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연재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글
강신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13.07.31 10:14
[반론 기고] '오늘 자본을 읽다'의 필자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미디어오늘의 외부필진인 김성구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을 통해 '강신준 교수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연재된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해 비판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자본을 읽다'의 필자인 강신준 교수가 김성구 교수의 비판글을 반박하는 글을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경제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전세계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인 맑스주의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두 노장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자본론 해석에 대한 학문적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며 강신준 교수의 반론을 싣기로 하였습니다./편집자주
나는 작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7개월 간 경향신문에 <오늘, 자본을 읽다>라는 제목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였다. 일반 대중들에게 <자본>에 대한 부당한 선입견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고 이 책속에 담긴 고전적 교훈들을 우리 사회에 널리 전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다. 그런데 연재가 처음 시작되자 내 글을 비판하는 글들이 여럿 인터넷에 올라왔다. 신문에 올리는 글은 본래 지면의 제약에다 대중성을 띠어야 하기 때문에 엄밀한 글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엄밀한 잣대로 보면 오해의 소지가 많은 법이고, 이들 비판의 글들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데다 시간적으로도 너무 소모적인 것이어서 일체 무시하고 대응을 하지 않았다. 또한 <자본>은 큰 저작이어서 아직 그 내용이 거의 소개되지도 않은 연재의 앞부분만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도 작용하였다. 연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이들 비판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연재가 모두 끝나고 몇 달이 지난 7월 28일 김성구 교수(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소장, 한신대학교 교수)께서 새삼 내 글에 대한 비판을 <미디어 오늘>에 올렸다. 실명을 밝힌 데다 앞서 내가 대응하지 않았던 비판의 글들까지 다시 거명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답변 형식의 글을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학술논문이나 저서도 아니고 신문에 쓴 대중적인 글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못내 내키지 않지만 경향신문의 연재를 읽어주신 독자들과 그동안 내가 프레시안과 경향신문에서 했던 <자본> 강의를 수강해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로라도 답변의 글을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들 비판의 글들 때문에 내 연재나 강의의 내용이 이 분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엄밀하게 말해서 논쟁적인 글이기보다는 대중적 이해를 염두에 두고 내 글을 비판한 글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이해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밝혀둘 점은 김 교수의 글 제목이 <경향신문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라고 되었는데 혹여 경향신문과 내 글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듯한 오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경향신문은 단지 내 연재를 게재해주었을 뿐 내가 쓴 글의 내용은 당연히 모두 나만의 책임이다.
김 교수의 글은 아마 앞으로 이어질 모양이다. 우선 7월 24일에 올라온 첫 번째 글(<자본> 역자에 의한 <자본> 곡해①)에서 당장 답변해야 할 사항들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인용되는 마르크스의 문장들에는 모두 내가 번역한 도서출판 길의 <자본>의 권수와 쪽수를 표기하였다.
1. 변증법적 유물론의 해석
첫 번째 문제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해석이다. 나는 <자본> 서문의 글을 인용하여 사회의 발전법칙이 유기체의 성숙과정과 비슷하다고 얘기하였다. 이 말은 사회의 경제구조를 이루는 생산양식도 출생과 성숙, 쇠퇴와 소멸의 과정을 밟아 간다는 의미이다. 즉 자본주의는 봉건제 내부에서 출생하여 봉건제와 함께 성숙해가다 봉건제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 때 봉건제를 넘어서고 결국 봉건제의 소멸과 함께 그의 뒤를 잇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다음 생산양식으로 이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다음 생산양식의 맹아들(주로 사회화로 요약되는)이 출생하여 자본주의와 함께 성숙해가다 자본주의의 성숙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 새로운 생산양식이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시작하고 결국 자본주의가 쇠퇴의 끝에서 소멸하면 이행이 완료되는 것이다. 이때 생산양식의 성숙의 척도는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핵심동력으로 지목한 생산력이다. 김 교수는 이런 나의 얘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강 교수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봉건제가 더욱 성숙해진 체제고, 봉건제는 자본주의에 의해 타파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토대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의해 타파되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의 토대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변혁과제는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게 아니라 보다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김 교수의 비판은 내가 변혁과제를 자본주의의 “타도”가 아니라 “성숙”이라고 했다는 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마지막 구절은 이 부분에서 한 것이 아니고 2주 뒤에 연재된 다른 글에서 한 얘기이지만 내가 한 얘기는 맞으므로 맥락은 좀 다르지만 그대로 김 교수의 얘기를 토대로 얘기해보기로 한다. 나는 여기에서 이 성숙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 개혁은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 위에 건설된다는 말입니다.(참고: 나는 “변혁”과 “개혁”을 별로 심각하게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김 교수가 만일 “타도”를 “성숙”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면 그는 여기에서 자본주의 이후 사회가 자본주의 “위”에 세워진다는 것에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이런 해석을 한 이유는 마르크스의 다음 구절에 근거한 것이다.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포함되는 변증법의 이중성을 표현한 부분인데 나는 이 구절을 해당 부분에서 그대로 인용하였다.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 속에 그것의 부정과 그것의 필연적인 몰락에 대한 이해 … (1권, 61쪽)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를 토대로 그것을 넘어서는 “부정”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변혁의 과제로 내가 얘기했던 성숙의 의미인 것이다.(변증법의 기초개념인 지양Aufheben의 의미를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그것은 단순히 현존의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잡아서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건설된다는 것을 강조한 의미인 것이다. 김 교수는 여기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변혁의 과제가 내가 말한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 문맥으로 볼 때 그는 변증법에서 “부정”만을 변혁의 과제로 이해하고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이 부정의 전제가 된다는 것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만일 그렇다면 김 교수는 자신의 이런 변증법에 대한 이해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내 견해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로서는 그런 마르크스 변증법의 개념을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막상 변혁의 과제를 “부정”으로만 간주하고 “긍정의 이해”로는 간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 교수의 이런 견해가 유난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마르크스를 읽고 해석한 사람들 가운데 김 교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변증법의 입체적인 개념이 쉽게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서 마르크스의 원문들을 들이대면서 아무리 내 해석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카이사르의 말대로 사람은 대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들을 위해서는 김 교수의 생각과 내 생각이 어디가 다른지를 밝히는 것이 오히려 변증법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선은 내 생각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두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내가 변혁과제를 성숙으로 보는 관점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정당성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에서 봉건제를 압도했기 때문에 봉건제를 대체하였는데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봉건적 생산력을 발전시킨 것이었다.(“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참고) 자본주의는 봉건제의 개별 생산력을 사회적 생산력으로 발전시켰고 협업과 분업, 선대제, 매뉴팩처, 공장제 등의 경로를 밟아 나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후의 생산력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자본주의가 이룩해 놓은 생산력보다 높아야만 한다. 즉 자본주의 생산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그 위에 새로운 생산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이 한계에 부딪쳐야만 새로운 생산양식이 출현하고 자본주의 생산력은 새로운 생산양식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의 역사적 과제이며 그것의 역사적 정당성이다. 바로 이를 통해서 자본은 무의식중에 더욱 고도의 생산형태를 위한 물적 조건을 창출한다.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 생산력의 발전을 저지하게 된다면 자신의 역사적인 소명에 불성실한 것이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다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점차 노쇠해져서 쇠퇴해가리라는 것이 그대로 입증된다.(3권, 342, 346쪽)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이렇게 이해하면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바로 생산력의 전제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생산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1848년 혁명을 다룬 <프랑스의 계급투쟁>에서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개혁전술이라고 불렀던 것과 <프랑스 내전> 서문에서 엥겔스가 “지금까지 기만의 수단이던 것이 해방의 수단으로 변화”(부르주아의 전술적 수단이 프롤레타리아의 유효한 전술적 수단이 된다는 의미이다)한다라고 했던 말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을 경우 사회주의 분파는 부르주아를 도와 자본주의의 성숙을 촉진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던 말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구절은 자세히 찾아보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실 내가 변증법의 “긍정적 이해”부분을 강조하는 숨은 까닭은 “부정”에만 매몰되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아무런 실질적으로 거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있는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민주노총의 해마다 수차례 반복되는 총파업, 신경영 전략에 대한 대응 실패, 노동법 개정 투쟁의 헛발길 등)을 의식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교훈을 전혀 배우지 못한 우리 노동운동의 전술적 실패를 지적하고 마르크스의 교훈에 입각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임금체계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직무급 임금체계를 주장한 적이 있는데 이 임금원리는 바로 애덤 스미스의 임금이론이기도 하다. “긍적적 이해”가 “부정” 못지 않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전술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2. 수정주의 문제
김 교수가 변증법을 단순히 “부정”의 의미로만 이해하고 “긍정적 이해”를 배제하고 있는 듯한 의심을 보다 뚜렷하게 만드는 것은 내 견해를 마치 판정하듯이 규정하고 있는 다음 구절이다.
맑스의 혁명적인 유물사관을 이렇게 수정주의로 채색해 놓고서는 이게 맑스의 역사발전의 변증법이고 유물론이라고 강 교수는 강변한다.
김 교수는 나의 해석을 “수정주의”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 교수가 수정주의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는 노선논쟁을 둘러싸고 수정주의란 용어와 개량주의라는 용어가 함께 존재한다.(참고로 다른 하나는 교조주의라고 부르고 이들 셋을 보통 노선논쟁의 분파들로 분류한다) 이들 용어는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과학적 구조와 관련이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운동의 최종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적인 수단을 함께 갖추고 있다. 전자를 전략적 목표, 후자를 전술적 수단이라고 부르고 마르크스주의 조직은 대개 전자를 1부 강령, 후자를 2부 강령에 담고 있다.
개량주의란 전술적 수단에 있어서 대립적 전술을 거부하고 타협적 전술을 주장할 경우 붙여지는 이름이다. 반면 수정주의는 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포기했을 때 지칭하는 용어이다.(강신준(2009), “정파문제의 역사적 경험과 민주노조 운동의 발전 전략”, 산업노동연구, 15권 1호 참고) 베른슈타인이 수정주의 논쟁의 핵심을 이루는 그의 저서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강신준 옮김, 한길사)에서 “목표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김 교수는 나의 글 가운데 어디에서 내가 전략적 목표를 포기했다는 근거를 본 것일까? 나는 “타인을 위한 노동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노동해방의 참뜻이며 이것이 자본주의 변혁의 목표라는 점을 연재의 곳곳에서 수 없이 강조하고 있다.
혹시 김 교수가 수정주의를 마르크스의 이론을 수정한 것에 대해서 붙인 것이라고 임의로 이해하고 이 말을 사용하였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나는 연재에서 모든 내 얘기를 마르크스의 글에 근거해서 해석을 하고 있을 뿐이고(그래서 모든 해석에는 마르크스의 본문이 인용되어 있다) 그 해석이 마르크스의 진의에 맞는지의 여부는 오로지 마르크스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수가 그것을 달리 해석한다면 그것은 김 교수와 나 사이의 해석의 차이일 뿐 김 교수의 해석이 마르크스의 진의라는 것은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수정주의가 애초 실천적인 운동노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진의를 판가름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무덤 속으로 들어가 물어볼 수 없지 않은가?) 운동의 실천을 위해 서로 길을 달리 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든다. 수정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혹시 김 교수의 의도라면 김 교수의 글이 정말 논쟁을 위한 것인지 그 진정성에 의심이 든다. 김 교수가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진정으로 논쟁을 하고자 원한다면 김 교수에게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설명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대신 김 교수가 생각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설명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김 교수가 그렇게 변증법적 유물론을 해석하는 이유가 실천적 전술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방금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문제는 마르크스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전적으로 현재의 실천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유기체적 발전과정을 강조하면서 변증법을 설명하는 것도 모두 연재의 뒷 부분 곳곳에서 실천적 전술을 그 방향에 맞추어 제시하려 하였기 때문이다.(대형유통업체의 횡포 문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결여된 전술적 요소, 임금체계, 산별노조 등등) 김 교수께서 이런 방향으로 논쟁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우리 운동의 실천적 전술에 보다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 주는 결과가 되어 그야말로 생산적인 논쟁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3. 봉건제에 대한 이해
다음은 내가 혁명의 발발원인으로 지목한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에 대한 비판이다. 대답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역전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특징인 생산과 소비의 분리와 교환의 개입에 있다는 얘기에 대한 오해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자본주의 착취를 가져온 게 상품교환에 있다는 주장이다. … 상품교환 자체는 착취의 원천이 아니다. 문제는 상품교환경제가 아니라 노동력의 상품화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상품교환경제고, 여기서는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에 의해 노동하는 인민의 빈곤은 불가피해진다.
김 교수의 이 글은 사실 오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왜곡에 가깝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교환은 노동력 상품의 교환이며, 실제 우화가 역전되는 비밀은 교환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력의 교환과 매개된 배후의 생산과정이라는 것도 제법 긴 설명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연재를 조금만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일인데 굳이 뒷부분을 읽지 않고 앞부분의 특정 구절을 본래의 내용에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답변이 필요한 또 한 가지는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봉건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품교환 사회에서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그 부분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봉건제는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소비를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생산자인 농노에 대한 영주의 착취에 기반한 사회였다. 또 강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교환이 일어나는 영역에서 오히려 노동에 따른 성과가 관철될 수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세계는 봉건제가 아니라 상품교환사회며, …
이 부분은 종종 <자본> 강의에서도 나오는 질문이라서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오해는 봉건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먼저 필요한 상식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자급자족적 경제체제였고 자본주의는 교환경제체제라는 사실이다. 자급자족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생산과 소비,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치하는 구조를 가리킨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량이 많아서 생산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성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 교수가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로서도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착취구조처럼 복잡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김 교수의 혼동과 일반 수강자들의 의문은 이런 구조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농노가 가난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김 교수의 얘기처럼 영주의 농노에 대한 수탈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다음 사실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세에는 사적 소유가 인정되지 않았고 공동체 소유만 있었다. 주택과 토지가 모두 공동소유였던 것이다. 로마가 망한 이후 외적의 침입이 일상화되면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농민들이 안전을 위해 영주라는 직업군인을 중심으로 고립된 경제단위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봉건제에서 생산과 소비의 단위는 공동체이고 생산이 잘된 공동체는 잘살고 생산이 잘못된 공동체는 가난했던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는 개별 농노나 영주가 아니라 바로 이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다음으로 이해해야 할 점은 장원이라고 불렀던 이들 공동체 내부에서 영주의 수탈 문제이다. 대개 봉건제 초기에는 이런 수탈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역의 안전 문제 때문에 상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영주는 필수적인 자급적 소비 외에 추가적인 소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 고전장원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영주의 생활수준은 매우 낮았고 수탈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수탈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순수장원이라고 부르는 봉건제 후기로 접어들면서 교역이 안전해지자 점차 상업이 발달하였고 그것이 영주의 사치재에 대한 소비수요를 높여서 수탈을 강화시켰다. 이 교환이 바로 자본주의의 성장과 자급자족체계에 기반을 둔 봉건제의 쇠퇴를 가져왔다. 봉건제 내부에서 자본주의가 성숙해간다는 바로 그 얘기인 것이다. 즉 영주의 수탈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미 봉건제의 쇠퇴와 자본주의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초기 봉건제에서는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공동체 단위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영주의 수탈이 경제구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경제와는 무관한 것으로서 대개 “경제외적 강제”라고 부르는 봉건적 권리, 즉 영주권에 의한 것이었다. 경제구조와 무관한 요인, 예를 들어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가난이 발생한 것을 경제구조의 탓으로 설명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는 경제외적인 수탈 때문에 왜곡되긴 했지만 경제구조 그 자체는 이 우화가 통용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실제로 봉건제 말기에는 농업생산력의 증가에 의해 개별 농가에서 잉여가 축적되면서 부농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yeomanry라고 부르는 부농 계층이 대표적인 부류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봉건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김 교수의 주장은 아무래도 봉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김 교수의 비판은 다행히도(!) 이 정도에서 끝나 있다. 내용이 많지 않은 덕분에 나는 답변에 비교적 긴 설명을 담을 수 있었다. 글의 모양새로 보아 김 교수의 글은 계속 이어질 모양이다. 다음 글에서는 내 글에 대한 자의적인 왜곡이나 아무런 근거 없이 ‘수정주의’같은 딱지를 붙이는 일이 없이 김 교수 자신의 고유한 마르크스 해석과 그것이 갖는 실천적 의미가 담겼으면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생산적인 논쟁이 아닐까 싶다.
후기삼아 덧붙인다면 김 교수가 실명을 언급한 박찬식과 박승호 두 박사의 글에 대해서는 나도 읽어보긴 했으나 여기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탓도 있고 연재가 시작될 무렵의 글들로 김 교수의 글과 비슷하게 자의적으로 내 글을 왜곡시켜 비판한 내용이 많아 연재의 뒷부분과 여기 이 글을 통해서 상당 부분 답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 두 사람의 글은 김 교수의 글과 상당부분 중복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글에는 의도적인 왜곡 외에도 사실을 잘못 이해하거나 지식의 부족을 드러낸 내용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박찬식 박사의 글은 내가 설명한 유물론을 기계적 유물론으로 멋대로 해석하였다. 유물론과 기계적 유물론을 구별하지 못한 것인데 그 결과 그는 사실상 마르크스(!)를 기계적 유물론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아마 아직 공부가 미숙한 분일지 몰라 결론에 지나치게 조급해하지 말 것을 충고로 말씀드리고 싶다.
김 교수께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익명의 비판들에는 내 글이 날조라는 둥, 내 글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둥의 표현을 한 글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노동현장에서 이런 감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개가 격렬하게 짖는 것이 두려움 때문이듯이 이런 표현들은 대개 자신의 무능과 두려움을 고백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들이 보지 못한 마르크스의 다른 면을 얘기하는 글일 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일지 궁금한 일이다. 현장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일수록 변절의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이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가 잘 흔들리고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은퇴가 멀지 않은 사람이고 이런 분들과 권력이나 돈 등과 같은 어떤 이해관계도 다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실천에 동의할 수 없으면 자신의 생각과 실천에 충실하면 그뿐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의 문헌적 정본인 MEGA(Marx Engels Gesamtausgabe를 줄인 말)가 아직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았고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산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이미 한 줌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 분들이 좀 알았으면 한다. 나는 그 한 줌 속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지금 많은 어려움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MEGA의 한국어판을 출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내 글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진정으로 마르크스를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그 분들도 이 한 줌 속에 포함되는 분들일 것이다. 고작 한 줌의 무리에 속한 사람들끼리 무엇 때문에 서로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한 줌의 무리 바깥을 한 번 쳐다보기를 권한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거기에서 찾을 수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