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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상같은 정상아닌 농협의 탄생과 성장 (1) | ||||
-농협 출생의 비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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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상같은 정상아닌 농협의 탄생과 성장 (1) -농협 출생의 비밀-
정상 같은 정상아닌 너
지금까지 협동조합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럼 다시 우리 농협의 현실로 돌아와 보죠. 농협을 요새 유행하는 노래 제목을 빗대어 표현하면 ‘정상같은 정상아닌 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협을 협동조합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리 해도 비정상적이지요. 그렇다고 협동조합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힘듭니다. 농협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려면 농협의 뿌리와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출생의 비밀이지요. 어떤 사회조직이든 출생의 뿌리를 속일 수가 없고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농업협동조합법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농업협동조합(농협)’이란 단체가 생겨난 것은 1957년에 제정된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른 것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제 식민지 시대 농어촌 지역에서 농어민을 대상으로 돈 장사를 하기 위해 설립되었던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전국 시군단위의 금융조합, 읍면부락단위에 설립된 식산계 등을 그대로 존치시킨 채 이들이 가진 자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당시 재무부와 농림부 간에 치열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다툼의 이면에는 금융조합의 자산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이권쟁탈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의 재무부와 농림부는 10년에 걸친 치열한 논쟁 끝에 농업은행(농은)과 농업협동조합(농협)을 설립했습니다. 또한 조선금융조합과 금융조합을 농업은행에 귀속시켜 재무부의 관리감독을 받게 했고, 농림부에는 농업협동조합을 만들어 식산계를 위시해서 일제시대에 설립된 축산, 사과 등 다양한 품목중심의 산업조합, 기타 조선농회 등 농림수산관련 단체들을 흡수 통합하도록 하였습니다.
농업은행은 사실상 일제가 남긴 유산인 막대한 자산과 돈줄을 쥐게 된 거죠. 농협은 산업조합의 뿌리들과 시군 금융조합에 속했던 읍면마을 단위에 설림된 식산계를 접수했습니다만 농은과는 달리 돈 되는 것이 없는 빈 집이었습니다. 그렇게 발족하고 나니 농은과 농협 사이에 돈 문제로 끊임없는 다툼이 벌어집니다. 농협은 형식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합장을 조합원이 직접 선출하는 민주적 과정을 거쳐 조직되었으나 자금난 때문에 어떤 경제사업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농은에 손을 내밀었지만 농은의 반응은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농협과 농은을 일제시대 때처럼 하나의 기관으로 다시 통합시켜야 된다는 소리가 많았습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1961년 8월 15일 군사정부는 농업은행이 농협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두 기관을 통합하였습니다. 명칭은 국민적 명분 등을 감안하여 농업협동조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괴물의 탄생
조직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는 도저히 하나로 합치기 힘든 두 기관을 강제로 통합시키면서 이름은 농협이지만 실제 내부조직에서 힘을 쥐고 있는 실세들은 농은이었습니다. 하나의 조직만 해도 거대했는데 그 두 개를 합치니 말 그대로 괴물 조직이 탄생된 거죠. 정체성이 모호한 제 3의 기관이 되어 버린 겁니다. 오늘의 농협이 창립기념일을 1961년 8월 15일로 하고 있는 것은 농은에 의한 농협의 흡수통합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통합 이후 농협출신의 대부분은 농은이란 금융기관의 직원으로 변신했으나 일부는 순수한 농협운동을 주장하며 농은 출신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980년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1980년 12월 31일 시군농협을 강제로 폐지시키고 중앙회 시군지부로 흡수하였습니다. 농협중앙회라는 괴물은 정치적 격변기를 이용 또 한 차례 변신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몸집을 키우고 권력도 강화시켰습니다. 중앙회는 일제시대 조선금융조합연합회의 틀을 다시 갖추게 되었습니다.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농협중앙회의 본관건물이 조선금융조합연합회의 건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농협중앙회가 왜 회원조합의 연합체가 아닌 ‘중앙회’가 되었으며 당시 전국의 이동단위에 설립된 협동조합은 중앙회에 회원조합으로 가입하는 형국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형식적으로는 이동조합과 시군조합이 연합하여 중앙회를 설립했지만 사실은 중앙회(농은)에 지역조합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앙회가 왜 회원조합 위에 군림하면서 회원조합에 봉사하기 보다는 통제하고 관리하고 지배하고 있는 지를 설명해 주는 대목입니다.
농협은 금융기관? 국가기관?
농협은 비록 협동조합이란 간판을 달았지만 그 안에는 머릿속, 뼛속까지 돈 장사하는 사람들이 차고앉은 금융기관이 되었습니다. 농협은 출범 이후부터 농민을 위한 구매와 판매사업과 같은 경제사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결국 신용사업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죠. 이런 이유로 농협 내부에서도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이유로 다툼이 많았습니다. 그런 모순 속에서 출발한 농협중앙회는 독자적인 중앙회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여유자금을 흡수하여 자금이 부족한 농촌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농업은행 시절부터 운영해 오던 서울시 도심에서 운영해 오던 금융점포를 더 늘리고 일반금융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원조합의 상호신용이 아닌 상업적인 일반금융업을 독자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농협중앙회의 이질적 성격이 본격적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에서 각출한 자산 위에 고유의 금융자산을 늘려가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에는 조합장출신의 정대근 회장이 신용(금융)사업의 ‘수익센터론’이란 괴변을 떠들며 지역의 회원조합들마저도 경제사업보다 신용사업에 치중하게 합니다. 논리는 이런 거였죠. 적자사업인 경제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전 조합이 금융사업을 강화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농협은 갈수록 회원조합에서 벗어난 금융기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와는 별도로 1962년 당시 군사정부는 ‘농협 임직원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하여 전국의 조합장들과 중앙회장 모두를 정부가 임명하는 관선체제로 만들었습니다. 그야말로 협동조합은 준 국가기관이 된 것이고 임직원들은 준 공무원이 된 것이죠.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의 정책사업을 대행하는 준 국가사업 대행기관이 되었고 그에 따라서 임직원들은 조합원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농협의 관료주의적 경영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농협민주화운동
농협의 조합원인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이렇습니다. 농협이 애초 일제시대부터 존재했던 식산계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단지 농협으로 간판만 바꾸고 준 국가기관 성격의 일만 수행한다고 생각을 한 거죠. 식산계나 농회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대로 농협에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협이란 간판을 달고 그들은 식산계나 농회에서 하던 것과는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농민들에게 조합가입을 강요하고 출자금을 강제적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조합비를 안 내려고 버텼겠죠. 그러니까 정부에서 이렇게 합니다. 쌀 수매시 수매대금을 지불하면서 수매대금에서 강제로 조합비를 징수해 버린 겁니다. 농민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었죠. 농협을 우리가 자발적으로 자주적으로 설립한 한 것도 아닌 데 이것이 왜 우리의 조직이냐? 정부기관이지? 농민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출자금을 못 내겠다며 조합의 출자금 강제징수운동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이 저항은 60-70년대를 거치면서 ‘농협민주화운동’으로 발전을 합니다. 농협이 정말로 농민조합원의 것이라면 조합장은 조합원인 농민 스스로가 뽑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이런 역사로 인해서 지금도 농민들은 농협은 본인들이 만든 조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주인의식이 없을 수밖에요. 농협은 정부기관, 금융기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정부와 농협의 유착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가 정책사업을 하는데 있어 농협을 아주 유용하게 이용을 합니다. 70년대 대대적인 식량증산운동을 추진하면서 비료 등 농자재를 싼 값에 공급하는 유통창구와 더불어 각종 정책사업 대행 기관으로 아주 편리하게 농협을 이용합니다. 실질적으로 농협을 정부의 하부기관으로 삼으려는 목적으로 농협을 더 키우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 등 모든 특혜와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YS정부시절 1994년 5월에는 서울시 가락동농산물시장이 문을 닫는 ‘농안법파동’이 터집니다. 농안법이란 건 이런 겁니다. 정식명칭은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고 약칭으로 농안법이라고 부릅니다. 1993년 개정을 하면서 중매인의 도매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시켰어요. 도매시장의 중매인은 단순히 중개만 하고 수탁판매, 수집판매, 도매행위 같은 일체의 도매행위를 금지하고 중개행위만 하도록 한 것이죠. 도매상들은 집단반발을 했죠. 그것을 ‘농안법 파동’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인 정책적 구상은 이런 거였어요. 농협을 중심으로 한 농촌의 농산물유통센터와 역시 농협중앙회가 직접 운영하는 도심의 도매물류센터를 통해 ‘농식품 신유통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협이 핵심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위해서 몇 조에 달하는 막대한 정책자금을 전국의 농협에 지원합니다. 농림분야 예산의 많은 부분이 농협중앙회를 통해 공급되면서 농협과 정부의 관계는 더욱 긴밀하게 유착됩니다. 농협은 더욱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기관이 되었고 정부와 농협은 더욱 끈끈하게 맺어지게 됩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