寄申敬叔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조선 중기의 문신(1556∼1618). 본관: 慶州 자: 자상(子常). 호: 필운(弼雲)·백사(白沙). 시호: 문충(文忠). 1580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583년 사가독서의 은전을 입었다. 1590년 호조참의가 되어 정여립 모반 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아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는 가운데 이조참판 오성군에 봉해졌다. 1600년 영의정이 되어 왕세자의 사부에 임명되고, 이듬해 호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1618년 인목대비 폐위 사건에 반대한 일로 관작이 삭탈되고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났고 포천에 묻혔다.
兩地俱爲放逐臣 양지구위방축신
中間消息各沾巾 중간소식각첨건
淸平山下昭陽水 청평산하소양수
日夜西流到漢津 일야서류도한진
양쪽 다 쫓겨난 신하 귀양살이하는 곳인데,
중간에 들려오는 소식에 눈물만 적시네.
청평산 아래 흐르는 소양강물,
밤낮 서쪽으로 흘러 한양 나루에 이르겠네.
申敬叔 : 敬叔은 申欽(신흠 1566~1628)의 자. 인조 때 학자
兩地 : 지은이가 귀양가 있는 북청과 신흠이 귀양간 춘천.
放逐 : 쫓아냄. 벼슬을 삭탈하고 제 고장으로 내려쫓던 형벌인 放逐鄕里(방축향리).
消息 : 消 사라질 소 息 숨 쉴 식 +안부를 전하는 말이나 글
沾巾 : 눈물로 수건이 젖음.
淸平山 : 춘천시 北山面 淸平里에 있는 산.
昭陽 : 소양강. 漢津 : 한강 또는 한양의 나루.
신흠은 백사보다 열 살 아래지만 함께 선조실록(宣祖實錄)을 편찬했다. 신흠은 광해군 5년(1613) 영창대군의 獄事(옥사)가 일어났을 때 선조의 遺敎7臣(유교7신)의 한 사람으로 관직에서 쫓겨나 춘천으로 귀양 갔고, 백사는 북청으로 귀양 갔다. 전구와 결구는 임금에 대한 충성을 내보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