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한테 길을 묻다 / 박주병
‘3 ․ 15부정선거’가 자행되던 날, 닭이 홰를 칠 때 나는 책상을 탁 치고 길을 떠났다. 불로장생의 연단(煉丹)을 만든다는 도사나 한번 만나 볼 작정을 한 거다.
한점심을 엿 한 가래로 에우고 지친 걸음으로 다다른 곳이, 뒷산이 등에 업히고 앞산이 턱을 괴는 첩첩산중. 구름은 짙고 인적은 드물었다. 산길로 접어들어 한 나무꾼한테 길을 물었다.
산 중턱을 돌아 오르막 나뭇길을 한참 올라가니 골짜기 하나가 온통 만개를 앞둔 복사꽃으로 메워져 있었다. 줄잡아도 백 구루는 되지 싶었다. 그 한가운데 청태 낀 자그마한 띳집 한 채가 엎드려 있었다. 울도 담도 없는 집. 댓돌이며 봉당을 살펴보아도 보이는 거라곤 새카만 남자 고무신 한 켤레뿐이었다. 몇 번 기침을 해도 아무 기척이 없더니 봉두난발에 장비 수염을 한 장년의 사나이가 방문을 반쯤 열고 앉은 채 멀거니 내다보았다.
서너 발자국 다가서서 공손히 인사를 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더 다가서서 큰소리로 말을 해보아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그냥 밀고 들어갔다. 화로에서 주전자 하나가 김을 뿜고 있을 뿐 텅 빈 방이었다. 주전자를 건드려도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주전자든 사람이든 너 따위야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반안(半眼)을 뜨고 묵연히 앉아 있는 이 바위 같은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벙어리 호적(胡狄)을 만난 격. 말없이 대좌했다. 그래도 도끼 자루는 썩었던지 밖으로 나오니 해는 서산에 뉘엿거렸다.
산모퉁이를 막 돌아갈 때였다. 갑자기 대금 소리가 들렸다. 저만치 바위 위에 하얀 한복 차림의 내 또래 젊은이가 보였다. 청송에 둘러싸인 흰옷이 반쯤 속세를 떠났고 긴 대금을 한 쪽 어깨 위로 비스듬히 고이 잡고 고개를 누인 모습이라니, 갑자기 활개를 치고 표연히 몸을 날릴 듯 영락없는 백두루미의 웅크린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긴가민가했더니 아까 그 나무꾼이었다. 그 벙어리 도사가 정말 축지도 하고 둔갑도 하느냐고 물어 보았으나 답은 않고 웃기만 했다. 여관도 없는 산골이라 한뎃잠을 자게 생겼다 했더니 내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부부가 살고 있는 초가삼간. 그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였는데 나무꾼이라기엔 너무 유식했다. 주안상을 가운데 놓고 두 사람은 잔을 기울였다. 시국을 한탄했다. 종신 집권을 노리는 이승만 정권을 질타하고 비분강개하여, 유례없는 부정선거를 매도했는가 하면 동족상잔, 절대빈곤을 자조했던 것 같다.
술이 거나해지자 차차 두 사람은 보다 근원적 본질적인 것으로 화제가 바뀌어 갔다. 그는 주로 황로학을, 나는 설익은 역학을 횡설수설 떠벌렸던 같은데 별안간 그는 술주정인 듯, 귀신이라도 씐 듯이 어깨춤을 췄다. 풍물패의 놀이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듯 나 또한 신명이 났다. 자연스레 그를 따라 짧은 주문을 외웠다. 날이 번히 샐 무렵이었다. 내 입에서 갑자기 악 하는 소리가 나왔다. 감전이 된 듯 짜릿한 느낌이 스치는 순간 내 몸이 기계가 작동하듯 했다. 내 몸을 내가 문지르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하고 두 사람이 어우러져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이런 동작들이 저절로 그리 되었다.
무슨 도술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중국 팔선(八仙)의 하나인 여동빈(呂洞賓<名:嵒>)의 연년술(延年術)이라고만 했다.
성도 이름도 묻지 말라던 그 나무꾼을 한 달포 뒤 그러니까 4‧19가 터진 뒤에 다시 찾아갔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이백과 두보가 함께 화개군(華蓋君)이라는 도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한다. 이때 이백은 마흔네 살, 두보는 서른세 살이었다.(천보 3년, 서기 744년) 이백이 수도 장안에서 일 년 가까이 한림학사를 지내다가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조정에서 쫓겨난 것은 그해 봄이었다. 이때 두보는 낙양에 있었는데 그해 여름에 낙양을 지나던 이백과 두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금방 친해졌다. 이백이 장안에서 쫓겨나는 걸 본 두보는 벼슬길에 나아가려는 뜻이 한동안 사라져 버렸던 것 같다. 당시 양귀비를 둘러싼 음란하고 추잡한 궁정의 작태와 썩을 대로 썩어 가는 조정의 꼬락서니를 두보는 이백을 통해 소상히 알게 된 거다. 마침내 두보와 이백은 옛 양나라 송나라 지역을 유람하며 선도를 익히고 연단을 구하려 했다. 두 사람은 그해 가을에 일엽편주로 황하를 건너 고생고생하면서 왕옥산(王屋山)으로 갔으나 화개군이라는 그 도사는 이미 오래 전에 죽고 없었다. 그 뒤에 이백은 제주(齊州:지금의 산동성 제남)로 고천사(高天師)를 찾아가 도가의 비록을 얻고 연단의 길로 들어섰지만 두보는 그때 화개군이 죽은 걸 알고는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불로장생이며 이백이 그토록 만들려는 연단에 대해 크게 낙담했다. 두보는 그때의 허망한 심정을 뒷날 시로 썼는데 두어 마디만 옮겨 본다.
弟子誰依白茅屋 盧老獨啓靑銅鎖 巾拂香餘搗藥塵 階除灰死燒丹火 ⎯⎯「憶昔行」 抄
제자는 누가 남아 띳집에 의지했나 / 노씨라는 늙은이 홀로 청동 자물쇠를 여는구나 // 헝겊에 향기 떨치니 약 빻던 먼지 남았고 / 섬돌에는 재가 식었으니 연단 불이 탔겠네
세속에의 뜻을 꺾고 신선 공부나 하려고 도사를 찾아갔다가 도사는 죽고 없고 도사가 빻던 약의 먼지며 약 달일 때 생긴 식은 재만 멍하니 바라보는 두보의 허탈한 모습이 눈에 잡힐 듯하다.
나는 해마다 3월 15일 무렵이 되면 그 옛날 산속에서 해후했던 그 나무꾼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그가 살아 있다면 팔순이 넘었을 것이다. 이 밤도 두드리고 춤을 추고 있을까. 신선이 되려 했던 이백과 두보가 신선은커녕 이백은 진갑 년에 두보는 쉰여덟 살에 죽고 말았듯이,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발원하며 두드리고 춤추는 그 나무꾼의 수련 또한 허망한 일이겠지.
나는 더러 주문을 외우긴 했지만 신선 같은 건 발원하지도 않았다. 무심히 두드리고 춤춘다. 두드리면 가슴속에 우레가 울고 춤을 추면 겨드랑이에 돌개바람이 인다. 일만 근심이 사라지는 듯. 하지만 아무리 뇌풍(雷風)이 섞여 쳐도 속절없는 근심거리가 내게 딱 하나 남아 있다. 처음 가는 이역의 땅 그 종착역이 가까워지면 괜히 술렁이는 나그네의 불안 같은, 시름 같은.
종착역! 거기에는 길을 물어 볼 나무꾼인들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