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에 볼것이 없어 옛날 영화를 찾다가 톨스토이의 작품 전쟁과 평화를 발견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영화에서 만난 명대사!
아직 그 책을 읽어본 기억이 없어서~^ 만든지 오래된 작품이지만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많은 것을 알았고, 배웠고, 느꼈고....!
........................................
안드레이 공작은 전투에서 부상한 뒤 러시아로 돌아왔습니다.
나타샤는 피난길에 안드레이 공작이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자기의 잘못 용서해주기를 빌며 정성껏 간호를 합니다.
어느 날 병상에 누워있던 안드레이가 나타샤에게 말합니다.
나타샤, 내가 멋진 꿈을 꿨어
꿈에서 내가 죽었는데 죽자마자 깨어난거야 그래~
'죽음이란 깨어남이야~ 모든 게 너무 간단해'
아래는 영화, 전쟁과 평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The most difficult thing-but an essential one-is to love Life, to love it even while one suffers, because Life is all, life is God, and to love Life means to love God.
2022년 8월 19일 아버지가 96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찬송을 불러드리는 사이
졸음이 와서 스르르 잠이 드신 것처럼 아주 조용히 - 마치 호롱불 기름이 떨어져 서서히 불빛이 사그라지듯이
그렇게 평온하게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찬송을 불러드리는 사이
아버지는 아주 평온하고,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셨고,
잠깐은 눈을 더 크게 뜨시고 뭔가를 응시凝視하기도 하셨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아주 짧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길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나중에 그동안 읽었던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에서 죽음에 대한 내용이 떠 올려졌습니다.
아래는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톨스토이이의 작품, 전쟁과 평화에서 안드레이가 하는 말과 아주 유사합니다. 아니, 톨스토이와 스베덴보리의 죽음에 대한 견해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아래=
'죽음'은 다시 깨어나 계속 사는 것을 의미한다.
제46장 사람이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에 들어가는 것
445. 사람의 몸이 그 영의 생각과 애정(이는 영이 영계로부터 받는 것이다)에 상응하는 육체적 기능을 이 세상에서 더 이 상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즉 폐의 호흡과 심장의 박동이 그치면, 사람은 죽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사람은 죽지 않는다. 단지 이 세상에 살 때 필요했던 육체에서 분리되었을 뿐, 사람 자체는 계속 사는 것이다. 사람 자체는 계속 산다고 한 것은 사람은 몸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영 때문에 사람인 까닭이다. 사람 안에서 그의 영이 생각하는 것이며, 생각과 애정이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단지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 로 건너가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나오는 '죽음'은 다시 깨어나 계속 사는 것을 의미한다.
446 호흡과 심장고동은 영과 가장 내적으로 교통한다. 영의 생각은 호흡과 교통하고,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인 애정은 심장과 교통한다. 따라서 몸에서 그 두 움직임이 멈추면 즉시 영과 몸은 분리된다. 폐의 호흡과 심장의 박동이라는 이 두 움직임은 본질적인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그것이 끊어지면 영은 영 자체가 되고 몸은 영의 생명이 떠났으므로 싸늘해지고 부패하기 시작한다.
사람의 영이 호흡과 심장에 가장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모든 생명활동이 전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각 세세한 것까지 그 두 움직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447. 몸에서 분리된 뒤에도 사람의 영은 심장의 고동이 완전 멋을 때까지 몸 안에 잠시 머문다. 이것은 사망원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어떤 경우는 심장의 고동이 꽤 오래 지속되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심장 고동이 멎는 즉시 사람은 깨어나는데. 이 일은 오직 주님만이 하신다. '깨어난다'는 것은 사람의 영이 몸에서 나와 영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이것을 보통 '부활' 이라고 한다.
심장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영이 몸에서 분리되지 않는 이유는 심장이 사랑에서 비롯되는 애정에 상응하기 때문이고 사랑이 사람의 생명 자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생명의 온기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연결이 계속되는 한 상응도 계속되고, 상응에 의해서 몸 안에서의 영도 지속된다.
448. 나는 이 깨어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생한 체험으로 듣고 보았다. 그 실제 경험은 내가 그 과정을 완전히 이해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449. 나는 몸의 감각이 기능을 멈춘 상태, 즉 사람들이 죽는 때와 아주 흡사한 상태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내적 생명과 사고기능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을 통해 사람들이 죽음에서 깨어날 때 어떻게 되는가를 지각하고 기억해둘 수 있게 하신 것이다.
내 몸의 호흡은 거의 정지되었고 내적인 호흡 즉 영의 호흡만 계속되고 있었으며 거기에 몸의 호흡이 아주 가늘고 조용하게 연결되고 있었다. 그 다음, 먼저 내 심장박동과 천적(天的) 나라와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그 나라가 사람의 심장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서 온 천사들이 보였는데 일부는 멀리 있었고 둘은 내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내 자신의 모든 애정은 제거되고 오직 사고와 지각만 계속되었다.
(2) 그런 상태로 몇 시간이 지나자 내 주위에 있던 영들이 내가 죽은 줄 알고 점차 물러갔다. 방부 처리된 시체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기가 느껴졌다. 천적 천사가 와 있을 때는 시신에 속한 모든 것에서 향기가 나고, 영들은 이 냄새가 나면 가까이 오지 못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영원한 삶으로 들어갈 때 악령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내 머리맡에 앉아 있던 천사들은 침묵을 지키면서 그들의 생각만 내 생각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자 천사들은 이제 사람의 영이 몸에서 떠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알았다. 생각을 이렇게 나누는 것은 그들이 내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이루어졌다.
이것이 천국에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이다.
(3) 죽음에서 깨어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도록 내 사고와 감지능력이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천사들이 먼저 내 생각이 어떤 것인지, 죽어가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하는 생각인 영원한 삶에 대한 생각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내 마음이 그 생각 안에 머물러 있기를 그들이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사람의 영은 이 세상에서의 그의 전반적 애정, 즉 주된 애정에서 나오는 생각 속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몸이 숨을 거둘 때 하는 마지막 생각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고 느낄 수 있게 특별히 허락된 것은 내 마음의 내면, 즉 내 영의 내면을 잡아당기고 끌어내는 것 같은 현상이었다. 이것은 주께서 하시는 것이고 깨어남이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450. 깨어난 사람과 함께 있는 천적 천사들은 그들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깨어난 영이 더 이상 천적 천사와 함께 있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면 천사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이렇게 되면 주의 영적나라에서 천사들이 오고, 이들을 통해 그 영은 빛을 사용하게 된다. 이들이 오기 전에는 그 영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생각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볼 수 있었다. 마치 천사들이 사람의 눈이 열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왼쪽 눈에서 콧등 목으로 한 꺼풀을 벗겨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지만 그 영에게는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꺼풀이 벗겨지는 것 같이 되면 잠에서 깨어날 때 눈꺼풀을 통해 비치는 것처럼 아주 희미한 빛이 느껴진다. 나에게는 그 희미한 빛이 천국 색조를 띤 것으로 보였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 빛깔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 다음 무엇인가 얼굴에서 부드럽게 벗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자 영적 사고가 깨어났다. 이렇게 얼굴에서 무엇을 벗겨내는 것도 영이 자연적 사고에서 영적 사고로 옮겨감을 표상하는 하나의 외관이다. 천사들은 깨어나는 사람에게 사랑을 담지 않은 어떤 개념도 닿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가 빛을 즐기기 시작하면 영적 천사들은 그 새로 들어온 영이 그 상태에서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그 영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 세계에 대한 사실들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가르침을 원하지 않는 영은 천사들로부터 떠나고 싶어한다. 그래도 천사들은 그 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 영이 천사를 떠나는 것이다. 천사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들을 돕고 가르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 외에 더 바라는 것이 없다.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이다.
영이 그렇게 천사로부터 떠나면 선한 영들이 그를 받아들인다. 그가 함께 머무는 한은 선한 영들은 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준다. 그러나 그의 이 세상 삶이 선한 사람들과 벗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으면 그는 거기서도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런 과정이 세상에서 그와 완전히 동질의 삶을 산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필요한 만큼 지속되고 반복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의 삶을 찾은 것이고, 놀랍게도 세상에서 산 것과 똑같이 살아간다.
451. 사람의 사후 생활의 이 시작 단계는 며칠간을 넘지 않는다. 앞으로 나올 내용은 사람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를 거쳐 천국이나 지옥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도 허락하심에 따라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452. 죽은 지 사흘째 되는 사람들과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알고 지냈던 세 명에게 그들의 시신을 묻기 위한 장례식이 계획되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을 묻으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자기들은 살아 있으며 지금 땅에 묻히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사용하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세상에 살 때 이런 사후 생활을 믿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교회 교인들 거의 전부가 그렇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지상에 살 때 육신의 삶이 끝난 뒤의 어떠한 영적 삶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기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그런 불신을 확고히 한 사람들은 자기와 똑같은 사람들과 합류하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 그런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신성을 거부하고 교회의 진리를 경멸하므로 지옥의 어느 공동체와 연결된다.
사람이 영혼의 영생이라는 개념을 확고히 반대하면 그 정도만큼 천국과 교회에 속한 것도 반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 참고 :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 388~393쪽
첫댓글
천재들은 통하는 모양입니다.
스베덴보리와 톨스토이!
두 작가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