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의 리더와 리더십】 (6) 형벌을 가볍게 함은 옳은 일인가? 형벌은 엄격하고 강해야 하는가? 가능하면 가볍게 하여야 하는가? 이것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논란의 대상이 된다. 지금도 ‘묻지마 살인’ 등 강력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가볍다고 항의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사형제도는 실질적으로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많은 판결을 보면 중형을 내리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사형제도의 폐지를 두고 논란은 계속된다. 전국 칠웅 중에서 가장 약했던 진(秦)나라가 강성한 나라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는 법가인 상앙(商鞅)의 20년이 넘는 강력한 개혁 정치의 덕분이었다. 상앙이 강력하게 시행한 법치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잘못하면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이었다. 상앙의 법은 거미줄처럼 상세하고 엄격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의 기강은 바로 섰다. 이런 상앙의 엄격한 법치는 뒷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도 강력하게 시행되었으며 법은 날이 갈수록 더욱 엄하게 적용되었다. 진시황이 죽고 난 후 2세 황제 호혜가 뒤를 이은 시기는 사소한 일에까지 지나치게 엄격한 형벌로 다스렸기에 거리에 형벌에 의한 발꿈치가 잘린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이때부터 지나치게 엄격하고 세밀한 형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덕치(德治)와는 거리가 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항우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던 유방은 관중에 들어간 이후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엄격한 진나라의 법을 폐하고 약법 3장으로 간소화하였으며 법적 처벌보다는 관용에 의한 덕치를 강조했다. 그후 한나라의 법 집행은 처벌을 가능하면 가볍게 하는 것을 덕치(德治)의 기본적인 철학으로 하였다. 후한의 광무제 역시 황제가 되기 전에 유학자요 선비 출신인지라 덕치를 기본으로 한 형벌을 가볍게 하는데 노력하였다. 후한의 광무제 건무 14년(무술 38년), 양통(*梁統 : 후한의 일물로 양목의 아들, 주군의 벼슬 후, 상산 장사, 건위부승, 조양후상, 금성태수 등을 지냈다)이 광무제에게 상소하였다. “신이 삼가 살펴보니, 원제(元帝) 초원(初元) 5년에 수사형(殊死刑-참수형)을 감형한 것이 34가지이고, 애제(哀帝) 건평(建平) 원년(元年)에 수사형을 감형한 것이 81가지입니다. 42가지 일 중에서 직접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서 한 등급 감형하니, 이 뒤로부터 감형이 미덕이 된 떳떳한 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법을 가볍게 범하고 관리들은 쉽게 사람을 죽입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이에 백성들은 형벌의 충(衷)에 맞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충(衷)이란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는 것을 이릅니다. 고조(高祖)로부터 효선제(孝宣帝)에 이르기까지 해내(海內-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가 잘 다스려졌다고 일컬어졌는데, 원제 초원(初元)과 애제 건평 연간에 이르러서 도적들이 점점 많아졌으니, 이는 모두 형벌이 알맞지 않아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쉽게 법을 어기는 일이 많아진 이유입니다. 살펴보건대 이로 말미암아 형벌을 가볍게 하는 일은 도리어 큰 병폐를 낳아서 간사한 자들에게 은혜가 주어지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그 피해가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광무제는 이를 덮어두고 답하지 않았다. -<通鑑節要 卷 17, 東漢記>- 광무제가 이를 덮어 둔 것은 그가 덕치를 강조하여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후한의 역사 전반에 범죄자들이 많아졌으며, 법의 엄격함과 형평성이 늘 문제가 되었다. 이는 후한을 일으켜 나라를 반석에 다시 올린 광무제의 여러 치적 중에서 흠결로 전하는 것들이었다. 후한은 말기에 이르러면서 형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전한다. 형벌의 적정성과 형평성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민생을 평화롭게 가꾸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의 『서경(書經)』 《여염편》에서 말하는 “백성들은 형벌의 충(衷)에 맞게 한다(爰制百姓于刑之衷)”고 한 것은 모든 형벌은 백성 생활의 정상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항상 적정하고 형평성에 맞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형벌이 삶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형벌은 사회질서의 구축과 사람들의 절제된 생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이 덕치(德治)의 길이 된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면 형벌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형벌은 적정하여야 한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야 하며 피해자의 측면에서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형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위가 높다고 가볍게 가하고 지위가 낮다고 무겁게 가한다면 법의 정의는 흐려진다. 그것은 서경에서 말하는 충(衷)에 어긋나는 것이다. 셋째, 형벌은 형벌 자체로 만족할 일이 아니라 도덕과 풍속을 교화하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시행되어야 한다. 형벌은 사회 정화와 교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형벌이 올바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은 “백성들은 형벌의 충(衷-참다움)에 맞게 행동하기(爰制百姓于刑之衷)”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