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기획부동산을 찾았습니다. 작년 기획부동산을 취재할 땐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잠입취재를 했었는데, 이번엔 사정이 달랐습니다. 모 기획부동산 이사가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한 겁니다. 의외였지만 흥미가 끌렸습니다.
기획부동산도 기획부동산 나름이란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기획부동산 때문에 정작 양지를 지향하고 있는 선의의 기획부동산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구요. 수도권 남부의 토지를 주로 매매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용인지역 땅 4천평을 단 7일만에 팔았다고 하더군요. 보통 3백-5백평 단위로 쪼개 파니까 피해자(?)가 줄잡아 수십 명에 달하는 셈입니다.
이 분 하는 얘기가 재밌었습니다. '정상적인' 기획부동산을 '(토지를) 도매로 사서 소매로 파는' 중개업자로 봐달라는 것입니다. 덩어리째(도매) 매입하기 때문에 시세보다 싸게 사고, 소매로 팔기 때문에 조금 얹어 팔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기획부동산은 대신 철저하게 땅값상승 여력이 있는 개발예정지만 취급한다고 했습니다. 또 땅을 쪼개서 파니까 일반인들이 적은 돈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되구요. 이런 걸 '윈-윈'이라고 한다나요.
전화로 땅을 파는 기획부동산의 폐해야 앞서도 여러 번 지적했으니까, 논외로 하구요. 이 분이 '나쁜' 기획부동산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해 제시한 방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첫째, 사업자등록증 대표와 사장 이름이 일치하는 지 확인하라. 일치한다면 그나마 낫지만, 이름이 다르다면 필시 현 사장이 '바지 사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기획부동산은 언제든지 도피할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둘째, 잔금을 치르기 전 반드시 개별등기를 냈는지 확인하라. 토지를 매입할 땐 일반적으로 계약금을 소액 치르고 잔금을 한꺼번에 냅니다. 기획부동산들은 개별등기를 약속해놓고, 계약자로부터 잔금까지 모두 받고 나면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유지분으로 등기한다든지, 아예 등기를 차일피일 미루기도 합니다. 상당수 기획부동산은 수많은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후 잠적하거나 회사 이름을 바꾸고 또다른 영업에 나서기도 합니다.
최근엔 기획부동산 업계도 구조조정이 많이 진행됐습니다. 이전에는 서울 강남권에서만 2백여 곳이 성업했는데, 지금은 80 곳 안팎으로 줄어들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하지만 요즘도 쉴새없이 걸려오는 기획부동산 전화를 접하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언론에서 폐해를 자주 보도하고 있지만 기획부동산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또 피해자들이 양산되고 있으니까요. 주로 토지에 대해 잘 모르는 주부들이 '함정'에 노출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