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도르트신조의 결론)을 읽기에 앞서 장코뱅이 초신자들이 먼저 알아야 할 배경 설명을 먼저 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은 사실 도르트 신조를 요약한 것입니다. 영어 앞 문자만을 따서 TULIP이 된 것이지요.
Total Depravity (전적 타락)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 선택) Limited Atonement (제한 속죄) 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총) Perseverance of saints (성도의 견인) |
이 TULIP은 개혁주의에 반기를 들고 신학적•신앙적으로 도전한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반박이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가독성과 본문의 편안한 구성을 위해 TULIP에 대한 설명은 댓글로 첨부해 놓았습니다.) TULIP(도르트신조 요약)이 나오는 원인이 되었던 알미니안주의의 5대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부분적 타락: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만큼 타락한 것은 아니며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 - 조건적 선택: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누가 복음을 믿을지 미리 아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것을 의미한다. - 보편적 속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 가항적 은총: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시는 은총을 사람은 거부할 수 있다. - 탈락 가능성: 한 번 구원을 받은 사람도 훗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
이상의 기초적 배경을 읽고 구분선 아래의 본문을 읽도록 하시겠습니다.
결론: 잘못된 비난(알미니안)에 대한 반박
도르트 신조는 네덜란드 교회에서 논쟁이 되었던 다섯 가지 조항에 대한 정통 가르침으로 분명하고 단순하며 직접적으로 설명하면서 네덜란드 교회를 혼동케 하였던 오류들을 거부한다. 대회는 이러한 설명과 거절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왔으며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일치함을 선언한다. 하지만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진리와 공평과 사랑을 침해하는 자들(알미니안)은 다음과 같이 언급할 것이다.
● 예정과 그것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개혁교회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든 경건과 신앙에서 끌어낸다. 이는 육신과 마귀의 마취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또한 실망과 확신의 화살들로 많은 자들을 치명적으로 꿰뚫는 사탄의 요새다.
● 이 가르침(도르트 신조)은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 그리고 의롭지 못한 독재자와 위선자로 만든다. 이는 스토아주의, 마니교, 방종주의, 모하메드교와 다를 바 없다.
● 이 가르침(도르트 신조)은 사람들로 하여금 육신적인 자기 확신을 갖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는 그들이 어떻게 살든지 선택된 자의 구원에 위험이 없다고 설득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 확신을 가지고 가장 난폭한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 또한 유기된 자들이 성도의 모든 행위를 하더라도 구원을 위해 소용 없다고 가르친다.
● 이 가르침(도르트 신조)은 단지 하나님의 독단적인 행위에 의해 어떤 죄에 대해서도 개의치 아니 하시고, 세상의 대부분을 영원한 정죄에 이르도록 예정하시고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선택이 믿음과 선행의 원인이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불신앙과 불경건의 원인이 유기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무죄 상태에 있는 신자의 어린 자녀들을 잔인하게 지옥으로 처넣으며, 그들이 받은 세례와 세례 시에 드렸던 기도를 전혀 소용없게 한다. 개혁교회들이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해 반대하는 같은 종류의 가르침이 많다. |
도르트 대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경건하게 부르는 모든 자에게 호소한다. 개혁교회의 믿음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모은 잘못된 비방에 근거해서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대나 근대의 몇몇 교사들의 잘못된 인용이나 곡해한 개인적인 견해에 근거해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개혁교회의 공식적인 신앙고백들과 전체 대회 회원들이 만장일치로지지한 정통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한다.
더욱이 대회는 거짓 고소자들과 많은 교회의 신앙고백에 대해 거짓 증거하고 연약한 자들의 양심을 괴롭게 하며, 신자들의 공동체에 의심을 제공하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생각하라고 엄중히 경고한다.
그리고 이 대회는 목회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경건하고 신앙적으로 다루고, 학교와 교회에서 가르치며, 말과 글로 표현할 것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의 위로를 위해 가르치라고 촉구한다.
▶ 해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복음의 중요한 교리를 반대함으로써 진리를 왜곡시키고 결국 거짓 가르침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정 교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성화에 힘쓰지 않게 만든다고 고소한다. 그들은 예정 교리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이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는 것임을 놓쳤다(엡 1:4). 또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정하시고 부르시는 은혜를 알지 못하였다(롬 8:29).
예정론은 사람의 어떤 행위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결국 그들에게 구원이 있다면 그 근거는 하나님의 예정임을 의미한다. 예정 교리는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예정을 반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복음의 모든 교리를 뒤틀어 버리고 말았다. 예정 교리를 반대하기 위해 원죄 교리를 부정하였다. 원죄 교리를 부정한 다음에 사람의 자유의지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자유의지와 본성의 빛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다음 단계로서 성령의 유효한 역사를 부정하였다. 대신 그들은 성령의 설득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자유의지가 은혜보다 더욱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위함이다.
복음의 교리를 뒤트는 것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범위를 성경에서부터 변조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의 범위를 일반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만 구원의 가능성만을 제공하고 구원의 최종성은 사람의 자유의지에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참된 신자의 타락을 주장하고 성도의 견인 교리를 반대하였다.
도르트 회의에서 오류라고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사 속에서 계속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지독한 오류다. 이렇게 지독한 오류인 알미니안주의가 유행하게 되면 교인들은 구원의 도에 대해 무지하게 되고, 교회는 세속화의 늪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이 가르침이 교회에 침투해서 교인들로 하여금 잘못된 구원의 이해와 확신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한편 이미 그러한 방식으로 구원을 이해하고 있다면, 자기가 의로워지려는 모습을 하고 있을 텐데 성경적 구원의 교리로 고쳐야 한다. 도르트 신조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에 의해 구원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진정한 성령의 유효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알미니안주의는 중생하지 않은 이성이 성경의 중요한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다가 나오게 된 오류다. 이는 이미 펠라기우스가 강조한 내용인데, 17세기에 다시 부활하였다. 그리고 도르트 신조가 작성된 이후에도 17세기 영국 국교회에서 대유행을 하였으며, 18세기부터는 복음적 알미니안주의라고 부르는 웨슬리 신학으로 유행하였고, 19세기에는 웨슬리안 성결운동 속에서, 그리고 20세기 초부터는 오순절 운동에서 유행하였다. 이어 20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는 현대복음주의 운동에서 가장 중심적인 신학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홍만, 『52주 스터디 도르트 신조』(생명의말씀사).
이상의 내용을 읽고 마음이 혹시 불편한 분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장코뱅이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첨언합니다. 현대, 현재에 알미니안계열 교단들이 이단이냐? 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은 아래 링크 글(흙 묻은 구두를 신은 신사)을 읽어 보십시오.
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 흙 묻은 구두를 신은 신사 - Daum 카페
첫댓글 본문을 간략하게 구성하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TULIP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댓글로 설명합니다.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육체적인 생명만 갖고 있는 모든 자연인은 그 본성이 타락하여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에는 다른 질(質)이 있어서 그 중에는 구원 받을 수 있는 참 믿음도 있고 받을 수 없는 유(類)의 믿음도 있는데, 다른 종류의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발휘할 수 있으되 구원에 필요한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주장을 '전적 무능력'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주의할 것은 그 '무능력'이라고 함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능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타락하여 참된 믿음을 갖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으로 보건대 하나님이 참된 믿음을 주시기 전에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못 믿는다는 것이다.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앞의 '전적 타락'설에 의하면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게 되는 것인데, 누구에게 참된 믿음을 줄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3.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앞의 '무조건적 선택'을 받은 사람이 결국 '구속의 언약' 또는 '은혜의 언약'에서 그리스도의 백성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실효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으로 보건대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아니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속의 언약'과도 연관이 있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으로 보건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리로 결코 떨어지지 않고 구원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구속의 언약'과 연관이 있다. <---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위의 5대 강령을 TULIP는 도르트신조의 요약이고 칼빈주의 5대 강령이라고도 합니다.
칼빈주의 5대 강령과 알미니안주위에 대해 비교적 쉽고 명료히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자료는 개혁주의 성도가 알아야 할 기초입니다.
TULIP에 대한 내용과 알미니안 주의에 대한 내용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예전에 예지예정이 맞느냐 예정예지가 맞느냐는 논쟁이 있다는 글을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덮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장코뱅님이 정리해주신 알미니안의 5가지 요점을 읽어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예정예지, 예지예정에 대한 논쟁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흙 묻은 구두를 신은 신사'라는 존중의 표현이 멋있습니다!
공감 및 배려가 담긴 아파르님의 좋은 댓글에 감사합니다.
1. 예지예정 관련해서요...
예지하고 예정한다는 것(예지예정)이 알미니안의 '조건적 선택'입니다. 조건적 선택: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누가 복음을 믿을지 /// 미리 아시고 ///(예지)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예정)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하여, 도르트 신조로 요약된 칼빈주의의 답변과 결론은 '무조건 선택'입니다.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앞의 '전적 타락'설에 의하면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게 되는 것인데, 누구에게 참된 믿음을 줄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전적 타락을 인정하면 무조건 선택으로 가고(개혁주의), 이를 인정하지 않고 부분적 타락을 주장하면 조건적 선택으로 갑니다(알미니안).
2. 예정예지는 '무조건 선택'과 거의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정이 먼저 기초가 되니까 예정예지이고, 예정을 할 때 인간의 상태나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고(무조건 선택) 하나님이 그 주권으로 예정을 해버리셨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3권 21장, "영원한 선택: 하나님은 이로써 어떤 이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또 어떤 이들은 멸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음" --->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한 것을 선택이라 하고 이 선택을 하실 때 하나님은 그 주권으로 '무조건 선택'을 하신 겁니다.
결론: 예정예지(개혁주의) <--> 예지예정(알미니안)
@장코뱅 댓글과 답글을 읽으며 저도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2분께 감사합니다^^
@장코뱅 와우~ 장코뱅님의 설명으로 정리가 학~실히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홍만의 도르트신조 결론과 해설 잘 보았습니다. TULIP에 대한 보조설명도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유익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중간 종합한 측면도 있어서 아주 초신자가 아니면 왠만큼 알아 보실 것 같습니다.
도르트 신조는 칼빈주의의 요약이고 개혁교회의 기본 신조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근차근 잘 알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 및 댓글 감사합니다. 개혁주의 3대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잘 알면 성도들이 헛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올린 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