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표현보다 더 중요하다. 말다툼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묘사한 것과 같은 교사는 듣는 사람의 순종을 확보하기 위해서 부드럽고 유려한 어조로 말할 뿐 아니라 격렬한 어조로 말하더라도 체면을 잃는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생활이 그를 보호해서 멸시를 받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정한 생활을 견지하는 동시에 세평(世評)도 좋도록 노력한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선한 일에 조심하며(고후 8:21),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사랑한다.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에도 말이 아니라 말하는 내용으로 그들을 기쁘게 한다. 사실대로 말할수록 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교사는 자기가 하는 말에 지배될 것이 아니라 말을 지배해야 된다고 믿는다. 이런 뜻으로 사도는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고 한다(고전 1:17).
역시 같은 뜻으로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너는 그들로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고 한다(딤후 2:14). 그런데 이것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거역할 때에 우리가 진리를 변호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도가 감독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 것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딛 1:9).
말다툼이라는 것은 진리로 오류를 극복하려고 조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표현보다 자기의 표현이 선택되게 하려고 애쓴다는 뜻이다. 말다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조용한 방식이나 유려하고 격렬한 방식을 쓰더라도, 진실을 분명하고 즐겁고 효과 있게 말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사랑은 교훈의 목적이며(딤전 1:5)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지만(롬 13:10) 그 사랑도 사랑하는 대상이 진실되지 못하고 거짓인 때에는 바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체의 모양은 아름다워도 마음 상태가 나쁜 사람은 몸이 병든 사람보다 사랑의 대상으로서 더 괴로운 존재인 것과 같이,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은 웅변가일수록 더욱 가련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웅변과 지혜를 겸비했다는 것은 적합한 말로 진실을 표현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진술체로 적합한 말을 사용하며, 유려체로 우아한 말을 사용하며, 숭엄체로 강력한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웅변과 지혜를 겸비할 수 없는 사람은 지혜 없는 웅변보다 웅변이 없는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우구스티누스, 『기독교 교양』, p.105.
첫댓글 유려하다 [流麗--] : 거침이 없이 미끈하고 아름답다
세평(世評) : 어떤 인물이나 일에 대하여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평판
숭엄하다 [崇嚴--]: 숭고하고 존엄하다
댓글로 단어의 뜻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아파르 공감합니다.
신비주의, 이단, 시이비, 분파에 있는 웅변가들이 목청껏 거짓을 전하면 전할수록....
점점 더 추해지고 가련해지며 불쌍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지옥에 가는 수순이 기다립니다.
공감합니다. 차라리 그들에게 말재주가 없는 것이 그들의 영혼과 추종자들의 삶에도 유익했을텐데 말이죠... ㅠㅠ
@아파르 네, 그렇습니다.
이단이나 신비주의자치고 말재주 없는 자가 없습니다. 이미 양심에는 화인을 맞았지만 입 놀림은 화려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뱀인데요. 동물의 왕국 오프팅 신을 보면 뱀이 두 갈래 혀를 낼름거리는 것을 보며 이단 수괴들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장코뱅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22
여러모로 삶과 언어의 습관을 반성하게 하는 어거스틴의 글이네요.. 저는 온라인에 댓글이나 글을 쓰고서 후회하는 일이 많은데 매우 찔리는 글이라 북마크 해놓고 자주 읽어야 겠어요..
아파르님은 크게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님의 글에서 신앙의 경험, 솔직한 체험, 덕, 지혜 같은 것을 많이 보았어요.
그 댓글 중에 제가 뽑은 백미는...
여선지 드보라 같은, 시골 동네 노인들 사이에서 빛나는 어르신, 할머니였어요. 그 할머니가 젊은 신앙의 동지들(아파르님 등)로부터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마 할머니도 주님께 성도들의 방문을 감사히 여기며 기도하셨을 것 같습니다. 서로가 주님 안에서 은혜를 주고 받은 것이지요.
@장코뱅 저도 그 글에서 가슴이 뭉클했었습니다.
@노베 저도 그랬습니다. 은혜를 나누어주는 댓글이었습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
어거스팀이 이런 말을 했군요. 고대에 수사학의 발달로 교회 내에도 이런 웅변가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마이크도 없으니 많은 청중들에게 들리게 하려면 발성과 성량을 최대한 크게 기술적으로 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설교도 웅변적으로 했을 텐데요. 크고 화려하게 말을 할지라도 내용이 없고 진실하지 않은 가르침에 대해서 경계를 하고 있군요. 예나 지금이나 말은 언제나 진실하고 솔직담백하며 간단명료하고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좋은 말 같습니다. 말 재주가 없다면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신뢰감을 쌓는 길이기도 하지요.
역사적 배경을 담은 좋은 댓글입니다.
말 재주 좋은 거말말쟁이와 위선자는 언제가 그 정체가 드러나고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요일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천이다 진실되지 못한자들을 분별할 수 있는 말씀을 들어 설명해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