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인천의 학교협동조합 현황, 스페인 협동조합 학교 GSD가 주는 시사점
1. 들어가며
인천교육청에서 스페인 협동조합 학교 GSD를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하다. GSD와의 인연은 지난 10월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국제사회적경제포럼 GSEF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은 빌바오 근처의 바스크에 위치한 협동조합 집합체 몬드라곤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협동조합의 성지순례처럼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성공한 협동조합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곳은 몬드라곤을 처음 설립한 호세마리아 신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이 협동조합 학교를 세운 일이란 점이다. “협동조합주의는 교육적 수단을 활용하는 경제운동이며, 또한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는 교육운동이다”라고 말하며 협동조합을 교육운동 측면으로 강조한 이도 호세 마리아 신부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스페인을 다녀왔지만 이러한 교육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우연하게도 GSEF에 참가한 협동조합 학교 GSD의 국제교류 팀장 Jorge를 만나게 되어 교류를 하게 되고 2박 3일 동안 마드리드의 협동조합 학교를 탐방하게 되었다. Joge는 한국에도 학교협동조합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교류를 하고 싶어했다.
사실 스페인 외에도 영국, 프랑스, 말레이시아에 학교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도 기사로도 소개되었고 많은 이들이 탐방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페인 GSD가 갖는 특이점은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를 협동조합으로 만들었고 30년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 뿐만 아니라 코스타리카, 카메룬까지 확대되어 8개의 분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학교협동조합만해도 2008년 이후 등장했고 정부의 학교 민영화 정책과 맞물리며 여전히 정책적인 흐름에 변동하고 있는데 반해 스페인 GSD는 지역의 필요에 부응해 자생적으로 교사와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협동조합 학교를 만들고 오랜 시간동안 튼실하게 운영해 왔다는 점에서 사회적 상상력의 확장을 가져온다. 특히 최근 들어서 사립 유치원의 비리로 인해 협동조합형 유치원도 적극적으로 논의되는만큼 GSD와 같은 협동조합 학교가 먼 나라의 얘기만은 아니다.
아무쪼록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인천에서도 학교협동조합의 확장성과 교육기관에 대한 사회적 소유 및 운영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토론이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
2. 한국, 인천의 학교협동조합
한국의 학교협동조합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50년대의 풀무학교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전국적으로 만들어진 공교육 안에서의 협동조합 설립 및 운영으로 보면 2013년 서울 영림중, 경기 성남의 복정고등학교부터 시작된 흐름을 언급할 수 있다. 학교협국제협동조합연맹의 정의(ICA)를 활용하면 학교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교육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학교구성원인 학생, 교직원,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으로 정의할 수 있다(박주희·주수원, 2014). 서울시에서 제정된 「서울시교육청 학교협동조합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2015.10. 8. 조례 제6048호)에서 사용하는 정의도 이와 같다. 다만 조례상의 정의에서는 학교란「초·중등교육법」제2조에 따른 학교라는 점, 그리고 학교협동조합의 법인은「협동조합 기본법」상의 협동조합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경기도에서는 학교협동조합보다 교육협동조합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학교협동조합은 가장 먼저는 학교 안의 매점, 방과후, 교복, 수학여행 등 다양한 소비에 있어서의 독과점으로부터 파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등장했다. <먹거리 X파일>에도 등장하듯 시중에서 유통되는 매점의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비위생적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집에서 몸에 좋은 먹거리를 먹여도 학교 매점에서 불량식품을 먹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냐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모여 함께 매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특성화고등학생들의 창업모델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2013년 단 2개로 시작했던 학교협동조합은 2018년 11월말까지 전국적으로 84개의 학교협동조합이 생겨났다. 인천에도 강화여자고등학교, 선학중학교,
강남영상미디어고등학교 등 3개의 학교에 학교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전국 지역별 학교협동조합 현황
지역 | 강원 | 경기 | 경남 | 경북 | 광주 | 대구 | 대전 | 부산 | 서울 | 세종 | 울산 | 인천 | 제주 | 전남 | 전북 | 충북 | 충남 | 합계 |
개수 | 10 | 29 | 6 | 1 | 1 | 1 | 0 | 2 | 24 | 0 | 0 | 3 | 0 | 2 | 3 | 2 | 0 | 84 |
무엇보다도 학교협동조합은 미래교육과 연계해서 교육적인 의미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교육과 관련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현재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아이들의 65%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갖게 될 전망을 내렸다. 단순반복적인 육체노동 관련 기술, 단순 지식에 기반한 인지적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은 대폭 줄어들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분석적 기술과 대인관계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은 이미 상대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이 포럼에서는 ‘21세기 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16가지 핵심기술을 제안함. 문해와 수해 능력과 같은 ‘기초 기술’도 있지만 협력·창의성·문제해결력 같은 ‘역량’, 일관성·호기심·주도성과 같은 ‘인성’도 중요하게 요구되는 기술이다.
서울교육청,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이러한 미래사회의 대비와 연계해서 미래교육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작년과 올해 진행된 『미래학교 체제 연구: 학습자 주도성을 중심으로』(조윤정 외, 2017), 『미래사회의 마을교육공동체발전방향』(김영철 외, 2017), 『지역기반 미래학교 운영모델 탐색: 여주 지역사례를 중심으로』(남미자 외, 2017), 『경기미래교육 기초연구』(김기수 외, 2018) 등까지 공통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 ▲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 ▲ 학습자 주도성 강화, ▲ 프로젝트 중심을 통한 문제해결능력 향상 등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학교협동조합과 연계된다. 아예 이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외국 문헌도 있다. 벨기에의 ‘학습 및 재설계를 위한 연구실(learning and redesign lab)이 소개하는 미래학교의 모습이다. 여기서 2030년의 학교는 ‘학습공원(learning park)’이나 ‘학습마을(learning village)’이란 용어가 더 어울릴 것이라고 한다.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서로로부터’ 배우는 장소가 될 것이라 한다. 더불어 미래학교의 운영 방식은 “매우 민주적이며 협동조합과 흡사할 것”이라고 이 연구는 결론짓고 있다.
3. 학교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 학교로 확장
현재 한국의 학교협동조합은 학교 안의 소비사업 그 중에서도 매점에 국한되어 있다. 학생, 학부모, 교사의 필요성과 가장 맞물려 있으며 사업모델이 명확하고 학생수가 600명이 넘어가는 경우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생생한 경제교육 체험이 가능하고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먹거리 판매로부터 시작해서 공정무역, 지역과의 상생경제, 사회적경제까지 다양한 연계점이 이뤄지며 그 안에서 많은 교육적 가치들을 발견하기 때문에 단순히 매점에만 그치지 않고 학교 안의 또 다른 교육경제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협동조합의 의미는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다. 바로 앞서 얘기한 미래학교의 모습으로서이다. 스페인 협동조합 학교 GSD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GSD가 위치한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인데, 20세기 전반 내전이 끝난 후 갑작스레 도시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회서비스가 원할하게 제공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1985년 교사를 중심으로 18명이 모여 학교 설립을 준비했다. 지역의 필요에 교사들이 협동조합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더불어 협동조합간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로 1개의 학교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지역의 필요에도 대응하고 최근에는 코스타리카와 카메룬에도 GSD 방식의 협동조합 학교를 설립해가고 있다. 발표자료에도 나오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We have been given the capacity to transform the World into a better place more than merely contemplate it."의 얘기처럼 문제를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라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힘을 모으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협동조합 학교의 운영은 어떻게 다를까? 아이들에게는 경쟁이 아닌 협동을 우선적으로 가르친다. 운영에 있어서도 소수의 사립 학교 운영자가 아닌 대부분의 교사가 조합원이 되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따른다.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근무 후 2만5천 유로(약 3200만원)를 출자금으로 내야 한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교사들이 공동 주인되기에 주저하지 않고 대다수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로 인해서 달라지는 것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학교 모델이다. 마드리드의 상위 사립학교가 한달에 700유로(약 90만원)을 내는데 반해, GSD는 5분의1 수준인 140유로(18만원)를 내고도 사립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방과후 프로그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애초부터 지역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이념으로 세워졌기에 지속가능한 경영 못지 않게 공공성이 매우 중시된다. 이들이 마련한 해법은 학교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였다. 직원들은 교대로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학교를 운영한다. 통상 일반 학교 수업이 8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이뤄지는 것과는 다르다. 아침 일찍부터 운영되는 건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아침밥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오후 5시 반부터 8시까지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 다양한 방과후 활동에 참가할 수 있다. 8시 이후 시간엔 어른들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부가적인 수익 창출 방안이기도 하지만, 지역사회를 위한 서비스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협동조합 학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협동조합 학교가 먼 나라의 일일까? 그렇지 않다. 먼저 교육부도 학교협동조합의 교육적 가치에 주목해 지난 9월 학교협동조합 지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설령 협동조합 형식을 갖추고 있지는 않더라도,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 운영모델을 택하고 있는 대안학교들도 많다. 또한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 설립·운영규정’을 개정해 사회적협동조합도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시설을 임차해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11월 27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수의계약과 사용료 감경(50%)이 가능하도록 했다. 즉 이제는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이 함께 학교의 주인되기를 결심한다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자체로부터 시설 임차를 사용료 경감(50%)을 받아 유치원 설립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유치원으로부터 시작해서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력하여 새로운 학교 모델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 앞서의 미래학교처럼 “매우 민주적이며 협동조합과 흡사”한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시설을 지역의 사회적기업과 협업해서 향후 이들이 사회적기업에 취업할 때 필요한 일을 배워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필요에 맞춰 새로운 학교모델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해볼 수 있는 시점인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이 있고 개선해야할 과제들이 있다. 새로운 길이 한번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윌리엄 깁슨의 말대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미래교육은 플립러닝, 배움의 공동체 등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학교에서 실행되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아닌 체험과 문제해결중심의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혁신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되어 이미 실행되고 있다. 다만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협동조합 학교 역시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교육이다. 이미 와있는 우리의 미래가 널리 흩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루쉰의 말을 인용해본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학교협동조합, 협동조합 학교는 조금씩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