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엔 먹을 것이 많다. 연휴가 보통 기본 삼일에서 오일까지다. 추석 전날부터 먹는다. 따끈따끈한 떡을 사오면 손이 절로 나간다. 특히 탱글탱글한 살아 있는 통팥이 들어 있으면 몇 개를 먹었는지 모른다. 예전에 떡보라 소문이 그저 난 것이 아니다.
나물 반찬을 할 때의 맛깔스러움은 마다하고, 부침개 할 때의 고소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거실에서 빈둥거리다가 무엇에 홀린 듯 부엌으로 이끌려 빨려 들어간다. ‘고구마 부쳤어?’ 기름이 묻어나던 말던 얼른 잡고 뜨거움을 참고 입속으로 쏙 넣어 본다. 너무 뜨거워 입을 벌리고 천장 보며 ‘하아~’를 해댄다.
전을 다 구우면 한 쟁반 거실에 내다 놓으면 금 새 뚝딱한다. 이러니 살이 안찔 수 있겠는가. 저녁이면 또 어떤가! 아들 내외 왔다고 늘 LA갈비가 올라온다. 갈비 먹방이거던요. 고기에 전에 고깃국에 어느 하나 맛없는 것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명절 첫날 2kg은 붙었겠다.
운동안하고 먹기만 했으나 걱정은 마음뿐이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차려진 밥상은 진수성찬이다. 귀한 송이에 명태, 두부, 무 넣은 탕국, 오돌톨톨한 돼지 수육, 엄지손가락만한 낙지다리, 쫄깃쫄깃한 조기에 난리가 난다. ‘돈쭐내러 왔습니다.’ 출연자처럼 먹어댄다. 이미 배는 찰대로 찼는데도 숟가락을 놓지 않는다. 환장할 노릇이다.
추석날 오후엔 백년손님 사위가 온다. 아들보다 더 천하진미를 내어 놓는다. 먹성 좋은 사위에 장단을 맞추다 보니 배부름을 잊고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굶자는 신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오죽했으면 손녀가 ‘할아버지 배 좀 보세요.’라며 놀렸겠는가.
얼마 전 보건소에서 업무상 필요한 검사를 했다. 혈액과 ‘인바디’를 통한 간단한 신체검사다. 혈액은 좋은 편인데 과체중에 혈압과 혈당이 관리대상이란다. 운동을 한답시고 하지만 태부족이다. 후회할 때면 늦다. 무엇으로 체중을 관리 할까 하다가 달리기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험 삼아 테스트를 했는데 황강체육공원 트랙(2.2km)을 두 바퀴 도는데 무리가 없었다. 골프연습 좀 하고 5시에 출발했다. 하늘에 구름이 끼어 시원한 가을 날씨다. 달리기에 정말 좋은 기회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집에서부터 달렸다. 서서히 몸을 풀 겸 조깅을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니 시원한 강바람이 물보라를 타고 논다. 바람은 어디서 왔다가 가는가. 때로는 무더운 바람을 가지고 괴롭히더니 이렇게 시원함도 가지고 오다니. 세상을 어떤 면에서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넘 좋다고 날뛰어서도 안 되고, 안 좋다고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뭉게 구름타고 놀 듯 이 기분도 잘 조율해야 한다.
공원 트랙을 돌면서 고민을 한다. 한 바퀴를 돌까? 두 바퀴를 돌까? 아직은 두 바퀴가 무리겠지? 하지만 오늘은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데 달려보고 결정할까?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연휴에 많이 먹은 탓인지 제법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 짧은 반바지에 티를 입고 달리는데 모자 쓴 이마에 모처럼 땀이 흐른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회인가. 약간 상기된 기분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냥 볼 수도 있는데 ‘대단하다’며 부러워서 본다는 착각에 빠져 약간 빠르게 달린다. 예전에 풀코스를 달리던 기분으로 말이야. 문제는 신나게 보란 듯이 달린 이후에 나타났다. 두 바퀴를 100m 앞에 두고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다음을 기약하고 속도를 낮췄다. 결국은 걷게 되고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오른쪽 다리에 힘을 더 준다. 힘차게 달리던 징검다리는 창피하게 절뚝거리며 건넜다. 다시 시작하려는 크나큰 결심이 작심삼일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릎관절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다. 근육은 자주 있던 일이라 별 걱정 안한다. 꼭 예전의 푹 꺼진 뱃살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