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시>
이리 서둘러 가신 뜻이 무엇인가요 | 임 보
─ 소강素江 이무원 시인 영전에
엊그제 그렇게도 정정한 얼굴로 만나
시낭송도 하고 희희낙락 담소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보기 싫다고
인심이 너무 각박해서 견디기 힘들다고
그렇게 서둘러 떠나시나요?
당신처럼 바르고 곧은 정신을 지닌 교육자가 어디 있으며
당신처럼 맑은 시정을 지닌 시인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이 시대에 만나기 어려운 고결한 선비였습니다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 한 권의 시집을 헌사하기도 하고
좋은 친구를 위해서는 한평생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의인이며
단체를 위해서는 멸사봉공 최선을 다한 지혜로운 리더였습니다
특별히 물의 본성을 즐겨 노래한 물의 시인이어서
사람들은 당신을 상서로운 비라 하여 ‘瑞雨’라 호칭했고
나는 당신을 맑은 강이라 하여 ‘素江’이라고 즐겨 불렀습니다
묵향 속에서 붓으로 늘 마음을 가다듬던 瑞雨시여,
세상의 울적함을 맑은 시심으로 달래던 素江이시여,
당신이 떠난 이 빈 자리는 너무 적막하기만 합니다
瑞雨, 素江이시여! 비록 저 세상에 가셨습니다만 때로는
상서로운 비로 내리시어 이웃들의 처진 어깨도 만져 주시고
맑은 강물로 찾아오시어 지상의 생명들도 적셔주소서
부디 저 세상에서도 당신이 즐기시던
그윽한 묵향과 시향 속에서 큰 평화를 누리소서
천상의 낙원에서 지상에서 못 다한 영원한 복락을 누리소서
─ 소강의 영전에서 임보 삼가 곡합니다.
고 이무원 선생님 영전에 | 나병춘
바람에 속절없이 쓸려가는
상서로운 왕벚나무 꽃비 속에서
갑작스런 부음을 들었습니다
조용한 음성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낭랑한 시낭송이 환청처럼
제 달팽이관을 간지럽히는데
선생님
방금 피어난 그윽한 미소가
아직도 저 꽃비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듯
어젯밤 비바람에 떨어진
동백 꽃송이 붉은 입술에서
맑고 청아한 휘파람을 듣습니다
늘 변치 않는 눈빛으로
瑞雨* 선생님
고이 영면하소서
꽃은 떨어지나
그 향기는 밤하늘에
별꽃으로 펴
영혼이 목마른 새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리니
* 이무원 시인의 아호
이무원 선생님 영전에 | 박승류
그곳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합니다
벌과 나비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 그곳에 봄을 열고 들어가, 꽃을 심으시나요
곱게 가꾼 꽃밭에서 귀환을 잊은 채
또 하루를 보낸 것은 아닌지요
이곳은 지금 봄꽃이 지고 있습니다
꽃이 지면 돌아오실까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는 건 아닌지요
꽃이 지는가 싶더니 벌써 신록이 눈부십니다
이제 나날이 열매가 튼실해지겠지요
불현듯 문이 빙그레 열리지 않을까
그곳의 튼실해진 열매를 보여주시지 않을까
비워둔 자리는 매일 깨끗이 닦아둡니다
빈자리가 크고 무거워도 그리합니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그리하는 지도 모릅니다
쉽게 열린 문이었으니 또 쉽게 열리리라
억지라도 쓰려다가
시를 읽습니다 선생님이 가장 아끼신
「서하일기」를 읽습니다
시집 한 권 다 읽으면 오실지도 모른다며
아빠의 귀한 딸 | 이송희
저의 기억의 시작은 언제나 아빠와 함께입니다.
작은 제 손톱들에 빠알간 봉숭아물을 들여 주고,
머리를 감고 나면 늘 제 등 뒤에서 젖은 머리를 말려 주셨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도,
운전하는 방법도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저는 모든 이의 귀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아프셨던 5일 동안 저는
제발 저를 혼자 두고 가지 마시라고도
아무 걱정 마시고 원하던 곳으로 편안하게 가시라고도
꼭 가셔야 한다면 저도 데리고 가시라고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번 그렇게 해 주실 것 같아서 어떤 부탁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네 맘 다 안다.
아빠가 다 안다 하시더니
그렇게 빼어난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나는 괜찮다.
아빠는 괜찮다라고 속삭여 주시는 듯 떠나셨습니다.
사위가 생기면 꼭 술 한잔 같이 먹고,
그놈 등에 업혀 보실 거라던
아름다웠던 아버지의 마지막 소망,
그 또한 딸을 위한 마음이었던 것을.
저는 온전히 행복만을 드렸던 기특한 우리 서하처럼
통곡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침묵 안에 스며 있는 아버지의 향기를 만지고
글 속에 한 자 한 자 적어 놓으신 보물 같은 답들을 찾아
아름다웠던 그 미소 어딘가에 무심한 듯 던져 놓으시면
제일 먼저 달려가 찾아내고 싶습니다.
더 큰 미소로 대답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아빠, 좋은 아빠
단 한순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 이송희 : 이무원 시인의 유일한 딸
눈물 버릇 | 이서하
한껏 숨을 들이켜고
두 손 모아 꾹꾹 눌러 담다가
당신이 남겨놓은 빛무리에
눈이 부셔 어쩔 수 없이
무능력한 현실의 부정
방법 없이 아파
악을 쓰듯 내뱉기도 하는
아프다는 엄살
절절한 분노
사랑하던 습관에
보고 싶은 버릇에
철없게 부리는 어리광
아직 많이 사랑해
오늘도 많이 보고 싶어
여든까지 못 고칠
그런 버릇
* 이서하 : 이무원 시인의 유일한 손녀
<편지>
사랑하는 할아버지께 | 이서하
저는 하버지의 예쁜 손녀 이서하라고 합니다.
저는 하버지와 달리, 하버지와의 첫 만남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함께였던 할아버지는 제게 있어 커다란 기둥 같은 존재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프셨던 그 5일 동안, 저 역시 지금까지 중 가장 아픈 5일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께서 당연히 견뎌내실 거라고, 나를 이렇게 혼자 두고 가실 리 없다고 제 자신을 위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틀 정도가 지나고, 할아버지는 조금 더 아파지셨습니다.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낫고 싶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병이 많이 아프니까, 아주 크고 나쁜 병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께서 제 할아버지를 뺏어갔다고 생각하며,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알싸한 병원 냄새를 맡기조차 힘들어지고 있을 때, 그림처럼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할아버지의 천사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인간의 모습으로 내게 잠깐 내려온 천사셨구나. 내가 할아버지를 뺏긴 게 아니라, 하늘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데려간 거였구나. 제가 티 없이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저를 천사라 하셨습니다. 천사의 날개를 달고 할아버지께 해맑은 행복을 드리던 저는, 이제 그 날개를 다시 할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겪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안녕은 생각보다 훨씬 슬프고, 아팠습니다. 항상 손을 잡아주시던 할아버지는 손을 뻗어도 잡아줄 수 없고, “할아버지!” 하고 불러도 더 이상 답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간절한 마음속에서 손을 잡고, 항상 함께였던 추억 속에서 할아버지는 꽃으로 피고, 바람으로 불고, 낙엽이 되어 단풍이 들고, 눈이 되어 내릴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혼자 울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움에 슬픔이 덕지덕지 묻은 통곡보다, 제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성장하며 행복해 하는 웃음소리가 하늘에 닿았으면 좋겠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고 더 높은 곳을 도모하여 저는 할아버지를 평생 잊지 않고 씩씩하게 멋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끝인사는 할아버지와 저의 특별한 인사로 하겠습니다.
“안녕, 빠빠이, 사랑해, 또 봐.”
어미 외 9편
─ 서하일기 1
이무원
어미는 밥이다
어제 서하가 엄마를 찾으며 우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었다
눈물로
콧물로
입으로 토해내는 결사의 몸부림
고사리 손으로 어미 간 곳을 가리키며
엄마, 엄마 울부짖는 처절한 사투
껌도, 아탕도, 아이스크림도, 하머니도, 하버지도,
미끄럼도, 그네도, 자전거도, 머멍도 다 소용 없다
어미는 눈물이다
어미는 생명이다
어미는 고여 있는 물
출렁이기만 해도
지구가 뒤뚱댄다.
2001. 6. 12.
* 어제 어미가 아르바이트를 가고 나서 20여 분을 엄마를 찾고 우는 바람에 나와 할머니는 온 정신이 다 빠져서 직장에 간 제 고모에게까지 구원을 청했다. 울다가 지쳤는지 잠이 들면서도 흐느끼더니 자다가 다시 깨어 또 울었다. 그때는 다행히 제 고모가 와서 달래고 껌도, 과자도 약간의 효과가 있었다.
천사
─ 서하일기 2
서하는 예쁘다
예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우리 서하를 보면 안다
서하는 입이 제일 예쁘다
제일 예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우리
서하 입을 보면 안다
서하는 천사다
파란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에게 와 있다
분명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날개가 있다
하버지 하며 덤으로 미소까지 짓는다
그때 나는 천국에 산다
흙 묻은 내 발이 미안하다.
2001. 6. 12.
사랑의 무늬
─ 서하일기 19
천사가 왔다간 집안 이곳저곳
풀어놓은 별빛
감아놓은 달빛
쓰다 만 햇살도 아쉽기만 하네
천사 오는 날을 기다리며
두고 간 별빛을 닦아내고
달빛도 조금씩 풀어내고
햇살도 야곰야곰 덜어 쓰네
아 고와라 사랑의 무늬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
향기는 날개 되어 날아와
맨발로 꽃밭에서 춤을 추네
너로 하여 더욱 넓어진 녹색의 초원
파란 하늘 가득한 천상의 음악
소곤소곤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
흘러 가득한 강물을 이루네.
2001. 7. 20.
감사
─ 서하일기 43
하버지는 잃은 것이 많은가 봐
서하는 나의 선생님
“이것은 요, 옐로우,
하버지도 해 봐, 옐로우”
“옐로우”
“이것은 요, 블루구요…”
“블루”
그동안 기억의 저편에 숨어 있던
무지개 빛깔도 찾아 주고
“하버지는 고추 달려서 서서 쉬하는 거야
나는 앉아서 쪼로록 하는데”
당연한 사실의 신비로움도 일깨워 준다
“하버지, 일리 와 봐”
“하버지, 이리 와 보세요. 해야지”
“하버지, 이리 와 보세요”
“왜요?”
“꽃이 피었어, 핑크야”
“아 예쁘다”
“감사”
“뭐가 감사해?”
“예쁘니까”
그래
하버지는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2002. 1. 25.
소꿉친구
─ 서하일기 54
서하가 오는 날은
나는 무지개빛 옷을 입고
기다리는 날
귀도 맑게 열리고
눈도 밝아져
모든 것이 밝고 곱게 보인다
서하가 와 노는 날은
우리 집 시계는 모두 멈춰서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출발소리에 맞추어 나는 직각 보행으로 소풍을 가거나
의사도 되고 환자도 되다가
소꿉친구가 되어 플라스틱 계란도 먹는다
서하가 와 자는 날은
쌔근쌔근 자는 모습이 자꾸 보고 싶어
자다가 깨다가
혼자서 까꿍
볼 한 번 만져 보고 까꿍
깰까 봐 속으로 까꿍
서하가 오지 않는 날은
나는 외로운 별
어두운 하늘에 혼자 앉아
끔뻑끔뻑 신호를 보낸다
빨리 태양이 떠오르도록
빨리 날짜가 바뀌도록.
2001. 4. 30.
할아버지
─ 서하일기 64
늘 하버지 하고 불렀는데 오늘은
“할아버지, 선물 사오셨어요?” 한다
관광차 일본에 갔다 온 며칠 사이에
하버지가 할아버지로 바뀌었다
저녁을 먹다가 식탁에 앉아
가슴에 힘을 뿔끈 주면서
“할머니, 서하 좀 보세요.
서하 많이 컸지요?” 하고 자랑을 한다
집에 갈 때도 전혀 보채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더 놀겠다는 투정도
자고 가겠다는 앙탈도 없다
전혀 섭섭한 기색이 없다
갈 때가 되었으니 자기 집에 간다는 식이다
“이런 세상에!”
“나, 할아버지하고 잘 거야,
안 갈 거야!” 하며 떼를 쓸 것이란 예상은
하버지의 은근한 노욕老欲.
2001. 8. 4.
귤
─ 서하일기 80
“이것은 서하 먹고
이것은 할아버지 먹고”
냠 냠 냠
(먹다 보니까 귤이 한 개 남았다)
“서하야, 이 귤은 누가 먹을까?”
“이럴 땐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거야, 알겠지”
“그거 좋겠다”
“그런데 서하가 지면 다시 하는 거야” 서하가 토를 단다
(서하는 가위, 할아버지는 바위)
“하버지가 이겼네”
“서하가 지면 다시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
(이번에는 서하가 제일 잘 내는 가위를 생각해 하버지는 보를 낸다)
“서하가 이겼지. 이것은 서하 꺼야”
(우쭐대며 귤을 집어 드는 서하)
“이거 두 개가 쌍 붙었네
할아버지
우리 사이좋게 나누어 먹자”
“고마워”
2003. 2. 28.
편지
─ 서하일기 86
서하는 송충이를 가시벌레라고 한다
메뚜기는 팔짝 꽁
고모가 사다 준 베개는 토끼를 닮았다고 토순이라고 부른다
한 번은 할아버지를 ‘왕따시 할아버지’라 부르고 깔깔 웃는다
“왕따시가 뭐야?”
“응, 할아버지는 키가 크다고
재미있게 부르는 거야”
아마 할아버지를 놀리는 말인 것 같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요즘 서하는 자주 편지를 써서 보낸다
“하라버지, 편지 왔어요” 휙 던지고는 도망치듯 뒤돌아 뛰어간다
봉투를 열면 두 번 접은 종이에
“하라버지무지무지사랑해요서하가”라 쓰고
길쭉한 그림이 하나 꼭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뭐야?”
“하트야, 사랑한다고”
어제 받은 편지봉투에는 수신인 란에
할아버지 대신
할아버지 이름(이무원)을 멋지게 썼다
편지 내용은
“하버지 메롱”이었다.
2003. 9. 20.
* 메롱 : 아이들이 상대방 약 올릴 때 쓰는 말
벽
─ 서하일기 97
우리 집 거실 벽은
서하의 글씨와 그림으로 도배가 되었다
할아버지사랑해요
할머니최고
삼촌짱마환영합니다
공주처럼예쁜고모
고모무지무지사랑해요
할아버지청소하느라힘드시죠
1 2 34 5 67 890
천사의 흰 날개를 오려서 붙여 놓은 것
노래방이라고 써서 붙인 백지
똘리는착해요라고 쓴 똘이 그림은
발톱을 유난히 까맣게 그려 놓았다
코가 큰 방망이만한 코끼리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초상화도 있고
엄마 아빠 그림도 있고
고모사랑해요라고 쓰고 하트와 꽃, 새를 그려 놓은 것도 있다
색종이를 접어 붙인 것도 여러 개
서하는오래대도예뻐요(서하는 올해도 예뻐요)라고 쓴 것은
자랑일까
다짐일까
이보다 깨끗한 벽지는 없다
이보다 아름다운 벽은 없다.
2004. 2. 1.
왜 나는 말을 안 듣지
─ 서하일기 103
(서하가 할아버지 집에 와서 말을 안 듣는다고 야단을 맞고 제 어미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나 서한데
왜 나는 말을 안 듣지?”
(알기는 아는군)
“나는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상심해 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거짓말인데
할아버지는 그것도 몰랐어
그것을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알겠지?”
“할아버지 씨름하자
할아버지가 이기면 안 돼
서하가 지면 반칙이야
알겠지”
(할아버지가 컴퓨터에 名石이라고 치자)
“돌 석자네”
“어떻게 알았어?”
“내 천川 뫼 산山 자도 알아요.”
2004. 4. 19.
■ 시론, 시인론
이무원 시인을 말한다 | 洪海里(시인)
─ 물 같은 사람, 물의 시인
1. 이무원 시인을 말한다
점과
선과 색깔로
우는
새여,
날개는 접어
천상에 두고
수묵색
노래 엮어,
이승의 하늘
무변의 지상
원으로 그리네.
─ 洪海里, 「풍경 - 李茂原」 전문
위의 글은 1987년엔가 발표한 작품이다. 인물을 시화하는 일이 쉽지도 않으려니와 제대로 되지도 않는 일인 것을 알지만 내 나름대로 이무원 시인을 기려 보았다.
우리가 만난 것이 1960년 봄, 까까머리 겨우 면하고서였으니 벌써 35년이란 기인 세월의 띠가 우리 두 사람을 묶고 있는 셈이다. 그간 우리에겐 아무런 마음의 변화가 없었다. 나는 변했는지 몰라도 그는 내게 있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35년이나 우정의 변화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인품 덕이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사실은 아는 게 없다. 할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누구에게도 펼쳐 보일 수 없다.
청탁을 받고 할 말이 없다고 하니 상대방이 쓰기로 했으니 나도 쓰라는 김규화 형(『진단시』 모임에서는 이렇게 호칭하고 있음)의 명이었다. 그러나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정말 할 말은 가슴속 깊은 바다에 묻어 두어야 한다.
이무원 시인은 돌이다. 바위다, 피가 도는. 따뜻한 피가 도는 살아 있는, 움직이는 돌이다. ‘우이동시인들’ 동인의 작업실 창을 열면 북한산의 인수, 백운, 만경봉이 그대로 가슴에 와 안긴다. 인수봉은 그의 머리요, 백운봉은 그의 가슴, 만경봉은 그의 마음으로 내게 살아 있다. 그는 산이다.
그는 물이요, 공기와 같아서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물 같은 사람 - 그래서 그는 오래 전부터 서우瑞雨라는 호를 달고 다닌다. 때로는 그의 호를 거꾸로 ‘우서(웃어)?’ 하고 놀리기도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그는 정말 비다. 서우瑞雨는 길하고 상서로운 비다. 천둥 번개와 더불어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라 필요할 때 조용조용히 내려 온 세상을 포근히 적셔 주는 비다. 기인 겨울잠을 깨우는 봄비요, 여름날 초록빛 숲을 씻어 그늘까지도 투명케 해 주는 시원한 단비요, 가을 저녁 일을 다 마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한 잔 먹을 때 술맛 돋우는 밤비요, 책 펴들고 앉아 삼매경에 들 때 처마 끝에 듣는 느긋한 겨울비가 그다.
나는 불이라서 물인 그에게 가면 늘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바람이라서 바위인 그에게 가면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불이라서 물(술)에 빠지고 그는 물이라서 담배(불)에 빠져 산다. 나는 그에게 불을 끄라 하고 그도 나를 보면 물을 끊으라 한다. 담배는 그에게 독이요, 술은 나에게 독이라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와 술을 하지 않는 그가 만나면 서로 끊어라 끊어라 한다. 그러나 그가 담배를 끊을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술을 끊을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돌이다’라는 말을 앞서 했지만 그 돌 속에는 글과 그림이 보석처럼 박혀 빛을 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는 일 없이 오랫동안 닦은 그림 솜씨와 글씨는 이미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다.
이무원 시인은 《詩文學》을 통해 등단한 후 1980년에 첫 시집 『물에 젖는 하늘』을 내고 나서 7년을 참다 두 번째 시집 『그림자 찾기』를 펴냈다. 이제 또 7년이 되는 금년에는 세 번째 시집이 빛을 보리라 믿는다.
이제 50대 중반으로 진입하면서 그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제발 담배 좀 줄이고 건강에 유의해서 많은 작품을 보여 달라는 것뿐이다.
불이 물에게, 바람이 바위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가슴에 품고 살리라.
─ 월간 《詩文學》(1994년 2월호)
2. 이무원 시인의 시를 말한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위에 인용한 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단편적인 내용을 덧붙인 잡설雜說에 지나지 않을 듯싶다.
이 시인은 1979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에 겨우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1980년에 첫 시집 『물에 젖는 하늘』, 1987년에 『그림자 찾기』, 1994년에 『빈 산 뻐꾸기』, 2002년에 『물 詩』, 생전 처음 안아 본 손녀의 출생을 기념하여 2004년에 간행한 시집 『서하 일기』가 전부다. 네 권의 시집은 7년을 주기로 해서 발간되었고 다섯 번째 시집은 손녀인 서하瑞河에게 헌정(?)하기 위해 빨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물의 속성처럼 변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내게 건네 준 시집마다 표지를 다시 넘기면서 알게 된 것은 첫 시집에는 ‘洪海里 兄 惠存/ 李茂原 드림’이라 되어 있고, 두 번째 시집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세 번째 시집에는 ‘洪海里 先生/ 李茂原’, 네 번째 시집에는 ‘홍해리 시인님/ 이무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네받은 시집에는 ‘洪海里 詩人/ 李茂原’이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이다. 호칭도 바뀌고 한자로 썼다 한글로 썼다 하면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어찌하여 ‘형’에서 ‘선생’으로 다시 ‘시인’으로 바뀌었을까? 그의 심정에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언제 한번 조용히 물어볼 일이다. 그냥 빙그레 미소를 짓고 말 것이 틀림없겠지만…….
이 시인은 대학 재학 중에도 꾸준히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등단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습작을 하다 1979년에서야 등단을 하게 된 것도 아마 내가 독촉을 해댄 것이 약효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두어 번 원고 뭉치를 들고 김윤성 시인을 함께 찾아간 일이 있었다. 원고를 본 김 시인께서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쉽게 추천을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학에 다닐 때 그와 늘 붙어 다닌 나는 그의 덕을 참으로 많이도 봤다. 우선 학교를 마치고 안암동에서 제기동을 거쳐 하숙집으로 갈 때 으레 들르는 곳이 옛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옆의 성동역을 따라 늘어서 있던 술집이었다. 나야 고래였고 그는 병아리 눈물이 주량의 전부였다. 요즘도 술을 좀 마시라 하면 애초부터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이유가 모두 내 탓이라나 뭐라나. 내가 너무 많이 술을 마셔대니 하숙집까지 나를 끌고 가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 않다 천상의 음식을 즐기는 멋을 익히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변명이다.
물살 지을까 고요한 산맥山脈
이윽고 달이 뜨는 깊은 심연深淵
다 주고도 모자란 억겁億劫의 원願으로 솟아
천상의 피리를 부는 두 봉우리
흙으로 빚어 심산深山 계곡溪谷의 폭포를 열고
뉘 볼까 약간 고개든 수줍음
오늘도 달빛에 젖어
빛이 고와 어둠이 싫어 불 밝힌 촛불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다스리는 물결
아스라이 깨어질까 그 고운 수심水心
흘러가지 못하고 맴도는 산맥山脈
찰랑 물살 지을까
그 영원한 고요
그 화사한 투명
─ 「유방 소묘素描」 전문, 시집 『물에 젖는 하늘』에서
위의 시는 시인의 첫 시집의 작품이다. 남자마다 여성의 신체 부위에서 특별히 기호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얼굴을, 누구는 방방한 엉덩이를, 누구는 쏙 들어간 배꼽을, 누구는 호수 같은 눈을, 누구는 쭉쭉 뻗은 미끈한 다리를 좋아한다. 그는 대학 시절 큰 유방을 유난히 선호했다. 예쁜 얼굴보다 우선 유방이 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당시 여배우들 가운데 최은희를 제일로 치고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서 봐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방 소묘」라는 시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천상의 피리를 부는 두 봉우리”가 솟아 있는 산맥을 보면 금방 그의 유방 선호도를 짐작할 수 있다. ‘봉오리’는 꽃봉오리를 나타내고 ‘봉우리’는 산봉우리를 가리키는데 이 시에서 ‘봉오리’가 아니고 ‘봉우리’이니 말이다.
그의 첫 시집 후기에 “비어 있으므로 가득한, 가득하므로 비어 있는 내 가슴의 말을 찾아 나서면 나는 비 오고 난 겨울 숲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음을 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탓하진 않겠다. 진실된 사랑의 언어와 그 실현이 내게 허락되기를 기원하면서, 너무 오랜 기다림으로 젖어올지 모르는 타성을 지우기 위해서도 나는 헤매며 찾고 찾을 것이다.”란 글이 보인다.
우리가 한세상을 사는 일이나 시를 쓰는 일이 하나같이 기다리며 찾는 일이 아닌가. ‘비어 있음’ 속에서 ‘가득함’을 찾고 ‘가득함’ 속에서 ‘비어 있음’을 찾으면서 비어지기를 기다리고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 시인의 인생이 엿보인다.
청춘에 사랑이 없다면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이다. 아름다운 초등학교 여교사가 고향의 모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옥이라는 국문과 여학생이 있었다. 그 두 사랑은 모두 짝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손도 잡아 보지 못하고(‘못하고’가 아니라 ‘않고’가 옳은 표현일 것이다) 가슴만 썩이며 앓다 안타깝고 쓸쓸하게 헤어지고 만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답십리에 있는 하숙방으로 기어들어가기 전에 들르곤 하던 성동역의 주점에 순진하기 그지없는 영자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갈 때마다 마치 이 시인의 아내인 양 모든 정성을 다해 수발을 들곤 했다. 물론 수발을 든 것은 우리에게가 아니라 이 시인에게만 그렇게나 지극정성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간단한 사랑의 의식인 구접口接 한 번 않고 애만 태우다 헤어지고 말았다.
두 번째 시집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 7편이나 연작으로 발표되어 있다.
소리보다 확실한 그의 표정
비울 때 비워 소리 내지 않고
채울 때 채워 고요한 무늬
흰구름 바라보면 산새소리도 들린다.
─ 「사랑 일기 1」 전문, 시집 『그림자 찾기』에서
참으로 많이도 생략하고 압축한 사랑이다. 여기서도 비우고 채우고 있다. 사랑이란 그렇지 않은가. 늘 목이 말라 물을 찾아도 샘은 말라 있고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목마름은 가시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쩌자고 흰구름장만 무심히 떠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산새소리가 또 들려온다. 일상이면서 가장 비일상적인 것이 사랑이요, 이성적이면서도 가장 비이성적인 것이 바로 사랑의 속성이 아니겠는가.
이 시집 서문에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내게 있어 그림자는 진실이며,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며, 우리의 삶을 이어가는 생명이며, 자신을 일깨워주는 거울이다. 나를 찾기 위한 그림자 찾기, 그것은 방황이며 아픔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뻐꾸기를 한 번만이라도 보기 위해 더욱 찾고 찾아볼 생각이다.”
그렇다. 사랑은 그림자다. 그의 사랑은 사랑으로서 진실했을 뿐 일탈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방황과 아픔의 세월을 보이지 않는 뻐꾸기를 찾기 위해 그는 시의 길을 열심히 걸었던 것이다.
내 유년의 검정 고무신 한 짝을 가득 채운
뻐꾸기 소리
그것은 배고픈 한나절 햇살 덩어리였을까
앞산에서
뒷산에서
파란 숲 속 하얀 꽃으로
뻐꾹뻐꾹 피던 소리
이제는 허연 아파트 숲에서
초록빛으로
초록빛으로 울고 있다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기는 소리
뻐꾹뻐꾹
어머니 묘소에도 우는 뻐꾸기
아버지 묘소에도 뻐꾸기는 울어
내 심장의 고동도
뻐꾹뻐꾹
떨어진 고무신 한 짝 주워들고
나는 오늘도 달려간다
─ 「빈 산 뻐꾸기」 전문, 시집 『빈 산 뻐꾸기』에서
이 시집에도 사랑을 노래한 시가 9편이나 연작으로 실려 있다. ‘빈 산 뻐꾸기’가 노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어찌 이성에 대한 것뿐이겠는가. 돌아가신 어버이에 대한 애틋함도 사랑일시 분명하다. 이 시집 4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9편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 시인의 어머니! 그분은 술과 노래를 좋아하고 잘 노시는 활달한 분이었다. 방학 때마다 그 댁에 가서 며칠씩 귀찮게 해드려도 싫단 내색 한 번 하신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 시인이 술을 못하는 것은 참으로 별일 중의 별일이다. 아니, 별종이랄까, 천연기념물이라 해야 옳을까? 우리 두 사람은 네 집 내 집 없이 오가며 형제처럼 지내왔다. 그래 부모님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들과도 임의롭기 그지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그리는 시인의 그리움은 “어머니 아버지는/ 한 이불 덮고 누워 계신다// 누가 간지럼을 태우시나/ 햇살이 깔깔깔 웃으며/ 배꼽을 잡고 있다// 생전에 심으신 낙엽송/ 가로 세로 칸 맞춰/ 하늘 높이 키를 재고 있다// 나는 어머니 무덤 옆에 누워/ 한숨 자고 싶다/ 풀물이라도 내 옷에 들이고 싶다”(─ 「어머니 · 9」전문)에 명명하게 드러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퍼렇게 풀물 들이고 싶은 것이 자식의 마음이다.
물과 물이 몸을 섞는다
비운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완전한 합일合一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확인은 사랑의 병病
물은 확인하지 않는다
헤어지면서도 물은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간절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포옹
억겁을 돌아도
추락을 모르는
절정의 꿈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생명生命
─ 「물 詩 · 9 - 절정」, 시집 『물 詩』에서
그는 충북 청원군(현재는 청주시) 가덕면 청용리 능갓마을에서 태어났다. 주변에 누군가의 능이 있었는지 그가 태어난 마을을 능갓이라 불렀다.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명기요, 죽어서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명당자리가 아닌가. 능갓마을은 산자수명한 그런 곳이었다. 한여름 밤에 땀을 들이려 논 가운데 있는 샘물에 가서 등목(목물)이라도 할라치면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했던 기억에 지금도 온몸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의 집은 축대를 쌓아올린 위에 지어져 있었고 마당가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집이 이제는 이 시인의 집이 아니다.
이 시인을 말하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이 시인은 물 같은 시인이다. 네 번째 시집에는 「물 詩」 연작이 23편이나 된다. 물이 무엇인가. 사랑이 아닌가. 사랑은 완전한 합일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늘 확인하려 드는 것이 그 속성이다. 그러나 “물은 확인하지 않는다”고 시인은 설파하고 있다.
맨 위에 인용한 글에서 “그는 물이요, 공기와 같아서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물 같은 사람 - 그래서 그는 오래 전부터 서우瑞雨라는 호를 달고 다닌다.”라고 했듯이 그는 한결같이 물의 삶을 살고 있다. 아니 물이 되어 물로 살고 있다. 푸른 산 아래를 물로 흐르고 있다. 이와 같이 물 같은 그의 성품은 아마도 어머니보다는 사람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아버지(이수영 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의 정신은 소요유逍遙遊를 즐기고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적선謫仙으로 살 수밖에 없는 천생天生 시인이다.
몇 해 전 그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한평생을 함께 해온 불(담배)의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담배를 끊으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주효奏效했는지 그는 그때부터 담배를 칼같이 끊고 그렇게 즐기던 기초嗜草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건강을 되찾은 지금도 그는 불을 멀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조차 까맣게 모른 채 지나치고 말았다. 그가 누구에게도 전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병원에 들어가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서 문병을 오곤 한 사람이 이 시인이었다. 그것도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무려 다섯 번이나 전신마취를 한 경험을 내 몸은 훈장처럼 달고 있으니 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기억이 내 마음속에 짙게 배어 있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시인이다. 그가 늦게나마 담배와 결별을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인데 비해 나는 아직도 주효酒肴(물)를 즐기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그에겐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다. 내게도 역시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다. 우리 두 사람의 두 아들들은 모두 짝을 찾았지만 딸은 아직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참으로 기이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큰아들에게서 얻은 손녀 하나가 전부다. 내겐 손자 두 명, 손녀 두 명이 있다. 그러니 하나밖에 없는 손녀인 서하瑞河가 그에겐 얼마나 귀엽고 예쁘며 소중하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고 잠시라도 못 보면 눈에 밟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는 그의 말이 괜한 과장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다. 손녀의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본 것,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고운 마음을 가지고 어여쁜 눈을 가지고 아름답게 보고 느낀 그것이 아름다운 말로 굴러 나올 때, 나오는 모두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고 한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 찬미>를 상기하”면서 손녀에게 바치는 시집 한 권을 내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서하 일기』이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임보 시인은 “『서하 일기』는 이무원 시인의 맑고 고운 마음씨가 어린 손녀의 천진무구함과 서로 만나 빚어내는 아름다운 협주곡이다. 어린 아이의 천진을 볼 수 있는 눈과 가슴이 없다면 어찌 이런 작품들이 생산될 수 있겠는가. 화자 스스로는 자신을 때묻었다고 부끄러워하지만 작자는 어린이에 버금가는 순수함을 아직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환갑이 지난 나이임에도 그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음이 부럽기 그지없다.”라고 이 시인의 심성을 표출하고 있다.
나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손가락을 빗 삼아
머리를 잘 다듬어 빗고
복장도 한 번 살펴본다
웃을 준비를 하고 입술의 긴장을 푼다
멋진 하버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하버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훌륭한 하버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뛰쳐나와 품에 안기면서
우리 서하 하는 말
하버지, 수염이 따가워
다음엔 수염도 깎고 들어가야지
─ 「다짐 - 서하 일기 · 44」 전문, 시집 『서하일기』에서
이것은 손녀 서하의 충복인 시인의 다짐이다. 이런 다짐은 아마 평생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시집 한 권을 헌정받는 손녀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또 손녀에게 시집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어디 그리 흔할 수 있겠는가. 서하도 축복 받은 손녀요 이 시인도 복이 많은 하버지임에 틀림없다. 부디 오래오래 손녀의 재롱을 즐기는 여생이기를 기원하고 싶다.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이 오십 년을 넘었으니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지음知音은 못 되더라도 그 비슷할 만큼은 마음이 통하면서 우정이 이어지기를 바랄 따름이다. 물론 이런 욕심은 순전히 나만의 독선기신獨善其身임을 잘 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남은 생을 건강하게 보내면서 물 같은 작품을 많이 써서 혼탁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맑게 정수하여 사람이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뿐이다. 물은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으니까.
이 글이 올해 고희古稀를 맞는 이 시인에게 주는 한 친구의 정표로 읽혀졌으면 좋겠다.
─ 월간 《우리詩》(2011. 8월호)
3. 이무원 시인 가다
2015년 4월 17일 오후 2시 20분, 그가 갔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와 따뜻한 정을 남겨놓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갔다. 며칠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아 이상한 예감이 들어 근처에 사는 한 친구에게 얘길 했더니 직접 집으로 가서 부인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전화를 해줘서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밤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을 아침에서야 발견하여 일산 백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겼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했다. 그곳에서 가료를 받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의사의 판단으로 일반 병실로 옮겨 가족들이 마지막 모습이나마 지켜보기로 하고 큰아들 범일 군이 내게 그 사실을 알려와 4월 16일 정오경에 임보, 임채우 시인과 함께 병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전혀 의식이 없었다.
이 시인은 "아아 흙, 아아 흙!" 하는 소리를 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슴을 심하게 들썩이고 있었는데 우리가 간 후 혈압과 맥박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것이었다. 면회를 일절 금지하고 가족들만 지켜보겠다는 어머니의 뜻을 따르라고 큰아들에게 말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이 시인이 운명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숨을 쉬는 것이나마 마지막으로 보여 주고 가려고 참고 참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평생 화 한 번 낸 일도 없고 다툼도 없이 늘 사람 좋은 얼굴로 친구들 사이에서 호인 소리를 들어온 터라 아주 편안하게 운명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와는 1960년 봄에 만나 이제까지 55년 동안을 함께해온 친구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먼저 가다니 야속하기 이를 데 없다. 내가 먼저 가면 이런 허섭스레기 같은 글을 쓰기 싫어서 이리 빨리 간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하도 시끄럽고 재미가 없으니 저승에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일찍 떠난 것일까.
장례를 마치고 난 뒤 큰아들 범일 군의 전화를 받았다. 며칠 후에는 딸 송희가 울먹이면서 전화를 했다. “마음을 좀 다스리고 나서 한번 뵙겠다.” 했으나 아버지를 보낸 딸의 마음이 어찌 쉽게 다스려지겠는가. 친구인 나도 이 시인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울컥해서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면서도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데 자식이야 말해 뭣 하랴.
1942년 6월 7일 이 세상에 왔다 2015년 4월 17일 이무원 시인은 저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와 ‘저’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그리운 친구여!
이제 이무원 시인은 천생天生 시인에서 천상天上의 시인이 되었다. 더없이 안락하고 아무 걱정이 없는 그곳에서 마음껏 시를 쓰면서 가끔 지상도 내려다보며 별처럼 반짝이기를!
무극장락無極長樂! _()_
4. 추모시
서우瑞雨에게
꽃이 피는데
너는 떠나가 버리는구나!
꽃이 져도
난 너를 보내지 않는다.
꽃이 피고 지고
또 피었다 지는,
먼 그때에도
나는 너를 보낸 적 없다.
▣ 이무원 시인 연보年譜 ▣
1942년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청룡리 1구 557번지(능갓)에서 부 이수영과 모 임인순 사이 3남 2녀 중 2남으로 출생 (6월 7일)
1954년 행정초등학교 졸업
1957년 문의중학교 졸업
1960년 청주고등학교 졸업
1065년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 졸업
1967년 육군 공병 제대
1968년 박영순과 결혼
청주대성중학교 교사
장남 이범일 출생
1970년 청주상업고등학교 교사
차남 이재일 출생
1972년 홍익여자중학교 교사
장녀 이송희 출생
1977년 《내륙문학》 동인으로 활동 (홍해리, 박재륜, 양채영, 안수길, 김효동, 강준형, 최병학, 강우진, 장이두, 정연덕 등)
6인 시집 《내륙집》 발간 (양채영, 박운식, 홍해리, 윤강원, 최병학)
1979년 《시문학》을 통해 김윤성 시인의 2회 추천으로 등단
홍익사대 부속 고등학교 교사
1979년 ‘응시동인회’ 창립 동인 (김윤성, 김병학, 윤강원, 윤석산, 윤석호, 이건선, 이명희, 이영걸, 주원규, 채수영, 최규철, 강성천, 김병택 등)
1980년 제1시집 『물에 젖는 하늘』을 민성사에서 간행
1987년 제2시집 『그림자 찾기』를 동천사에서 간행
‘우이시낭송회’ 참가 (이생진, 박희진, 임보, 채희문 ,홍해리, 신갑선, 황도제)
1994년 제3시집 『빈 山 뻐꾸기』를 동천사에서 간행
1995년 공간시낭독회 상임시인 (구상, 박희진, 성찬경, 김동호, 상희구, 설태수, 김오민, 최춘희 시인과 함께 활동)
1997년 장남 이범일, 류현숙과 결혼
1998년 홍대부고 교감
1999년 손녀 이서하 출생
2000년 차남 이재일, 윤소정과 결혼
2001년 홍대부고 교장
2002년 제4시집 『물 詩』를 다층에서 간행
2003년 부정맥, 심근경색증으로 고대부속병원에 입원 치료
명예퇴임
홍조근정훈장 받음
2004년 제5시집 『서하일기』를 다층에서 간행
2005년 제20회 ‘상화시인상’(이상화 기념 사업회) 수상
2015년 제16회 세종한글서예대전 입선(현대문 흘림, 판본체)
2015년 안산 백병원에서 영면함. (4월 17일)
─ 월간 《우리詩》 20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