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강 정철의 생애와 문학 세계 (2)
송강 정철의 생애와 문학 세계(2)
갈산의 해바라기를 꺽어다가
스님편에 서해로 부칩니다.
서해로 가는 길이 지리해도
색깔은 능히 고치지 않으리라.
<봉승기율곡(逢僧寄栗谷)>
멀리 해주 땅에 숨어사는 지기(知己) 율곡에게 안부를 전하는 시이다. 해바라기를 선물로 보냄으로써 벗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정성이 가득하다.
사옹 돌아간 지 몇 년 봄인가 ?
돌길 깊은 산 초목은 무성하네
문하 소년 벌써 백발이 되었구나
이 생애 원래 꿈 속의 사람인 것을
<알조계묘(謁曹溪廟)>
스승을 여의고 몇 해가 지나서도 잊지 못해 추모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인생무상을 절로 느낀다.
한 열흘간의 금사사 생활이
고국 그리는 마음에 삼추와 같구나
밤물결의 맑은 기운은 분명한데
돌아가는 기러기는 슬피 우는구나
오랑캐가 있어 자주 칼을 보고
사람이 죽어 거문고를 끊고자 했으나
평생의 출사표 난리를 또 만남에 길게 읊노라
<금사사(金沙寺)>
금사사에서 머무는 동안 지기 조중봉과 고제봉 등의 전몰 소식을 듣고 밤에 일어나 지은 시다. 백아의 고사를 쫓아 거문고 줄을 끊어야 했으나 출사표를 바친 때라 그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난 우정과 우국의 심정이 표출된 명시이다.
송강 문학의 양축을 이루는 특징의 하나는 서정성이다. 즉, 탄식, 눈물, 체념, 안타까움, 외로움, 쓸쓸함, 원망 등으로써 인본적 휴머니즘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2. 풍류의 시가
1) 취흥의 시가
송강은 유달리 술을 좋아하였고 이 취흥 때문에 신선의 세계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었고,
시가의 세계도 넓어졌다. 북두성을 기울여 창해수를 부어내는 선천적인 호기는 유교가 모든 제도를 지배하던 당시에도 그의 시가 세계를 신선의 세계로까지 이끌었다.
므사일 일우리라 십년지이 너랄조차
내 한 일 업시셔 외다 마다 하나니
하면 처엄의 사괴실가
보면 반기실새 나도조차 나니더니
진실로 외다옷 하시면 마라신달 엇디리
내말 고디드러 너업사면 못살려니
머혼 일 구잔 일 널로하야 다 닛거든
이제야 남괴려 하고 넷벗 말고 엇디리
이 노래들은 술을 지은 노래로써 남달리 술을 좋아하는 송강의 개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특히 술과 서로 문답하는 문답체의 노래에는 해학성이 엿보인다.
재너머 성권농 집의 술닉닷 말 어제듯고
누은쇼 발로 박차 언치노하 지즐타고
아해야 네 권농 겨시냐 정좌수 왓다 하여라.
선우음 참노라 하니 자채옴의 코히새예
반교태 하다가 찬사랑 일홀셰라
단술이 못내괸 젼의란 년대마암 마쟈.
인나니 가나니 갈와 한숨을 디디마소
취하니 씨니 갈와 선우음 웃디마소
비온날 니믜찬 누역이 볏귀본 달 엇더리.
역시 술을 보고서 반가워하며 사실적 묘사와 함축미, 해학미가 잘 드러난 노래이다.
시가에서 취흥이 잘 나타난 부분은 <관동별곡>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명사길 니근말이 취선을 빗기시러 바다할 겻태두고 해당화로 드러가니 백구야 나디마라 네 벗인 줄 엇디아난."
명사십리 해당화 속으로 들어갈 때의 광경으로 자신을 취선에 비겼다. 술과 자연에 도취되어 비스듬히 말에 실려 비틀대면서 갈매기를 보고 벗을 하자고 말하지만 갈매기는 벗이 되어 주지 않는다.
"뉴하주 가득부어 달다려 무론 말이 영웅은 어대가며 사선은 귀 뉘러니, 아모나 만나보아 넷긔별 뭇쟈하니 선산 동해예 갈길도 머도멀샤."
뉴하주를 가득 부어 마신 다음 흐뭇한 기분으로 영웅과 사선의 기별을 묻는 송강의 풍류적인 면모가 드러나 있다.
한시에서도 취흥은 많이 나타난다.
산촌에 술이 막 익었는데
천리 길에 친구가 왔도다.
촌심 얘기해도 다함이 없고
정원 나무엔 석양을 재촉한다.
오랜 병에 사귐을 폐하니
사립문에 눈 바람이 두들긴다.
산간에 좋은 일 생겼으니
해는 저물고 술은 항아리에 가득하네
<대점봉최희직기2수(大岾逢崔希稷棄二首)>
눈바람이 쓸쓸히 날리는 산촌에서 병고에 시달리면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모처럼 벗이 찾아와 술로서 회포를 푸는 정경이 따사롭기만 하다.
저녁 달이 술잔에 거꾸러지며
봄바람이 내 얼굴에 뜨도다
하늘과 땅 사이 이제야
절교편(絶交篇)지어 전송호대 엇더리
일이나 일우려 한 외로운 칼을 차고
길게 휘바람 불며 다시 누에 오르도다.
<대월독작(對月獨酌)>
교우만이 벗은 아니다. 송강에게는 모든 것이 다 벗이다. 칼을 차고 누에 올라 홀로 달과 마주하여 술잔을 기울이는 송강의 호기가 드러난 시다. 송강의 시세계와는 좀 거리가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동강이 보내준 국화주를 보니
색깔은 가을 물결처럼 맑아서 멀리 빈 것 같네
새벽에 산을 대하여 한 잔을 드니
앉아있는 여왼 몸에 봄바람이 이네 <동강송주(東岡送酒)>
새벽에 일어나서 설산을 대하고 맑은 술을 마시는 선비의 모습. 이 술은 단순한 취흥의 경지를 넘어서 냉엄과 지조를 지나 구도적인 자세로까지 승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이 정자에 오르더라도
구름은 즐기며 술은 즐기지 않네
좋아하고 싫어함이 다 다른데
술을 즐기는 자는 나와 주인뿐이네
<열운정(悅雲亭)>
사람들은 모두 열주를 못하고 열운을 하는데 시인만은 유독 열주를 한다. 이것은 열주를 통하여 열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연을 살피는 혜안이 있다.
꽃은 시늘어도 붉은 작약이요
사람은 늙었어도 정돈녕이라네
꽃도 대하고 술도 대하니
의당 취하고 깨지 말아야지
<대화만음(對話漫吟)>
지는 꽃과 늙어가는 인생을 대비시켜 자학적인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로서 모든 무상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술에나 취해 보자는 간절함이 보인다.
2) 상자연(賞自然)의 시가
송강 문학의 풍류는 취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상자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선조 18년 (1585)이후 양사의 논척을 받아 퇴향하여 있을 때에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여 시련과 실의가 교차된 시기였으나 문학적으로는 뛰어난 재질을 마음껏 발휘할 황금기였다고 하겠다.
고임을 받으면 나아가 벼슬하고 내치면 산림에 묻히는 것이 선비의 한결같은 진퇴의 도였으니 부침성쇠(浮沈盛衰) 우여곡절이 심한 송강 생애에 있어서 강호죽림은 최후의 안식처요, 은둔처요, 영원한 고향이었다. 때로는 강호호반에, 때로는 북변 죽림에서 제경(帝京)의 옥당(玉堂)을 그리워하여 야야몽혼상옥당(夜夜夢魂上玉堂)하는 연군주일념(戀君主一念)에 울기도 하고 혹은 당쟁의 와중에서 정적의 논척을 받을 때마다 유회기죽림(幽懷寄竹林)의 은일 생활을 동경해 마지 않는 이중성의 갈등에서 그의 자연친애사상은 점점 깊어가서 또 하나의 송강의 멋을 낳았다.
남극노인성이 식영정의 비최여셔
창해유전(滄海柔田)이 슬카장 뒤눕다록
가디록 새비찰내여 그믈뉘랄 모란다.
남극노인성이 성산에 영원토록 비치어 자연속에서 무궁무진하게 지내고 싶다는 소망이 보인다.
새원 원쥐되여 시비(柴扉)랄 고텨닷고
유수청산을 벗사마 더뎠노라
아해야 벽제(碧蹄)예 손이라커든 날나가다 하고려.
세상의 모든 명리를 버리고 유수와 청산을 벗삼고자 하는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지만, 종장에서 나타나듯이 시류에 대한 배척과 자신의 고립의식이 잠재해 있어 완전한 자연합일은 보이지 않는다.
믈아래 그림재 디니 다리우해 듕이 간다
뎌 듕아 게잇거라 너가난대 무러보쟈
막대로 흰구롬 가라치고 도라 아니보고 가노매라.
산중의 풍경을 노래한 작품으로 다리 위로 외로이 지나가는 중의 그림자가 계곡의 물에 비치고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대답은 않고 막대로 흰구름을 가리키면서 묵묵히 가기만 하는 고요한 산중의 풍경이 완연히 나타나 있다. 간결한 언어 속에서 격조 높은 리듬감을 나타낸 것이 송강 고유의 재질이라고 하겠다.
한시에서도 상자연의 세계를 표현한것은 많다.
쓸쓸히 나뭇잎지는 소리에
굵은 빗소린가 하여
중을 불러 문밖을 나가보랬더니
달이 시냇가 나무에 걸려 있다 하네
<산사야음(山寺夜吟)>
잎지는 소리마저 들리는 고요한 심야의 산사에서 전전반측하다가 잎지는 소리를 빗소리인 양 착각하고 더욱 우수에 잠겨 중을 부른다. 중은 "월괘계남수(月掛溪南樹)"라고 할 뿐 비에 대한 말이 없다. 그윽한 산사의 배경속에서 청각과 시각의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고 시냇가 나무에 달이 걸려 있는 정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시인의 감정이라면 당연히 문을 박차고 그 정경을 탐미하였으리라. 그러나, 중을 시켜 그 정경을 물어 보았다는 것은 송강 시가의 일반적인 특징이 "관념문학"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혈망봉 앞의 절
찬 강물 돌문을 대하여 흐르고
가을 바람에 피리 한 소리
일만산 구름을 깨뜨린다.
<금강산잡영(金剛山雜詠)>
금강산의 절경에 도취되어 몰아의 경지에 서 있는데 가을 바람을 타고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 소리가 일만봉의 구름을 흩어지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피리가 구름을 흩어지게 한 것이 아니고 피리 소리에 놀란 시인이 구름 밖의 또 다른 세계의 아름다움에 놀란 것이다.
어둠빛은 차가운 나무에서 일고
가을소리는 돌여울에 든다.
삼베옷이 이슬에 다 젖어
강뚝을 따라서 달과 함께 돌아온다.
<금암(琴巖)>
달밤 을씨년스런 나무의 모습에서 한기를 느끼며 돌여울에서 가을 소리를 들으며 이슬에 젖은 달빛과 함께 강둑을 따라 돌아오는 멋, 시각과 청각의 조화,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은자의 생활이다.
첫댓글 율곡 송강선생의 교류는
당대뿐 아니라 지금도 세세년년 어느 후대까지
귀감일듯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