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방법(1)
사회생활을 하다가 보면 장흥위씨의 종원 숫자가 적으니까 '희성'이라면서 위씨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위씨에 대해 관심을 보일 때 잘 모른다고 하지말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가르쳐주면 좋겠습니다. 직장에서 자주 들었던 질문을 중심으로 문답식으로 엮어, 2009년 군입대했던 큰애에게 편지로 알려주었던 내용입니다. 혹시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고, 장흥위씨를 소개할 때 참고하세요.
[문] 본관(관향)이 어디입니까?
[답] 전라도 장흥입니다.
[문] 장흥위씨 몇대손이며 무슨파입니까?
[답] 35세로 행원파이며, 부장공 14대손입니다.(행원파 "~복"자 항렬의 경우)
[문] 매우 희성인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 몇 가구가 삽니까?
[답]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장흥위씨는 남한에 총 8,908 가구, 28,675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되었습니다. 알고보면 그렇게 숫자가 적은 것이 아닙니다.(북한에 약 3만명 이상 추산). 특히 '희성'이라는 말은 벼슬한 사람이 적다는 의미인데,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과거 급제자가 50명 이상이나 되어 인구수는 적지만 희성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문] 장흥위씨의 시조는?
[답] 시조공 경(鏡) 字 할아버지는 638년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 8학사[ 방(房)·위(魏)·홍(洪)·목(睦)·기(奇)·은(殷)·길(吉)·봉(奉) ] 중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셨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귀족계급인 아찬 벼슬을 했습니다.
[문]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은?
[답]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국사 1분(7세 휘 원개, 원감국사)과 문하시중 1분(5세 휘 계정, 충렬공)을 배출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26세 존재공 위백규 할아버지께서 실학자로서 이름을 높였으며 공의 작품이 수능문제에 출제되기도 했습니다.
[문] 장흥위씨도 불천위 제사가 있는가요?
[답] 매년 5월 첫 일요일에 실시하는 하산대제가 있습니다. 전국의 종친들이 장흥 하산사에 모여 시조공 휘 경, 중시조공 휘 창주, 5세 휘 계정, 14세 휘 충, 15세 휘 덕룡 할아버지 등 나라에 공이 많은 다섯분에 대해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향사서원에 배향된 향불천위와 곳곳의 문사서원에 배향된 문중불천위가 있습니다.
[문] 장흥위씨가 조선시대 전기에 알려진 인물이 드문 이유는?
[답] 고려말 이성계장군의 반란 음모를 막으려던 14세 판사공 휘 충 할아버지의 뜻이 꺾여지면서, 이후 조선시대 초기 3대에 걸쳐 벼슬길이 막혔습니다. 이후 가문에 피해는 컸지만 일시적인 영달보다는 충절을 지킨 조상의 후손이라는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문] 조선시대 후기에도 인물이 없는가요?
[답] 조선시대 전기에는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임진왜란 당시 족보에 기록된 장흥위씨 21세 30분의 할아버지 중에서 25분이 호조판서 등 높은 벼슬을 할 정도로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집안입니다. 비록 조선시대 초기에는 국가의 견제로 문중의 세가 많이 약해졌지만, 조선시대 후기를 중심으로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 총 51명(문과:12, 무과:12, 사마시:27)이나 되는 집안입니다.
[문] 오늘날 출세한 인물은?
[답] 최초 항공우주공학 박사인 (고)위상규 교수, 전 조흥은행장 위성복, 신한은행 위성호 사장, 러시아 대사 위성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위철환, 육군중장 위승호, 골프천재 위성미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TV와 신문에는 위재천 KBS기자와 위서현 KBS 아나운서가 자주 등장합니다. 또, 전통적으로 벼슬보다는 학문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교수나 의사 등 학자들이 많습니다.(바뀌기 때문에 계속 자료를 수정해야함)
[문] 장흥위씨들이 많이 사는 곳은 어디인가요?
[답] 북한의 함흥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세거지를 이루면서 분포하는데, 전라도 장흥에 특히 많이 거주합니다. 그 중 현재 100여 가구 정도 집성촌을 유지하는 곳은 장흥 방촌, 여수 산수, 김천 운곡 등이 있습니다.
[문] 그 외에 자랑할만한 것은?
[답] 조선시대 전기에는 정부에 의해 강제로 벼슬길이 막혔는데도 불구하고 반가의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여, 높은 벼슬을 했던 성씨들보다도 많은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장흥 방촌마을(문화재 6채)이 있습니다.(안동 하회마을은 5채임). 특히 시골마을인 방촌에는 정부에서 장흥위씨의 박물관인 방촌유물전시관도 건립하여 개관 중입니다.
또한 장흥에는 향사서원이 3곳(석천서원, 죽천사, 다산사) 이나 보존되어 조상을 숭배하고 학문을 중시하는 유가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그외에 장흥읍내 입구에는 존재 위백규 할아버지의 동상이 자리잡아 장흥을 빛낸 인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