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페와 회원들의 글을 보신 분들은 이제 조금 아실 겁니다. 구원은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구원의 서정(개념적 순서, 전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칭의의 결과로 성화가 일어난다는 기초적인 표현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인데요. 현대의 개혁주의 조직신학자 마이클 호튼은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에서 성화를 ‘은혜 안에서 전진하는 길’로 표현하였습니다. 멋진 표현이지요.
이 성화에는 죄 죽이기(mortification)와 영 살리기(vivification)가 있습니다. 죄 죽이기(mortification)로 유명한 청교도 개혁주의 황태자가 존 오웬인데 이것은 원래 칼빈의 신학이었고 오웬이 칼빈을 벤치마킹한 것이었습니다. 마이클 호튼 책을 번역한 분은 죄 죽이기(mortification)와 영 살리기(vivification)를 죽임과 살림으로 번역했는데, 같은 용어입니다. 괄호 안의 영어가 같아요: mortification(죽임)과 vivification(살림). 구분선 아래에서, 호튼의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이 말하는, 죄 죽이기(mortification)와 영 살리기(vivification)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ps) 가독성을 위해서 각주나 추가설명은 댓글로 썼습니다.
최초의 회심과 마찬가지로 성화도 교회, 가족, 개인 차원의 기도 훈련, 묵상하며 성경 읽기, 전도, 교제, 궁핍한 이들에 대한 섬김, 신실한 장로들에 대한 분별 있는 배려뿐만 아니라 공적인 은혜의 수단의 부지런한 사용을 요구하는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다. 점진적 성화에서 우리의 초점은 우리의 경험과 성장의 가시성이 아니라 복음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대로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죽임과 살림
점진적 성화에는 ‘죽임' (mortification)과 '살림' (vivitication)이라는 두 부분이 있는데 칼빈이 지적하는 것처럼 “둘 다 그리스도 안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에게 발생한다." 이 둘은 단계적으로 발생한다기보다는 신앙생활 내내 동시적이고 연속적으로 발생한다.”(기독교강요 3.3.2, 9).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유일하게 죄를 속하며 그 사건은 반복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해 죽는다. 그리스도는 죄에 대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의 십자가를 단번에 지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안팎의 박해에 직면하여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갈 것을 요구하신다(눅 9:23). 우리는 율법과 죄에 대해 결정적으로 죽었지만(바울은 롬 7:1~6에서 사별 후 재혼의 유비를 사용한다. 참조, 갈 2:19) 우리는 내적으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과 계속해서 갈등을 빚는다(롬 7:7~24). 세례 때 우리에게 나타나고 인 쳐진 이 결정적 실재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일은 매일 죽고 다시 살아날 것을 요구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우리의 세례를 삶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성화라는 표현을 통해 말하려 한바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할례를 받았고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골 2:11~12. 참조, 롬 6:4~5, 11). 그러므로 우리는 금욕적인 종파들의 율법주의적인 규정들은 물론이고 율법의 준엄함과 정죄에서도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골 2:16~23) 도덕법이 정의하는 신령한 부르심을 위해서도 해방되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1, 5). 따라서 하나님의 도덕법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여 주지만 복음만이 우리에게 그 길을 갈 수 있는 팔과 다리를 줄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86문은 바울이 칭의를 다룬 뒤에 로마서 6장에서 제기하는 실제적인 질문을 제시한다. “우리는 우리가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비참한 처지에서 구원받았다. 그런데 왜 우리가 여전히 선을 행해야 하는가?" 이 교리문답이 주는 답은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86문). 실제로 87문과 그 답은 "배은망덕하고 회개하지 않는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87문).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거룩한 사람들이라도 이 순종을 그저 약간 시작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순전한 뜻으로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일부만이 아니라 전부를 따라 살기 시작한다."(114문) 그러므로 율법은 첫째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죄와 그리스도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게 하기 위해, 둘째로는 우리의 새로운 순종의 지침으로서, 여전히 선포되어야 한다. 결정적이고 점진적이며 '이미'와 '아직' 이며 죽임과 살림인 성화는 또한 영혼뿐만 아니라 몸도 주장한다(살전 5:23; 고후 5:17; 롬 6:12; 고전 6:15, 20). 이 점에 대해서는 영화 교리를 다룰 때 더 많이 이야기할 것이다.
마이클 호튼,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 pp.662~663.
첫댓글 존 오웬, 성화의 정의
https://cafe.daum.net/1107/YY6J/13
개혁주의 성령론에 대해서 잘 읽었습니다.
이전에 잘 읽었습니다.
오웬, 성화의 점진성 & 칼빈, 아직 전진하는 중
https://cafe.daum.net/1107/YY6J/12
성화가 점진적이라고 말씀하신 오웬과 오웬의 신학적 스승 칼빈의 주장을 잘 읽었습니다.
존 오웬의 성화론(죄죽이기&영살리기), 칼빈의 직접적인 영향
https://cafe.daum.net/1107/YY6J/10
존 오웬이 칼빈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군요.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오웬의 죄 죽이기와 칼빈 주석(롬8:13)
https://cafe.daum.net/1107/YY6J/7
오늘 찾아서 잘 읽었습니다.
칼빈 기독교강요 3.3.3.의 죄 죽이기와 영 살리기
https://cafe.daum.net/1107/Y4cZ/31
칼빈이 이미 말했다면 브랜드 파워가 강력하네요!
오늘은....최고급 뷔페군요~~ 천천히 음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파르님의 댓글이 칭찬으로 들려서 감사합니다. 일단 바쁘실 때는 오늘의 본문만 읽어 보시면 되는데요.
힌국에 죄 죽이기 열풍(?)을 일으킨 존 오웬은 존 칼빈의 것을 벤치마킹 한 것이고요.
현대 개혁주의 신학자 마이클 호튼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죄 죽이기와 영 살리기를 주장합니다.
호튼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6문, 87문을 인용했습니다.
아파르님 표현은 뷔페이고요 제 표현은 종합선물입니다^^
@장코뱅 네, 여러 번 강조하셔서 저도 대강 압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6문)
우리가 우리의 공로가 전혀 없이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비참한 처지에서 구원받는데, 어째서 우리가 선행을 해야 합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고 또한 그의 성령으로 그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새롭게 하시니, 이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에 대해 우리의 삶 전체로 감사하게 하시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며, 또한 각 사람이 그 /// 열매로 /// 자기 믿음을 확신하며, 또한 우리의 경건한 삶을 통해서 우리 이웃들도 그리스도께로 인도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의 '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에 해당하는문답이군요. 이렇게 댓글로 찾아 주시니 편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7문)
감사하지 않는 /// 악한 삶을 계속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 사람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답)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음란한 자, 우상숭배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스러운 자, 술 취하는 자, 비방하는 자, 감도 같은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임을 성경이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하게 살면서 회심을 하지 않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같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4문)
하지만 하나님께로 회심한 자들이 이 계명들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 지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이 순종을 그저 약간 시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전한 뜻으로 하나님의 계명 중 일부만이 아니라 전부를 좇아서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문이 아닌 댓글로 쓰니, 본문 읽기가 편한 것 같습니다. 초보자는 본문만 읽고 넘어갈 수도 있고요.
우리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죄와 싸우는 행보를 이어 나가도록 명하신 분이 주님이신 것을 확실하게 알려 주는군요. 예수께서는 남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는 자기 죄 때문에 날마다 십자가를 지듯 죄 죽이기를 해야 하고, 그로 인해서 영혼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성함을 입을 수 있음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잘 이해하셨네요. 복잡한 듯 하지만 구조적으로 간단한 것을 파악하고 짧게 압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을 읽고 위 댓글을 읽으니 정리가 잘 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