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의 요청에 응하고 그분의 무리에 속하기를 망설일 만한 또 다른 이유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희생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예수께 질문했던 청년을 기억하실 겁니다.19 마가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저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20 그 청년의 반응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21
저는 이 부자 청년이 그것에 관해 숙고해 본 후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후에 구주의 권유를 받아들였기를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서든 그리스도께 헌신한다는 것은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희생해야 할 것은 “다른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는 제자의 길과 양립할 수 없는 아주 많은 선택 사항이 있으며, 제자의 길은 더 좋은 것 또는 가장 좋은 것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좋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구주께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물었던 신실한 청년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가 소유했던 재물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아마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이제 그에게는 그 재물이 없고, 있어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그 당시에 그것이 얼마나 큰 희생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청년에게 구주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까요?
그 청년이 소유했던 것이나 그의 부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그에게 궁극적으로 제안하신 것과 비교가 될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포함하여 구주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승영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자가 됨으로써 수반되는 희생을 두려워하기보다 영적인 힘을 키우고, 더 큰 기쁨을 맛보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희생, 특히 그리스도의 대업에서 희생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 큰 계명을 정말로 지킬 것이라는 진정성을 나타냅니다.
희생이란 우리가 세상에서 진정으로 선한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온 마음과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우리 영혼에 확인시키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려 타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며, 그들을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필요 사항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진정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길가에 있는 다친 사람을 보았으나 그를 진정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사마리아인만이 다친 나그네를 진정으로 보았기에,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 상처[를] 싸매”주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희생은 확실히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