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어떡하지, 이게 아닌데….’
어제 연주에서 저는 두 군데의 가사를 잘못 불렀습니다. 한 달 넘게 붙들고 있던 곡이었고, 불과 한 시간 전 리허설에서 틀린 가사 없이 잘 불렀는데, 정작 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입은 노래를 하고 있는데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틀린 가사로 부르는 순간, 머릿속에는 당황과 헛웃음이 동시에 번졌습니다. 그렇다고 무대 한가운데에서 “잠시만요”하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남은 음악을 끝까지 붙들고 가는 일이었습니다.
무대에 서면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오는 듯합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또렷하던 가사가, 막상 조명 아래에 서면 안개처럼 흐려집니다. 입으로는 다음 음을 내보내고 있는데, 머릿속 한구석은 갑자기 백지장이 된 듯 멍해집니다. 참 묘한 일입니다. 평소에는 샤워하다가도 술술 나오던 가사가, 왜 꼭 무대에 서면 숨바꼭질을 시작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대라는 곳은 노래만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력과 평정심까지 함께 시험하는 자리인 듯합니다.
연주가 끝난 뒤 선배 연주자분들께 이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위로보다 먼저 웃음이 돌아왔습니다. “그거 다 겪는 일입니다”라는 말이 거의 인사처럼 들렸습니다. 어떤 분은 무대 직전에 가사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결국 직접 보면대를 들고 나가 악보를 보며 불렀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연주 중 머릿속이 완전히 하얘져서, 세상이 잠깐 멈춘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마추어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무대에 선 분들도 한 소절을 통째로 놓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1절과 2절을 사이좋게 섞어 부르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무대에서 실수하고 나면 다음 무대에 서는 게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사를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배 연주자분들이 알려주신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은 역시 연습입니다. 조금 뻔한 말이지만, 몸이 기억해서 자동으로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가사를 직접 써보는 일입니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만 외우는 것보다, 손으로 한 번 적는 일이 기억을 훨씬 단단하게 붙잡아 줍니다. 공부할 때 필사하던 습관이 공연장에서도 은근히 힘을 발휘하는 셈입니다. 또 하나는 가사가 표현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그 가사가 어느 시간에, 어떤 공간 속에서, 어떤 의미를 표현하는지를 마음속에 그리면 단어는 문장이 되고, 문장은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시각적인 풍경은 오래 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사를 잊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점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준비했어도 실수는 찾아오고, 아무리 단단히 붙잡고 있던 것도 무대 위에 서는 순간 손끝을 빠져나가곤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는 애써 붙들려 하기보다 담담히 지나가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조금은 태연하게, 조금은 뻔뻔하게 계속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관객은 생각보다 너그럽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우리의 실수를 관대하게 감싸줍니다.
생각해보면 무대는 완벽한 사람만의 자리가 아닙니다. 조금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잡고, 끝까지 자기 노래를 지켜내는 연주자가 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가사를 잊는 순간은 분명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몇 초가 연주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짧은 공백을 지나 어떻게 다시 노래를 이어가느냐가, 그 사람의 무대를 조용히 말해줍니다.
돌이켜보면 어제의 실수는 제게 작은 수업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한 줄의 가사를 놓친 순간은, 어쩌면 삶의 한 장면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인생 역시 늘 매끄럽고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부딪히고, 넘어지고, 뜻하지 않은 실수 앞에서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자기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마추어의 무대에서 오래 남는 감동 역시 완벽함에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서툴고 실수가 있더라도, 진심을 다해 끝까지 부르는 한 사람의 노래에서 오기도 하니까요.
첫댓글 열심히 준비했는데 무대에서 앞이 캄캄해 지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의 경험을 했을 때...... 낙심 되고 무대가 두려워서 한동안 노래하지 못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슬럼프를 이겨내고 시간이 흘러도 무대에서 또 가사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랬는데 그 곡의 흐름과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웅얼 거리며 연주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것은, '세상에 완벽한 노래와 연주는 없다.... 최선을 다해 노래에 대한 진정성과 정성을 가진다면 관객은 그것을 느낄 것이다.. '이 땅 위에 완벽한 삶도, 완벽한 노래도 없기 때문에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감사한 마음으로 무대를 맞이하는 것의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사.박자 등등 틀릴까봐 걱정 근심이 많았어요
헷갈리는 부분 잘 넘어가면 엉뚱한데서 걸리고
때로는 반주 선율을 감상하다가 다른 가사가 먼저 나오기도하고^^;;
바로 어제 일요일에는 미사 중에 화당송(시편기도)을 하다가 한 음을 먼저 내려와서 순간 당황했지만 무사하게 마무리하고는 안도했습니다.
무대에서 실수라는 경험을 통해서 좀 더 나아가게 되는거같아요. 무대에서 한 실수는 잊혀지지가 않아요^^
걱정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무대에서 실수해도 끝까지 잘 마무리하는거에 집중합니다^^
하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연주 좋으셨는데요...?
저도 어제 '그대 발자취일까'라고 부르는 1절에서 '임 발자취일까' 라고..ㅜ
정작 나도 모르는 실수를 관람객 지인이 지적,
얼마나 쑥스러웠던지...
말씀대로 인지하고 슬며시 넘어가는 경우, 또 아예 다시 시작했던 경험 등 실수가 잦음을 후회하고 또 다른 무대에서 다시 도전해서 만족도를 높이는 자기만족의 노력을 경주해보고 있습니다
2프로의 실수를 열심히 정진해서 무결점의 무대룰 만드려는 노력이 오히려 더욱 소중할 듯...
엘레지의 여왕 이ㅁㅈ 님도 많은 실수의 에피소드도 전해지지요...
부족한 게 많아
퍼팩트에 만족감 높이려고(물론 자기 만족) 또 도전해 보려 합니다
같운 곡으로...ㅎ...화이팅☆
쑥스러우실것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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