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동심주의와 현실주의
동시(동요)는 아동(어린이)의 시를 가리킨다. ‘아동의 시’라고 할 때, ‘아동이 지은 시’를 가리키는지 ‘아동의 마음을 담은 시’란 뜻인지 불분명하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 생각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가 지은 동시도 있고 어른이 지은 동시도 있다. 대체로는 어른이 짓고 어린이가 읽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린이(아동) 또는 소년(소녀)의 연령은 몇 살까지로 한정해야 할까? 일제강점기 소년문예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로 장기간 논란을 펼쳤다. 여러 의견 가운데 상한선을 18세로 하자는 것이 대세였고, 더러 20세까지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지도자는 25세까지 가능하다고 하였다. 합의된 의견이라기보다 진영 간의 다툼 끝에 어느 한쪽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결정이었다. 어쨌거나 작가들도 동시(동요)의 독자대상을 대체로 이 범주의 나이에 속한 사람으로 상정했던 것은 분명하다.
윤석중(尹石重: 1911∼2003)의 「옷둑이」가 입선동요로 『어린이』에 게재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이때 윤석중의 나이는 세는나이로 15세였고, 첫 동요집 『윤석중동요집』(신구서림)을 발행한 것은 22세인 1932년이었다. 윤복진(尹福鎭: 1907∼1991)은 19세 때인 1925년에 입선동요 「별 ᄯᅡ러 가세」(『어린이』)를, 이원수(李元壽: 1911∼1981)는 1926년 16세 때 「고향의 봄」(『어린이』)을, 박영종(朴泳鍾: 1915∼1978)은 20세 때인 1934년에 특선동요 「통・딱딱・통・짝짝」(『어린이』)을 발표하였다. 이들의 문학 활동 또는 동시(동요) 창작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37년에 창간되어 1940년까지 발행되었던 『소년』지에 박영종의 「토끼길」(1937.4)이 실렸는데 가장 나이 어린 그가 이때 23세였다.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동청소년문학이란 용어로 부른다. 굳이 세분하면 초등학교 학령기인 14세까지는 아동문학으로, 중학교 기간인 17세까지는 청소년문학으로 친다. 고등학교부터는 일반문학의 향수자가 된다. 이 구분에 따르면 위의 윤석중, 윤복진, 이원수 그리고 박영종은 ‘소년 문사’를 막 벗어났거나 청소년문학 시기에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하여 일반문학 시기에도 여전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나이를 따라 기계적으로 아동문학이냐 청소년문학이냐를 구분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시(동요)는 ‘아동의 마음’ 곧 동심(童心)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그 동심의 실체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자는 뜻에서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 것이다.
먼저 몇 편의 동시(동요)부터 읽어 보자.
날저무는 한울에 별이 三兄弟
빤작빤작 정답게 지내더니
웬일인지 별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형제별」)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의 「형제별」(『부인』, 1922년 9월호)이다. 24세 때 지은 동시다. 정순철(鄭淳哲=鄭順哲: 1901∼?)이 “동요로 가장 곱고 옙브고 보들어운 것으로 나는 이 노래를 제일 조하합니다.”(『어린이』, 1923.9)라고 하였고, 일본의 작곡가 나리타 다메조(成田爲三: 1893∼1945)의 곡에 맞춘 노래를 식민지 조선의 어린이들이 널리 불렀다. 동요도 그렇지만 이 시기 일본 또는 서양 곡조를 가져오면서 “단음계의 비조(悲調)로 ‘센치멘탈’한 작곡”을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아동의 성장에 불소(不少)한 해독을 끼치게 될 것”(具玉山의 「당면문제의 하나인 동요 작곡 일고찰」, 『동아일보』, 1930.4.2)을 염려할 정도였다.
다음은 윤석중(尹石重: 1911∼2003)의 「우리 애기 행진곡」(『조선일보』, 1929.6.8)을 보자. 이 작품은 그의 첫 동요집 『윤석중동요집』(신구서림, 1932)에는 「도리도리 짝짝궁」으로 제목을 바꾸어 수록하였다.
엄마 압헤서 ᄶᅡᆨᄶᅡᆨ궁
압바 압헤서 ᄶᅡᆨᄶᅡᆨ궁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압바 주름살 펴저라
들로나아가 ᄯᅮ루루
언니 일터로 ᄯᅮ루루
언니 언니 왜우루
일하다 말고 왜우루
우는 언니는 바아보
웃는 언니는 장−사
바보 언니는 난실혀
장사 언니가 내언니
햇님 보면서 ᄶᅡᆨᄶᅡᆨ궁
도리 도오리 ᄶᅡᆨᄶᅡᆨ궁
울든 언니가 웃는다
눈물 씨스며 웃는다
(「우리 애기 행진곡)
1929년 12월에 발간된 정순철(鄭淳哲)의 동요작곡집 『갈닙피리』(문화서관)에 실려 노래로 불렸다. 윤석중의 이러한 동요를 흔히 ‘짝짜꿍 동요’라 부른다. 아기의 순진한 모습이 여실히 그려졌다. 다른 눈으로 보면, 작가가 사회나 가정의 힘든 현실이나 고통을 외면하고 있거나, 어린이들이 외면하도록 조장하였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애기 행진곡」과 달리 신고송(申孤松: 1907∼?)의 「우는 꼴 보기 실혀」(『별나라』, 1930.6)와 이주홍(李周洪: 1906∼1987)의 「편싸홈 노리」(『음악과 시』, 1930.9)는 현실과 계급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다.
미운놈 아들놈이 조흔옷입고
지개진 나를보고 욕하고 가네
처주자니 우는꼴 보기도실코
욕하자니 내입이 더러워지네
엣다그놈 가다가 소똥을 밟아
밋그러저 개똥에 코나다쳐라
(「우는 꼴 보기 실혀」)
굶은애도 나오라
버슨애도 나오라
한테엉켜 가지고
편쌈하러 나가자
짤닐대로 짤엿다
밟힐대로 밟혓다
장그럴줄 알어도
인제인제 못참네
어느편이 내빼나
어느편이 패하나
우리덩치 만덩치
어느놈이 덤빌래
(「편싸홈 노리」)
계급주의 아동문학가들은 홍난파(洪蘭坡), 윤극영(尹克榮), 정순철(鄭淳哲), 박태준(朴泰俊)과 같은 작곡가를 갖지 못했음을 아쉬워하였다. 그래서 『음악과 시』(1930년 9월 창간)를 발간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음악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선보인 작품이 「거머리」(이일권 곡), 「새 훗는 노래」(이구월 곡), 「편싸홈노리」(이주홍 곡) 등이다. 이주홍은 동요에 곡을 붙인 ‘곡부투쟁가(曲符鬪爭歌)’를 지향했다. 노래가 목적이 아니라 투쟁이 목적이어서 곡(曲)은 수단이 된 것이다.
몇 편의 작품만을 예로 들면서 당대 동요문학의 흐름을 다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주요한 시대적 특징이랄까 추이는 읽을 수 있다.
방정환과 그 시대의 동요는 어린이를 보는 봉건시대의 시각을 타파하기 위해 어린이를 천사처럼 만들었다. 어린이를 “더할 수 업는 참됨(眞)과 더할 수 업는 착함과 더할 수 업는 아름다움을 갓추우고 그 우에 또 위대한 창조의 힘까지 갖추어 가즌 어린 한우님”(「어린이 찬미」, 『신여성』, 1924년 6월호, 67쪽)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당시 계급주의 아동문학가들은 방정환 류의 아동문학을 두고 동심주의(童心主義)라거나 더 나아가 동심천사주의(童心天使主義)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식민지 조선과 조선의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었다. 다만 잘못된 인식과 감상적(感傷的)인 자세여서 대체로 애조(哀調)를 띤다. 방정환에 젖줄을 대고 있는 윤석중(尹石重)의 경우 동심주의인 것은 동일하나 이들은 현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낙관주의라 더 문제가 많다고 하였다.
그들은 조선의 아동문학에서 이미 청산되어 버린 제 오래인 천사주의에 환퇴(還退)하여 새로운 무지개를 그리고 잇다. 이 천사주의는 『어린이』지 식의 그것처럼 센티멘탈하지를 안코 헐신 낙천적인 맛을 갖기는 하엿스나 하나의 환상인 점에 잇서서는 후자와 달를 것이 업다. 그러나 그 질로 볼 때에는 후자보다 전자가 더 나쁘다. 웨 그러냐 하면 『어린이』지 식 센티멘탈이즘은 현실을 잘못 인식한 데에 그 원인이 잇섯스나 현금의 낙천주의는 애제부터 현실이라는 것은 인식해 보려고 하지도 안는 때문이다. 즉 현실에 대하여 일체로 오불관언하고 한갓 상아탑 속에 틀어백혀서 무지개 가튼 환상을 그리며 그것만을 즐거워하는 류의 낙천주의자가 현금의 아동문자(兒童文者)들인 것이다. (송완순, 「아동문학・기타」, 『비판』 제113호, 1939년 9월호, 83쪽)
1939년도경의 시각임을 환기하자. 방정환의 천사주의는 이미 청산되었는데, 윤석중 등은 그 천사주의로 되돌아가 후퇴하였다는 말이다. 송완순(宋完淳)이 계급주의 아동문학자였으므로 윤석중을 대고 폄하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계급주의 아동문학자들을 두고도 다음과 같이 그 오류를 짚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마(奔馬)와 갓튼 젊은이들의 기승(氣勝)을 스스로도 몰르는 동안에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하였스니, 그것은 즉 천사적 아동을 인간적 아동으로 환원시킨 데까지는 조왓스나 거기서 다시 일보(一步)를 내디디어 청년적 아동을 맨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야 방(方) 씨 등의 아동이 실체 일흔 유령이엇다면 30년대의 계급적 아동은 수염 난 총각이엇다고 할 수 잇는 구실을 남겨 노앗다. 이것은 전자(前者)와는 반대로 아동의 단순성을 무시 혹은 망각한 결과엿다. (송완순, 「조선 아동문학 시론−특히 아동의 단순성(單純性) 문제를 중심으로」, 『신세대』 제1권 제2호, 1946년 5월호, 84쪽)
‘단순성’은 ‘동심(童心)’으로 바꾸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30년대 아동문학 곧 계급주의 아동문학은 ‘동심’을 무시하였거나 망각하였다고 따끔한 질책을 내리고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신고송과 이주홍 등의 계급주의 아동문학에 대해 환상 속에 살던 ‘천사적 아동’을 ‘인간적 아동’으로 환원시킨 공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아동은 ‘수염 난 총각’이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의 생각을 아동문학이란 이름으로 표현했다는 뜻이다.
1987년 초・중등학교 교사들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삶을 위한 문학교육』(연구사)을 발간한 일이 있다. 한 예로, 당시 고등학교 교과서에 박목월(朴木月)의 「나그네」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작품에 대한 비판이 매서웠다. 시의 시간적 배경이 일제 말기이거나 해방기쯤에 해당하는데, 민초들의 고단한 삶은 외면한 채 쌀이 남아 술을 빚어 먹는 것처럼 오도하는 시를 교과서에 수록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나그네」를 꼭 이렇게만 해석할 것은 아니지만, 당시 교과서엔 형식미학에 기운 시들만 실었던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 뒤 교과서에는 농촌 현실이나 농민들의 소외된 삶을 그린 신경림의 「농무」와 같은 이른바 민중시도 실리게 되었다.
유달리 우여곡절이 많았고 간난신고가 컸던 한국 현대사에서 특정 정치적 이념이 문학에 영향을 끼친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극단적 반공주의 곧 매카시즘(McCarthyism)은 특별한 것을 넘어 기이한 데가 있다. 위에서 말한 「농무」류의 리얼리즘 작품들이 교과서에서 배제된 까닭의 근저에도 이 매카시즘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친일 작가의 작품은 교과서를 도배하다시피 해도 월북 작가의 일제강점기 작품은 교과서에서 아예 배제되었다.
지난 시기 우리 동시(동요) 나아가 아동문학에는 이러한 매카시즘 혹은 일종의 검열이 작동하고 있지 않았는가? 전쟁의 상흔이 깊고 짙은 탓도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통일의 대상인 북한을 지나치게 괴물화한 작품들이 아동문학에 횡행한 적이 있었다. 아니면 ‘순수’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의 삶과는 한참 거리가 먼 동심주의 작품이 아동문학을 지배하였다.
신고송이나 이주홍의 동시처럼 계급적 적대감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옹호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윤석중류의 혀짤배기 노래 ─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윤석중 작품에는 좋은 동시(동요)가 많다. ─ 나 짝짜꿍 동요만이 어린이들에게 읽힐 동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이 재단한 어린이의 삶은 자칫 계몽 의식의 발현일 공산이 크다. 가르치려 하고 교육하기 쉽다는 말이다. 문학작품을 읽고 교훈을 얻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나, 작가가 교훈을 주입하려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
동심이 무엇인지, 오늘날 동시 작가들의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