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애와 명예 사이(대화교회 교사 워크샾 1차 자료)
왕하6:15-17
15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들어가며
시리아 왕이 이스라엘에 침략했습니다. 그들은 그당시 고대 근동에 강한 군대였으며 이스라엘에는 성경 표현대로라면 고작 말 5필이 남아 있을 정도로 경제적, 군사적으로 형편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엘리사의 시종이 안달이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풍전등화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보며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이렇게 외칩니다.
엘리사는 보았던 것, 그러나 그 시종은 보지 못했던 것, 그리고 엘리사는 들었던 것, 하지만 그는 듣지 못하였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들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2.또 다른 이야기 하나
사2:10
10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가나안 정복이 끝난 뒤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매일같이 만나와 매추라기라는 거친 음식 때문에 히브리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한 낮에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견뎌야 했고 매번 천막을 걷어 옮겨다니는 불편한 생활에 비하면 가나안 시기는 그야말로 지상천국이며 또한 애굽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신이 편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그들이 영적인 것에 소홀이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죠?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물과 기름과 같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여튼 가나안 정착 이후 자신들의 땅이 생기고 달콤한 가나안의 퇴페적 문화에 젖어 들면서 그들은 야훼 하나님을 잊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
하나님을 만난 것도 분명하고 하나님이 요단을 마르게 하시는 것도 여리고도 무너뜨리는 것도 직접 목격하여 간증도 있건만 그들이 하지 못한 것은 그들 다음 세대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과연 하나님을 잃어버린 그들이 풍요로운 땅, 바알과 앗세라와 함께 행복했을까요?
지금의 시대와 너무나 닮아있으며 이 시대 아이들의 영혼을 맡고 있는 우리들이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하는 대목입니다.
3. 하나 더
왕하 22:8-11
8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9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10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리고 계획적이지도 않게 그러나 누군가의 섭리와 같이 요시야 왕과 힐기야 대제사장 그리고 사반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 말씀을 잃어버리고 산 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그러나 주의 성령이 도우셔서 그나마 요시야가 그 발견된 성경을 들고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드디어 찾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우리는 이 말씀 위에 다시 서야 한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4.우리의 상황
1) 대화에는 현재 대화 감리교회, 대화 남부교회, 대화 장로교회, 신리 교회, 안미교회 등이 교회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화 면소제지에 위치한 대화 감리교회, 대화 남부교회, 대화 장로교회는 교회학교 친구들이 중복 출석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보니 경쟁 아닌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령 대화감리교회에서는 30명이 모이면 소풍을 가기로 했습니다. 대화장로교회는 에버랜드를 가기로 했습니다. 대화남부교회는 교육관에 사발면과 과자류를 상비해 놓고 놀러오는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먹게 하고 있습니다. 평창지방 교회학교 연합 물놀이 행사를 치루어 보아서 잘 알 것입니다. 여름 행사마다 더 크게 그리고 더 고급스럽게 성경학교를 진행하려다 보면 어쩌면 경쟁 아닌 경쟁으로 친구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또한 지역 사회에 안 좋은 이미지를 주기 쉽습니다. 본질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과연 진정한 전도가 무엇인지? 영혼 구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는 절차와 방법 그리고 내용까지 무시한 채, 교회로 아이들을 모으는 ‘인도’보다는 그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전도’가 요구 될 것입니다.
향 후 몇 년 안에 교회 학교 안에 교인 자녀들이 몇 명이나 남겠습니까? 자동 전도가 되는 아이들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화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들 중 정상적인 가정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앞으로 한 부모 혹은 조손 가정 아이들, 이주민 자녀들은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교육도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교회학교는 풍부한 어장이었습니다. 큰 행사에 맛있는 간식과 좋은 선물이면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물량공세가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간혹 교회학교가 왜 안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현 교회학교 상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교회학교 예배 인원이 100명, 200명 안 되던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현실을 보십시오. 평창지방에서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가 몇 교회가 됩니까? 그리고 친구들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제일교회 30-40명, 중앙교회50여명)
교회가 안 되듯 교회학교도 안 되는 것이 정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넘쳐나는 시간과 컴퓨터 그리고 핸드폰을 무엇으로 감당하며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학교나 학원 프로그램 등등을 무슨 수로 당해냅니까?
우리 스스로 문제 인식과 함께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체질을 바꾸어보자는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 다른 교회들과 경쟁을 통해서 보여 줄 수 없는 것들, 그것이 우리의 무기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얼마 전 지방 어느 교회 부흥집회를 다녀왔습니다. 같이 가서 찬양사역을 감당하고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 교회가 2년 전만 해도 찬양단과 찬양대 그리고 학생회와 교회학교가 있던 교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주자를 고민하며 지금 1-2명 남아 있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면...
교회 결산 1억-1억 5천 정도 교회 실정이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느 교회들이겠습니까?
이것을 사회학자들은 교회의 노령화라고 말합니다. 나이를 먹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교회도 점점 쇠퇴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순리일까요? 그러면 성경은 늘 순리를 따르라고 말합니까? 애굽을 거역한는 것, 바벨론을 나오는 것,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항명하는 것, 이것들이 순리였습니까?
5.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
제 친한 목회자가 도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야심차게 성경학교를 준비했습니다. 사전에 오겠다고 약속한 친구들이 20명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학교 당일날 한명도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옆에 있는 교회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성경학교에 모셔갔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몇 달 걸렸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사역을 할 때 엄마 없이 아빠는 일정한 직업이 없이 몇 달에 한번씩 들어오는, 들어오면 매칠씩 술만 먹던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시던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추석 전날 이 녀석이 자꾸 자신의 집에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집에 갔더니 할머니는 추석 음식 장만을 하고 계셨습니다. 허름한 집에서 조촐하게 쟁반에 준비하고 있는 음식들을 녀석이 들더니 제 앞에 놓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드세요. 할머니 우리 전도사님 드려도 되지?”
그렇게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 밖 까지 나오셔서 배웅해 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은 아직 눈에 선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장면들이 이러한 것들 아니겠습니까?
6.회복
흔히 아이들을 고슴도치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녀석들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우리도 상처를 받고 또 지친다는 이야기입니다.
헨리 나우엔이라는 이 시대 최고의 영성가였고 영성학자였던 그가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은퇴한 뒤 시골에 있는 지체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던 ‘조시?’라는 친구와 한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린 지체장애 친구가 헨리 나우엔을 KO 시켰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역 그 중에서 어린이 사역은 무엇보다 내 자신 안에 영적인 충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어떤 고백을 통해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지금은 요?
우리들 스스로 나를 점검해보는 것, 그리고 부족한 것은 채우고 상처 난 부분은 치료를 하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 사역이 우리에게 멍애가 아니라 진정 명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구멍이 난 배로 얼마나 갈 수 있겠습니까? 연료탱크에 구멍이 났는데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같은 이치 아니겠습니까?
7.우리가 할 일
1)앞으로 대화감리교회 교회학교에서는 가장 먼저 이 부분을 신경쓸까합니다. 교사들의 영적인 충전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은혜에 충만해야 내 사명에 충실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고슴도치 같은 아이들을 품어 줄 수 있겠지요.
매월 첫주 교사 기도회 그리고 마지막 주 교사 회의 시간을 통해 서로 은혜로 충전하는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2)또한 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친구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이 줄 수 없고 수많은 교회들과 대화 교회의 차이를 무엇으로 잡을까요? 우리가 줄 수 있는 사랑! 그리고 하늘의 은혜입니다. 그 중 친구들이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때문에 매주 드리는 예배에 선생님들도 사명감을 갖고 또한 은혜를 끼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여 주십시오. 어쩌면 교회학교의 승패를 결정짓는 두 가지 중 하나가 바로 교회학교 예배입니다.
3)그리고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시다. 친구들과 기도제목을 나눌 수 있고 그러기 위해 전화 심방과 문자와 카톡 교제를 시도해야 합니다. 또한 장기 결석자는 심방이 필요합니다. 교회학교의 기반은 여기에 있습니다.
8.갈무리
두서가 없었습니다. 할말이 많아서입니다. 그러나 우리 서두리지 말고 한 발씩 다함께 걸읍시다. 우리의 승패는 창검이 아닌 여호와 이름에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 서로서로가 의지가 되어서 이 사역을 감당합시다. 잊지맙시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당신을 나타내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