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다. 해도 노을이고 해가 비추는 바다도 노을이다. 길도 노을길이다. 노을에 잠긴 사람들. 노을에 잠겨 노을이 되어 가는 사람들. 새도 배도 눈치가 없다. 눈치도 없이 깍깍대고 눈치도 없이 통통댄다.
새가 깍깍대고 배가 통통대는 포구 너머는 죽방. 이리 봐도 죽방이고 저리 봐도 죽방이다. 죽방은 물이 들 때 따라 들어오는 고기를 가두어서 잡는 그물. 주로 멸치를 노린다. 참나무나 쇠파이프를 바다에 꽂고 그 사이사이에 쳐둔 그물이 죽방이고 죽방렴이다. 이쪽 죽방 그 너머는 삼천포대교고 저쪽 죽방 그 너머는 섬이다. 딱섬이다.
딱섬 옆에 있는 섬은 마도. 그 옆은 신섬. 그 옆은 초항섬. 올해 팔십 박학연 할머니는 섬에 훤하다. 딱섬에서 나고 실안 옆 마을에서 자라고 스무 살 때 실안으로 시집온 할머니다. "실해서 실안인기라." 물질로 벌어들이고 농사로 벌어들이는 마을 실안. 실해서 실속이 있어서 실안이다.
포구 방파제에서 인사를 튼 정인호 씨는 말이 좀 다르다. 외지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놀러온 사천시청 공무원이다. 실안 실은 골짜기를 뜻하는 우리말.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서 실안이란다. 노을길로 불리는 해안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골짜기 중의 골짜기였다며 도로 이쪽저쪽을 가리킨다. 할머니 말도 그럴 듯하고 공무원 말도 그럴 듯하다. 아무튼 실안이다.
해는 넘어가기 직전. 벌겋다. 생전 처음 보는 해인 것 같고 처음 보는 빛깔인 것 같다. 넘어가지 말라고 산은 능선을 쳐두었지만 부질없다. 해는 반이나 넘어가고 능선도 산도 깜깜해진다. 한눈을 팔지 않고 지켜본 탓에 내 눈도 깜깜해진다. 해는 넘어가기 직전이고 나는 실명하기 직전이다. 실안하기 직전이다.
'아, 일몰이다/ 저 장관에 失眼된다 하던가/ 모래바람에 눈멀어진 아재야 이모야/ 저 불길 속에 귓속 고름도 녹슨 가슴도/ 태워 버리자// 노을도 열매 어둠도 열매/ 포구는 실한 열매로 實安 주려 기다리고 있다/ 달에 걸어둔 고향 이젠 내려 풀고/ 두레두레 앉아보자/ 이모야 아재야' (-강정이 시 '실안포구'에서)
"요새는 안 나오네." 죽방을 살펴보고 포구로 돌아온 활용호 선주 조종환 씨도 표정이 깜깜하다. 칠십이 다 돼 가고 죽방 멸치잡이는 50년 경력이다. 죽방으로 잡은 멸치는 최상품. 없어서 못 판다. 오뉴월부터 시월까지가 제철이고 잘 잡힐 때는 하루 오십만원에서 백만원은 너끈하게 번다. 그런 죽방멸치가 올해는 통 잡히지 않는다는 것. 막걸리나 한 잔 해야겠다며 구판장으로 들어간다.
구판장 옆은 횟집. 횟집 앞마당에 동네분들이 '두레두레' 앉아 입담을 푼다. 실안에서 내세울 게 뭐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노을을 꼽는다. 이구동성이다. 한국관광공사인가 하는 데서 실안낙조를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노을로 선정했다며 추켜세운다. 그 다음으로 죽방고기를 꼽고 그 다음으로 삼천포대교 야경. 토박이 임재택(58) 씨는 개불을 덧붙인다.
"실안 개불은 전국 최고 아닌교." 실안은 횟집마다 개불 간판을 내걸고 있다. 물살이 세고 바다 밑이 돌밭인 실안 개불이 맛에서나 양에서나 전국 으뜸이란 것. 대장간에서 주문제작한 갈고리로 바다 밑을 긁어서 잡고 조류의 흐름을 이용한다. 한 번 나가면 백오십 마리에서 삼백 마리 정도 잡는다. 개불철은 얼음 얼고 눈 올 무렵. 음력 정월과 이월이 가장 맛있을 때라고 한다.
동네분 중에 박정순 아주머니는 실안횟집 주인. 고기 육질이 좋아 단골손님이 진주에서도 오고 부산 창원 고성에서도 온다. 밀물썰물 차가 심하고 유속이 빨라 육질이 좋다는 것. 다 같은 자연산이라도 양식장 부근에서 잡은 자연산과 죽방에서 잡은 자연산은 맛이 다르다며 유혹한다. "풍덩!" 바다에서 돌아온 아들이 잡은 고기를 수족관에 한 무더기 들이붓는다. 멸치비늘 냄새를 맡고 죽방으로 몰려든다는 감성돔이 수족관 유리벽에 은빛 나는 몸뚱이를 쿵쿵쿵 들이박는다. 이 유혹을 어찌 버텨낼 것인가.
실안등대는 초록등대. 불빛도 초록불빛을 내보내지 싶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이 된다는 동요처럼 초록빛 바다에 붙박여 등대도 초록인가. 나는 어느 세월에 초록이 되랴만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영영 붙박이고 싶은 바다 실안.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영영 붙박이고 싶은 바다로 내려가는 포구 계단은 가팔라서 붙박이기는커녕 손을 담그는 것조차 겁난다.
"떠나왔다는 게 좋네요." 삼천포에는 오래 전에 와 봤다는 박영 시인은 말을 아낀다. 남들 두 마디 세 마디 꺼낼 때 우물쭈물 한 마디다. 무엇이 시인을 떠나게 했을까. 떠나왔다는 게 좋다고 했을까. 떠나오기는 나도 마찬가지. 내가 남겨 놓고 떠나온 것들. 나를 남겨 놓고 떠나간 것들. 떠날 것은 떠나고 기억만 남아 바다 찬바람에 너덜거린다.
깃발을 너덜거리면서 배가 돌아온다. 포구에서 기다리던 아낙이 밧줄을 건네받아 말뚝에 감는다. 바깥양반처럼 보이는 뱃사람이 배에서 내려 무슨 말을 주고받는다. 고생하셨다는 말 같기도 하고 추운 데 왜 나왔냐는 말 같기도 하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을 쪽으로 걸어간다. 노을이 두 사람을 따라가다가는 힘이 부치는지 주저앉는다.
능선도 별 도리 없다. 딴에는 기세등등해도 넘어가는 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산이 겸연쩍은지 슬그머니 능선을 거둔다. 해도 보이지 않고 산도 보이지 않고 능선도 보이지 않자 삼천포대교가 재주를 부리며 조명을 내뿜는다. 조명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다시 가운데서 양옆으로 몰려간다. 대교 아치가 꼭 산 능선 같다. dgs1116@hanmail.net
■ 대방진 굴항 - 임란 때 거북선 숨긴 자그마한 인공 항구
대방진 굴항(掘港·사진). 사천시 대방동에 있는 자그마한 항이다. 실안에서 삼천포 시내 쪽으로 이삼 분 차를 타고 가면 오른쪽에 숨어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항이 아니고 사람이 흙을 파서(掘) 인위적으로 조성한 항이다. 둑과 나무에 가려 바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숨겨 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93호다.
대방진(大芳鎭)은 고려 말에 조성된 군사진지. 남해안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물리치고 중국을 오가는 교역선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군항시설이다. 병사들이 식수로 썼을 우물자리가 보인다. 현재의 굴항은 1820년경 진주 73개 면 백성을 동원하여 돌로 둑을 쌓아 완공한 것이라고 입구 안내판에 적혀 있다.
굴항에서 삼천포대교 쪽으로 걸어가면 체육공원이 있다. 군위숲이라고도 한다. 바다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라서 군위숲으로 불린다. 숲이 되기 전에는 수군 공동묘지였다고 나이 드신 분들은 증언한다. 사당도 사라지고 묘지도 사라지고 대교 아래로 흐르는 물살만 예전 그대로다. 여전히 기세등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