하던 엄마 생각도 나고, 동네 우물가도 생각나고, 냇가 빨래터도 생각나고, 그 냇가 물속의 피래미들도 생각납니다. 콕콕콕 다리를 간지럽히며 왔다갔다하던 그 작은 입들과 물의 감촉까지...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