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계획하거나 호젓한 곳에서 노후를 보내려는 이들이 늘면서 최근 폐교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늘고 있다.
학생수가 감소해 문을 닫은 시골 학교는 전국적으로 3000여 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임대나 매각이 되지 않았거나 임대기간이 만료돼 재임대 예정인 미활용 폐교는 지난해 7월 기준 전체의 15% 수준인 430여 개 정도. 임대 또는 매각된 폐교는 수련원·연수원·체험학습장·미술관·박물관·테마 농장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시설 내에는 수익성을 창출하기 위해 식당이나 객실을 마련하기도 하고 염색이나 도자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도 많다.
이처럼 외형상으로는 폐교가 노후 수단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폐교를 임대 받거나 구입해 활용하는 이들은 다양한 수익모델을 개발해도 큰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일반주택에 비해 관리비가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오지에 있어 접근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주민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중간에 폐교에서의 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폐교를 임대받아 운영하는 이들은 “언론에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되는 폐교가 늘면서 한때 인근에 미활용 폐교가 한 곳도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환상만 갖고 폐교를 찾은 이들은 수익 창출을 못하거나 주민과의 마찰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입을 모은다.
폐교 운영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폐교를 활용하는 이들은 우선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점을 꼽는다. 또 예술가나 수집가들은 작품과 수집품을 전시할 넓은 장소로 폐교 만한 것이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임대의 경우 신축이나 증개축에 다소 제약이 있긴 하지만 구입을 했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건물을 짓고 운영할 수 있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이코노믹 리뷰>에서는 폐교에서 노후를 설계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전국 미활용 폐교의 현황과 구입부터 운영사례까지 알아보았다.
입찰정보는 온비드·지역교육청 홈피에서
폐교의 관리는 지역 교육청이 담당하고 있으며 각 지역 교육청은 자체적으로 해당 폐교의 임대와 매각 여부를 결정한다. 임대나 매각이 결정된 폐교는 지역 교육청과 도 교육청 홈페이지에 입찰공고를 낸다. 각 지역 교육청을 일일이 방문하는 것이 수고스럽다면 자산관리공사의 입찰정보 사이트 온비드를 통해서도 폐교 입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입찰에 참여하려면 우선 해당 교육청의 전자입찰 도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자입찰을 시행하지 않는 경우 지역교육청을 직접 방문해 입찰서류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찰에 참가하기 위해 제출할 서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계획서다. 해당 교육청은 사용계획서를 사전에 검토한 후 폐교활용특별법상 활용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에만 입찰자격을 부여하고 최고가 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서울과 5대 광역시를 제외한 8개 도 교육청을 조사한 결과 경기도와 강원도·충청북도는 임대를 원칙으로 하며 충청남도·경상남북도는 매각과 임대를 병행하고 있었다. 전라남북도의 경우 매각을 우선으로 한다. 전남은 입찰 참가자가 없어 유찰되는 경우 일부 임대도 허용하는 실정이다.
입찰시 지역주민과 외지인에 대한 차별은 없으나 경북교육청 재무과 김치한씨는 “농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역주민에게 우선적으로 매각하고자 하는 것이 경북 교육청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경기·충청권 인기…도서 지역은 외면
“연평균 30개의 폐교를 매각하는데 도서지역이나 대도시에서 거리가 있는 신안·고흥 지역의 경우 여러 차례 유찰돼 방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남교육청에서 폐교의 매각을 담당하는 김용학씨는 폐교 입찰도 인기지역과 비인기지역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전남은 올해만 127개교를 매각할 계획인데 섬이나 도서지역 분교는 입찰자가 나서지 않아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광주 인근은 공고가 나기 무섭게 입찰 신청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 경북 울진의 한 폐교 입찰에 30여 명이 몰린 것과 대조적으로 경북지역의 미활용 폐교는 40개에 이른다.
반면 수도권과 인접한 지역인 경기·충청·강원권은 매각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은 편이다. 이 지역 관계자는 “폐교의 대부나 매각은 흉물스럽게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며 “수도권 인근은 임대공고만으로도 신청자가 몰리기 때문에 굳이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2005년 7월 기준 미활용 폐교의 현황은 경기도 14개, 강원도 20개, 충북 7개, 충남 24개, 전북 51개, 전남 127개, 경북 40개, 경남 74개다.
곡성 목사동중 기준가 16억으로 최고
폐교의 임대 및 매각의 기준가는 지역교육청이 복수의 감정평가기관으로부터 금액을 산출받은 후 평균가로 결정된다.
임대의 경우 보통 300만~1000만원, 매각은 2억~5억원 에서 가격이 책정된다. 물론 공매에 참가하는 이들이 실제 낙찰받는 금액은 기준가를 상당히 웃도는 경우가 많지만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면 기준가 수준으로도 낙찰 받을 수 있다.
매각 예정인 폐교 중 가장 비싼 금액이 책정된 곳은 전남 곡성의 목사동중으로 평가액만 16억3900만원에 달한다. 목사동중은 지난해 폐교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유지 관리가 잘 편이고 대지면적만 5000평에 건평이 1000여 평에 이른다. 목사동중처럼 10억원 이상으로 평가된 폐교는 서산의 독호초등학교(11억6000만원), 정읍의 서지말초등학교(13억2900만원), 곡성의 오곡초등학교(10억원) 등이 있다. 반면 전남 여수의 초도초등하교 평도분교장과 광도분교장은 각각 610만원, 572만원에 불과했다.
임대비용은 비싼 경우 5000만원을 상회하기도 하지만 보통 1000만원 내외에서 평가액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화천의 한 분교는 50만원대, 홍천에는 90만원 선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폐교도 있다.
한편 임대된 폐교의 사용 현황(56P 그래프 참조)은 교육시설이 전체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수련시설, 기업체나 농가의 생산시설·복리시설 등이 각각 10%에 달했으며 종교단체의 활용은 1%로 미미했다.
주민과 함께 수익 모델 개발하면 운영 활기
폐교를 임대받거나 매입한 경우 막연히 세웠던 운영계획은 현실로 다가온다.
폐교 운영에 있어 주민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 지역의 폐교에 찜질방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앞장서 반대하면서 결국 무산된 사례에서도 주민의 힘은 드러난다. 입찰공고가 올라간 후 반발이 일기도 한다. 이 경우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 학교에 토지 등을 기부한 것이 원인이다.매입 후 소유권 문제로 주민과의 골이 깊어질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런 폐교는 응찰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공한 폐교 운영자들은 ‘주민과 함께’라는 원칙을 지켰다. 하늘내 들꽃마을의 이재영씨는 “폐교는 절대 사유재산이 될 수 없다”며 “주민의 추억이 담긴 곳이기에 주민과 함께하는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선 아리랑학교 내에 들어선 추억의 박물관은 마을의 상점에서 2000원 이상을 사용하면 입장권을 1장씩 주도록 했다. 관광객들이 마을 상점을 이용하는 사례가 느는 만큼 박물관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도 또한 높아졌다.
도서지역에서 문화에 소외된 이들을 위한 시설도 늘고 있다. 평창군 봉평면 무이예술관과 전남 고흥의 남포문화예술원은 작품을 전시해 지역민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진천 한천초등학교 두촌분교는 문예 동호회의 수련원으로 변모했다. 특이한 점은 회원 중 의사면허 소지자들이 매주 무료 진료를 해 이웃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는 것.
음성 상평민속학교는 입소생들의 급식소에 지역 특산물을 홍보 전시해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강원도 평창의 감자꽃스튜디오는 동네아이들의 놀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경북 상주의 상산초등학교는 과수농업협동조합 연합회의 연구소로 지역 주민들의 농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폐교 운영자들 중 도예나 목공예·염색공예 등을 테마로 하는 경우 주민 무료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며 도시민의 농사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골의 일손 부족 해결에도 앞장서고 있다. 마을의 행사나 명절에 무상으로 축제를 열 장소로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