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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문집(鹿門集) 제12권 / 잡저(雜著) 제사(題辭)
/소학 무신년(1728, 영조4) 기유년(1729, 영조5)〔小學 戊申己酉〕
소학 무신년(1728, 영조4) 기유년(1729, 영조5)〔小學 戊申己酉 〕
제사(題辭)
배근달지(培根達支)를 해설한 말은 본지(本旨)를 잃은 것 같다. 그런데 집설(集說)을 살펴보건대, 배근(培根)을 소학(小學)에 소속시키고 달지(達支)를 대학(大學)에 소속시킨 것이 나의 의견과 우연히 합치하였다. 대개 건학(建學)과 입사(立師)를 먼저 통틀어 말하였고, 그 뒤에 이어서 소학과 대학을 나누어 말하였는데, 배근과 달지의 구(句)가 그 중간에 끼어 있고 보면, 그 뜻이 또한 분명하다고 하겠다.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세워서〔建學立師〕 뿌리를 북돋우고 가지를 벋게 하는〔培根達支〕 이것은 옛날의 성왕(聖王)이 백성을 새롭게 할〔新民〕 때 썼던 법이다. 그러나 만약 측은하게 여긴다〔惻〕는 한 글자가 없다면 허다한 법제(法制)가 단지 허문(虛文)으로 돌아갈 뿐이기 때문에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또한 “어찌 그들을 측은하게 여겨 구제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가 “선왕이 차마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서, 이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사를 행하였다.〔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대개 이런 마음이 있어야 이런 정사가 있는 것이니, 이런 마음이 없고서야 어떻게 이런 정사가 있겠느냐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중용(中庸)》에서 “성이 아니면 이루어질 일이 없다.〔不誠無物〕”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뜻인데, 나는 성(誠)이라는 이 한 글자를 매우 좋아해서, 일찍이 “가르치는 자도 이것이 없으면 가르칠 수 없고, 배우는 자도 이것이 없으면 배울 수 없으며, 어버이를 섬길 때에도 이것이 없으면 자식 노릇을 할 수 없고, 임금을 섬길 때에도 이것이 없으면 신하 노릇을 할 수 없으며, 왕자(王者)와 패자(覇者)의 구분도 여기에 있고, 순(舜)과 도척(盜跖)의 구분도 여기에 있으며, 인욕(人欲)을 제거하고 천리(天理)를 회복하는 기틀도 여기에 있고, 천지를 제자리에 있게 하고〔位天地〕 만물을 기르는〔育萬物〕 공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편(篇)은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서문과 그 규모가 동일하다. ‘원형이정(元亨利貞)’에서 “합리성만 있고 강제성은 없다.〔有順無強〕”까지는 바로 서문 제1절의 뜻이고, “보통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문에〔衆人蚩蚩〕”에서 “그 가지를 벋게 하듯 한다.〔以達其支〕”까지는 바로 서문 제2절의 뜻이고,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에 대해서 말한 2절은 바로 서문 제3절의 뜻이고, “성세(盛世)가 멀어지고 성인이 돌아가시어〔世遠人亡〕” 1절은 바로 서문 제4절과 제5절의 뜻이고, “다행히 이 양심은〔幸玆秉彛〕” 1절은 바로 서문 말절(末節)의 뜻이다. 비록 상세하고 간략한 점에서는 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글을 지어서 부친 뜻은 하나로 관통되어 있다.
다만 이 편(篇)은 소자(小子)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평실(平實)하고 간절(簡切)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가령 “무릇 이것은 그 처음에……〔凡此厥初……〕”와 “어버이를 사랑하고 경을 공경함과……〔愛親敬兄……〕”의 2절과 같은 것은 《대학장구》 서문에는 없는 것인데, 재삼 간절히 말해 주어 동자(童子)가 흥기하여 선(善)을 지향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서문에는 “총명하고 예지로워……〔聦明睿智……〕” 이하의 1단(段)이 “기품에 구애를 받아……〔氣禀所拘……〕” 한 1단의 아래에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편의 “성인이 이를 측은하게 여겨〔惟聖斯惻〕” 1절의 뜻이라서 “오직 성인은 본성대로 하시는 분이라〔惟聖性者〕” 1절은 서문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문세(文勢)에 따라서 각각 타당하게 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문은 소학과 대학을 나누어 말하다가 끝에 가서 대학으로 합쳐서 마무리한 데 반하여 이 편은 소학으로 마무리를 하는 등 각기 주로 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서문에서는 기품(氣禀)과 물욕(物欲)을 함께 거론하여 말한 반면에, 여기에서는 단지 물욕만 말하고 기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동자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이해하기 쉬운 것부터 거론하여 말한 것이다. 대저 서문을 요약하면 이 편(篇)이 되고, 이 편을 부연(敷衍)하면 서문이 되니, 이는 이른바 상호 발명(發明)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입교(立敎)
남반혁(男鞶革)의 주(註)에서 “반(鞶)은 큰 띠〔大帶〕이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혁대(革帶)는 정대(正帶)이니 옷을 묶는 것이다. 큰 띠를 설하는 것은 바로 거듭 묶기 위한 것이니, 신(申)에는 ‘거듭’이라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신(紳)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거하면 반(鞶)은 바로 정대이니, 지금 운운한 것은 검토를 잘못한 것인 듯싶다.
아홉 살 이전에 집안에 거할 때는 가르치는 권한이 장자(長者)에게 있기 때문에 가르친다〔敎〕라고 말을 하였고, 열 살부터 집을 나가서 밖의 스승에게 배울 때에는 ‘나아가 배운다〔就學〕’는 뜻이 들어 있고 또 열심히 공부하느냐의 여부가 그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배운다〔學〕라고 말을 하였으니, 글자를 놓은 뜻이 깊다고 하겠다.
위에서는 곧장 “옷은 비단으로 하지 않는다.〔衣不帛〕”라고 하였고, 아래에서는 “갖옷과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可以衣裘帛〕”라고 한 그 뜻이 자별(自別)하다고 하겠는데 , 대개 ‘할 수 있다〔可以〕’라는 것은 단지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곧으면서도 온화하며〔直而溫〕” 이하의 4구(句)는 사람들에게 기질(氣質)을 바로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상장(上章)에서 설(契)에게 명할 때에는 백성을 두루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오교(五敎 오륜(五倫))를 공경히 시행한다.〔敬敷五敎〕”라고 하였으니, 이는 대개 소학(小學)의 교육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주자(胄子 제왕과 귀족의 적자(嫡子))를 가르치기 때문에 기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극구 말하면서 악(樂)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여 도주(陶鑄)하고 함화(涵化)하는 묘리를 극진히 설명하였으니, 이는 대학(大學)의 도라고 하겠다.
“지(知)와 인(仁)과 성(聖)과 의(義)와 충(忠)과 화(和)이다.”에서 인(仁) 자를 ‘사욕이 없는 것〔無私欲〕’으로 훈고(訓詁)한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육덕(六德)을 아울러 말하고 있는 데다가, 성(聖) 자에 대해서도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無不通〕’으로 해석하였으니, 그렇다면 인(仁) 자도 응당 고유(固有)한 뜻으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해(諺解)에서 인자(仁慈)라고 해석한 것이 옳다고 하겠다.
‘疈’은 필력절(必歷切)이니 음(音)이 벽(璧)이다. 이는 희생의 몸통을 가르고 찢는 것을 말하는데, 《주관(周官)》 〈종백(宗伯)〉에 “벽고(疈辜)를 해서……”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이 글자는 가운데에 도(刀)가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서는 인(人)을 집어넣었으니 잘못되었다. -벽(疈)은 육예(六藝)를 설명한 주(註)에 보인다.-
“안색을 단정히 가다듬으면 마음속이 반드시 경건해진다.〔顔色整齊 中心必式〕”라고 한 것은, 학자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는〔持敬〕 방법을 보여 준 것으로서 성인(聖人)의 뜻과 합치하는 점이 있다. 정자(程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으면서 마음이 거만하지 않은 경우는 있지 않다.〔未有箕倨而心不慢者〕”라고 경계하였고, 주자(朱子)는 방심(放心)을 수습하는 공부를 말할 때면 반드시 “자세히 구용을 살펴보라.〔仔細看九容〕”라고 당부하였다. 대개 학문은 단지 일용(日用)상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안색(正顔色)과 출사기(出辭氣)의 일 을 선행(先行)한 뒤에야 마음이 머물러 의거할 곳이 있어서, 점차로 차제(次第)가 있게 되고 점차로 조리(條理)가 있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상달(上達)하는 공부도 바로 여기에 있으니, 비록 행동거지와 주선하는 것이 예(禮)에 절로 맞는〔動容周旋中禮〕 성인의 경지 에 이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여기에서 시작하여 점점 익숙하게 하는 데에 불과할 따름이다.
흥(興)이라는 것은 흥기(興起)하여 분발(奮發)하는 것으로서, 이는 곧 입지(立志)의 경계이니, 바로 공자(孔子)가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라고 말한 그것이다. 입(立)이라는 것은 지수(持守)하는 것이 견정(堅定)하여 우뚝 수립한 것이 있는 것이니, 바로 공자가 “삼십 세에 지키는 것이 견고해졌다.〔三十而立〕”라고 말한 그것이다. 성(成)이라는 것은 덕(德)이 이루어지고 행동이 원숙해져서 심광체반(心廣體胖)하고 대이화지(大而化之)한 것이니, 바로 공자가 “육십 세에 귀가 순해지고〔耳順〕, 칠십 세에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從心〕”라고 말한 그 경지이다.
명륜(明倫)
‘韠’은 벽길절(璧吉切) 즉 음이 필이다. 예복(禮服)의 폐슬(蔽膝)이니, 가죽으로 만든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길이는 3척이고, 하부의 폭은 2척, 상부의 폭은 1척이다.〔長三尺 下廣二尺 上廣一尺〕”라고 하였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필은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비단으로 만든다. 중간에 목 부분이 있고, 그 목의 양쪽 끝에 어깨 부분이 있는데, 어깨에는 혁대를 꿴다.〔韠 以皮爲之 今以帛爲之 中間有頸 兩頭有肩 肩以革帶穿之〕”라고 하였다.
총(緫 머리끈 )에 대해서 공소(孔疏 공영달(孔穎達)한 사람을 벌줌 )에 “연증(練繒 마전한 흰 비단 )을 잘라 만들어서, 머리카락 밑부분을 묶고, 나머지는 상투 뒤에 늘어뜨려 장식으로 삼는다.〔裂練繒爲之 束髮之本 垂餘於髻後 以爲飾也〕”라고 하였다. 〈상례(喪禮)〉를 상고해 보건대 “포두수(布頭𢄼)는 바로 포총(布緫)으로서, 그 밑부분을 묶은 다음에 또 그 끝부분을 묶어서 상투 뒤로 내보내는데, 늘어뜨린 길이가 6촌(寸)ㆍ8촌ㆍ1척이 된다.……” 하였다. 그리고 《가례(家禮)》의 두수(頭𢄼)에 대해서 경산(瓊山 구준(丘濬))이 “이것은 총(緫)이니, 예주(禮註 《예기》 〈내칙(內則)》)에서 ‘연증을 잘라 만들어 머리카락을 묶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으니, 여기에 의거하면 총(緫)은 바로 두수인 것이다. 길(吉)할 때에는 연증으로 만들지만, 상(喪)을 당해서는 포(布)로 만들기 때문에 포총(布緫)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홀기(笏記)의 의미와 관련하여 자서(字書)를 상고해 보건대, 홀(笏)의 뜻은 홀(忽)이니 ‘홀연히 잊는 것에 대비하려는 것〔備忽忘〕’이었다. 그러므로 임금을 섬기고 어버이를 섬기며 종묘(宗廟)의 제사를 받들 적에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홀을 손에 쥔 것이다. 〈제례(祭禮)〉에 진홀(搢笏)과 출홀(出笏)의 문자가 있는데, 진(搢)은 요대(腰帶)에 꼽는 것이요, 출(出)은 꺼내어 손에 쥐는 것이다.
타(鬌)와 관련하여 〈내칙(內則)〉에서 “머리털을 잘라서 타를 만드는데, 남자아이는 각(角)을 만들고 여자아이는 기(羈)를 만들며, 그렇지 않으면 남자아이는 왼쪽에 여자아이는 오른쪽에 상투를 묶는다.〔剪髮爲鬌 男角女覊 否則男左女右〕”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타는 머리털을 모두 깎지 않고 남겨 놓은 것이다. 협신을 각이라고 하고, 오달을 기라고 한다.〔鬌所遺髮 夾囟曰角 午達曰覊〕”라고 하였고, -엄씨(嚴氏)가 말하기를 “각(角)은 상투가 두 개이고, 기(羈)는 상투가 세 개이다.〔角雙䯻 覊三髻〕”라고 하였다.- 소(疏)에 “협신은 양쪽의 각을 만들어야 할 곳에 머리털을 깎지 않고 남겨 둔 것이고, 오달은 머리털을 깎되 숨구멍이 있는 정수리 부분은 남겨 두고서 종횡으로 각각 하나씩 서로 교차시켜 통하게 한 것이다.〔夾囟者 兩旁當角處 留髮不剪 午達者 剪髮留頂 縱橫各一 相交通達〕”라고 하였으니, 이에 의거하면 깎지 않은 것이 타(鬌)인 것이다.
그런데 유씨(劉氏 유이(劉彝))는 -집성(集成)에 보인다.- 뜻밖에 말하기를 “배냇머리를 잘라서 타(鬌)를 만들어 머리에 두른다.〔剪胎髮爲鬌 帶于首〕”라고 하였는데,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또 본주(本註) -주자(朱子)의 주(註)이다.- 를 살펴보건대 “모(髦)는 머리털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어릴 때의 타(鬌)를 상징한 것이다.〔髦用髮爲之 象幼時鬌〕”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또 유씨의 설과 합치하는 것 같다. 이는 다시 검토해 볼 문제이다.
모(髦)에 대한 언해(諺解)의 해석을 보면 “아이가 태어나서 3개월이 되면, 머리털을 잘라서 이마 양쪽으로 드리운다.……〔兒生三月 剪髮垂于兩額……〕” 하였다. 그리고 어릴 적에 중국에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어 보니, 중국 사람은 머리털을 잘라서 머리 양쪽으로 드리웠다가, 부친이 사망하면 왼쪽의 것을 제거하고, 모친이 사망하면 오른쪽의 것을 제거하며, 양친이 모두 사망하면 모두 제거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이 바로 모(髦)라고 하는 것으로서, 언해의 해석과 합치하였다.
다만 유씨(劉氏)의 해설에 “남자아이는 왼쪽이고, 여자아이는 오른쪽이다.〔男左女右〕”라고 한 것을 보면 단지 한쪽에만 드리운 것 같은데, 이는 어쩌면 고금(古今)의 제도가 달라서 그런 것일까. 또 살펴보건대, 유씨도 《시경(詩經)》의 “저 양모를 늘어뜨린 분〔髧彼兩髦〕”이라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그렇다면 양모는 남녀가 동일한데 동일하지 않은 것은 좌우(左右)라고 말한 것일까? 그리고 〈내칙(內則)〉의 ‘남좌여우(男左女右)’의 글 위에 “남자아이는 각(角)을 만들고 여자아이는 기(羈)를 만든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기우(奇偶)와 좌우가 옛날에는 또 하나로 정해진 것이 없었던 것일까? 이런 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내칙(內則)〉의 소(疏)에 “여자는 비녀를 꽂아야 향주머니를 차는데, 여기에서 비녀를 꽂지 않았는데도 향주머니를 찬 것은 용취 를 차는 것이 그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女子笄乃著纓 此未笄而有纓者 以佩容臭 與彼異也……〕” 하였다. 대개 며느리가 시부모를 섬기는〔婦事舅姑〕 조목에서는 단지 “향주머니를 맨다.〔衿纓〕”라고만 칭한 데 반하여, 여기에서는 반드시 “용취를 찬다.〔佩容臭〕”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이미 비녀를 꽂은 자는 항상 영(纓)을 차는데 이 영은 바로 향주머니〔香囊〕이기 때문에 다시 ‘패용취(佩容臭)’를 말할 필요가 없고, 아직 비녀를 꽂지 않은 자는 항상 차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몸의 악취가 존자(尊者)에게 풍길까 두려워서 차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패용취(佩容臭)’ 세 글자를 덧붙여서 구별하려고 한 것이다. 내가 일찍이 영(纓)이 향낭(香囊)인데 다시 패용취라는 말을 더한 것은 말이 중첩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고, 또 부사조(婦事條)와 분별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뜻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연히 그렇게 되었는가 하고 의심하였는데, 지금 소(疏)의 설을 가지고 유추하여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으니, 고인(古人)이 언어를 구사한 뜻이 바로 이처럼 깊고 치밀하다고 하겠다.
“모든 내외의 사람들은 닭이 처음 울면〔凡內外鷄初鳴〕”의 주(註)에서 “이것은 내외의 비복(婢僕)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말을 상고해 보건대 “〈내칙(內則)〉의 본문 아래에 ‘어린아이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게 한다.〔孺子蚤寢晏起〕’라는 글이 이어져 있는데, 이 어린아이는 비복의 자식이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비복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가(一家)의 비유(卑幼) 남녀를 모두 합쳐서 말한 것인데, 비복도 물론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개 ‘범내외(凡內外)’라고 통틀어 말해 놓고 나서 1장(章)을 별도로 만들었고 보면, 비복만 단독으로 가리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부사구고조(婦事舅姑條)에서 ‘모(髦)에 묻은 먼지를 터는 것〔拂髦〕’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대개 모(髦)는 자기를 낳아 주신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려는 것인 만큼, 시부모를 모시는 글에서 제기하여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은 옳지 않다.
“모두 이 예(禮)를 따른다.〔共帥時〕” 이상의 4장(章)은 어버이 섬기는 예(禮)를 말한 것이다. 그 글이 세세하고 자잘하여 비록 번잡스러워 행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지만, 가만히 그 뜻을 음미하고 그 글을 완미(玩味)하며 송독하노라면, 한결같이 애모하고 한결같이 공경하는 지극한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고, 당장에 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진심(眞心)이 뭉클 솟아나게 하는데, 오직 효성이 깊은 자라야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는다.〔不登高〕” 이하의 4구(句)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돌아가신 뒤라고 할지라도 이와 같이 해야 마땅하다. 구차히 헐뜯는 것〔苟訾〕과 구차히 웃는 것〔苟笑〕은 남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는 것과 어깨를 으쓱이며 아첨하여 웃는 것〔脅肩諂笑〕 등이 모두 이것이다.
“부모님이 계시면 남에게 무엇을 선물하고 바칠 적에 수레와 말은 제외해야 한다.〔父母在 饋獻不及車馬〕” 이상의 6장(章)은 모든 자식 된 자의 예(禮)를 논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모습이 안 보여도 보이는 것처럼 하며,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것처럼 한다.〔視無形 聽無聲〕”라는 말과 같은 것은 효자가 어버이를 친애하는 지극한 정(情)을 형용한 것이니, 깊이 체득하면 매우 좋을 것이다.
“아들이 자기 아내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더라도〔子不宜其妻〕”의 주(註)에 “아들의 정이 비록 쇠하였어도, 부부의 예를 또한 행하지 않을 수 없다.〔子情雖替 夫婦之禮 亦不可不行〕”라고 하였는데, 나의 생각에는 ‘효자의 마음은, 부모가 사랑하는 것을 보면 자기의 정이 처음에는 비록 쇠하였어도 반드시 마음이 풀어지며 즐거워져서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내면으로 동(動)하는 것이 없으면서 외면으로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꾸며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개와 말의 경우도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犬馬盡然〕”의 주(註)도 그렇다. 진씨(眞氏 진덕수(眞德秀))의 본설(本說)에는 “부모가 사랑하고 공경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비록 개와 말 같은 천한 것이라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한다.……〔父母所愛敬者 雖犬馬之賤亦愛敬之……〕” 하였는데, 이 주에서는 그 설을 인용하면서 경(敬) 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개 경(敬)이라는 글자가 개와 말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혐의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생각건대, 군자(君子)는 공경히 대하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하니, 비록 금수(禽獸)와 같이 천한 것에 대해서도 감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진다. 예컨대 먹을 것을 주면서 그 노고를 살피는 것은 애(愛)이고, 함부로 때리거나 매질하지 않고 함부로 욕하거나 침 뱉지 않는 것은 경(敬)인 것이다.
부모가 사랑하시면 나의 마음도 반드시 애석(愛惜)해하며 그만두지 못하는 점이 있는 법이고, 부모가 공경하시면 나의 마음도 반드시 경중(敬重)하며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부모가 이미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그 물건을 보면 우리 어버이가 사랑하고 공경했다는 생각이 측연(惻然)히 일어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그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경중하는 것을 그만두고자 해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이미 애(愛)와 경(敬)을 함께 거론해 놓고서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盡然〕’라는 두 글자로 그 뒤를 이었고 보면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으니, 주(註)에서 경(敬) 자를 제거한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기뻐하여 잊지 않는다.〔喜而不忘〕”라고 할 때의 불망(不忘)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성실하고 전일하게 하면서, 감당하지 못하는 듯, 장차 잃어버릴 듯〔洞洞屬屬 如不勝 如將失之〕” 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으니, 효자의 마음을 가장 절실하게 형용했다고 하겠다.
여기득죄어향당주려(與其得罪於鄕黨州閭)의 주(註)에 “주리에서 죄를 얻게 하는 것이다.〔使得罪於州里〕”라고 하였다. 이 사(使) 자는 바로 어버이의 신상에 대해서 설한 것인데, 나의 생각으로는 꼭 사(使) 자를 쓸 것은 없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어버이의 잘못은 바로 자기의 잘못인 만큼, 제대로 간(諫)하지 못하여 어버이를 불의(不義)에 빠지게 하면 자기의 잘못이 더욱 커져서 주리(州里)에 중하게 죄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부모(父母)’라는 글자를 제시하지 않고 단지 ‘여기……(與其……)’라고 한 의사(意思)가 심절(深切)한데, 깊이 체득하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평일에 정성을 쌓으며 충양(忠養)하여 천륜(天倫)의 정리(情理)가 완전해진 상황이 아니라면, 어떻게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스스로 극진히 할 수 있겠으며, 부모도 어떻게 그 말을 듣고 따라서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효자는 반드시 먼저 온정정성(溫凊定省)하고 낙심승지(樂心承志)하는 도(道)에 힘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상(翔)에 대해서 정씨(鄭氏)는 장공(張拱)이라고 해설하였는데 , 이는 모양을 내기 위해 취하는 동작이다. 독자(讀者)가 이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깊이 몸 받아 얻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응당 있게 될 터이니 문왕(文王)의 효(孝)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
선상(先甞)의 주(註)에 “임금이 약을 감당할 수 있을지 헤아리는 것이다.〔度其所堪也〕”라고 하였다. 상고해 보건대, 《춘추(春秋)》에서 “허나라 세자 지(止)가 그의 임금을 시해하였다.〔許世子止弑其君〕”라고 기록한 것에 대하여, 호 문정(胡文定 호안국(胡安國))은 말하기를 “지(止)가 의원(醫員)을 택하지 않고 그 약을 함부로 썼으며, 약을 먼저 맛보지 않고 임금에게 잘못 올렸으니, 이는 군부(君父)를 소홀히 하는 마음을 지닌 것으로서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이는 찬시(篡弑 찬탈과 시해 )의 싹이 되고 견빙(堅氷)의 조짐이 되는 것으로, 《춘추》에서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대악의 죄를 그에게 가하고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止不擇醫而輕用其藥 藥不先甞而誤進於君 是有忽君父之心而不謹矣 此篡弑之萌堅氷之漸 春秋所謹 故加以大惡而不得辭……〕” 하였다. 그렇다면 선상(先甞)이라는 것은 ‘감당할 수 있을지 헤아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독(毒)이 들어 있어서 병에 해롭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대개 효자의 마음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에 대해서 반드시 신중을 기하는 것이니, 환자를 간호하는 자는 이런 점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천자지효(天子之孝)’의 구절 에 대한 진씨(眞氏 진덕수(眞德秀))의 해설은 본지(本旨)를 깊이 체득하지 못한 것 같다. 이것은 《대학(大學)》에서 “임금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우하면 백성들이 효도하는 마음을 일으킨다.〔上老老民興孝〕”라고 하고, “군자는 집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룰 수 있다.〔不出家而成敎於國〕”라고 한 뜻과 동일하다.
‘나와서 객을 맞이하는 것〔出迎客〕’은 주인이 실제로 행하는 일이다. 객(客)이 고사(固辭)하는 것은 먼저 들어가지 않겠다고 사양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청(請) 자를 출영객(出迎客)의 아래에서 해석을 하여, 객이 고사했다는 이유로 주인이 들어가서 자리를 펴는 것으로 풀이한다면, 문의(文義)가 타당하지 않게 된다. 《예기(禮記)》의 본주(本註)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왼발을 먼저 하고 오른발을 먼저 하는 것〔先左足 先右足〕’에 대한 주(註)에서 “들어가는 문에 따른 것이다.……〔順入門……〕” 한 것 역시 옳은 해설이 아니다. 주자(朱子)는 “동쪽 계단에 오르면서 왼발을 먼저 떼면 객을 등지게 되고, 서쪽 계단에 오르면서 오른발을 먼저 떼면 주인을 등지게 된다.……〔上東階而先左足則背客 上西階而先右足則背主人……〕” 하였는데, 《소학(小學)》의 본주(本註)에서 “서로 향하여 공경하는 것과 가깝다.〔近於相鄕敬〕”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뜻이라고 하겠다.
경신(敬身)
무불경(毋不敬)이라는 것은 안으로 심지(心志)와 밖으로 백체(百體)에서부터 하나의 어묵(語默)과 하나의 동정(動靜)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공경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엄약사(儼若思)와 안정사(安定辭)라는 것은 또 그중에서 요긴하고 절실한 것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
대개 용모(容貌)가 불경스러우면 이목(耳目)과 수족(手足)이 모두 그 법도를 잃게 되고, 마음이 또 이를 따라 흔들리고 휩쓸려서 그 소재(所在)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언어가 불경스러우면 비루하고 조급하여 기(氣)가 지(志)를 동요시킨 나머지 진덕(進德)하고 입성(立誠)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인(聖人)이 용모와 위의(威儀)를 애써 강조하면서 수기(修己)와 안민(安民)의 요체로 삼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비록 경(敬)의 항목을 두루 거론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성학(聖學)의 문호(門戶)가 이미 엄약사와 안정사라는 여섯 글자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으니, 진씨(眞氏 진덕수(眞德秀))가 성인이 남긴 말씀이라고 한 것이 당연하다.
《논어(論語)》에서는 독경(篤敬)을 해석하여 ‘경에 돈독한 것〔篤於敬〕’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언해(諺解)에서 독(篤)과 경(敬) 두 글자의 뜻을 따로따로 해석하였으니, 이는 간단하고 명백하여 알기 쉽게 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사명(視思明) 청사총(聽思聦)의 주(註)에서 “가리는 것이 없으면 눈이 밝아서 보지 못함이 없고, 막는 것이 없으면 귀가 밝아서 듣지 못함이 없다.〔無所蔽則明無不見 無所壅則聦無不聞〕”라고 한 것이 명백하고도 절실한데, 참으로 몸으로 징험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이 말할 수가 있겠는가. 대개 시(視)는 본래 명(明)하지만 오직 가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밝게 보지 못하는 것이고, 청(聽)은 본래 총(聡)하지만 오직 막는 것이 있기 때문에 밝게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리고 막는 것은 모두 사(私)를 이기지 못하여 마음이 보존되지 못하는 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악기(樂記)〉에 대한 진씨(眞氏)의 주(註)에 “타만한 기(氣)는 안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벽한 기는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다.〔惰慢之氣 自內出者也 邪僻之氣 自外入者也〕”라고 하였는데, 나는 그 주장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건대, 간성(姦聲)과 음악(淫樂)을 머물러 두지 않고 접하지 않는 것은 바로 부자(夫子)가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非禮勿聽〕”라고 말한 것이요, 난색(亂色)과 특례(慝禮)를 머물러 두지 않고 접하지 않는 것은 바로 부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非禮勿視〕”라고 말한 것이며, 타만(惰慢)하고 사벽(邪僻)한 기(氣)를 신체에 베풀지 않는 것은 바로 부자가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말라.〔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정자(程子)가 “외물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내면의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이다.〔制於外 所以養其中也〕”라고 말한 뜻이니, 굳이 내외(內外)로 나눌 것은 없다고 하겠다.
성용정(聲容靜)은 단지 왝왝거리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소리 기운을 단정히 추슬러서 경박하거나 방정맞지도 않고 지루하거나 허탄하지도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두용직(頭容直)은 단지 기울여 돌아보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머리를 바로 하고 몸을 곧게 하여 오만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걱정스레 굽어보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혹자가 말하기를 “오(敖 오만 )는 흉덕(凶德)이고, 욕(欲)은 인욕(人欲)이다. 그런데 어째서 ‘끊으라〔絶〕’라거나 ‘이기라〔克〕’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키우면 안 된다.〔不可長〕’라거나 ‘제멋대로 부리면 안 된다.〔不可縱〕’라고만 말한 것인가.”라고 하기에 , 내가 말하기를 “오(敖)는 갑자기 흉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키운 뒤에 흉덕이 되는 것이니 《대학(大學)》의 오타(敖惰)의 오(敖)와 같고, 욕(欲)은 갑자기 인욕(人欲)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방종(放縱)한 뒤에 인욕이 되는 것이니 《맹자(孟子)》의 과욕(寡欲)의 욕(欲)과 같다.”라고 하였다.
혹자는 여여숙(呂與叔)이 6월에 엄숙하게 무릎 꿇고 앉아 있었던 것〔儼然危坐〕에 대하여 “성인(聖人)이 신신요요(申申夭夭)한 뜻이 없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렇지 않다.
신신요요(申申夭夭)하는 것이 어찌 엄연위좌(儼然危坐)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으며, 엄연위좌하는 것이 어찌 꼭 신신요요하지 않는다는 것이겠는가. 단지 성인은 엄연위좌하는 중에 저절로 신신요요하는 기상(氣象)이 있는 데 반하여, 학자(學者)는 도무지 이런 기상이 없을 뿐인 것이다.
지금 만약 엄연위좌를 버리고 신신요요를 따로 구한다면, 퇴타(頹惰)하고 방이(放弛)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오유(吾儒)의 도(道)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래 두 가지 길이 없다. 처음에도 단지 이와 같고 마지막에도 단지 이와 같을 뿐인데, 다만 그 안에 억지로 힘쓰는 것〔勉強〕과 절로 그렇게 되는〔自然〕 차이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신신요요를 배우고 싶으면 엄연위좌하여 전긍임리(戰兢臨履)하는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계고(稽古)
공명선(公明宣)이 스승을 따른〔從師〕 뒤로 3년 동안 글을 읽지 않고서, 그 스승의 일용(日用) 동정(動靜)에 대해 묵묵히 기억하며 남몰래 배운 것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말할 만하니 , 금인(今人)이 그저 스승의 이야기만 배우려 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글을 읽는 것과 행실을 점검하는 것은 하루라도 한쪽을 그만두면 안 되는 것이니, 글을 읽어서 의리를 강명(講明)하지 않고, 한갓 응접하는 사이에 있어서만 급급해한다면, 이 또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주자(朱子)가 논하기를 “화정(和靖)이 이천(伊川)을 만나 보고 나서 반년 만에 비로소 《대학》과 〈서명(西銘)〉의 글을 볼 수 있었다.”라고 하였는데, 이 뜻이 물론 좋기는 하지만 병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천하에 수많은 글이 있는데, 반년이 지나도록 그에게 도대체 하나의 문자도 가르치지 않았다면, 어느 때에 허다한 글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언명(彦明)이 뒤에 가서 공부에 모자란 점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반년도 오히려 안 되는데, 더군다나 3년이겠는가. 공명선이 뒤에 알려지는 일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일 듯하니, 학자는 이런 점을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몸을 바쳐 신하가 되고 나서 또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이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니 , 이것이 바로 왕도(王道)와 패도(霸道)가 나뉘는 갈림길이다. 대개 천리(天理)는 순일(純一)하니, 언제 일찍이 허위(虛僞)가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도 역시 순일하여 허위가 없는 것이다. 왕도를 행하는 자는 이 천리와 이 마음을 좇아서 순연(純然)하고 수연(粹然)할 뿐인 반면에, 패자(伯者)는 온갖 방법으로 교묘히 속임수를 써서 허다한 기관(機關)을 설치하여 자기의 사(私)를 이룬다.
예컨대 왕릉(王陵)은 고제(高帝)와의 약속을 지켜서 여씨(呂氏)들을 왕으로 삼으려는 여후(呂后)에게 간(諫)하며 뒷날의 이해(利害)를 돌아보지 않은 반면에, 진평(陳平)과 주발(周勃)은 곧장 면전에서 여후의 말을 따랐으니, 비록 뒤에 가서 공을 이루었다고는 해도 그것 역시 행운일 따름이다. 이 때문에 이천(伊川)이 “인신의 의리는 왕릉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人臣之義 當以王陵爲正〕”라고 하였으니, 왕도와 패도의 구분을 여기에서도 알 수가 있다.
가령 예자(豫子)가 신하가 되어 양자(襄子)를 섬겼다면, 혹 자기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한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弑害)한 것이 될 뿐이다. 처음에 이미 자기 임금을 배반하고 원수를 섬겼을 뿐만이 아니라 뒤에 다시 임금을 시해한 것으로 귀결되고 만다면, 어떻게 오늘날의 예자(豫子)가 될 수 있겠는가.
혹자는 “몸이야 신하가 되더라도 마음은 신하가 된 적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말은 도(道)를 크게 해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대저 도는 내외(內外)와 은현(隱顯)이 없기 때문에, 성문(聖門)에서는 표리(表裏)가 여일(如一)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만약 몸과 마음을 나누어 둘로 만들어서 그 공리(功利)의 사(私)를 이루려고 한다면, 이는 일신(一身)의 안에 천리(天理)가 반절을 차지하고 인욕(人欲)이 반절을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면 이른바 천리라고 하는 것도 천리가 되기에 부족해서 그것마저 따라서 잃어버리고 말 것이니, 이것이 바로 패술(霸術)의 심한 해악으로서 천리를 끊어 버리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적인걸(狄仁傑)이 뜻은 당(唐)나라를 되찾는 데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소행을 추적해 보면 끝내는 무씨(武氏)의 국로(國老)일 따름이었다. 이 때문에 《강목(綱目)》에서 그의 죽음을 졸(卒)이라고 쓰지 않고 사(死)라고 씀으로써 -《강목》에서는 졸(卒)이라고 썼는데, 주자(朱子)의 평일의 의논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이렇게 운운하였다.- 그의 공이 크다고 해서 그 죄를 용서하지 않았으니, 엄절(嚴切)하게 실상을 드러내 밝혔다고 말할 만하다.
그렇다면 예자(豫子)도 왕도와 패도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것은 꼭 그렇다고는 할 수가 없다. 인성(人性)은 본래 선하기 때문에 지성(至誠)이 발하는 곳에 도(道)와 암암리에 합치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 않다. 생각건대, 예자가 원수를 갚으려는 그 마음이 성실하고 통절(痛切)하여 조금도 허위가 없었기 때문에, 그 언어와 그 행동이 바로 이처럼 간절하고 순일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는 대개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맹자(孟子)가 “도는 하나일 뿐이다.〔道一而已〕”라고 말한 것이 어찌 더욱 믿음이 가지 않겠는가.
“경(敬)은 덕(德)의 집합체이다.”라고 한 이 말은 너무도 멋진 말이다. 대개 경(敬)이라는 것은 모든 선(善)의 근본이니, 이 경(敬)을 하면 모든 선을 함께 얻게 되는 것이 마치 하나의 벼리〔綱〕를 들면 모든 그물코〔目〕가 펴지는 것과 같다. 경(敬)으로 존양(存養)을 하면 대본(大本)이 서고 경으로 성찰을 하면 달도(達道)가 행해지며, 경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효성스럽게 되고 경으로 형을 섬기면 우애 있게 되며, 경으로 일에 응하면 일이 이루어지고 경으로 발언을 하면 말이 간이(簡易)해지며, 이런 식으로 미루어 나가면 나머지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을 체득하면 경(敬)이 덕의 집합체가 되는 실상을 볼 수 있는데, 진씨(陳氏)가 “마음이 보존되면 이치에 맞게 된다.”라고 한 뜻도 이와 동일하다.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이 경외할 만하다.〔在位可畏〕” 이하 10구(句)는 군자(君子)의 위의(威儀)를 극론한 것으로서, 도를 지닌 자의 기상(氣象)을 잘 형용하였다. 체완(體玩)하기에 가장 좋으니, 함양(涵養)하는 공부에 크게 유익할 것이다.
가언(嘉言)
“언어가 온화하고 기운이 화기로우면,……” 하고, “과오를 뉘우치고 고치기를 꺼리지 않으면,……” 하였는데 , 이것이야말로 진실하게 공력을 기울여야 할 곳이다. 만약 이에 대해 공부하지는 않고 그저 망상하고 기대하면서 저절로 불천(不遷)하고 저절로 불이(不貳)하게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이루어질 리가 있겠는가. 율곡(栗谷 이이(李珥))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명도(明道)를 보고는 모두 인위적인 색채가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渾然天成〕을 기꺼워할 뿐 그가 필사적으로 공부한 것은 알지 못하고, 회암(晦菴)을 보고는 모두 바다처럼 드넓고 하늘처럼 드높은 것〔海濶天高〕을 감탄할 뿐 그가 조금씩 계속해서 쌓아 간 것은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명언(名言)이라고 하겠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등인(下等人)을 지극히 천하게 여기면서 남이 혹 자기를 하등인으로 지목하면 매우 노여워하는데, 이른바 하등인이라는 것이 바로 언어가 충신(忠信)하지 못한 것과 행실이 독경(篤敬)하지 못한 것과 과오를 뉘우칠 줄 모르는 것과 뉘우쳐도 고치지 않는 것 등에 있다는 사실 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이것을 가지고 심판을 한다면 한 세상을 통틀어 하등인을 면할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시험 삼아 자기를 점검해 볼 적에, 몇 마디 말을 겨우 꺼냈는데도 벌써 조망(躁妄)한 것이 느껴지면 하등인인 것이요, 하나의 일을 끝내기도 전에 벌써 경솔(輕率)한 것이 느껴지면 하등인인 것이요, 오늘의 소행을 다음 날에 고치기 어렵거나 아침에는 그 행동을 뉘우쳤어도 저녁에 또 반복하면 하등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를 면할 수 있겠는가? 언어를 신중히 하기를 마치 남용(南容)이 삼복백규(三復白圭)하듯 하면 면할 수 있을 것이요, 품행을 독실히 하기를 마치 안연(顔淵)이 권권복응(拳拳服膺)하듯 하면 면할 수 있을 것이요, 과오를 고치기를 마치 자로(子路)가 자기 잘못을 듣고 기뻐하듯 하면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뜻을 세우지 않으면 또 근거할 기초가 없을 것이니, 이 때문에 반드시 먼저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뜻을 지녀야만 비로소 이에 대해서 더불어 의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아,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안자(顔子)와 맹자(孟子)를 거론한 것 은 또한 중등인(中等人) 이하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니, 만약 학자가 스스로 기약한다면 반드시 공자(孔子)를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맹자가 ‘고사시(姑舍是)’라고 말한 것이나 정자(程子)가 ‘제일등(第一等)’ 운운한 것 은, 일부러 큰소리를 쳐서 세속을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 이치상 이렇게 하는 것이 원래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민중을 내어서 만백성이 천성(天性)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요순(堯舜)과 중인(衆人)이 언제 차이가 있기나 했던가. 안자(顔子)의 불위인(不違仁)과 같은 것으로 말하면, 어찌 지고(至高)하지 않겠는가마는, 그래도 인(仁)을 어기지 않을 수 없고 보면 천리(天理) 본연의 체(體)에 완전하지 못한 점이 있으니, 이는 곧 내가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뜻을 세울 때에는 곧장 공자를 목표로 해야만 비로소 구차하지 않게 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끝내 구차하게 될 뿐이어서 도(道)에 나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도(道)의 전체(全體)에 대해서 약간은 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번 깨닫는 점이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고사시(姑舍是)의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데, 일찍이 사람들과 이를 논할 때면 나를 망녕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뜻을 같이하는 자가 내 말을 들으면 묵은 의심이 꼭 풀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하등(四下等)의 설 을 보면 지나치다고 여기는 것이 예사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와 같은 것이 사실이다. 가령 완(頑)하고 은(嚚)한 것 이 어찌 하등(下等)이 아니겠는가마는, 막상 그 뜻을 해석해 보면 완(頑)이라는 것은 마음이 덕의(德義)의 떳떳함을 본받지 않는 것에 불과하니, 이는 곧 “행실이 독경(篤敬)하지 못하다.”라는 것이요, 은(嚚)이라는 것은 입으로 충신(忠信)한 말을 내놓지 않는 것에 불과하니, 이는 곧 “언어가 충신하지 못하다.”라는 것이다. 또 걸주(桀紂)와 같은 경우는 어찌 하등이 아니겠는가마는, 막상 그 죄를 따져 보면 잘못을 꾸미고 충고를 거부하며 기탄없이 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니, 이는 곧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뉘우쳐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언어에 잘못이 있는데도 경계하지 않으면 끝내는 반드시 은(嚚)에 이를 것이고, 행실에 잘못이 있는데도 잘 살피지 않으면 끝내는 반드시 완(頑)에 이를 것이며, 안자(顔子)라도 불원복(不遠復)을 할 수 없으면 끝내는 그도 걸주(桀紂)로 돌아가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서경(書經)》에서 “생각을 잘하면 성인(聖人)이 되고, 생각을 잘못하면 광인(狂人)이 된다.”라고 한 뜻도 바로 이와 같으니, 그 기미(幾微)를 어찌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옹(了翁 진관(陳瓘))의 이 말이 참으로 지론(至論)이니, 이 글을 읽으면 자연히 사람으로 하여금 분발하여 흥기하게 한다.
재(才)는 기(氣)이고, 성(性)은 이(理)이니, 재(才)는 국한이 있지만, 성(性)은 둘이 없는 것이다. 학문의 목적은 시행하는 것이니, 학문이란 그 성(性)을 밝혀서 그 재(才)를 넓히는 것이다. 그러나 심지(心志)가 안정(安靜)되어 침의(沈毅)하고 돈독(敦篤)하지 않으면 학문 또한 근거할 바탕이 없게 된다. 정밀하게 연구하며〔硏精〕 성질을 다스리는 것〔理性〕이 학(學)의 일이요, 방자하고 태만하며 사납고 거친 것〔慆慢險躁〕이 정(靜)의 반대이니, 연정(硏精)은 치지(致知)에 속하고, 이성(理性)은 역행(力行)에 속한다. 정(靜)은 경(敬)의 뜻으로서, 지(知)와 행(行)의 근본이 되는 것이니, 공명(孔明)은 학문을 하는 대요(大要)에 대해서 식견이 있다고 하겠다.
유빈(柳玭)의 글의 제2조(條)는 바로 오늘날 세상의 유속(流俗)의 폐해를 말한 것이니, 아,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하겠다. 이단(異端)의 폐해가 어느 시대엔들 없기야 했겠는가. 그러나 이단이라고 하는 것 역시 각자 용심(用心 마음을 전일하게 쓰는 것 )하는 곳이 있으니, 따라서 사람이 거기에 빠져드는 것도 그 용심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겠다. 대저 용심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이를 깨닫고서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이를 공격하여 깨뜨릴 수 있는 방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서 흐리멍덩하고 제멋대로 하여 용심하는 것이 전혀 없이, 한 해가 다 가도록 서로 뒤쫓아 다니며 노닥거리는 것을 일삼을 뿐이요, 남이 글을 읽고 도(道)를 강론하며 옛날의 조행(操行)을 배우는 것을 보면, 반드시 떼거리로 비웃고 욕하면서, 저들이 거짓 행위를 하는 것이 어찌 우리가 진심에 맡기고 편안히 노니는 것만 하겠으며, 저들이 피곤하게 종사하는 것이 어찌 우리가 뜻대로 한가히 즐기는 것만 하겠느냐고 떠들어 댄다.
그리고 심지어는 선성(先聖)을 침범하고 노사(老師)를 모욕하는 등, 그 비루한 주장과 추악한 행태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 설이 사람들에게 쉽게 먹히는 까닭에 방사(放肆)를 좋아하고 구검(拘撿)을 꺼리는 세상의 일종(一種)의 무리가 또 서로 이끌고 향응(響應)하며 팔뚝을 걷어붙이고서 선동을 하니, 이 때문에 온 세상이 여기에 휩쓸려서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을 알지 못한다.
또 그 사이에 조금 문장을 꾸며서 과제(科第)를 훔친 자가 있으면, 그 기회에 마침내 이것을 가지고 입신(立身)하는 첩경(捷徑)으로 삼아 참으로 즐길 만하다고 여기는 반면에, 군자(君子)가 의(義)에 입각해서 진퇴(進退)하는 것은 명예를 낚는 교묘한 술법이라 하여 참으로 증오해야 할 것이라고 여기고는, 마침내 종신토록 무용(無用)의 곳에 용심(用心)하면서 바른길로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한다. 아, 이 또한 비루한 일이니, 이는 바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것이 심한 것이요, 하우(下愚)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래는 이들도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생민(生民)의 본연의 양심을 해치고 전성(前聖)이 면면히 이어 온 도통(道統)을 깎아내리는 것이 바로 이들의 설이요, 큰일을 하려는 인군(人君)의 뜻을 저지하고 도를 행하는 군자의 길을 막는 것이 바로 이들의 설이고 보면, 이들 역시 이단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불로(佛老 불교와 도교 )와 양묵(楊墨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비록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온 세상을 모두 현혹할 수는 없고, 사람이 비록 현혹한다 하더라도 그를 공격하고 그를 구해 낼 수 있는 방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말하면 큰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 사람들이 빠지지 않는 경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직접 스스로 거절하며 기꺼이 용심(用心)하고 사량(思量)하려 하지 않아서, 공격할 여지도 없고 구해 낼 방책도 없으니, 그렇다면 이것은 또 이단 중에서도 심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옛날에 주자(朱子)가 소인이 반복(反覆)하는 정상에 대하여 “자기가 소인이면서 색성을 하지도 못한다.〔其爲小人 亦不索性〕”라고 논한 말을 보고는, 내가 일찍이 웃으면서 ‘어찌 소인에 대해서 색성(索性)을 하느니 색성을 하지 못하느니 따질 것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참으로 명언(名言)이라는 느낌이 든다. 옛날의 이단을 보면, 그들의 도(道)에 각기 주장하는 것이 있어서 쟁변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주장하는 것이 없고 또 더불어 쟁변할 가치도 없다. 이보다 더 심하게 천루(淺陋)할 수가 없고 이보다 더 심하게 도를 해칠 수가 없는데, 비유하자면 참으로 진흙탕이나 두엄 더미와 같아서 전혀 볼만한 것이 없이 오로지 사람을 더럽힐 뿐이니, 이것이 바로 색성을 하지도 못하는 이단이요 도적의 노예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소식(蘇軾)의 무리가 바로 그 괴수(魁首)가 된다고 하겠다.
뜻을 세우는 것이 크면 크게 이루고, 뜻을 세우는 것이 작으면 작게 이룬다. 이를 비유하자면, 집을 지을 때 터를 크게 잡으면 큰 집이 되고, 터를 작게 잡으면 작은 집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집의 경우는 비록 작더라도 이루어지지만, 뜻의 경우에는 만약 작으면 크게 이룰 수 없을뿐더러, 이른바 작게 이룬다고 하는 것도 진짜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혹 이도(異道)에 휩쓸리기도 하고 혹 형기(形器)에 국한되기도 하여, 끝내는 또한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 안정(安定)이 “명도와 희문을 자기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以明道希文自期待〕”라고 말한 것은, 뜻을 세울 적에 응당 두 분이 각각 성인(聖人)을 배우려고 한 것과 천하를 자임한 것을 목표로 해야 함을 말한 것이지, 단지 두 분이 도달한 경지를 자기의 목표로 삼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천리(天理)를 회복하지 못하는 까닭은 인욕(人欲)이 해치기 때문이다. 내가 천리를 행하려고 하면 저 인욕은 그것을 저지하고, 내가 천리로 나아가려 하면 저 인욕은 그것을 막아 버린다. 그래서 공자(孔子)가 복례(復禮)를 말하면서 반드시 극기(克己)를 우선하였고, 맹자(孟子)가 “마음을 기르는 방법으로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養心莫善於寡欲〕”라고 설한 것이다.
이를 비유하건대, 도적이 나라에 가득하여 나라가 장차 전복되려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도적을 제거해야만 나라가 안정되는 것이요, 만약 도적을 제거하지 않고 억지로 안정시키려 하면 절대로 안정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장(章)의 허다한 조목(條目)들이 모두 마지막 몇 구절의 음식(飮食)과 남녀(男女)의 부분 으로 귀결되니, 이런 곳이 바로 결말을 짓는 긴요한 곳이라고 하겠다. 가령 호연장(浩然章)을 보더라도 먼저 집의(集義)와 양기(養氣)의 공(功)을 극론(極論)하고 나서, 필경에는 결론 부분을 바로 지언(知言)의 1구(句)에 두었으니 , 이것이 바로 성현(聖賢)의 긴절한 어법인 것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다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只爲天下無不是底父母〕”라는 이 말은 일반적으로 한 말이지, 자식의 마음이 그렇다고 설한 것이 아니다. 나씨(羅氏)의 뜻은 대개 “부모가 옳지 않다면 그것은 부모가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자식이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극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자식이 만약 그 도리를 극진히 했다면, 부모가 어떻게 옳게 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고수(瞽瞍)가 비록 지극히 완악했어도 순(舜)이 감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니, 그렇다면 당초에 감화되지 않았던 것은 또한 순의 정성이 쌓이지 않았던 데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령 뒤에 가서도 끝내 고수가 기뻐함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것은 또한 순이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일 뿐이지 고수가 감화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천하에 비록 섬기기 어려운 어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고수와 같은 자가 있겠는가. 그 어버이가 기뻐함에 이르지 못하는 까닭은 그 자식이 순처럼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 어버이가 옳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자식이 된 자들은 각기 이러한 줄을 잘 알아서 열심히 효도를 하여 그 도리를 극진히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그 어버이 된 자들도 각기 기뻐함에 이르지 않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요옹(了翁 진관(陳瓘))은 또 나씨의 설을 인하여 한 단계 더 나아가 마음의 측면에서 설하였으니, 이는 나씨의 언외(言外)의 뜻을 드러내 밝힌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나씨와 진씨(陳氏 진호(陳澔))가 설한 말뜻에 차이가 있는 것을 살피지 못하고서 진씨의 설을 가지고 나씨의 설을 해석하려다가 나씨의 본의(本意)를 놓치기도 한다. 그리고 주(註)의 설을 보면 또 흐리멍덩하고 비틀어져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죄를 얻는 것이 도리어 중해진다.〔得罪反重〕”라는 것은, 글자를 개칠하고 긁어내는 것〔塗擦〕과 날짜를 고치고 수결을 바꾸는 것〔改易〕이 자기의 잘못을 덮어서 죄를 면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혹시라도 실패하여 탄로 나면, 죄를 얻는 것이 당초에 면하려고 했던 죄보다 도리어 중해진다는 말이다.
담(膽)과 지(志)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담(膽) 자는 비교적 맹(猛)하고 지(志) 자는 비교적 대(大)하다.
선행(善行)
“날마다 수업을 받게 한다.〔使日受其業〕”에 대한 언해(諺解)의 훈독(訓讀)이 명쾌하지 못한 것 같다. 주(註)의 설과 본문의 문세(文勢)를 가지고 살펴보건대, 대개 그 뜻은 “덕을 이룬 자〔成德者〕를 가려서 그를 스승으로 삼아 ‘재주와 학식이 밝고 통달한 선비〔材識明達之士〕’를 가르치게 하되, 덕을 이룬 경지가 가장 높은 자는 국학(國學)에서 가르치게 하고 그다음은 외방의 학교에 나누어 가르치게 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근사록(近思錄)》의 섭씨(葉氏 섭채(葉采))의 주(註)를 상고해 보건대 “재주와 학식이 밝고 통달한 자를 취하여, 덕을 이룬 사람에게 수학하게 한 뒤에, 가르침이 이루어지면 그를 학관(學官)이 되게 한다.……〔取材識明達者 受學於成德之人 敎成使爲學官……〕” 하였는데, 언해의 훈독은 대개 여기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제기한 나의 설이 명백하고 원통(圓通)한 것만은 못한 것 같다.
근면하면 직사(職事)가 폐기되지 않고, 검소하면 용도(用度)에 절도가 있게 되고, 공손하면 다툼이 없어지고, 포용하면 원망이 없어진다. -왕응(王凝)의 사교(四敎)에 대해서 논한 것이다.-
제오륜(第五倫)이 마음속으로 잊지 못한 것 은, 대개 당초에 받지 않은 것이 성심(誠心)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을 줄 당시에,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참으로 알았음은 물론이요 여기에 또 성심으로 그 말을 거절하면서 무슨 조그마한 의사(意思)도 이면(裏面)에 남아 있지 않게 실제로 할 수 있었다면, 그 일이 지나간 뒤에는 그만이어서 미련을 두는 것이 응당 없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잊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끝내 그를 등용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 극복했다고 말할 만하지만, 단지 일을 행할 즈음에나 제어하였을 뿐이요 심술(心術)의 은미(隱微)한 가운데에서 싹터 올라 불선(不善)의 뿌리가 되는 것을 끊어 버리지 못하였으니, 이는 또한 유자(儒者)가 정밀하게 살피고 생각하는 제일(第一)의 공부는 못 된다고 하겠다. 가령 원헌(原憲)이 극벌원욕(克伐怨欲)이 행해지지 않게 한 것에 대해서, 성인(聖人)이 단지 어려운 일이라고만 하였을 뿐 그것이 인(仁)이라고는 허여하지 않은 것 도 대개 이 때문이니, 학자는 이 점을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열 번 일어난 것과 일어나지 않은 것은 곧 사(私)이다. 부자(父子)가 사랑하는 것은 본래 공(公)이지만, 어떤 의도를 붙여서 행하면 곧 사(私)가 되는 것이다.〔十起與不起 便是私也 父子之愛本是公 纔著些心做 便是私也〕”라고 하였다.
대개 형의 아들이 병들었을 때 일어나서 살펴보는 것은 본래 옳지 않은 일이 아니니, 참으로 그 행동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누가 사(私)라고 하겠는가. 다만 그것이 오로지 혐의를 피하려는 마음에서 나와서 어떤 목적을 지니고 한 것이기 때문에, 내(內)와 외(外), 신(身)과 심(心)이 나뉘어서 둘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행(行)은 천리(天理)와 같았어도 정(情)은 인욕(人欲)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의도를 붙여서 행했다.〔著心做〕”라는 것이요, 이것이 이른바 사(私)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 아들이 병들었을 때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그만 ‘사적으로 사랑했다〔私愛〕’는 혐의를 피할 목적으로 안배(安排)하고 계교(計較)하여 한 번도 가서 살펴보지 않았으니, 이는 사의(私意)가 주(主)가 되어 천륜(天倫)의 정(情)이 부림을 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情)과 사(事)가 불안해지고 내(內)와 외(外)가 서로 해를 끼치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의도를 붙여서 행했다.”라는 것이요, 이것이 이른바 사(私)라고 하는 것이다.
제오륜(第五倫)은 단지 사적으로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것을 사(私)라고 여기고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의 말 역시 그저 겉껍데기나 지게미처럼 추(粗)하디추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설할 뿐이었으니, 대개 그의 말뜻을 상세히 살펴보건대, 열 번 일어난 것〔十起〕과 가서 살펴보지 않은 것〔不省視〕을 공(公)으로 여기고 편안하게 잠든 것〔安寢〕과 잠들지 못한 것〔不眠〕을 사(私)로 여긴 것이었다.
반면에 정자(程子)는 그야말로 본원을 끝까지 궁구하여 한마디 말로 잠우(蠶牛 잠사우모(蠶絲牛毛)) 사이에서 심술(心術)의 기미(幾微)를 세밀히 분석하여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양단(兩段)으로 구분해 내었고 보면, 제오륜이 공(公)이라고 여겨서 힘을 쓴 것은 거꾸로 사의(私意)를 조장하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편안히 잠을 잤느냐 못 잤느냐 하는 것도 곧장 따질 것이 없는 사소한 문제로 귀결되고 말았으니, 여기에서 의리가 지극히 정밀하고 깊은 것을 볼 수 있을뿐더러, 두 사람이 공력을 들인 정추(精粗)와 수박(粹駁)을 또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평암(平巖 섭채(葉采))이 정자의 이 말을 해석한 것을 보건대, 부자가 사랑하는 것〔父子之愛〕을 오로지 자기 아들에게만 해당시키고서 그저 피상적으로만 간략하게 설명하고 말았으니, 한쪽으로만 보고〔偏看〕 천박하게 보는〔淺看〕 병통을 면하지 못한 것 같다.
도간(陶侃)이 벽돌을 옮긴 것〔運甓〕은, 대개 너무 한가하게 지내다 보면 근해(筋骸 근골(筋骨))가 풀어지고 물러지며 심신(心神)이 쇠퇴해지고 방종해진 나머지, 막상 일을 당했을 적에 흥취가 없어지고 짜증이 나서 큰일을 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학자가 이런 뜻을 제대로 체득하여 항상 전진하면서 일을 하려는 뜻을 보존하여, 비록 평소에 무사(無事)한 때라도 어디서나 복습(服習)하여 쇠퇴해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일을 당하여 거칠 것이 없어져서 방해를 받는 일이 드물게 될 것이다.
시가(詩家)에 “게으름이 습성이 되었다.〔習懶〕”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가장 명언(名言)이라고 하겠다. 대개 게으름이 습성이 되면 게으름이 주(主)가 되어서 부지런해지려는 마음〔勤心〕이 자연히 일어나지 않고, 부지런함이 습성이 되면 부지런함이 주가 되어서 게을러지려는 뜻이 또한 점차 줄어드는 법이다. 고인(古人)이 “습성이 오래되면 천성처럼 이루어진다.〔習與性成〕”라고 말한 뜻도 이와 같은데, 이를 통해서도 피차 빈주(賓主)가 되어 서로 소장(消長)하는 기틀을 방과(放過)하여 소홀히 하면 안 됨을 알 수 있다.
글자를 쓸 적에도 매우 공경하였다면〔作字甚敬〕, 경(敬)을 익히지 않는 때가 없었던 것이다.
[주-D001] 배근달지(培根達支) :
뿌리를 북돋우고 가지를 벋게 한다는 뜻으로, 주희가 지은 〈소학제사(小學題辭)〉의 “성인이 이를 측은하게 여겨,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세워서, 그 뿌리를 북돋우며 그 가지를 벋게 하듯 하였다.[惟聖斯惻 建學立師 以培其根 以達其支]”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 어찌 …… 있겠는가 :
《대학혹문》에 “지금 내가 일단 다행히 스스로 밝힌 점이 있고 보면, 저 중인이 똑같이 이것을 품수했으면서도 스스로 밝히지 못한 채 지금 미혹의 길에서 되는대로 행동하며 비오와 구천한 가운데에 빠져 있는데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어찌 그들을 측은하게 여겨 구제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今吾既幸有以自明矣 則視彼衆人之同得乎此 而不能自明者 方且甘心迷惑没溺於卑汚茍賤之中 而不自知也, 豈不為之惻然而思有以救之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 선왕이 …… 행하였다〔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의 인개유불인인지심장(人皆有不忍人之心章)에 나온다.
[주-D004] 남반혁(男鞶革)의 …… 듯싶다 :
“남자아이는 띠를 가죽으로 하고, 여자아이는 띠를 실로 한다.[男鞶革 女鞶絲]”라는 말에 대해서, 반(鞶)을 띠[帶]로 해석하지 않고, 수건 등을 집어넣는 ‘작은 주머니[小囊]’라고 주장하는 설을 녹문이 반박한 것이다. 주희가 “혁대는 정대로서 옷을 묶는 것이니, 오로지 거기에 무엇을 차기 위해서가 아니다. 큰 띠를 설하는 것은 바로 거듭 묶기 위한 것이니, 신(申)에는 ‘거듭’이라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신(紳)이라고 말하는 것이다.[革帶是正帶 以束衣者 不專爲佩 而設大帶 乃申束之耳 申重也 故謂之紳]”라고 언급한 부분 중에서, 녹문이 원문은 상관없이 내용만 간추려서 인용하였다. 《儀禮集編 卷22 喪服》
[주-D005] 위에서는 …… 하겠는데 :
열 살이 되면 “옷 입을 때 저고리와 바지를 비단으로 하지 않는다.[衣不帛襦袴]”라고 한 것과, 스무 살이 되어 관례(冠禮)를 행한 뒤에는 “갖옷과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可以衣裘帛]”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주-D006] 곧으면서도 …… 4구(句) :
순 임금이 기(蘷)에게 명한 말 가운데 “곧으면서도 온화하며, 관대하면서도 엄숙하며, 강하면서도 사납지 않으며, 간이(簡易)하면서도 오만하지 않게 한다.[直而溫 寬而栗 剛而無虐 簡而無傲]”라는 네 구절을 말한다.
[주-D007] 벽고(疈辜)를 해서 :
《주례(周禮)》 〈춘관종백 상(春官宗伯上)〉 대종백(大宗伯)에 “희생의 몸통을 가르고 찢어서, 사방(四方) 백물(百物)의 신령에게 제사 지낸다.[以疈辜 祭四方百物]”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8] 정안색(正顔色)과 출사기(出辭氣)의 일 :
신실하게 안색을 정돈하고, 천박하게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논어》 〈태백(泰伯)〉의 “군자가 귀중하게 여겨야 할 세 가지의 도가 있다. 용모를 드러낼 때에는 사납고 오만함을 멀리할 것이요, 안색을 바르게 할 때에는 신실함에 가깝게 할 것이요, 말을 할 때에는 천박하게 억지를 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斯遠暴慢矣 正顔色斯近信矣 出辭氣斯遠鄙倍矣]”라는 증자(曾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9] 상달(上達) :
천리(天理)를 아는 것을 말한다. 《논어》 〈헌문(憲問)〉의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아래로는 사람의 일을 배우고 위로는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려고 노력하는데, 나를 알아주는 분은 아마도 하늘뿐일 것이다.[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하학(下學)이 형이하(形而下)라면 상달은 형이상(形而上)의 학문을 가리킨다.
[주-D010] 행동거지와 …… 경지 :
맹자가 요순(堯舜) 탕무(湯武)와 같은 성인(聖人)의 일을 서술하면서 언급한 것인데, 《맹자집주(孟子集註)》 〈진심 하(盡心下)〉 33장에 이 내용이 나온다.
[주-D011] 흥(興) :
“시에서 일어나고, 예에서 서며, 악에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라는 공자의 말에 나오는 흥을 가리킨다. 《論語 泰伯》
[주-D012] 열다섯 …… 두었다 :
《논어》 〈위정(爲政)〉에 나온다. 이하 공자의 말도 모두 그 뒤에 나온다.
[주-D013]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속이 널찍하게 관대해지고 신체가 여유 있게 펴진다는 뜻으로,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군자의 모습을 표현한 말인데, 《대학장구(大學章句)》 전 6장에 나온다.
[주-D014] 대이화지(大而化之) :
대인(大人)으로서 화(化)의 경지에 든다는 뜻으로, 《맹자》 〈진심 하(盡心下)〉의 “충실하여 광휘가 있는 이를 대인이라고 하고, 대인으로서 자취 없는 화(化)의 경지에 들면 성인이라고 한다.[充實而有光輝之謂大 大而化之之謂聖]”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주-D015] 폐슬(蔽膝) :
꿇어앉을 때 무릎이 젖거나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슴에서 무릎 부위까지 늘어뜨린 앞치마 모양의 옷을 말한다.
[주-D016] 필(韠)은 …… 꿴다〔韠 以皮爲之 今以帛爲之 中間有頸 兩頭有肩 肩以革帶穿之〕 :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1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려서 인용한 것이다. 옛날에 의복 없이 지낼 적에 새의 깃털과 짐승의 가죽으로 몸의 앞뒤를 가렸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성인(聖人)이 복식 제도를 정할 적에 이 필을 만들었다는 주희의 설명이 앞에 붙어 있다.
[주-D017] 홀기(笏記) :
의식의 순서와 절차를 기록한 책을 말한다.
[주-D018] 저 양모(兩髦)를 …… 분〔髧彼兩髦〕 :
《시경》 〈용풍(鄘風) 백주(栢舟)〉에 “저 양모를 늘어뜨린 분이, 실로 나의 짝이로세.[髧彼兩髦 實維我儀]”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해설에 “양모는 머리털을 잘라서 숨구멍이 있는 정수리의 좌우에 끼고 있는 것이니, 아들이 부모를 섬기는 것을 상징하는 장식이다.[兩髦者 翦髮夾囟 子事父母之飾]”라고 하였다.
[주-D019] 용취(容臭) :
취 즉 향을 담는다는 뜻으로, 향주머니[香囊]와 같은 말이다. 《예기》 〈내칙(內則)〉 남녀미관계자조(男女未冠笄者條)에 “향주머니를 매고 모두 용취를 차고서 동틀 녘에 부모님을 뵙는다.[衿纓 皆佩容臭 昧爽而朝]”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0] 모두 …… 4장(章) :
‘부모와 구고의 처소에 있으면서[在父母舅姑之所]’에서부터 ‘모두 이 예를 따른다.[共帥時]’까지를 말한다.
[주-D021] 높은 …… 4구(句) :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으며, 깊은 곳에 임하지 않으며, 구차히 헐뜯지 않으며, 구차히 웃지 않는다.[不登高 不臨深 不苟訾 不苟笑]”를 말한다.
[주-D022] 어깨를 …… 것〔脅肩諂笑〕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어깨를 으쓱이며 아첨하여 웃는 것은 뜨거운 여름날에 밭매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脅肩諂笑 病于夏畦]”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실려 있다.
[주-D023] 아들이 …… 생각하더라도〔子不宜其妻〕 :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아들이 자기 아내를 매우 마땅하게 생각하더라도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시면 내보내며, 아들이 자기 아내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더라도 부모가 ‘며느리가 나를 잘 섬긴다.’라고 하시면 아들은 부부의 예(禮)를 행하며 종신토록 쇠하지 말아야 한다.[子甚宜其妻 父母不說出 子不宜其妻 父母曰是善事我 子行夫婦之禮焉 沒身不衰]”
[주-D024] 개와 …… 한다〔犬馬盡然〕 :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 때문에 부모가 사랑하신 바를 또한 사랑하며, 부모가 공경하신 바를 또한 공경해야 하니, 개와 말의 경우도 모두 그렇게 해야 하는데, 더군다나 사람에 대해서이겠는가.[是故父母之所愛亦愛之 父母之所敬亦敬之 至於犬馬盡然 而況於人乎]”
[주-D025] 기뻐하여 잊지 않는다〔喜而不忘〕 :
《예기》 〈제의(祭義)〉에 나오는 말인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부모가 사랑하시면 기뻐하여 잊지 않으며, 부모가 미워하시면 두려워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간(諫)하되 거스르지 않는다.[父母愛之 喜而不忘 父母惡之 懼而無怨 父母有過 諫而不逆]” 그리고 이 말 앞에 “효자는 옥을 쥔 듯, 가득 찬 것을 받들듯, 성실하고 전일하게 하면서, 감당하지 못하는 듯, 장차 잃어버릴 듯 여긴다.[孝子如執玉 如奉盈 洞洞屬屬然 如不勝 如將失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6] 여기득죄어향당주려(與其得罪於鄕黨州閭) :
보통은 진덕수(眞德秀)의 주(註)에 나오는 대로 ‘부모가 향ㆍ당ㆍ주ㆍ려에서 죄를 얻게 하기보다는’이라고 해석하는데, 녹문은 ‘아들 자신이 향ㆍ당ㆍ주ㆍ려에서 죄를 얻기보다는’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향ㆍ당ㆍ주ㆍ려는 가호(家戶)의 대소에 따라 나눈 행정구역 단위이다.
[주-D027] 충양(忠養) :
충심으로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 〈내칙(內則)〉에 “효자가 노부모를 봉양할 때에는, 그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그 뜻을 어기지 않으며, 그 눈과 귀를 즐겁게 해 드리고 그 잠자리를 편안하게 해 드리며, 그 음식을 가지고 충심으로 봉양해야 한다.[孝子之養老也 樂其心 不違其志 樂其耳目 安其寢處 以其飮食忠養之]”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나온다. 뒤에 나오는 낙심승지(樂心承志), 즉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며 뜻을 어기지 않고 받들어 드린다는 말도 여기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D028] 온정정성(溫凊定省) :
동온하정(冬溫夏凊)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로, 어버이를 정성껏 모시는 것을 말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의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29] 상(翔)에 …… 해설하였는데 :
상(翔)은 《예기》 〈곡례 상(曲禮上)〉의 “부모가 병들면 성인이 된 아들은 머리를 빗지 않으며 길을 갈 적에 상(翔)하지 않는다.[父母有疾 冠者不櫛 行不翔]”라는 말에 나오는 그 상(翔)이다. 정씨는 정현(鄭玄)을 말한다. 장공(張拱)은 새가 날개를 펼치듯 팔을 벌리고 흔들어 대면서 활기차게 걷는 것을 말한다.
[주-D030] 선상(先甞) :
먼저 맛본다는 뜻으로, 《예기》 〈곡례 하(曲禮下)〉의 “임금이 병에 걸려 약을 먹을 때는 신하가 먼저 맛보아야 하며, 부모가 병에 걸려 약을 먹을 때는 자식이 먼저 맛보아야 한다.[君有疾飮藥 臣先嘗之 親有疾飮藥 子先嘗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31] 견빙(堅氷) :
두꺼운 얼음이라는 뜻으로, 사태가 점점 악화되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역》 〈곤괘(坤卦) 초육(初六)〉의 “서리를 밟으면 두꺼운 얼음의 시절이 곧 닥친다.[履霜堅氷至]”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32] 춘추(春秋)에서 …… 하였다 :
《춘추》 소공(昭公) 19년 경문(經文)에 “여름 5월 무진일에 허 세자 지(止)가 그 임금 매(買)를 시해하였다.[夏 五月 戊辰 許世子止弑其君買]”라고 하였다. 《좌씨전(左氏傳)》에 의하면, 허나라 도공(悼公)이 학질에 걸렸는데, 세자 지가 올린 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나자, 태자가 진(晉)나라로 도망을 갔다고 하였으며, 《호씨전(胡氏傳)》에 의하면 세자가 약을 먼저 맛보지 못하는 등 자신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자책하다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였는데, 녹문이 《호씨전》의 내용 중에서 중요 부분만 발췌하여 인용한 것이다.
[주-D033] 천자지효(天子之孝)의 구절 :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감히 남을 미워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부모를 섬기면서 사랑과 공경을 극진히 하면, 덕교(德敎)가 백성에게 더해져서 사해(四海)에 본보기가 될 것이니, 이는 천자의 효이다.[愛親者不敢惡於人 敬親者不敢慢於人 愛敬盡於事親 而德敎加於百姓 刑于四海 此天子之孝也]”라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
[주-D034] 임금이 …… 일으킨다〔上老老民興孝〕 :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10장에 “임금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우하면 백성들이 효도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임금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하면 백성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킨다.[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5] 군자는 …… 있다〔不出家而成敎於國〕 :
《대학장구》 전 9장에 “군자는 집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나의 효(孝)를 신하가 본받으면 임금을 잘 섬기게 되고, 제(弟)를 본받으면 장관을 잘 섬기게 되고, 자(慈)를 본받으면 대중을 잘 부리게 된다.[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6] 나와서 …… 일이다 :
《예기》 〈곡례 상(曲禮上)〉의 “主人請入爲席然後出迎客 客固辭 主人肅客而入”라는 글에 대해서, “주인이 들어가서 자리를 펴서 정돈한 뒤에 나와서 객을 맞이하겠다고 청할 적에, 객이 고사(固辭)하면 주인이 객에게 숙배(肅拜)하고 들어가서 자리를 편다.”라고 해석하면 안 되고, “주인이 들어가서 자리를 펴서 정돈하겠다고 청한 뒤에 방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객을 맞이하는데, 이때 객이 고사하면 주인이 객에게 숙배하고 먼저 들어간다.”라고 해석해야 옳다는 말이다.
[주-D037] 왼발을 …… 것〔先左足 先右足〕 :
《예기》 〈곡례 상(曲禮上)〉의 “주인이 동쪽 계단을 올라갈 때에는 오른발을 먼저 해서 서쪽을 향하여 빈객을 응시하고, 빈객이 서쪽 계단을 올라갈 때에는 왼발을 먼저 해서 동쪽을 향하여 주인을 응시한다.[上於東階則先右足 上於西階則先左足]”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예문(禮文)에 대해서 진씨(陳氏)는 “오른발을 먼저 하고 왼발을 먼저 하는 것은, 각자 들어가는 문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에 따른 것이다.[先右先左 各順入門之左右也]”라고 해설하였는데, 녹문이 그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진씨는 《예기집설(禮記集說)》의 저자인 원나라 진호(陳澔)를 말한다. 주희의 말은 《주자어류(朱子語類)》 권74에 보인다.
[주-D038] 서로 …… 가깝다〔近於相鄕敬〕 :
대본에는 ‘近相鄕敬’으로 되어 있으나,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원문대로 ‘近於相鄕敬’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39] 무불경(毋不敬)이라는 …… 것이다 :
《예기》 〈곡례(曲禮)〉 첫머리에 “언제 어디서나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항상 뭔가 깊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말은 안정되게 해야 하니, 그렇게 하면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만한 마음이 자라나게 해서는 안 되며, 욕망을 무작정 따라서는 안 되며, 자기 뜻대로 채우려 해서는 안 되며, 즐거움을 극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毋不敬 儼若思 安定辭 安民哉 傲不可長 欲不可縱 志不可滿 樂不可極]”라는 말이 나온다.
[주-D040] 논어(論語)에서는 …… 보인다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언어가 충신하고, 행실이 독경하면, 오랑캐 나라에 가서도 제대로 행할 수가 있다.[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라는 공자의 말이 나오는데, 남헌 장씨(南軒張氏) 즉 장식(張栻)이 “독경은 경에 돈독한 것이다.[篤敬者 敦篤於敬也]”라고 해설한 것이 소주(小註)에 보인다. 언해에서는 ‘행실이 두텁고 공경하면’이라고 풀었다.
[주-D041] 시사명(視思明) 청사총(聽思聦) :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밝게 듣기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하는 일[九思]에 속하는 것들이다. 《論語 季氏》
[주-D042] 악기(樂記) :
“군자는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이목에 머물러 두지 아니하며, 음란한 음악과 사특한 예를 마음에 접하지 아니하며, 타만하고 사벽한 기(氣)를 신체에 베풀지 아니하여, 이목비구와 심지 백체가 모두 순정함을 말미암아 그 의(義)를 행하게 한다.[君子姦聲亂色 不留聰明 淫樂慝禮 不接心術 惰慢邪辟之氣 不設於身體 使耳目鼻口心知百體 皆由順正以行其義]”라는 《예기》 〈악기〉의 글을 가리킨다.
[주-D043] 예가 …… 말라〔非禮勿聽〕 :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말해 준 이른바 사물(四勿)의 가르침인데, 《논어》 〈안연(顔淵)〉에 나온다.
[주-D044] 외물에 …… 위해서이다〔制於外 所以養其中也〕 :
정이(程頤)의 〈사물잠(四勿箴)〉 서(序)에 이 말이 나온다.
[주-D045] 성용정(聲容靜) :
소리 모양은 조용하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군자의 이른바 구용(九容) 중의 하나이다. 《禮記 玉藻》
[주-D046] 두용직(頭容直) :
이것 역시 구용(九容) 중의 하나로, 머리 모양은 곧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D047] 혹자가 …… 하기에 :
“거만한 마음을 키우면 안 되며, 욕심을 제멋대로 부리면 안 되며, 뜻을 가득 차게 하면 안 되며, 즐거움을 극도로 누리면 안 된다.[敖不可長 欲不可縱 志不可滿 樂不可極]”라는 《예기》 〈곡례 상(曲禮上)〉의 표현을 문제 삼은 것이다.
[주-D048] 오타(敖惰) :
《대학장구》 전(傳) 8장에 무릇 사람이란 “오만하고 태만히 하는 데에서 편벽되기 마련이다.[之其所敖惰而辟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49] 과욕(寡欲) :
《맹자》 〈진심 하(盡心下)〉의 “마음을 기르는 데에는 욕심을 적게 가지는 것이 최상이다. 사람이 욕심을 적게 가지면 본심이 보존되지 못하는 것이 있을지라도 적을 것이요, 사람이 욕심을 많이 가지면 본심이 보존되는 것이 있을지라도 적을 것이다.[養心莫善於寡欲 其爲人也寡欲 雖有不存焉者寡矣 其爲人也多欲 雖有存焉者寡矣]”라는 말을 주제로 하여 논한 글이다. 보통 〈양심장(養心章)〉이라 칭한다.
[주-D050] 여여숙(呂與叔)이 …… 것〔儼然危坐〕 :
여숙(與叔)은 정이(程頤)의 문인인 여대림(呂大臨)의 자이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권2 〈예악불가사수거신장(禮樂不可斯須去身章)〉에 “여여숙이 6월에 구지에 왔기에 한가히 거처하는 중에 내가 일찍이 살펴보건대, 반드시 엄숙히 무릎 꿇고 앉아 있었으니, 돈독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학자는 모름지기 공경해야 하지만 자기를 속박해서는 안 되니, 속박하면 오래도록 유지하기 어려운 법이다.[呂與叔六月中來緱氏 間居中 某嘗窺之 必見其儼然危坐 可謂敦篤矣 學者須恭敬 但不可令拘迫 拘迫則難久也]”라는 정이의 말이 나온다.
[주-D051] 신신요요(申申夭夭) :
《논어》 〈술이(述而)〉의 “공자가 한가히 거처할 적에는 마음이 활짝 풀어진 듯하고 즐거운 듯하였다.[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52] 전긍임리(戰兢臨履) :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의 “전전긍긍하여 심연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53] 공명선(公明宣)이 …… 만하니 :
증자(曾子)의 제자 공명선이 3년이나 독서하지 않는 이유를 증자가 물으니, 증자가 뜰을 거닐 때와 빈객을 응접할 때와 조정에 있을 때의 거조를 보고 배우는 것만도 벅차다고 대답한 고사가 《설원(說苑)》 〈반질(反質)〉에 나온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은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공부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반대되는 말로, 오직 자신의 덕성을 닦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을 말하는데, 《논어》 〈헌문(憲問)〉에 이에 대한 공자의 언급이 나온다.
[주-D054] 화정(和靖)이 …… 있었다 :
화정은 정이(程頤)의 문인인 화정 윤씨(和靖尹氏) 즉 윤돈(尹焞)을 말한다. 자는 언명(彦明)이다. 《대학장구》의 〈독대학법(讀大學法)〉에 “옛날에 윤화정은 이천을 만나 보고 나서 반년 만에 비로소 《대학》과 〈서명〉의 글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반년 동안에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昔尹和靖見伊川 半年方得大學西銘看 今人半年要讀多少書]”라는 주희의 말이 나온다.
[주-D055] 몸을 …… 것이니 :
전국 시대 진(晉)나라의 자객(刺客) 예양(豫讓)이 자신을 국사(國士)로 대우해 준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 양자(趙襄子)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 환자처럼 자신을 숨기고, 달군 석탄을 삼켜 벙어리처럼 목소리를 바꾼 뒤에 다시 복수를 시도하였는데, 그를 알아본 친구가 ‘조맹(趙孟) 즉 조 양자의 신하가 되어 가까이 섬기면 쉽게 복수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울며 호소를 하니, 예양이 “안 된다. 이미 몸을 바쳐 신하가 되고 나서 또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이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다. 무릇 내가 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긴 하나, 이렇게 하는 까닭은 장차 천하와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이다.[不可 旣已委質爲臣 而又求殺之 是二心也 凡吾所爲者極難耳 然所以爲此者 將以愧天下後世之爲人臣而懷二心者也]”라고 대답하고는, 다리 밑에 숨어서 양자를 죽이려 하다가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 잡혀서 죽게 되자, 양자가 벗어 준 옷을 세 번 칼로 내리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는 마침내 자결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豫讓》 녹문이 예양을 높여서 예자(豫子)라는 경칭을 쓰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주-D056] 왕릉(王陵)은 …… 따름이다 :
왕릉은 최고 통치자의 앞에서 의리에 입각하여 적극적으로 직간(直諫)을 하며 쟁집(爭執)한다는 뜻의 ‘면절정쟁(面折廷爭)’의 고사로 유명한 전한(前漢)의 재상이다. 여후(呂后)가 여씨(呂氏)들을 왕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그가 우승상(右丞相)의 신분으로 “고제(高帝)가 ‘유씨가 아닌데 왕이 될 경우에는 천하가 다 함께 공격하라.[非劉氏而王 天下共擊之]’ 하였다.”라면서 강력히 반대하였는데, 좌승상 진평(陳平)과 강후(絳侯) 주발(周勃)이 “안 될 것이 없다.[無所不可]”라면서 여후의 뜻에 동의하자, 왕릉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고제를 뵈려 하는가.[何面目見高帝地下]”라고 그들을 면박(面駁)하니, 두 사람이 “지금 면절정쟁하는 것은 우리가 그대만 못하지만, 사직을 보전하고 유씨의 후손을 안정시키는 것은 그대가 또한 우리보다 못할 것이다.[於今面折廷爭 臣不如君 全社稷定劉氏後 君亦不如臣]”라고 답하고는, 그 뒤에 과연 여씨들을 멸망시킨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 呂太后本紀》
[주-D057] 인신(人臣)의 …… 한다〔人臣之義 當以王陵爲正〕 :
정이(程頤)의 말로,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9에 나온다.
[주-D058] 적인걸(狄仁傑)이 …… 따름이었다 :
적인걸은 지(知)와 덕(德)을 겸비하여 후대에 명재상으로 추앙을 받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무측천(武則天)이 자기 아들인 예종(睿宗)을 폐위하고 직접 황제가 되어 국호를 주(周)로 바꾸는데도 적극적으로 배격하지 않고 도우면서 대신의 지위를 향유했다는 점에서, 이씨(李氏)의 당나라에 대해 실절(失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주-D059] 도는 하나일 뿐이다〔道一而已〕 :
등문공(滕文公)이 세자일 때에 다시 맹자를 찾아오자, 맹자가 자기의 말을 의심하지 말라면서 일러 준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주-D060] 경(敬)은 덕(德)의 집합체이다 :
극결(郤缺) 부부가 서로 손님처럼 공경히 대하는 것을 구계(臼季)가 목격하고는 진 문공(晉文公)에게 극결을 천거하면서 한 말인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32년에 이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나온다. 문공은 그의 말을 듣고 극결을 하군대부(下軍大夫)에 임명하였다. 진씨(陳氏) 즉 진호(陳澔)의 해설 중에 “사람이 능히 공경하면 마음이 보존되고, 마음이 보존되면 이치에 맞게 되므로, 경은 덕의 집합체인 것이다.[人能敬則心存 心存則理得 故敬德之聚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61] 자리에 …… 10구(句) :
춘추 시대 위(衛)나라 북궁문자(北宮文子)가 군주인 양공(襄公)에게 위의(威儀)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 중에 나오는데, 관련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이 경외할 만하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이 사랑할 만하며, 진퇴하는 것은 법도가 될 만하고, 주선하는 것은 법칙이 될 만하며, 행동거지는 보고 배울 만하고, 일 처리는 본보기가 될 만하며, 덕행은 본받을 만하고, 음성은 즐겁게 여길 만하며, 동작에는 문채가 있고, 언어에는 조리가 있다. 이와 같이 아랫사람들을 다스렸기에 위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故君子 在位可畏 施舍可愛 進退可度 周旋可則 容止可觀 作事可法 德行可象 聲氣可樂 動作有文 言語有章 以臨其下 謂之有威儀也]” 《春秋左氏傳 襄公31年》 여기에서 군자는 주 문왕(周文王)을 가리킨다.
[주-D062] 언어가 …… 하였는데 :
송나라 진관(陳瓘)의 말로, 그의 문집인 《요옹집(了翁集)》 〈여동래변지록(呂東萊辨志錄)〉에 실려 있는데, 본문과 관련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말이 온화하고 기운이 화기로우면 안자의 불천을 점차로 배울 수 있고, 과오가 있을 때 제대로 뉘우치고 또 고치는 것을 꺼리지 않으면 안자의 불이를 점차로 배울 수 있다.[言溫而氣和 則顔子之不遷 漸可學矣 過而能悔 又不憚改 則顔子之不貳 漸可學矣]” 안자(顔子)는 안회(顔回)의 존칭이다. 불천(不遷)과 불이(不貳)는 불천노(不遷怒)와 불이과(不貳過)의 준말로, 《논어》 〈옹야(雍也)〉의 “안회는 배우기를 좋아해서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지 않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다.[有顔回者 好學 不遷怒 不貳過]”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소학》에는 진 충숙공(陳忠肅公)의 말로 나오는데, 충숙은 진관의 시호이다.
[주-D063] 사람들은 …… 못한다 :
《율곡전서(栗谷全書)》 권22 〈성학집요(聖學輯要) 4 수기(修己) 제2하(下)〉에 나온다. 대본에는 ‘人見明道 莫不樂其渾然天成 而不知其煞用工夫 見晦菴 莫不歎其海闊天高 而不知其銖累寸積’로 되어 있으나, 《율곡전서》에는 ‘人見明道 樂其渾然天成 而不知從事於煞用工夫 見晦菴 樂其海闊天高 而不知從事於銖累寸積’로 되어 있다. 뜻에는 큰 차이가 없다. 명도(明道)는 정호(程顥)의 별호(別號)이고, 회암(晦菴)은 주희(朱熹)의 자호(自號)이다.
[주-D064] 하등인이라는 …… 사실 :
역시 송나라 진관(陳瓘)의 말 중에 “언어가 충신하지 못하면 하등인이요,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하등인이요, 과오를 뉘우칠 줄 모르면 하등인이요, 뉘우쳐도 고치지 않으면 하등인이다.[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過而不知悔 下等人也 悔而不知改 下等人也]”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을 소위 사하등(四下等)이라고 한다.
[주-D065] 삼복백규(三復白圭) :
말조심해야 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억(抑)〉 중에 “흰 옥돌에 묻어 있는 오점(汚點)은 그래도 깎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을 한번 잘못해서 생긴 오점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라는 말이 나오는데, 공자의 제자인 남용(南容)이 매일 이 구절을 세 번씩 반복해서 외우자[三復白圭], 공자가 이를 훌륭하게 여겨 자신의 조카딸로 그의 처를 삼게 했던 고사가 있다. 《論語 先進》
[주-D066] 권권복응(拳拳服膺) :
간절한 마음으로 신봉하며 충심으로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8장의 “안회(顔回)의 사람됨으로 말하면, 중용의 길을 택하여 행하면서, 어떤 한 가지 선을 얻으면 권권복응하며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다.[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而不失之矣]”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67] 자로(子路)가 …… 하면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자로는 사람들이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 주면 기뻐하였다.[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라는 말이 나온다.
[주-D068] 순(舜)은 …… 사람인가 :
“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도 순처럼 하면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는 말이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안연(顔淵)의 말로 인용되어 나온다.
[주-D069] 안자(顔子)와 …… 것 :
역시 윗글에 나오는 진관(陳瓘)의 말 중에 있는 내용이다.
[주-D070] 고사시(姑捨是) :
‘우선 이들은 거론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라는 뜻이다. 맹자가 자하(子夏)ㆍ자유(子游)ㆍ자장(子張), 그리고 염우(冉牛)ㆍ민자(閔子)ㆍ안연(顔淵) 등과 비교해서 그 경지가 어떠한지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정도 수준의 인물을 가지고 어떻게 나를 비교하려 하느냐.’라는 뜻으로 자부하며 대답한 말인데,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주-D071] 제일등(第一等) 운운한 것 :
정호(程顥)가 “제일등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제이등이나 되겠다고 말하지 말라. 이렇게 말한다면 이는 곧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된다. 비록 인에 거하지 않고 의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자와는 그 차이가 같지 않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작게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학문으로 말한다면 곧 도에 뜻을 두어야 할 것이요, 사람으로 말한다면 곧 성인에 뜻을 두어야 할 것이다.[莫說道將第一等 讓與別人 且做第二等 才如此說 便是自棄 雖與不能居仁由義者差等不同 其自小一也 言學便以道爲志 言人便以聖爲志]”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류(爲學類)〉에 소개되어 있다.
[주-D072] 불위인(不違仁) :
공자가 안회(顔回)에 대해서 “그는 마음속으로 석 달 동안이나 인을 어기지 않았다.[其心三月不違仁]”라고 칭찬한 말이 《논어》 〈옹야(雍也)〉에 나온다.
[주-D073] 사하등(四下等)의 설 :
송나라 진관(陳瓘)의 말 중에 “언어가 충신하지 못하면 하등인이요,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하등인이요, 과오를 뉘우칠 줄 모르면 하등인이요, 뉘우쳐도 고치지 않으면 하등인이다.[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過而不知悔 下等人也 悔而不知改 下等人也]”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을 소위 사하등(四下等)이라고 한다.
[주-D074] 완(頑)하고 은(嚚)한 것 :
완악하고 망언하는 것을 말한다. 《서경》 〈요전(堯典)〉에 순(舜)에 대해서 사악(四岳)이 제요(帝堯)에게 “그는 소경의 아들이다. 부친은 완악하고 후모(後母)는 막말을 하며 이복동생인 상(象)은 오만한데도, 효로써 잘 화합시키면서 점점 다스려지게 하여 간악한 데에 이르지 않게 하였다.[瞽子 父頑 母嚚 象傲 克諧以孝 烝烝乂 不格姦]”라고 설명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주(註)에 “마음이 덕의(德義)의 떳떳함을 본받지 않는 것을 완(頑)이라 한다.[心不則德義之經為頑]”라고 하였다.
[주-D075] 생각을 …… 된다 :
《서경》 〈다방(多方)〉에 “성인(聖人)이라도 생각을 잘못하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이라도 생각을 잘하면 성인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라는 말이 나온다.
[주-D076] 재(才)는 …… 하겠다 :
제갈량(諸葛亮)의 〈아들을 경계한 글[戒子書]〉에 나오는 내용을 녹문이 평한 것이다.
[주-D077] 유빈(柳玭)의 글의 제2조(條) :
유빈은 당나라 유공작(柳公綽)의 손자이자 유중영(柳仲郢)의 아들로, 자는 직청(直淸)이다. 그는 자제를 경계하기 위해 모두 7조(條)의 글을 지었는데, 그 제2조에서 “유술을 알지 못하고, 고도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옛 경서에 무지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세를 논함에 마구 지껄이고 비웃으며, 자신은 아는 것이 적으면서 남이 학식이 있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不知儒術 不悅古道 懵前經而不恥 論當世而解頤 身旣寡知 惡人有學]”라고 하였다.
[주-D078] 자기가 …… 못한다〔其爲小人 亦不索性〕 :
《회암집(晦菴集)》 권29 〈여양자직서(與楊子直書)〉에 나오는데, 이해를 돕기 위하여 관련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의(義)에 밝으면 군자인 것이고, 이(利)에 밝으면 소인인 것이다. 그런데 근년에 일종의 의논이 나와서 그만 이 양자(兩者) 사이에서 주선해 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회호하고 위곡하며 심기를 소진한 나머지, 끝내는 군자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요, 자기가 소인이면서 색성을 하지도 못하니, 이 또한 그 마음을 잘못 쓴다고 말할 만하다.[世間喩於義者則爲君子 喩於利者卽是小人 而近年一種議論 乃欲周旋於二者之間 回互委曲 費盡心機 卒旣不得爲君子 而其爲小人 亦不索性 亦可謂誤用其心矣]” 색성(索性)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색성을 하지도 못한다는 것은, 소인이 자기 본성 그대로 철저히 소인 노릇을 하지도 못한 채, 의(義)와 이(利), 군자와 소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현혹하는 행태를 비꼬며 조롱한 말이다.
[주-D079] 명도(明道)와 …… 한다〔以明道希文自期待〕 :
호 문정공(胡文定公) 즉 호안국(胡安國)이 자기 아들에게 준 글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이다. 녹문이 안정(安定) 즉 호원(胡瑗)의 말이라고 한 것은 착오이다. 명도는 정호(程顥)의 별호이고, 희문(希文)은 범중엄(范仲淹)의 자이다.
[주-D080] 마지막 …… 부분 :
호안국(胡安國)이 아들에게 준 글의 말미에 나오는 “너는 힘쓸지어다.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을 적에 음식과 남녀로써 절실하고 긴요함을 삼아야 한다. 예로부터 성현이 여기에서부터 공부를 하였으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汝勉之哉 治心修身 以飮食男女爲切要 從古聖賢自這裏做工夫 其可忽乎]”라는 부분을 말한다. 음식과 남녀는 각각 식욕과 성욕을 가리킨다.
[주-D081] 가령 …… 두었으니 :
지언(知言)은 남이 하는 말의 속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가 자신의 장점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대해서 “나는 말을 제대로 판단할 줄 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라고 전제하고는, 집의(集義) 즉 도의(道義)에 입각하여 적선(積善)을 하는 공부에 대해서 설명하고 나서, 결론적으로 편파적인 말[詖辭]과 방탕한 말[淫辭]과 삿된 말[邪辭]과 도망쳐 숨는 말[遁辭]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한 내용이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의 호연장(浩然章)에 나온다.
[주-D082] 다만 …… 때문이다〔只爲天下無不是底父母〕 :
순(舜)의 부친인 고수(瞽瞍)가 완악하여 순을 몇 차례나 죽이려고까지 하였으나 “순이 어버이 모시는 도리를 극진히 행하자 고수도 기뻐함에 이르렀다.[舜盡事親之道 瞽瞍底豫]”라는 고사가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 나중소(羅仲素) 즉 나종언(羅從彦, 1072~1135)이 논평한 것이다. 그는 귀산(龜山) 양시(楊時, 1053~1135)의 수제자로, 주희의 스승인 연평(延平) 이동(李侗, 1093~1163)이 그에게 배웠다.
[주-D083] 담(膽)과 …… 있다 :
“담은 커지려고 해야 하고 마음은 작아지려고 해야 하며, 지혜는 둥글어지려고 해야 하고 행실은 모나려고 해야 한다.[膽欲大而心欲小 智欲圓而行欲方]”라는 손사막(孫思邈)의 말에 대해, 주희가 담(膽)을 지(志)로 바꿔서 “뜻이 크지 않으면 비루해지고, 마음이 작지 않으면 광망해진다.[志不大則卑陋 心不小則狂妄]”라고 해설한 것을 녹문이 평한 것이다.
[주-D084] 날마다 …… 같다 :
문제가 되는 원문은 정호(程顥)의 주차(奏箚) 가운데 “其學行皆中於是者爲成德 取材識明達可進於善者 使日受其業 擇其學明德尊者 爲太學之師 次以分敎天下之學”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언해에서는 “其學行이 皆中於是者爲成德이니 取材識明達可進於善者하여 使日受其業하여 擇其學明德尊者하여 爲太學之師하고 次以分敎天下之學이니라”라고 하여, “날마다 수업을 받은 학생들 중에서 학문이 밝고 덕이 높은 자를 뽑아 태학(太學)의 스승으로 삼고, 그다음은 천하의 학교에 나누어 가르치게 한다.”라고 풀었는데, 녹문은 “태학과 외방의 학교의 스승이 되는 자는, 가르침을 받은 학생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덕을 이룬[成德]’ 군자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주-D085] 왕응(王凝)의 사교(四敎) :
왕응은 수(隋)나라의 대유(大儒)인 문중자 왕통(王通)의 아우이다. 그가 “네 가지 가르침을 가지고 집을 다스렸는데, 그것은 근면ㆍ검소ㆍ공손ㆍ포용이었고, 네 가지 예절로 집을 바르게 하였는데, 그것은 관례ㆍ혼례ㆍ상례ㆍ제례였다.[御家以四敎 勤儉恭恕 正家以四禮 冠婚喪祭]”라는 말이 《문중자(文中子)》 관랑편(關朗篇)에 나온다.
[주-D086] 제오륜(第五倫)이 …… 것 :
어떤 사람이 후한의 제오륜에게 천리마를 주었을 때 제오륜이 그 말을 받지 않았으나, 인재를 천거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 일을 잊지 못하였는데[心不能忘], 그러면서도 끝내 그를 등용하지는 않았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後漢書 卷41 第五倫列傳》
[주-D087] 원헌(原憲)이 …… 것 :
극벌원욕(克伐怨欲)은 각각 호승심(好勝心)과 자긍심(自矜心)과 원망하는 마음과 욕심내는 마음을 가리킨다. 공자의 제자 원헌이 ‘극벌원욕이 행해지지 않게 하면 인(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克伐怨欲不行焉 可以爲仁矣]’라고 자부하며 물었을 때, 공자가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인(仁)인지는 알지 못하겠다.[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라고 대답한 말이 《논어》 〈헌문(憲問)〉에 나온다.
[주-D088] 열 번 …… 것이다〔十起與不起 便是私也 父子之愛本是公 纔著些心做 便是私也〕 :
제오륜(第五倫)이 형의 아들이 아플 때에는 하룻밤에 열 번이나 일어나서 가서 살펴보았지만[一夜十往] 돌아와서 편안하게 잠을 잤고[安寢], 자기 아들이 아플 때에는 일어나서 가서 살펴보지 않았지만[不省視]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不眠]는 고사에 대해서 정이(程頤)가 평한 말인데,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8에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소학》의 집설(集說)에서는 주희의 말로 인용하였는데, 이는 착오이다.
[주-D089] 도간(陶侃)이 …… 것〔運甓〕 :
서진(西晉)의 도간이 광주 자사(廣州刺史)로 재임 중에, 고을 다스리는 일이 한가할 때면 매일 아침에 벽돌 백 장을 집 안에서 밖으로 운반하고, 저녁에는 다시 밖에서 안으로 운반하면서, 신체를 단련하고 뜻을 가다듬곤 하였는데, 누가 그 까닭을 묻자 “내가 바야흐로 중원의 통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너무 한가하게 지내다 보면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그런다.[吾方致力中原 過爾優逸 恐不堪事]”라고 답변한 도간운벽(陶侃運甓)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주-D090] 습성이 …… 이루어진다.〔習與性成〕 :
《서경》 〈태갑 상(太甲上)〉에 이 말이 나온다. 참고로 정이(程頤)의 동잠(動箴) 말미에도 “습성이 오래되어 천성처럼 이루어지면, 성현과 똑같은 경지로 돌아가리라.[習與性成 聖賢同歸]”라는 표현이 보인다.
[주-D091] 글자를 …… 공경하였다면〔作字甚敬〕 :
“명도(明道) 선생이 글자를 쓸 적에도 매우 공경히 하였는데,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글자를 좋게 하려 함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학(學)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明道先生作字時甚敬 嘗謂人曰非欲字好 卽此是學]”라는 말이 《이정전서(二程全書)》 유서(遺書)에 나온다. 명도 선생은 정호(程顥)에 대한 존칭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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