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연민의 눈을 가졌다.
그를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으로 이끌었던 [용서 받지 못한 자]의 말년 병장 태정이 후임으로 온 친구를 구타할 때에도,
인간의 간을 먹는 [구미호 가족]의 구미호일 때도 그 연민의 눈은 또렷했다.
심지어 밤길에서 만날까 두려운 [추격자]의 사이코패스를 연기할 때조차도 그 문장은 유효하다.
피범벅이 되어 공포에 몸을 떨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던 살인마의 텅 빈 눈 안에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가련한 혼란이 담겨 있었다. 하정우는 분명 선과 악의 기준으로 보자며 악을 향해 한 뼘 더 뻗어있는 사람임을 연기할 때도 관객들이 그를 위한 변명거리를 찾게 만든다. 능글거리며 여자들에게 돈을 빌리는 [멋진 하루]의 병운이나 애인 등친 돈으로 면세점에서 구두를 사는 [비스티 보이즈]의 호스트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 있었지만 아카데믹하거나 정형화된 몸의 언어가 하정우에게는 없는 덕이다. "연극할 때는 불안해 보인다거나 무대 연기는 아닌 거 같단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장점, 관객의 반응, 아 내가 이런 역을 했을 때 이입이 잘 됐지 하는 식으로 제가 잘 할 수 있는 걸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보니까 8년 정도 연극을 했는데도 좋지 않은 연기 투나 때가 묻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럴 땐 이런 눈빛, 이럴 땐 왼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 식의 계산된 연기가 아닌 어느 순간에도 하정우일 수밖에 없어 살인마일 때조차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없는 배우. 그런 그가 사랑하는 배우들의 영화를 말했다.
"식상한 영화나 남들이 이미 말한 영화들은 피해가며" 고른 명배우들의 결정적인 순간들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