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대상
홍성장
이재인
새벽 네 시 경에는 재래식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어머님께서 물바가지를 두멍 거죽에 부딪치면서 물을 푸는 소리였거나 살강에 사기그릇을 꺼내다 내는 소리였다. 그때 시절엔 전기불이 없었다. 그러니 아궁이에서 타는 나무등걸의 희미한 불빛 속에 움직이니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불만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때는 덜그럭거리는 소리도 따라서 높아졌다.
이 날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홍성장날이었다. 닷새 만에 서는 홍성장은 집에서 걸어서 30리나 되는 먼 거리였다.
얼뻑산 골짜기를 지나려면 이슬에 정강이까지 옷이 달라붙었다. <만월표> 검정고무신을 꿰매 신은 신발이었다. 아니면 <송학표> 신발이었는데 신발은 물기로 미끈덕거려 성가신 걸음이었다. 우시장에 내다 팔 소를 끌고 가는 아버지의 등판이 오늘따라 넓어보였다. 송아지를 2년 전에 사다가 잘 먹이고 키워 이제는 이 어미 소를 팔면 논 두서너 마지기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돈이 모자라면 장릿벼를 얻거나 빌려다 논밭뙈기를 샀다. 농사꾼이 농토를 불리는 것은 최대의 경사였다. 더러는 쌀을 아끼기 위해서 시래기밥을 먹거나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다. 허기진 몸으로 나무지게를 지고 초롱산 기슭의 나무뿌리를 캐내거나 송충이 먹은 나뭇가지를 치는 일로 하루에도 두서너 번씩 산에 오르내렸다.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기에 소 목에서 쩔렁거리는 워낭소리를 음악으로 알고, 멀고 먼 홍성장엘 간다.
당연히 우시장은 팔고 사는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거래가 섭섭하게 이뤄진 이는 섭섭한 대로 생각한 대로, 흡족하게 팔은 사람은 흐뭇한 기분으로, 중개자 어성을 이끌고 우시장가의 국밥집으로 들어선다. 가마솥에서 진국이 설설 끓는 국물을 한 사발 처내주면 노오한 양은 주전자가 이리저리 우그러진 얼굴로 술그릇에 철철 넘치는 양조장 막걸리로 속을 채운다. 따라 나선 나는 머리고기 한 점도 얻어먹지 못하고 밖에서 포장 속의 서글픈 모습을 훔쳐보면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팥이 들어간 국화빵이거나 빈대 떡 한 개라도 얻어먹었으면 하는 바람은 먼 이국의 소망이었다.
누우런 소들이 “음매헤 움머~” 이산가족의 울음소리로 쇠전은 오후 1시면 파장이 된다. 사고 팔은 사람들은 다 스토리가 내재되어 있다. 지난 겨울 농한기에 화투장을 쥐었다가 패가하게 된 사람, 그는 구속을 피하기 위해서 소를 내다 팔았다. 큰아들의 대처 전세방이나 취직에 있어서 브로커에게 큰돈을 주기 위한 억울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아 온 사람은 논밭을 사기 위해 소를 내다 팔았다. 쇠시장에는 언제나 사연이 피고 졌다. 희비애락이 교차하는 시장은 반드시 우시장이다.
큰손이 오가는 곳이기에 반드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내재 된 곳이다. 소는 사람과 같이 오랜 세원동안 이 땅에서 살아 왔다. 사람이 하지 못할 노역을 묵묵히 시키는 대로 복종했다. 노동력은 노동력대로, 가죽은 가죽대로, 뼈는 뼈대로, 기름은 그대로 인간을 위해 희생하였다. 억울한 짐승이 소였다. 이제는 경운기나 트랙터로 대체된 현실 위에서 쇠전도 옛날처럼 흥청이지 않는다. 오일 만에 서는 예산, 청양, 홍성 우시장도 광천 새벽 다섯 시 우시장만이 존재하는 시대가 되었다.
워낭소리는 듣지 못하고 소가 내쉬는 한숨소리도 없는 세월에 내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