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하이킹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등산화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등산화는 국방부에서 선물해준 “군화” 입니다. 2년 반 동안 물집 한번 잡힌 적 없었던 이유도 전투화가 제 발에 꼭 맞았기 때문입니다. 제대 후에 사회 생활을 하면서 등산화를 구입하여 산과 들을 쉴 새없이 다니는 동안에도 전투화에 대한 추억이 가끔 떠오르곤 하더군요.
오랫동안 사용해 온 노스페이스 Ultra Fastpack III 가 너무 낡은데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기에는 성능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최근에 새 등산화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런 저런 어려움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신발을 세번이나 바꿨지만 제 발에 맞는 등산화는 어디에도 없더군요. 첫번째는 신을 때마다 양쪽 발 모두 뒷꿈치에 물집을 남겼고 두번째는 이상하게 발앞축의 중앙 부위에 물집과 굳은살을 만들었습니다. 세번째는 발바닥 부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신고 하이킹만 가면 발목을 접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무늬만 미드컷인 등산화였습니다.
최근에 구입한 등산화 3종, 정말 가볍고 편한데 신었다 하면 물집이...
그러던 차에 군에서 신었던 전투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등산화 중에서 전투화 같은 느낌의 등산화는 없을까 하고 여러모로 구글링을 하던 차에 구글 인공지능이 저에게 자꾸 같은 등산화 광고를 보여 주더군요. ‘이거 사라고~ 이거 사면 돼~’ 하면서 말이죠.
그 제품이 바로 잠발란의 Lynx 였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Lynx는 등산화가 아니라 전투화 및 사냥용 부츠입니다. 잠발란의 Leopard와 더불어 밀리터리 라인으로 특별히 개발된 등산화입니다.
그렇다면 헌팅 부츠와 등산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특징은 이 신발이 이용되는 환경입니다. 등산화의 경우 아무리 험한 산을 걷게 되더라도 대체로 등산로를 이용하여 걷는 것이 보통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딛고 지나다니는 등산로는 아무리 험하다고 해도 보통 잘 다져져 있거나 돌이 깔려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헌팅 부츠는 사슴이나 노루를 쫓아 숲으로 늪지대로 혹은 시냇물이 흐르는 개천으로 거침없이 뛰어들기 위해 만들어진 신발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중등산화보다 더 하드 코어한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섶에 발목이 쉽게 베이거나 젖지 않도록 등산화보다 목이 더 높고, 앉거나 쪼그리는 등의 액티브한 자세가 가능하도록 신발 밑창이 좀더 곡면으로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방수나 투습은 기본이고 추위에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도록 방한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무거운 배낭에다 총과 사냥감들을 짊어지고도 걸을 수 있도록 바닥이 아주 딱딱한 재질로 되어 있습니다.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헌팅 부츠는 중등산화와 알파인 부츠의 중간 정도에 있는 등산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잠발란 Lynx를 신고 4000미터급 마운트 샤스타 및 각종 장거리와 단거리 백패킹을 다녀 왔습니다. 신어본 소감에 대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장점이 참 많다라는 것입니다. 비브람과 함께 개발한 아웃솔은 다양한 환경에서도 무난한 접지력을 보여줍니다. 젖은 바위, 빙판, 눈길 등에서도 저의 80킬로 몸무게를 버티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여태껏 한번도 물집이 생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 발 모양과도 잘 맞는 듯 합니다.
BOA 시스템은 신고 벗는 데 10초면 충분할 정도로 편리합니다. 신고 돌려서 조으면 끝이고 벗을 때면 다이알을 잡아 당기면 레이스가 바로 풀어집니다.
내피는 고급스럽고 부드러우며 외피 가죽은 은은한 케모플라쥬 디자인에 브레이크인이 필요없을 정도로 부드럽지만 아무리 오래 신어도 축축 늘어지지 않고 모양을 유지합니다. 대부분의 중등산화보다 목이 5센치는 높지만 무게는 더 가볍습니다.
방수 및 투습 능력은 제가 지금껏 이용해본 어떠한 가죽 등산화보다 뛰어났습니다. 제가 이 등산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닥창의 케모플라쥬 디자인입니다. 성능은 뒷전으로 하고라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디자인과 섬세한 만듦새만으로도 이 등산화는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꼭 가지고 싶은 등산화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 완벽해 보이는 이 등산화에도 몇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구입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도 구입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만큼 치명적인 단점들입니다. 첫번째는BOA 시스템입니다. 제가 위에서 BOA 시스템 덕분에 신고 벗기가 편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신고 벗을 때는 좋은데 걸어 다닐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BOA 다이얼 하나로 발등부터 발목까지 모두 조여야 하기 때문에 아주 강하게 조여야 하는데 아무리 세게 조여도 발등이 아주 약간 헐거운 느낌이 듭니다. 그 결과로 내리막에서는 발끝이 토우캡에 닿아 발톱에 멍이 들었습니다. 해외 유튜버 중 어떤 분은 발등에 BOA 다이얼을 자작으로 하나 더 달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던데 저도 한번 따라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처음 살 때 5mm 정도 큰 사이즈로 샀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후회 중입니다.
두번째 문제점은, 신발 앞코가 너무 높이 들려 있어서 앞축으로만 서 있을 경우 자세가 좀 불안정하다는 단점입니다. 사냥용으로 개발된 등산화이기 때문에 뛰거나 쪼그리는 데에도 불편함이 없도록 밑창이 평면이 아니라 좀 더 둥글게 디자인이 되어 있고 그래서 앞코가 마치 버선 코처럼 높이 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빠르게 걸을 때에도 종아리에 부담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좁은 바위 위를 걸을 때 안정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됩니다. 발 앞부분이 둥글어서 바닥과 닿는 부분이 적기 때문입니다. 접지 면적이 적어서 내리막 길을 걸을 때 가끔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신발을 좀 더 신어본 이후에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가죽의 탄성이나 바닥 고무가 길이 덜 든 상태여서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세번째 단점은 가격입니다. 이 등산화의 가격이면 왠만한 유럽 수제 등산화 두 켤레를 사고도 남습니다. (두 켤레를 사도 이 부츠 한 켤레를 대체할 수 없기는 합니다만…)
종합해 보자면, 잠발란 Lynx는 몇몇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멋진 등산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특히,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에 20에서 30킬로미터의 백패킹 하이킹을 즐기시는 분들께는 최고의 선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3박 이상의 장거리 종주에 날씨나 지형에 대한 걱정을 하시는 분들께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정사이즈로 충분하지만, 겨울 등산 및 다목적으로 이용하실 분들께는 5mm 정도 큰 사이즈를 고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다만, 본인의 산행 스타일을 고려하여 사이즈를 정하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천연기념물에 멸종 위기종인 시라소니처럼, 잠발란 Lynx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과 완성도 높은 품질, 완벽에 가까운 보호 성능을 가진 등산화를 원하시는 분들께 정말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