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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강해
지금까지 바울은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모든 인류는 죄인이며, 죄인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이신칭의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는 이 원리를 아브라함의 예로써 논증하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모든 사람은 그의 후손들이며, 이 원리가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
(롬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롬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이제 바울은 신자들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로서 어떤 삶을 사는 자들인지 그 실상을 밝힌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그렇게 살자고 하는 권면이기도 하다.
롬5:1~11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에 대한 권면
바울은 두가지 권면을 한다.
첫째,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ἔχωμεν/ ἔχομεν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관계가 청산된 것을 의미하니 이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자는 것이다.
둘째,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현재완료 καυχώμεθα
신자가 “믿음-의”의 원리 위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즉 세상의 상속자가 될 은혜의 언약을 받고 살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글킹 갈3:26)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니
(한글킹 갈3:27)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바울의 이와 같은 적극적 권면에, 모진 핍박 가운데 있었던 1세기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말과 그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고 하는 말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타당한 말이냐 하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 오늘 날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러한 모진 고통 가운데 있는데 어떻게 누리고 즐거워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에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통해 하나님 나라 상속의 은혜를 보장받은 성도들은 그 어떤 외적 조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연단-- 당하는 시험을 계속 참고 견디는 특성,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 단련된 인격
신자는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연마할 수 있게 해 주며, 인내는 영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쌓게 해 주며, 성숙한 인격은 확고한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체험 이후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악조건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더 견고하게 해 주시고, 자신의 사역을 더 능력 있게 해 주시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하였다.
바울은 신자가 가진 소망은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부으심이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런데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의 부으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확증하신 그의 사랑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확실한 증거를 가진 사랑이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6절 ☞ 그리스도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연약한 자들 곧 불경건한 자들을 위해 성경의 약속을 따라 죽으셨다. 다른 말로 하여 8절 ☞그는 불의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증거이다.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ἐν τῷ αἵματι αὐτοῦ δι’ αὐτοῦ δι’ αὐτοῦ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가 무엇인지 언급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결국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그와 화목하도록 만들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를 더욱 구원시키실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 구절이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에는 고도의 수사학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화목을 이끌어냈다면, 그의 부활은 얼마나 더 확실하게 구원을 보장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διὰ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καυχώμενοι
11절의 문장 자체는 서술형이나, 이 단락 처음 부분을 염두에 둘 때, 바울은 그렇게 살라고 강력히 권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신칭의에 대한 “아담-기독록적 논증” 5:12~21
바울의 주장 - 앞 단락에서 한- 에 대해 이러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과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의를 주고 구원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바울은 아담 기독론으로 답한다. “이것은 바울이 대표성과 연대성의 원리로 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한 아담이 인류일반에 대해 대표성을 갖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자에 대해 대표성을 갖는 다는 것이다. 또 아담과 인류일반이 연대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모든 사람들도 연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담 기독론은 아담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고,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함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통찰하는 신학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이미 언급한 대로 ”한 사람-모든 사람(one-many)”이라고 하는 대표성의 원리와 양자가 연대되어 있다고 하는 연대성의 원리를 핵심으로 한다.
바울의 설명은 이것이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모든 사람이 범죄하게 되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는 전 인류를 오염시켜서 죄에 빠지게 하였고, 결과 그들 모두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이 있기 저에도 죄는 세상에 존재하였다. 다시 말하여 율법이 없을 때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을지라도 죄는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였다.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세 때까지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도 죽음이 지배해 왔다. 이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인간은 모두 죄를 지었고, 죽음의 권세 아래 있었다는 뜻이다. 바울의 주장의 핵심은 죄 문제에 관한 한, 아담 한 사람이 인류를 대표하며 아담과 인류는 연대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위치에 있는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다.
바울은 바로 이 “오실 자”가 아담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데 집중한다.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아담의 한 범죄가 모든 사람을 정죄에 이르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한 의로운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칭의함을 주고 생명에 이르게 한다. 아담에게 적용되는 “한 사람 - 모든 사람”의 원리가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는 인류에게 죽음을 갖다 주었다. 즉 아담의 범죄는 인류로 정죄의 심판을받게 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은 그들에게 칭의의 선물을 갖다 주었다.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다른 말로 하여,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은 많은 사람을 죄인들로 만들었으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은 많은 사람을 의인들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아담이 대표하는 아담과 연대된 부패집단에 속하여 있지 않다. 그들은 이미 아담의 체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가 대표하는 그리스도와 연대된 의의 집단에 속하여 있다.
이제 바울은 율법과 은혜의 기능에 대해 언급한다.
(5:20) ❶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❷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❶전반부의 뜻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더 많은 죄를 짓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 아니다. 그 뜻은 율법으로 인해 인간의 수많은 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율법이라는 기준으로이 인간의 행위를 보았을 때 인간의 수많은 죄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❷하지만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주장한다. 이 말의 뜻은 죄를 많이 지을수록 은혜가 증대된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인간의 많은 죄를 그토록 명백히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모든 죄의 짐을 벗을 수 있도록 충만한 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διὰ δικαιοσύνης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하나님께서 이렇게 넘치는 은혜를 주신 것은 죄가 죽음을 무기로 횡포를 휘두르며 왕노릇 했던 것처럼 은혜가 칭의를 근거로 왕노릇하여 믿는 자들에게 영생에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