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 John Owen (1616-1683)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로서, 칼빈 이후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불린다. 옥스퍼드 대학교 퀸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1632년 인문학 학사, 1635년 인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그는 하루에 4시간만 자며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1642년 그는 최초의 저서인 『아르미니우스의 정체』를 써서 칼빈주의를 열렬히 옹호했다. 오웬은 1643년에는 에식스의 포드엄에서 목회에 전념했고, 메리 루크와 결혼했다. 1646년 그는 장기의회에서 처음으로 설교했고, 그 해에 코그셸로 목회지를 옮겼다. 1647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의 죽음』을 써서 다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비판했다. 1649년 그는 국왕 찰스 1세가 처형된 다음날 의회에서 설교했고, 호국경 크롬웰의 전임목사가 되었다. 1651년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학장이 되고, 1652년에 옥스퍼드 대학교 부총장이 되어 옥스퍼드 대학의 개혁을 책임지게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8년 동안 있으면서, 『하나님의 의』,『하나님과의 교제』,『죄 죽이기』,『분파주의』,『시험』 등을 썼다.
1658년 회중교회 교리 표준인 사보이 선언을 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660년 그는 고향인 스태드엄으로 은퇴해서, 여러 논쟁적이고 신학적인 저작들을 썼다. 그 뒤 23년 동안 비국교파의 지도자로서, 런던에 있는 교회를 담임하였고, 추방당한 목사들의 친구가 되었고, 회중교회 노선을 해석하였고, 성경 주석과 경건 서적들을 집필했다. 특히 히브리서 주석은 4,000페이지나 되는 대작이다. 그의 수많은 저서들은 1850년대에 24권의 전집으로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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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오웬이 활약한 분야가 많군요. 현대 신학도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분이십니다.
네, 공감합니다. 건조한 신학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경건과 실천에도 열정적이었던 오웬의 모습은 현대의 신학도들에게 좋은 모델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부 기독교 목사들의 행태는 중세 카톨릭 못지 않은 변질이 있습니다. 오웬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 지도 몰랐겠지만 유사한 상황을 잘 분별하셨을 것 같습니다.
천주교 직접 소속이 아니면서도, 자생적으로 중세 천주교 사제 비슷한 모습으로 사는 목회자분들이 있고요. 그분들은 오웬의 메시지를 듣고 행동과 마음을 교정하셔야 할 겁니다. 님의 댓글에 공감합니다.
자신의 권위와 지위를 주장할 때는 성직자라고 내세우고 지은 죄가 발각되면 자기도 연약한 인간이라고 변명하는 그런 찌질한 모습 좀 안 보면 좋겠어요ㅠㅠ
정말 그렇네요. 권리 주장할 때는 성직자임을 강조하고, 불리하면 목회자도 사람이다 라고 하죠.
9급 공무원 정도의 신원조사를 목회 지망생에게 적용하고 일반기업이 요구하는 인성검사를 교역 희망자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훌륭할 필요도 없이, 세상의 평범한 사람 정도의 수준은 유지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모습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저버리도록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성직자들의 죄악이라고 제대로 지적했네요. 정말 앞에서 이끄는 자들의 책임이 막중하고 책임이 클수록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게 됩니다.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 예수님을 공격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를 믿지 않고 직접적으로 박해했으므로... 기독교의 입장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인으로 가장을 한 위선과 간교함의 정도가 중세 천주교 사제들보다는 덜하지 않는가? 싶어요.
이에 비해 중세 천주교 사제들은 예수를 믿는 시늉을 하고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위선을 하고 가장을 했기 때문에, 그 교할함과 지능범 같은 해악의 정도가 예수님 공생애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 보다 더 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유대교를 향하여 일어나지 않고 (기독교라고 우겨대고 가장하는) 중세 천주교를 향하여 일어난 것입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오웬 목사님의 한국 교회의 목사님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시면서 동시에
일상에서의 거룩한 삶으로 부름받아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저같은 사람들에 대한 문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평신도 개인의 일탈도 불미스러운 것이지만, 얼굴과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목회자의 탈선과 추문은 전도의 문을 막고 연약한 신자를 교회에서 떠미는 악한 역할을 합니다.
좋은 책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오셨었군요. 위 책의 내용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