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사람 김철성 일기
김철성
(2013.4.4)
고은 시인의 『바람의 사상』을 읽는다.
소설가 서해성의 말처럼 '눌러서 쓴' 고은의 일기다.
1067쪽이나 되는 분량이지만 쉽게 읽힌다.
전남도립대학 캠퍼스에 벚꽃 분분하다.
벚 꽃 아래서 낮술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다.
오는 봄, 가는 봄이 기쁘고 슬퍼서다.
인천에 사는 L시인이 전화 했다.
사과 한 박스 보내겠다고 집주소를 청한다.
남원 답사 갈 때 하나씩 깨 먹으란다.
"남원의 茶이야기 기대한다며…"
(2013.4.5)
출근 길 김병종의 『화첩기행2』를 본다.
최근 남원에 '김병종 생명미술관'을 세운다운 소식에 김 교수가 생각났다.
책에서, 젊은 날 숨져간 천재예인 바우덕이와
불꽃처럼 살다 간 전혜린이 그냥 읽힌다.
전남도립대학 캠퍼스엔 바람 없어도 벚꽃 흩어진다.
피자마자 지는 꽃잎들 속에서
바우덕이와 전혜린이 보인다.
(2013.4.10)
김형국의『장욱진』을 읽었다.
그림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싶어서다.
남원차(茶)연구소 오동섭 선생이 매월당에 걸 그림을 부탁해,
광주 예술의 거리 액자점에 맡겼다.
표구 맡기는 것과 전시회는 느낌이 비슷하다.
둘 다 남에게 내 보이려는 행위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2013.4.13)
남원차연구소 오동섭 선생 부부와 곡성 죽곡면 해암요(海岩窯)에 갔다.
다완(茶盌)이 작위가 없고 투박하다.
내 형편에 무리지만 월부로 하나 구입했다.
귀갓길에 매월당 사모님이 보련암차 다섯 편을 싸준다.
내 막그림에 대한 답례지만 차값 치러야 한다.
다완에 대한 시도 써봤다.
(2013.4.15)
허세욱의『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라는 (중국)고전산문을 읽었다.
시대상황이 달라 공감이 더디다.
그런데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 첫 구절이 마음을 움직인다.
"산이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있어야 이름을 얻고, 물이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있어야
이름을 얻고, 이 누실(陋室)은 집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향기가 있어서 이름을 얻었다."
사람이되 사람의 향기 품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13.4.16)
남원풍수 답산길에 매월당(梅月堂)에 들렸다가 차 맛을 보고,
졸저『남원의 茶』를 준비하게 됐다.
기념다화(茶畵)로 김병종 교수와 소순희 화백의 다완을 넣고 싶어 막무가내로 연락을 했다.
김 교수는 "말씀하신 그림은 잘 알겠습니다."고, 소 화백은 "다기 그림 자료 있으면
올려주십시요"며 우문(愚問)에 현답(賢答)를 주었다.
일전 남원역전 앞 복지다방에 갔는데, 복지건강원으로 바뀌었다.
복지다방은 서울대 김병종 교수가 용성중학교 때 첫 개인전(그림) 장소였다.
(2013.4.17)
『조주선사와 끽다거』를 펼쳤더니 그 안에 내 막그림 한 점 끼워져 있다.
조주 스님 머리에 찻잔과 새 한 마리다. 화제는 끽다거(喫茶去)였다.
졸화(拙畵)지만 내 그림에 내가 감동한다.
그렇게 자화자찬(自畵自讚)하며 그 막그림을 내 데뷔작(début作)이라 홀로 선언했다.
어젯밤 남원 매월당(오동섭)에서 전화 왔다.
내 막시와 막그림을 맘에 든다고 했다.
(2013.4.18)
“기교(技巧)나 무위(無爲) 따위
내 알바 아니라는 듯
남도 땅
이름 없는 도공
막걸리 잔 기울다
제 흥에 겨워
달빛 흥건한
논바닥 흙 긁어 모아
대충 빗어낸 듯한
꽁보리밥에
된장국 냄새 나는
막사발 하나"
-곡성 해암요에서 가져온 '거친다완'에 대한 소감이다.
(2013.4.19)
내 그림은 누구 말대도 '유치원생 낙서'이다.
크기도 고작 2호 내외로 작다.
게다가 유성펜을 사용하니 격도 떨어진다.
사실 실력이 이것 밖에 안 되니 어떨 수 없지만,
이런 그림도 유명한 장욱진 화백의 그림평(畵評)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이는 작은 크기의 작품 속에 여러 이야기를 잘 담아낸다. 사실 크기를 과시하려 하는 것은 산업사회가 낳은 우스운 풍조의 하나다. 국내 최대 크기니 동양 최대 크기니 하고 작품의 크기를 내세우는 일은 높은 급수의 예술가가 할 일이 못 된다." [김병종의『화첩기행2』(장욱진과 덕소)중]
당연히 나는 장욱진 화백을 좋아한다.
그래서 인천 아벨서점 곽현숙 선생이 두툼한 장욱진 화집을 보내줬다.
(2013.4.21)
인천 봉강 선생의 작품 '끽다거(喫茶去)' 를 들고 남원에 갔다.
매월당에 걸어 놓고 볼 참이다.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과 정읍 샘골다례 정기진 원장도 남원에 왔다.
남원지부 현판식과 보련암차 유다(乳茶) 격불(차솔로 휘 젖는 행위)이 있었다.
김의정 이사장의 '남원의 차' 책에 넣을 싸인화도 받았다.
오랜만에 먹는 보리밥과 산채며 묵나물 찬이 일품이다.
찬을 보니 막걸리 한잔 간절했다.
-출처 : 다음카페 <문학산>(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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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성: 시인, 향토자료 수집가. 1962년 남원에서 출생하여 인천 동구청에 근무하다 현재는 전남도립대학교에 있다.
시집에 ‘검은 강물 서늘한 바람’과 향토자료집 ‘금지의 서광’, ‘요천 발원지를 찾아 150리 길을 걷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