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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작품이라고 남들이 그럽디다.
떠도는 익살의 희화(戱畵)
새벽 네 시. 김 목사는 계단을 쓴다. 술집이 있는 이층에서 교회가 있는 삼층까진 쓸 것도 없으나 일층 입구에서 이층까진 그야말로 쓰레기장이 따로 없다. 담배꽁초며 구겨진 휴지, 이쑤시개, 유리조각, 달라붙은 껌, 심지어 가래침까지. 어쩔 땐 고춧가루와 시래기가 뒤범벅된 위장의 토사물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모두가 어둠을 틈타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저지른 얍삽한 행위의 뒤끝들이다.
다섯 시가 못 되어 신도들은 새벽기도를 위해 몰려온다. 그때까지 계단 청소를 마치고 샤워를 한 다음 양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러려면 항상 서둘러야 했다. 조금 일찍 일어나도 조급한 마음은 마찬가지.
빗자루 질이 끝나면 마포걸레질이다. 담배꽁초를 비벼 놓은 자리나 가래침 자국은 쓰는 것만으로 감추어지지 않는다.
어둠이 골목에 가득하다. 술집 주인은 오늘도 간판의 불빛을 끄지 않았다. <에덴의 추억>. 술집의 이름으로 에덴의 추억이라니? 볼 때마다 가소롭거니와 하나님 지으신 동산에 대한 불경한 느낌이 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갖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그 간판 아래, 형광등 하나로 빛나는 하얀 바탕에 청색 아크릴로 새긴 <생명수 교회>가 초라하기 그지없어도. 그렇게 얘기했건만.
“계단 청소야 제가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업이 끝나면 계단 입구에 있는 간판의 불은 꼭 좀 꺼주십시오. 새벽기도 오시는 성도님들께서 술집에 들어서는 기분이랍니다.”
“아, 그렇겠군요. 그 기분 이해해요. 꼭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만 저도 신이 아니고 사람인지라 깜빡깜빡 하거든요.”
며칠 전, 지금까지 감당해야했던 모든 불편함을 무릅쓰고 그 말만 했었다. 자신도 꼭이란 말을 썼지만 곱상하게 생긴 술집 여주인도 생글생글 웃으며 꼭이란 말을 강조했다. 굳이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 자신을 비꼬는 것 같아 거슬리기 했지만. 그랬는데.
자신이 봐도 크기로나 조명으로나 색상으로나 교회 간판은 술집 간판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지하에 있는 이발관을 상징하는 건물 외벽에 붙은 레온사인은 스물네 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 쳐다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 멀미할 때처럼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막막하다. 그렇게 정신머리가 없어서야! 곱상한 얼굴이 빤빤한 얼굴로 변하여 가증스러웠다. 그녀가 옆에 있다면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 술집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스위치는 그 안에 있다. 간판에 연결된 전선을 잘라버리고 싶지만 명색이 목사인데 그럴 순 없어 억지로 참는다. 어떤 수단을 강구해야지. 김 목사는 쓴맛을 다지며 계단을 올라간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던가. 서른 평에서 쉰 평으로 이사 올 때는. 성도도 그만큼 불어났다. 서른 명에서 쉰 명으로. 백 명이 되고 이백 명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였다. 곧 셋방살이를 벗어나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은 어느새 새 성전에 대한 설계로 꽉 찼다. 성전만 건축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목회생활 이십 년이 되도록 셋방살이를 면치 못했다는 자괴감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해졌다. 이제야 희망의 싹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도 성도는 더 이상 불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처음엔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불거지고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문제들을 위하여 발 벗고 나서리라 다짐했다.
지하의 이발관을 들어갔을 때 목사는 어리둥절했다. 지하라 할지라도 머리를 깎는 곳이라 자연히 대낮같이 환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숨소리조차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한데다 어두컴컴하기조차 했으며 숨이 탁 막힐 정도로 칸칸이 막혀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니, 여기 이발관 아니에요?”
“맞아요.”
그를 맞은 여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언뜻 보면 아가씨 같기도 한데 어찌 보면 아줌마 같기도 했다. 짙은 화장 때문이리라.
“이발하시게요?”
“네.”
엉겁결에 그는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그의 양복저고리를 벗겼다. 어디서 퍽퍽 손뼉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따라 오세요.”
여자는 주름진 칸막이를 확 밀치더니 앞장을 섰다. 하얀 허벅지가 드러나는 낯 뜨거운 미니스커트에 반소매 블라우스. 면도하는 여자들도 이렇게 변했구나. 언제였던가. 촘촘한 나무창문으로 길 가는 사람들을 이발 중에도 거울로 엿볼 수 있는 자연 채광의 이발소를 가본 때는. 구레나룻이 긴 늙수그레한 이발사가 덧댄 이부의 바리깡으로 머리를 빡빡 밀어주면, 따뜻하지도 않는 연탄난로에 비누거품을 일으켜 얼굴에 바르고, 가죽 띠에 칼을 문질러 면도를 해주던, 아직 시집가지 않은 긴 생머리 여자의 생생한 숨결이 야릇하게 느껴지던 시절은. 여자 면도사는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에 하얀 가운을 입은 아주 깔끔한 차림이었다. 그때 이후로 이발소에 간 기억이 없다. 그의 머리 손질은 언제나 미용사 출신의 아내 몫이다. 지하실의 이발관이 어떤 풍경인지는 그래서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가 복도 같은 길을 따라가 앉은 곳도 어두컴컴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만 정면의 거울과 특유의 의자만이 이발하는 곳이란 걸 알게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한 낯선 풍경에 그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냥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나 자신의 소심함을 탓했다. 목사들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어떤 성도의 말도 생각났다.
“면도부터 하겠습니다.”
여자는 의자를 뒤로 젖힌 다음 비로소 불을 밝혔다. 그러나 불빛은 의자 주위만 환할 뿐이었다. 뜨거운 수건이 얼굴을 감싸고 비누거품 대신에 면도용 크림을 발라 여자는 세심하게 면도를 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발을 위해서 온 게 아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전도하지 않고 남 보듯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하실부터 1층과 2층, 그리고 4층의 건물주까지 전도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교회만 나와 준다면 지금까지 불거진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소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제일 어렵고 힘든 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따르리라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 어깃장을 놓고 동냥도 안 주면서 바가지까지 깨려고 덤볐다.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듯이. 사소한 이해관계로 생긴 벽을 넘기란 피차간에 어려웠다. 그것을 뛰어 넘어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발하는 곳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더욱이 면도하는 도중에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여자의 면도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지루하지가 않았다. 부드러운 손으로 얼굴을 끝없이 문지르며 한 데 또 하고 또 하길 반복했다. 귀에 난 솜털까지 여자는 밀었다. 이 맛에 남자들이 면도를 하겠구나.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피곤했던 삭신이 노글노글해지고 있었다. 그대로 달콤하게 잠들고 싶었다. 여자는 코털을 자르고 다시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더니 눈을 가리고 차가운 젤을 발랐다. 가슴엔 넓은 수건이 덮어졌다. 손톱을 깎고 귀지를 파냈다. 거기까지도 손님을 위한 서비스라 생각했다. 그런데……?
양말을 벗겨 발까지 씻겨주는 게 아닌가. 이렇게까지? 그는 미안할 지경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건 사랑이고 자신을 한없이 낮춘 행위였다. 이 여인은 어쩌자고 나의 발을 씻기는가? 손님이 왕이라서?
마른 수건으로 발을 닦은 여자가 의자를 가져다 옆에 앉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여자가 팔을 가져가 손가락 하나하나를 잡아당기며 톡톡 소리를 냈다. 그리곤 주무르기 시작했다. 안마였다. 이거 참, 난처했다. 관두라 할 수도 없고. 어깨를 주무르자 팔뚝에 여자의 젖가슴이 뭉클하니 닿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안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자의 손은 어깨며 가슴이며 배를 떡 주무르듯이 주물렀다. 오른쪽 상체가 끝나는가 싶더니 의자를 왼쪽으로 옮겨 똑같이 주물렀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시험도 보통 시험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주여, 하고 외쳤다.
여자는 이제 아래로 내려갔다. 다리였다. 그것도 허벅지 주변이 주로 공략 대상이었다. 위로 아래로,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여자의 손은 나긋나긋하게 움직였다. 간간이 여자의 손이 실수인 듯 가운델 건드렸다. 그러면 그것은 맹렬하게 반응했다. 정말 안마가 이런 건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마음뿐, 섣불리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며 어떻게 해주었으면 싶었다. 그 바람은 참으로 간절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 여자의 손이 갑자기 양물을 움켜쥐었다. 그렇잖아도 마음과는 다르게 곤두서있던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목자로서 심히 부끄러웠던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여! 주여! 속으론 그렇게 부르짖었으나 밖으로 튀어나온 소리는 아! 소리였다.
“하실 거죠?”
“아!”
그때부턴 정신이 없었다. 그는 그가 아니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여자가 혁대를 풀었다. 멈출 수도, 멈추게 하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 수컷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것은. 그는 부르르 떨었다. 그 뒤로 여자의 동작은 빨라졌다. 여자가 젖은 수건으로 그의 양물을 닦아주고 있을 때 그는 지옥으로 추락한 자신의 처참해진 심정을 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여자가 나머지 한쪽 다리는 건성으로 대충대충 주무르고. 이윽고 얼굴에 발라 굳은 젤을 떼어 눈가리개를 벗겨내도 그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이런 곳에서 전도할 생각을 하다니. 내가 순진한 것인가, 모자란 것인가? 이렇게 속수무책 당하다니. 여자가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을 아는가. 농락당한 것만 같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어서 빨리 이발관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냥 가야겠는데…….”
그는 여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바쁘세요?”
“네.”
그의 목소리는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머리 안 깎으실 거예요?”
“네.”
“그럼 빨리 머리 감겨 드릴게요.”
그는 다행이다 싶었다. 이발을 해야 한다면 꼼짝없이 이발을 당할 참이었다. 그의 의지는 이발관을 들어설 때 이미 밖에 두고 온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여자가 시키는 대로 재빨리 의자에서 엎드렸다. 여자는 부리나케 머리를 감겼다.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다시 누워 로션을 바르고 양말을 신었다. 이제 나갈 일만 남았다. 그러나…….
이 일을 어떡하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계산. 애초에 이발비도 모르고 들어왔던 그다. 얼마를 줘야 하는가? 분명히 이발비만 받진 않으리라. 난감했다. 물어볼 수도 없고. 알아야 면장을 해먹는다는 속담, 틀림없었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여자를 따라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뻔지르르하게 생긴 남자가 빙긋이 입을 쪼갰다. 너의 행실을 다 안다는 듯.
“바쁘신가 보죠?”
“아, 네.”
여자는 양복저고리를 입기 편하게 벌렸다. 그는 팔을 꼈다. 어떡한다?
“계산……?”
그는 지갑을 꺼냈다. 남자는 못 본 척했다. 여자는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를?”
“알아서 주세요.”
“그래도…….”
“다른 분들은 칠팔만 원 주세요. 좋으신 분들은 한 장도 주시고요.”
“!!!”
여자가 마귀 같았다. 그는 돈을 세기 싫어 십만 원 수표 한 장을 던져줬다. 아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까마득했다. 자신의 지갑에서 돈이 나간 기억이. 여자의 입이 함박만 해졌다.
“또 오세요!”
어디 살며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그는 퇴폐이발소란 말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자기완 상관없는 다른 나라 얘기 같았었다. 그런 것이 같은 건물에 존재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런데 친히 체험을 하게 되다니!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겨지던 상가 건물이 마귀의 소굴로 느껴진 건 그때부터였다.
왕복 4차선 도로변에 있는 상가의 일층엔 전자오락실과 24시 편의점과 치킨집이 있다. 이층은 라이브 카페라는 알파벳 필기체와 함께 에덴의 추억이라고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있는 술집이고 삼층이 생명수 교회, 그리고 사층에 상가 건물주와 목사의 살림집이 있다. 전자오락실도 24시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밤낮으로 뿅뿅거린다.
김 목사는 이발소에서 그 일이 있고난 후 상가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업소에 대한 전도를 포기했다. 그 순간이야 어찌 됐건 생각조차 하기 싫어 전도할 마음이 싹 가셔버린 것이다. 교회를 드나들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지하실만 쳐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네온사인은 자신을 비웃는 것 같고 행여나 면도하던 여자를 다시 만날까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그 뒤로 마주치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시치미를 딱 떼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은 그 일 후에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강대상 앞에 엎드려 눈물 흘리며 기도한 해답이었다. 또한 마음을 다지기 위해 여태까진 자연스런 바람머리, 앞머리가 이마를 가리던 걸 머리를 뒤로 빗어 스프레이를 뿌려 이마가 훤히 드러나도록 다녔다.
이사 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가의 업소들은 하나같이 교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신축건물이나 다름없던 건물은 차츰차츰 지저분해졌다. 층과 층 사이 계단의 중간에 있는 화장실엔 수시로 사람들이 들랑거리고 중 고등학생들이 몰래 피우는 담배연기가 자욱했으며 치킨 집에서 풍겨나는 기름 냄새는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사실상 사람 사는 곳이라면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이해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에덴의 추억에서 밤이면 울려나오는 자지러지는 노래 소리와 술집과 교회가 같은 건물에 공존한다는 심정적인 거부감이 문제였다. 위에선 예배드리는데 어떻게 밑에선 술을 마실 수가 있으며, 위에선 기도드리는데 어떻게 밑에선 희희낙락할 수 있고, 위에선 찬송을 부르는데 어떻게 밑에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 있느냐는.
일요일 낮에 드리는 주일예배와 수요저녁예배, 금요철야기도, 새벽기도,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등 셀 수 없이 많은 예배와 여러 행사에 에덴의 추억은 심각한 방해물이었다. 술집 손님과 예배를 드리려는 성도가 나란히 계단을 오르내렸고 술 취한 사람이 계단에 퍼질러 앉아 있는가 하면 한밤중에 남녀가 껴안고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장면까지 목격되었으니.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교회가 부흥되길 바랄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위는 교회, 아래는 술집. 위는 하나님 중심인데 아래는 사람 중심이고, 위는 엄숙한데 아래는 시끄럽고, 위는 도덕적인데 아래는 퇴폐적이고, 위는 영혼을 구하는데 아래는 육신을 구하고, 위는 회개하는데 아래는 타락을 부추기고, 위는 맑은데 아래는 흐리고, 위는 빛을 좇는데 아래는 어둠을 좇는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극단의 공존.
진풍경이었다. 김 목사는 고민했다. 생각 같아선 하루라도 빨리 그 상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건물을 통째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꿈도 꾸어 보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발소도 내쫒고 에덴의 추억도 내쫓아버리고 일층에 있는 세 곳 점포 모두 내쫓아버리리라. 만약에 건물주가 성도가 된다면? 그래서 건물을 교회에 헌납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재벌 회장이 성도가 되어 거액을 헌금한다면? 그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정말 꿈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잘 알았다.
그렇다고 다른 데로 이사 갈 수도 없었다. 삼층의 임대 기간은 오 년이다. 내부시설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보증금의 일부는 은행에서 빌렸다. 현실적으로 교회가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건물주에게 이층에 술집이 들어서는 걸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교회가 문은 먼저 열었지만 계약은 술집 주인이 먼저 했다. 이층에 카페가 들어설 것이라는 사실을 목사도 알고 장로도 알고 권사도 알고 집사도 알았다. 뒤늦게야 카페라기에 차나 팔고 고상한 클래식이나 틀어 조용할 줄만 알았지 이렇게 술도 팔고 생음악으로 시끄러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서로 발뺌하기에 바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목사는 물론이고 믿음이 깊은 성도 모두의 고민이었다.
급기야 주일예배 후 전 세례교인의 합동회의가 열렸다. 목사는 모두가 실감하는 난장판 위에 교회가 서있는 기상천외한 현실을 얘기하고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술집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청년회가 방해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영업방해로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는 말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교회가 이사 갈 수는 없으니 술집이 이사 가도록 설득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 의견도 술집 주인이 천사가 아닌 이상 이사 비용과 인테리어비용을 물어줘야 그나마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조건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뾰족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나이 팔십이 되는 홍 권사가 일어나 참으로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런 예수님의 말씀도 잊으셨습니까? 기도하면 될 것을 뭘 그리 걱정들 하세요. 우리 모두 저 놈의 술집 망하라고 기도합시다. 망하면 조용해질 것 아니요?”
그녀의 목소리는 믿음으로 카랑카랑했다. 그러자 주여, 아버지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이 집사가 맞장구를 쳤다.
“권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당장 이층에 있는 술집 망하게 해달라고 철야기도를 드립시다.”
“그럽시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기도뿐이라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그날 밤부터 김 목사를 비롯한 생명수 교회 열혈성도들은 철야기도에 들어갔다. 성도들은 술집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김 목사는 이발소까지 망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
에덴의 추억. 밤 열 시가 되었건만 테이블은 반도 차지 않았다. 개업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주변에 없는 라이브무대라는 신선한 매력 때문인지 장사가 곧잘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이 들지 않았다. 종업원의 인건비며 관리비, 출연료, 대출금 상환 등 고정비용은 줄어들지 않는데 수입은 자꾸 줄어드는 것이다. 지난달은 서어빙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두 명 줄이고 소모품을 아낀다고 아꼈는데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윤정은 한숨을 쉬며 맥주를 홀짝였다. 무대 위에선 <숨어 우는 바람소리>라는 애절한 노래를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어린 여가수가 이별을 몇 번이나 경험한 것처럼 참 청승맞게도 잘 부른다.
“물장사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냐. 잘 생각해서 해. 털어먹는 거 한순간이야.”
자신도 물장사를 하면서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똑같은 이혼녀 신세인 친구의 가게는 거의 매일 손님으로 넘쳐난다. 돈이 통장에 두둑해지고. 돈이 사람을 달라보이게 하는가. 친구는 이혼하기 전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얼굴의 혈색부터 달라졌고 반지며 목걸이 같은 장신구, 입고 다니는 옷,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최고급이다. 행동거지도 품위 있고 만나는 남자들 또한 핸섬한, 잘나가는 부류뿐이다. 네가 그럴진대 내가 못할 게 뭐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친구 좋다는 게 뭐니? 널 믿고 하려는 거야.”
남편의 외도. 한 번은 용서했으나 두 번째는 용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까지 맡겨버리고 이혼을 결심한 건 친구의 당당한 홀로서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는 뭐 날 때부터 술장사였나? 물론 처음 시작할 때 친구의 도움은 컸다. 그러나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친구의 가게에서 경험을 쌓는다고 몇 달을 지켜본 바가 있어 친구와 똑같이 한다고 하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어설펐다. 그러자 가게의 장소며 종업원이며 출연진이며 안주까지도 친구의 가게보다는 왠지 어설프고 모자라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친구의 가게는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손님이 많건 적건 간에 열기가 넘치는데 에덴의 추억은 절정의 시간에도 그만큼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의 가게는 손님이 없어도 언제고 들이닥칠 분위기인 반면에 자신의 가게는 있던 손님마저 곧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무대 위의 가수가 아무리 분위기를 잡아보려 애가 타도록 소리를 지르지만 억지처럼 여겨졌다. 그러다보니 손님까지도 친구의 가게에 오는 손님들과 격이 다르게 보였으니.
무엇 때문에 이러는가. 손님에게 대하는 내 태도?
친구는 당당했다. 점잖은 손님에겐 의연했고 지분대는 손님에겐 도도했다. 젊은 사람들에겐 포근하고 나이 든 사람들에겐 발랄하게 대했다. 나도 친구 못지않다! 외모에서도 학생 시절부터 친구는 나보다 한 수 아래였다. 친구가 나보다 앞서는 것은 이혼과 술장사를 빨리 시작했다는 것뿐, 정말 나을 게 없다고 자부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친구의 가게도 상가의 삼층이다. 다만 친구 가게의 사층과 오층은 모텔이라는 것이 달랐다. 가만? 내 가게의 위층은? 교회, 교회다!
멀리서 가게를 보면 낮에는 옥상의 첨탑이 먼저 눈에 띄고 밤에는 붉은 십자가가 선명했다. 술집과 교회. 절대로 궁합이 맞을 리 없다. 왜 이걸 여태껏 몰랐을까.
“좀 이상해요.”
“뭐가?”
“교회 밑에서 술병을 나른다는 거요.”
아르바이트 여대생도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은 미스 리도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러나 한쪽 귀로 흘렸다. 장사가 그런 대로 되었기 때문에.
“장 마담, 터를 잘못 잡은 거 아뇨?”
“터를 잘못 잡다니요?”
“나도 일요일이면 교횔 가는데 어쩐지 꺼림직 하거든. 하긴 술 마시고 바로 고개 들어 회개할 수 있으니까 나쁠 것도 없겠지만 말이야.”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 박 사장도 웃으며 한 말이다. 농담조로 들렸지만 요즘 그가 오는 일도 뜸하다. 그러고 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게 모두 교회 때문으로 보였다. 간혹 가다 마주치는 교회 신자들의 외면하는 눈길도 사실은 경멸하는 차원을 넘어 벌레 보듯 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쭉 끼쳤다.
하긴 자신부터도 위에서 십자가가 벌겋게 불을 밝히고 있는 술집엘 가는 것보다 여차하면 들어가기 편리한 모텔이 있는 술집을 선호할 참이다. 어쩌자고 그 많은 세상살이 중에 하필 교회가 들어섰단 말인가.
그녀는 삼층에 교회가 들어설 줄은 애당초 까맣게 몰랐었다. 계약을 해놓고 며칠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려고 보니 이미 교회가 이사 와 있었던 것. 그때까지만 해도 무심코 교회가 들어왔구나, 그랬었다. 별 문제가 있으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찬바람이 불면 좀 나을까 싶었으나 여전히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라이브 무대를 없앨 수는 없어 중요한 시간을 빼고는 출연료가 아주 싼 아마추어들로 채웠다. 대신에 술값을 내리고 팔지 않던 소주도 메뉴에 넣었다. 그러나 손님은 늘지 않았다. 하루하루 적자는 쌓여갔다. 술을 공급하는 업체에선 룸을 만들어 예쁜 아가씨들을 데리고 장사해보라 권해왔다. 그러자니 다시 시설을 해야만 했다. 이미 남편과 헤어지면서 받은 위자료는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이미 들어간 돈을 생각하니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문을 계속 열자니 빚만 늘어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목사가 찾아와 간판 불 좀 잘 끄고 다니란다.
‘신자들이 술집에 들어서는 기분이라고? 흥, 우리 손님들은 교회 와서 술 먹는 기분이라 뭣 같단다. 아예 문을 닫으라고 하시지?’
속에선 열불이 났으나 알았다고 웃으며 보냈다. 생각 같아선 그 잘난 얼굴에 독한 양주를 끼얹어주고 싶었다.
그녀는 오기가 생겼다. 의식적으로 간판의 불을 끄지 않았다. 알 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손님들에게서 받은 명함을 들추며 갖은 웃음으로 전화를 했다. 놀러 좀 오시라고. 돈이 없고 카드가 없으면 외상도 서슴없이 주었다. 종업원들에게 금지시켰던 술시중도 들게 했다. 자신이 솔선수범했다. 잘 마시지 않던 술도 마셨다. 원래 많이 마시지 못하는 술인지라 조금만 도가 지나쳐도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에서 토했다. 그런데도 또 마셨다. 그러나 적자였다. 어떤 때는 종업원들만이 가수의 노래를 들었고 어떤 날은 고작 한 테이블의 손님만 받은 날도 있었다. 노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신이 나지 않았다.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이 떠나지 않았고 팽팽하던 피부도 거칠어졌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건만 이제 화장하지 않으면 손님 앞에 나설 용기도 없어졌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돈을 더 빌릴 곳도 없었다. 그 누구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결국 노래하는 사람은 오지 않았고 종업원들도 스스로 떠났다. 망한 것이다.
그래도 불은 밝혔다. 생음악 대신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키웠다. 허망했다. 이혼한 지 1년도 안 돼 가진 거 다 털어먹은 것이다. 텅 빈 가게에 그녀는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아! 하나님,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었다. 저절로 나온 소리였다.
“교회 다녀라. 이 세상천지 믿을 건 하나님밖에 없다. 하나님께 매달려라. 너희 서방 그러는 거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게다.”
일찌감치 홀로 되신 친정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에도 윤정은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교회 나간다고 남편의 바람기를 잡는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기보다 남편의 각서를 믿었다. 다시 한 번 바람을 피우는 날엔 무조건 이혼한다는 각서.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고 남편도 그녀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둘 사이에 이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은 실수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믿었고 이혼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신뢰했다. 그러나 남편은 또 바람을 피웠다. 그래도 남편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만큼 사랑했기에 배신감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이혼을 무릅쓰고 피운 바람이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이혼 서류를 내미는 그녀 앞에서 사색이 되었다. 남편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바람을 피우고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았다. 그녀는 그게 아이러니였고, 그게 더 가증스러웠다. 그래서 결행했던 이혼이었다.
‘남편의 바람은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아 계속되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사랑은 전혀 변함이 없었지 않은가. 그가 그리웠고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후회스러웠다. 당당히 홀로서기에 성공해서 아이들에게 나서고 싶었는데…… 비참했다. 교회에 가볼까? 바로 위에 있는데. 오늘이 몇 요일이더라? 아니, 요즘은 매일 밤마다 찬송 소리가 들리잖아. 다시 시작하게 해달라고, 손님이 꽉꽉 들어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볼까? 술을 마셨잖아. 마셨으면 어때, 이 답답한 심정을 더 잘 알아주시겠지.
윤정은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갔다. 부끄러웠다. 문 앞에 서서 머뭇거렸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무얼 망설이랴.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천정에서 몇 개의 등만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옆을 보고 앞을 보았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엄숙한 분위기였다. 기도하는가보다. 그녀도 고개를 조아리고 눈을 감았다.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 그녀는 기도할 줄도 몰랐다. 그렇지만 교회라는 곳에 들어와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일었다. 두근거리던 가슴도 서서히 진정이 되어갔다. 그러자 들리지 않던 소리가 옆자리와 앞자리에서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루지 못 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이곳에 허락하신 이 신성한 교회가 물질과 쾌락에 눈이 먼 자들에 의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희들이 예배하는데 술을 마시고 기도하는데 노랠 부르며 찬송하는데 고함을 지릅니다. 아버지, 저들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 자들을 책망하시고 모든 장사치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저 타락한 자들의 더러운 모습과 음성이 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교회를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하루 속히 술집이 떠나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술을 파는 자들도 망하고 술 마시는 자들도 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윤정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술을 파는 자도 망하고 술 마시는 자도 망하게 해달라니?
“하나님 아버지, 도대체 에덴의 추억이 무슨 망발입니까? 하나님 지으신 동산을 타락의 온상인 술집으로 모욕해도 되는 건가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를 어찌 보고만 계십니까.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그들이 철저하게 망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이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에덴의 추억을 망하게 해달라고?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러고 있으니, 이렇게 처절하게 기도하고 있으니…… 장사가 될 리 만무했다. 틀림없었다. 자기가 망하게 된 게 교회 때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들이 저녁마다 부르짖는 기도는 다름 아닌 술집 망하게 하나님께 졸라대는 것 아닌가. 어찌 망하지 않고 배겨날 수 있었으랴.
윤정은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녹음기를 들고 철야기도에 참석했다. 그리곤 신도들의 인정사정없는 기도내용을 모조리 녹음했다.
*
윤정은 교회를 경찰에 고소했다. 교회 신자들의 기도 때문에 자신의 술집이 망하게 되었으므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
김 목사는 어이가 없었다. 살다 살다 이런 꼴까지 당해야 하나? 기가 막혔다.
*
경찰은 목사와 윤정을 불러 물었다.
“고소인은 정말로 기도로 인해서 술집이 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틀림없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모든 교인들이 합심해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망하지 않고 배겨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목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상식적으로 맞는다고 보세요? 어떻게 기도한다고 술집이 망하겠어요? 이 개명 천지에 기도해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면 안 이루어질 게 어디 있겠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마 기도해서 술집이 망했다고 하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겁니다.”
그는 오히려 똑같이 기도했는데 어째서 술집만 망하고 이발소는 망하지 않은 거냐고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믿는다.
안 믿는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
경찰은 조서에 이렇게 썼다.
<하나님에 대한 술집 주인의 믿음은 매우 확고했으나 목사의 믿음은 너무 형편없었다.>
-끝-(81)
첫댓글 ㅎㅎㅎ 정말 웃깁니다요.
내 <사랑의 진화>(가제)(장편 1400매)라는 작품에선 현 한국교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쳐보았습니다. 재 작년은 이 작품으로 1년을 보냈지요. 아직도 출판을 미루는 건 뭔가 겨냥했었는데 --- 아닌가? 몇몇 출판사와 조건만 맞으면 계약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