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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4쪽: 글자 수정
金泰午 외, “沈滯된 朝鮮兒童文學을 如何히 發展식힐 것인가(2)”, 『조선일보』, 1933.1.3.
兒童欄을 擴張하라 − 李定鎬
過去의 어린 사람 文學은 한 말노 ᄭᅳᆫ어 말하면 어린 사람의 年齡과 性向과 ᄯᅩ는 環境과 智識을 科學的 立場에서 硏究 製作한 作品이 極히 듬을엇슴니다. 卽 다시 말하면 어린사람 文藝適用에 잇서 그 對象의 感受 程度 如何에 너무도 盲目的이엿다는 것임니다. 그저 漠然하게 氣分的으로 어린사람 文學의 재료를 製作하고 ᄯᅩ 그것을 發表하기에만 汲汲하엿지 成長過程에 잇는 어린사람들에게 그 適用에 잇서 何等에 基本的 硏究가 不足하엿든 것임니다. (중략)
그리고 어린사람들은 큰사람보다 새로 爆發하는 現代의 空氣를 가장 直感的으로 ᄯᅩ는 生活的으로 感受하고 잇는이만치 이를 獨特의 新境地와 新生面을 가장 眞實한 感覺으로 再現할 수 잇는 力作을 모아 紙面을 擴充하는 同時에 이들노 하여금 平素 修練을 充分이 싸어 나가도록 햇스면 함니다.
☓
硏究機關으로 어린사람 文學作家(큰사람)의 集團이 잇서야 하겟슴니다.
機關紙나 ᄯᅩ는 其他의 形式으로 硏究理論誌가 잇서야 하겟슴니다.
(중략)
二. 作品과의 關係
아. 現在 朝鮮少年이 가장 要求하고 가장 希望하는 바의 作品의 製作
자. 藝術的이 아니고 樂觀的인 것 말하자면 光明하고 新鮮하고 生氣 잇는 것
차. 너그러운 作品 큰 作品 묵에 잇는 作品 歷史的으로 묵거 둘 수 잇도록 된 것
카. 個人的이 아니고 社會的인 것. 아울러 民族的인 同時에 世界的인 것 ── 모든 要求(時代相) 及 (兒童生活)의 中心을 通한 것일 것
타. 科學的인 同時에 藝術的인 것 ── ᄯᅢ에 依해선 階級意識的 理念을 通한 것일 것 ── 그러나 너무 어그러진 超越的 主義 宣傳에 沒頭치 안흔 것
파. 檢閱上 죽지 안코 살일 수 잇는 것일 것. 그러나 피와 ᄲᅧ 임는 산 作品이래야 할 것
하. 玩具的 作品 個人과 個人間에 論하는 作品 一時的 遊戱的의 依한 作品 等은 絶對로 피할 것
ᄭᅳᆺ으로 이번 新年에 少年文學 關係者 全體의 會合이 잇서 주길 切實히 바라는 바입니다.
202쪽: 각주 109번 내용 수정
109 손위빈(孫煒斌)의 「朝鮮新劇二十五年略史(전11회)」(『조선일보』, 33.7.30∼8.16) 가운데 아동문학과 관련되는 것은 2회분(9∼10회)이다. 글의 제목도 3∼7회는 「朝鮮新劇運動略史」로 되어 있다.
223-224쪽: 탈자 확인
崔泳柱, “아가의 그림은 표현보다 관념(六) 조흔 그림책을 선택해 주시요”, 『조선일보』, 1933.10.29.
어린 아가의 그림은 단순하고 거치른 것이 그 특색입니다. 연필로 죽− 그은 선 한 개가 ᄯᅢ로는 붕− 소리를 치면서 날나가는 비행긔도 되고 사람의 손도 되고 발도 됩니다. ᄯᅢ로는 그것이 ᄭᅩᆺ나무라고 하고 ᄯᅢ로는 그것을 하눌로 훨훨 나르는 새라고도 합니다.
요컨대 아가는 물건을 보는 눈이 단순코 굵은 만큼 그가 나타내 놋는 것도 ᄯᅩ한 그럿습니다. 그가 인상한 엇던 것을 그림으로 나타낼 ᄯᅢ에 그는 그 형체를 그림으로 표현식히려 함보다 그 관념을 향낙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어른의 눈으로 볼 ᄯᅢ에는 보잘것업는 한 개의 작대기라도 그것을 아가는 작대기로 보지 안코 머리속에 생각하는 가지각색 생각 그대로 미듭니다.
아가가 엄마에게 그림을 그리겟다고 연필이나 조의를 달나고 할 ᄯᅢ에 괜시레 북북 그어 버리면서 조의는 해 무엇하느냐고 무살식혀 버리기가 쉬운 일이지만 아가의 원만한 성육을 위하야 그것은 아조 자미업는 일이겟습니다.
ᄯᅩ는 아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게 무슨 비행기란 말이냐?”
“어듸− 비행기가 그러케 생겻듸?”
하고 핀잔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 리유에서 도다 나오려는 아가의 싹을 짓밟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업는 것입니다.
어린아가에게 모든 것을 맷겨 버리고 그의 하는 양을 조곰도 방해할 것이 업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그림의 세게를 훼방 노치 안토록 조심하십시요. 그리고 ᄯᅡ듯한 격려의 말과 칭찬의 소리를 아가에게 줄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그대로를 북북− ᄶᅮᆨᄶᅮᆨ 그리도록 할 것입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본 자듸잔 주의를 아가에게 옴겨 줄 것은 업습니다. 아가의 보는 눈은 거칠고 대담하고 굵다랍니다.
그리고 ᄯᅩ 한 가지 아가의 그림의 세상을 위하야 바라고 십흔 것은 아가가 조화할 그림을 벽에 늘 부처 주도록 하얏스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아가들에게 난와 줄 조은 그림책을 갓지 못하고 잇지만 남의 나라 것이라도 그 색채와 장식에 주의를 하고 명낭하고 활동적인 그림을 그들에게 주어주기를 바랍니다.
무엇에나 그러치만 시방 우리 조선에서는 아가에게 보혀 줄 조흔 그림책을 가지지 못하고 잇는 것은 참으로 붓그럽습니다. 조선 그림 그리는 화가 여러분 중에는 아가의 세상 속에서 활동하야 주실 분이 아니 게신지요. 충심으로 그런 분이 나오시기를 기다립니다.
310쪽: 탈자 복원
이것이 새해 첫날 아츰 여-러분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다함께 반가히 마지해 주옵소서.
(고향・새해 첫날 아츰)
347쪽: 글자 수정
田植, “童謠 童詩論 小考(2)”, 『조선일보 특간』, 1934.1.26.
幼年謠
幼年은 그야말로 純眞합니다. 이들의 말에서 우러나온 티 업는 깨끗한 노래 그 노래가 幼年謠입니다. 여기에서는 참으로 童心을 만히 엿볼 수가 잇습니다. (중략)
內容으로 보아서 幼年에 比하면 어려운 것 갓지만 少年은 이러케 부르리만한 생각이 잇는 것입니다. 左에 例를 들기로 합니다.
밤길 (鄭奎祥 作)
공장에서 밤늣도록 일다하고서
휘파람 불며불며 집오는길은
꼬불꼬불 외줄기 산길입니다.
빈벤또 딸랑딸랑 딸랑거리며
꼬불꼬불 산고개 넘어설때면
파−란 찬달이 웃어줍니다.
이러케 童謠는 內容으로 보아 幼年謠와 少年謠를 갈을 수가 잇습니다. 童詩도 마찬가지입니다.
418쪽: 글자 수정
金台俊, “(朝鮮歌謠槪說-六八)童謠篇(13)”, 『조선일보 특간』, 1934.3.21.
童謠라 하면 녜전에는 政治 社會의 變動을 豫言하는 그리고 兒童 間에 노래되는 讖謠만큼 생각되엿으니 朝鮮의 歷史上에서 이 例를 求하면 (중략)
그러타고 讖謠의 意味에만 썻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요 例컨대 中國에서는 『列子』에 말하기를 堯라는 님금이 天下가 잘 다시럿나 보기 爲하야 康衢에 나가서 童謠를 들으니 “立我烝民, 莫非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이라 하엿다 하고 朝鮮서도 百濟 武王이 新羅 서울 慶州에 가서 善花公主를 꼬여내고 저 薯童謠를 지엿다고(上述)하니 이런 童謠는 豫言的 意味가 업는 兒童의 歌謠란 말에 使用되엿다.
483쪽: 글자 추가
南夕鍾, “朝鮮과 兒童詩−兒童詩의 認識과 그 普及을 爲하야(10)”, 『조선일보 특간』, 1934.5.31.
(전략)
그러면 다음에 日本 內地의 童謠詩人들의 例를 들어 그 藝術的 價値를 알어보기로 하자 (「兒童詩 敎育의 新硏究」 122頁 參照)
1. 三木露風은
506쪽: 글자 수정
田榮澤, “(兒童을 爲하야, 其四)少年文學運動의 進路”, 『新家庭』, 1934년 5월호.
옛 문학을 다시 짓고 새 문학을 더 내이자. |
조선에 소년문학운동이 시작되기는 두말할 것 없이 <신문관>의 『소년』(少年)과 『붉은 저고리』, 『아이들보이』 등의 발행이 처음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소년』 같은 잡지는 당시에 하나밖에 없던 문예와 역사 지리 등 재료를 가지고 조선정신을 고취하던 일반 청년잡지인 것은 그 독자가 아이들보다도 어른 가운데 많었던 사실을 보아서도 알 것이다.
그러고 그 말과 글에 있어서 또 취미에 있어서 아이들의 정도와 심리에 합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따라서 순수한 의미에 있어서 소년문학운동이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참 의미에서 소년문학운동이 시작한 것은 기미년(己未年) 이후에 일어난 고 방정환 씨의 『어린이』와 『사랑의 선물』의 간행과 그보다 좀 전에 오천석 씨 주간으로 한성도서에서 발행한 『학생게』가 나고, 군의 『금방울』, 『끄림 동화집』 등이 출판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13쪽: 글자 수정
高仁泰, “兒童敎育과 兒童文藝의 序說”, 『實生活』, 1934년 5월호.
最近 八九年 以來 朝鮮에도 兒童敎育과 兒童文藝에 對하야 ᄭᅳᆫ임업는 發展을 하야 왓다. 或은 갓가운 日本의 것을 輸入도 하고 或은 멀니 外國의 것을 飜譯도 하엿다. (중략)
一部 社會에서는 兒童敎育과 兒童文藝에 對하야 宗敎的 指導를 主唱하야 마지안는다. 勿論 이것도 좃치 안흔 배는 아니다. 그러나 兒童에게 잇서서 宗敎的 訓練이 機械的 公式的으로 흘을 ᄲᅮᆫ 아니라 乃至 强壓的으로 兒童으로 하야금 神을 崇拜한다든지 ᄯᅩ는 엇던 무엇을 ᄭᅩᆨ 잇는 것이라고 그들의 頭腦에 認識될 ᄯᅢ에는 卒然히 이 觀念을 ᄯᅥ나지 안는다. 그리고 엇ᄯᅥ한 ᄯᅢ는 神이라는 偶像을 머리속에 모시고 단이게 되기ᄭᅡ지 되면 그의 頭腦는 科學的 發達과는 距離가 넘우 멀어지게 된다.
549쪽: 글자 수정
尹石重, “노래를 지으려는 어린 벗에게”, 『조선중앙일보』, 1934.10.15.
우리집의 암탁이
알을 나엇네
눈도귀도 다업는
두루뭉수리
싀집온지 넉달에
열형제나코
꼬대꼬대 부끄러
울음웁니다
이런 동요가 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른의 동요’입니다. 만일, 정말 바른 동심(童心)으로 ‘넉달만에 알난 것’을 보앗다면, ‘부끄러 울음 운다’ 하지 안코 ‘조와서 노래한다’ 햇슬 것입니다.
싀집 온 지 넉달 만에 열 형제를 나엇스면, 동네방네로 다니여 자랑할 터인데, 어째서 부끄러 울음 우는 소리로 들엇습니까? (한 줄가량 해독불가) 눈’으로 보앗기 때문입니다.
동요를 지을 때에 소중한 것은, ‘바른 동심’을 갓는 것이외다.
▷……◁
그러나 아모리 바른 동심으로 지은 노래라 하드래도 아모짝에 쓸대업는, 아모짝에 쓸때업슬뿐더러, 가다가는, 우리 맘을 약하게 맨드는 노래는 필요치 안습니다. 보세요, 이런 노래가 잇습니다.
날점으는 하늘에
별이삼형제
빤짝빤짝 정답게
비최이드니
왼일인지 별하나
보이지안코
남은별이 둘이서
눈물흘린다
(한 줄가량 해독불가) 노래는, 돌아가신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 선생이. 열두 해 전 해 지으신 노래입니다.
내가 그 남은 두 별을 노래한다면, ‘눈물흘린다’ 하지 안코 ‘셋이서 숨박곡질하다가, 하나가 숨엇는데, 둘이서 암만 차저도 나오지 안는다’고 하겟습니다. 정 우는 것으로 보고 시프면 ‘찻다 찻다, 못 찻고 운다’고 하겟습니다. 숨박곡질하다 못 찻고 우는 일은, 여러분도 종종 잇지 안습니까?
620쪽: 각주 한자 수정
352 김이제(郭山 私立明新學校 二年 金彛濟, 十)의 「년ᄭᅩᆺ」(『동아일보』, 1926.9.30)이다.
671-672쪽: 탈락된 글자 복원
金秉河, “博物童謠硏究−植物槪說編(25)”, 『조선중앙일보』, 1935.3.18.
당추나무
어제밤 눈서리에 당추나무가
추어서 바들바들 떨고잇더니
오늘아츰 돗는해 처다보고서
방울방울 눈물을 흐ᇐ이고섰네
어제밤 눈서리는 무정트라고
해ㅅ님께하소연하며울기만해요
(林炳道) (朝)
느진가을 눈서리에 시드러 (한 줄가량 해독불가)
새빩안고초밭
밝안 잔자리
저녁바람에
사알낭살낭
벌판으로 들노
쫏기여갑니다
분주하든추수노래
끈치여버리자
논벌에는잡바진
허제비가하나
락엽이나라듯는
토방가에는
눌하니햇볏도
열버젓는데
새빩안고초밭
펴노앗슴네다
晶東 (東)
임병도(林炳道)의 「당추나무」(『조선일보』, 1930.12.24)이다.
한정동(晶東)의 「새ᄲᅡᆰ안고초밭(동시)」(『동아일보』, 1926.1.14)이다.
709쪽: 탈락된 글자 복원
나는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슴을 특히 어린이날 선서문(宣誓文)이라고 일음 부치엿슴니다.
“나는 조선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생각하는 씩씩한 조선 소년이 되기 위하야 아래의 일곱 가지를 선언하겟슴니다.”
첫재, 나는 언제나 압날의 새 사람인 것을 짓지 안코 지금 사람보다 씩씩하고 참된 사람이 되겟다.
둘재, 나는 동모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오 ᄯᅩ 사회를 위하는 것임을 잇지 안켓다.
셋재, 나는 참된 정신과 아울너 건전한 몸을 기르기 위하야 조흔 잡지를 읽으며 운동을 힘써 하겟다.
넷재, 나는 무슨 일이든지 서로 도읍고 마음을 합하여야 된다는 것을 잇지 안켓다.
711쪽: 삭제된 부분 보완
高長煥, “少年運動 諸賢ᄭᅦ−어린이날에 當하야(完)”, 『조선일보』, 1933.5.10.
이번 地方 團體에
充分히 供給치 못한 理由도 여기에 한아이다. 어린이날은 民族的으로 朝鮮 獨特한 名節임으로 알아 두고 이날을 직히고 이날을 즐겨히 마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날을 當해서 이날을 紀念하야 今年 어린이날로 하야금 우리의 자라 가는 조선의 소년운동이 다시 큰 눈을 ᄯᅳ고 모든 것을 새 맘 새 ᄯᅳᆺ 새 정신으로 한 맘 한 ᄯᅳᆺ 한 정신으로 굿게 쇠ᄯᅥᆼ이가치 뭉치어 거미줄 가튼 組織 미테 참된 進路를 차저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運動者 自身은 다만 이날 名節만 직힐 것이 안이라 이날로써 하야금 우리의 全體 問題를 解決해야 될 것이다.
少年運動이 엇더한 意識으로 흘를 것인가 或은 무슨 注意로 버들 것인가. 우리는 어린이날을 마지하야 엇던
槪念的인 스로간만으로 足할 것인가. 남다른 나라에 잇는 우리는 남다른 致誠과 努力으로 남다른 일을 해야 할 것이며 남다른 길을 걸어갈 것만은 事實이다. 우리는 가장 危機요 가장 組織的으로 指導할 ᄯᅢ가 온 것이다. 在來의 理論鬪爭만에서 다시 나아 와 實踐的이며 效果的인 運動이 잇서야 할 것이다.
(위 파란색 부분은 조선일보사에서 제공하는 신문 원문에 삭제되어 있어, '이하 7줄가량 검열로 삭제당함'이라 하였는데 최근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조선일보에는 원문이 살아 있어 보완한 것이다.)
738쪽: 글자 수정
▷… 이것이 너무도 적조함으로 전 조선적으로 통일하야 기념하는 것이 필요한 것을 느끼고 <천도교소년회>의 방정환(方定煥) <불교소년회>의 한영석(韓榮錫) <조선소년군(朝鮮少年軍)>에서는 내가 모히여 五월 一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그해에는 <조선소년운동협회(朝鮮少年運動協會)>라는 명칭으로 경성과 밋 각 지방단히 기념하게 되엿읍니다. 기념하는 방식은 기행열(旗行列), 一반을 위한 강연 어머니를 위한 회합, 어린이를 위한 동화 동요와 활동사진을 연중행사와 같이 거행하며 오늘에 이르럿습니다.
一九二五년 十월 十六일에 경성에서 분립하야 잇든
▷… <오월회>와 <소년운동협회>가 합동하는 동시 五월 一일은 노동제일(勞働祭日)이오 또 일요일이 아닌 때가 많은 고로 지장이 적지 아니하다 하야 五월 첫 공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엿읍이다.
一九二六년 三월 二十五일에는 <조선소년총연맹(朝鮮少年總聯盟)>으로 이름을 정하고 이 명의로 어린이 단체를 지도하며 또한 “어린이날”을 기념하게 되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