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감동적인 디카시를 쓰는 핵심은 ‘감동이라는 말을 쓰는 것’보다, 독자가 감동을 느낄 만한 작은 장면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참신함도 낯선 낱말보다 익숙한 사물에서 남들이 지나친 관계를 찾아낼 때 살아납니다.
한국디카시인협회의 작품 모집 안내는 디카시를 직접 찍은 사진과 직접 쓴 5행 이내의 시적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품으로 안내합니다. 사진에서 시가 될 모습을 붙잡는 일이 출발점입니다. (한국디카시인협회)
아래 12가지는 제가 제안하는 창작 방법입니다. 예시는 모두 제가 이번 답변을 위해 썼습니다. 실제 사진이 없으므로, 촬영할 만한 장면을 가정한 글의 예시입니다. 사진과 만나야 하나의 디카시로 완성됩니다.
1. 사물의 이름보다 ‘지금 하는 일’을 보세요
‘나무, 의자, 신발’이라는 이름만 보면 생각이 쉽게 익숙한 길로 갑니다. 받치고 있다, 비켜 주고 있다, 닳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처럼 움직임을 찾아보세요.
촬영할 장면: 벽돌 한 장이 괴고 있는 기울어진 화분.
기울어진 집
벽돌 한 장이
온종일
남의 봄을 받치고 있다
화분의 아름다움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받치는 작은 존재로 눈길을 옮기는 방법입니다.
2. 전체보다 ‘딱 하나의 흔적’을 붙잡으세요
관찰(觀察)은 볼 관·살필 찰, 곧 ‘눈길을 두고 자세히 살핀다’는 뜻입니다. 막연히 낡았다고 쓰기보다 어디가, 어떻게 닳았는지 보세요. 그 구체적인 자리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촬영할 장면: 여러 계단 가운데 가운데만 움푹 닳은 돌계단.
안부
돌계단 한가운데
먼저 다녀간 발들이
다음 발의 자리를 파 놓았다
‘오랜 세월’이라고 설명하는 대신, 닳은 모양으로 시간을 보여 주는 방식입니다.
3. 사진이 보여 주는 것 다음의 말을 쓰세요
꽃이 핀 사진에 ‘꽃이 아름답다’고 쓰면 사진과 글이 같은 일을 합니다. 사진이 보여 주는 장면에, 글이 새로운 관계를 보태도록 해 보세요.
촬영할 장면: 철망 밖으로 꽃송이 하나가 나와 있는 모습.
면회
꽃 한 송이가
철망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안에 있는 봄의 안부를 들고
사진에는 철망과 꽃이 있고, 글을 읽으면 안과 밖이 서로 소식을 나누는 장면이 생깁니다.
4. 큰 감정을 작은 몸짓에 담으세요
‘사랑한다, 희생한다, 그립다’는 말을 먼저 쓰지 말고, 그 마음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났는지 찾아보세요.
촬영할 장면: 비 오는 날, 어른의 어깨는 젖고 아이 쪽으로 기울어진 우산.
기울기
우산은 하나인데
엄마의 어깨에만
비가 내린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우산의 기울기가 마음을 전합니다. 다만 이런 장면은 익숙한 소재이므로 실제 작품에서는 사진만의 특별한 세부를 더 찾아야 합니다.
5. 늘 주인공이던 것의 곁을 보세요
꽃을 찍었다면 꽃받침을, 다리를 찍었다면 다리 아래를, 무대를 찍었다면 무대 뒤를 살펴보세요. 눈길을 한 걸음 옆으로 옮기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촬영할 장면: 어린나무를 묶어 지탱하는 지지대.
독립 준비
네가 혼자 서는 날
나는
뽑혀도 좋다
나무가 자라는 기쁨을, 곁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는 존재의 목소리로 바꾸었습니다.
6. 없어진 것을 ‘남아 있는 자리’로 보여 주세요
부재(不在)는 아니 불·있을 재, 곧 ‘있어야 할 자리에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움을 직접 말하는 대신 누가 없어졌기에 이 모습이 남았는가를 물어보세요.
촬영할 장면: 액자를 떼어 낸 벽에 남은 네모난 밝은 자리.
이사
사진은 떠났는데
벽은 아직
그 얼굴만큼 늙지 않았다
얼굴이 없는 사진에서도 얼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7. 평소의 짐작을 장면으로 뒤집어 보세요
반전(反轉)은 돌이킬 반·구를 전, 곧 ‘방향을 뒤집는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놀라게 하기보다 처음에는 약점처럼 보였던 것이 다른 역할을 하는 순간을 찾아보세요.
촬영할 장면: 깨진 화분의 틈으로 새 줄기가 뻗어 나온 모습.
출구
화분이 깨진 쪽으로
새 줄기 하나가
제 길을 내고 있다
‘깨짐’을 손상으로만 보지 않고, 새로운 길이 생긴 자리로 읽었습니다. 이 생각을 ‘그러니 시련을 이겨 내자’고 마무리하면 설명이 앞서므로 장면에서 멈추는 편이 좋습니다.
8. 생김새가 닮은 두 세계를 연결하세요
비유(比喩)는 견줄 비·깨우칠 유, 곧 ‘다른 것에 견주어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연결하기보다, 모양·움직임·쓰임 가운데 실제로 닮은 점이 있어야 설득력이 생깁니다.
촬영할 장면: 바느질하듯 여러 번 덧칠한 도로의 갈라진 틈.
수선집
갈라진 길을
검은 실로 꿰매 놓았다
오늘도 발들이 지나가도록
도로 보수 자국과 옷을 꿰맨 자국의 닮음을 연결한 예입니다.
9. 사물이 사람에게 한마디 하게 해 보세요
의인(擬人)은 견줄 의·사람 인, 곧 ‘사람처럼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사물에 말을 시킬 때에는 그 사물의 실제 모습에서 나올 법한 말을 골라야 합니다.
촬영할 장면: 입구에 ‘당기세요’라고 적힌 문.
부탁
밀어붙이지 말고
한 번쯤
네 쪽으로 당겨 주렴
문의 쓰임에서 사람 사이의 태도로 생각을 넓혔습니다. 말장난에서 끝나지 않도록 실제 문장의 울림을 살펴야 합니다.
10. 제목이 사진과 글 사이에서 일을 하게 하세요
사진에 있는 사물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붙여도 되지만, 다른 제목을 붙였을 때 장면이 새롭게 읽히는지 시험해 보세요.
촬영할 장면: 전깃줄에 앉은 새들 사이로 한 자리만큼 벌어진 틈.
전학
한 마리가 떠난 뒤에도
줄은 그대로인데
간격이 달라졌다
‘전깃줄’이라는 제목보다 ‘전학’이라는 제목이 떠난 친구의 자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제목도 작품의 한 부분으로 쓰는 방법입니다.
11. 마지막 줄에서 설명을 한 번 덜 하세요
여운(餘韻)은 남을 여·울림 운, 곧 ‘말이 끝난 뒤에도 남는 울림’입니다. 마지막 줄에 교훈을 쓰고 싶어지면, 그 줄을 지운 뒤 다시 읽어 보세요.
촬영할 장면: 눈 위를 지나온 발자국 옆에서 새로 돋는 풀.
봄의 보폭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서
풀이 올라온다
발자국보다 작은 걸음으로
여기에 ‘우리도 희망을 품고 살자’를 붙이면 독자가 느낄 몫을 글이 대신 말하게 됩니다.
12. 같은 사진으로 세 방향의 글을 써 보세요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익숙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모양으로 한 편, 쓰임으로 한 편, 관계로 한 편을 써 보면 발견의 폭이 넓어집니다.
촬영할 장면: 비에 젖은 우편함.
이 가운데 ‘관계’를 골라 쓰면 다음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사진에서 안쪽을 확인할 수 없다면, ‘젖지 않았다’는 표현이 장면과 어울리는지 다시 살펴야 합니다. 생각에 사진을 억지로 맞추지 않는 것도 중요한 퇴고입니다.
친구야가 직접 쓰실 때는 다음 순서로 연습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