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거든 생각을 지극히 공변되게 하여 사사로움이 없게 하라/ 죄없는 곳에서라도 죄 있는 듯이 하라
不知畏之所爲 念至公之無思(전팔절) 부지외지소위어든 념 지공지 무사하라 두려움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거든 생각을 지극히 공변되게 하라
不知畏之所爲 無罪地而如罪(후팔절) 부자와지소위어든 무죄지이 여죄하라 두려움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거든 죄없는 곳에서 죄 있는 듯이 하라
한울님은 지공무사하나 사람은 ‘公’보다 ‘私’가 많다. '사‘가 많으면 자연히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 양심의 가책, 이것이 곧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옛 부터 한울의 위엄을 두려워하였고 “우러러는 한울이 부끄럽지 아니하고 굽어서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도록 가르쳤다. 한울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면 모든 일에 ‘公’위주로 할 것이요 ‘私’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사사로움 그것이 양심에 죄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양심을 속이고 죄를 범하기 때문에 언제나 두려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죄 없는 곳은 내 본심이다. 내 본심이 공심이기 때문에 언제나 사심을 경계하고 있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 내가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였을 때 내가 그 일에 죄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이것을 양심의 발작이라 한다. 내 양심은 죄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모든 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그 행위는 공이 아니요 사사로운 죄과에 빠진다. 언제나 내 마음에 모신 한울님이 두렵다는 생각을 잊지 아니하면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기의 근본을 모르니 대충 살아간다. 왜 사는지도 모른다. 그냥 세상사에 밀려 허급지급 살아간다. 그러니 자연히 윤리와 도덕이 사라져서 머리 시꺼먼 짐승들이 사는 세상이 되었다. 어찌 한탄하지 않으랴! 위하고 위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천도교가 해야 될 일인데..요즈음은 천도교가 세상사에 손을 놓은 모습이 된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의암성사께서 종로 네거리에서 도를 닦는다는 말씀을 되새겨서, 세상과 더불어, 아니 한 발 앞서 길을 열어 주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 행하도록 기운을 모아 가길 심고드린다. 내가 바로 다시 개벽의 마중물이고 거름이며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오늘은 개천절입니다. 내기 바르게 깨달아 행하며 세상을 조화로운 한울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첫날로 만들어 가시길 심고드립니다. 그 길은 어진 사람을 만나 시운시변 위논하고 삼칠자전해주는 포덕을 하는데 있지않을까요?! 포덕166년 10월 3일 개천절에 부암 심고 010.2664.2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