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은
1988년 5월 15일 창간되었다
1970년 자유언론수호투쟁과정에서 해직된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해직기자 등으로 구성된 두 신문의 투쟁위원회 회원들이 1987년 9월 1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의 안국빌딩에 창간발의준비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창간작업을 본격화하였다
이 준비위원회는 신문의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전국민을 대상으로 주식을 공모하기로 결의하였다
1987년 10월 30일 서울 명동의 YWCA에서 열린 창간발기인대회는 발기인을 대표하는 각계 대표 56인으로 창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창간위원회는 전(前) 동아일보 편집국장 송건호(宋建鎬)와 변호사 이돈명(李敦明)을 공동대표로 추대하였다
1988년 2월 25일 ≪동아일보≫에 모금완료광고를 발표(50억 원2만7223주) 모금운동은 일단 끝났는데
이 모금운동에는 그동안 9회에 걸쳐 발간된 ‘한겨레신문소식지’가 크게 작용하였다
1987년 12월 15일 한겨레신문사는 주식회사로 정식발족하여 다음해 5월 15일 조간 32면으로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우리나라 신문 초창기 ≪독립신문≫이나 광복 후의 일부 지방신문 등을 제외하면 종합일간지로서는 최초로 한글전용에 전면 가로쓰기를 실시하였다
2005년 5월 16일 신문글꼴을 ‘한겨레결체’로 변경하기 전까지 이 신문의 활자는 장체(長體)였고 크기는 가로 119미루스, 세로 132미루스이며, 1행 자수는 17자, 1단 행수는 89행이다
대표이사에 송건호 편집위원장을 직선제로 하여 8월에 2대 위원장에 장윤환(張潤煥)을 선출하였고, 9월 1일에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 발행하였다. 또한 1989년 7월 25일 한겨레논단(단행본)을 발간하였다
1990년 6월 1일 16면(주 96면)으로, 1993년 9월 1일 20면으로, 1994년 9월 1일에 다시 24면(주 144면)으로 증면을 단행하였다
1996년 10월 14일 ≪한겨레≫로 제호를 변경하고, 주 6회 28면으로 증면하였다
[출처] 한겨레 (정의골) |작성자 청지기
나도 한겨레 주식을 6주 가지고 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춰 돼지저금통을 깨서 모금에 동참했고, 경품과 무가지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과 나중에 구독 중단을 요청하면 바로 다음날 부터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말이 멋있게 들려 바로 구독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보는 한겨레신문의 기사내용과 회사에서 보았던 다른 일간신문의 논조가 너무도 틀리다는 것을 느끼며 계속 구독했지만, 나도 사회생활에 적응할 때 즈음인 5년 후엔 회사에서 내가 읽어야만 했던 기사들이 더 현실에 와닿는다고 생각하여 구독 중단을 요청했지만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계속 지리하게 신문을 넣다가 한꺼번에 몇개월분 구독료를 내고 마감하였다. 아마도 본사의 정책과 배급소의 입장이 달랐을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 너 나이가 들어서 고려하게 된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