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적 시론
내 몸속 DNA를 찾아서
김덕남
1. 전두엽을 열다
어린 시절, 외로움이 고독을 키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생각이 많은 아이가 되고 독서에 눈을 뜬 게 오늘의 나를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왜 시조시인인가? 세상 살다 보면 몇 차례 고비가 있다. 한 자리를 팠으면 무르익어야 할 나이다. 그런데 뒤늦게 굳이 시조를 쓰는 것은 넋두리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마음 깊숙이 숨겨진 내적 본능을 발현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구조는 대부분 2, 3마디로 되어 있다. 여기에 토씨를 더하고 뺌으로서 3, 4조의 자연스런 율격이 되는 것이다. 이 율격에 이야기를 얹고, 그 이야기에 사상, 철학, 시대정신이 가미되면 시조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율격을 타는 재미를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내 몸속의 ‘DNA를 찾아’ 가는 길이니 어찌 멈출 수 있을 것인가. 더러는 ‘낯설은 짜깁기로 구슬 꿰다 코를 꿰어/비몽과 사몽 사이에 찌 하나를 드리’울망정 내 안에서 돋아나는 언어의 종유석을 캐야만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믿는다. 문학은 살아온 인생만큼 그 깊이를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시는 체험이다’라고 릴케가 『말테의 수기』에서 말한 것처럼 직접체험이든 간접체험이든 체화된 언어로 시를 쓸 때 감동을 준다. 체험을 바탕으로 희망을 갖고 전두엽을 열어 창작의 순간을 맞고 싶다.
2. 시대정신을 풀다
시조는 시대정신을 풀어가야 한다. 일찍이 다산 선생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대를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특히 시절가조時節歌調라는 시조時調를 쓰는 입장에서야 더 말해 무엇 하리. 그래서 시인은 ‘세상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여야 한다지 않던가. 이 시대의 아픔은 도처에 깔려있다. 현실에 지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따뜻한 위로의 눈으로, 희망을 줄 수 있는 시어 하나를 찾는다면 밤잠을 설쳐도 글을 쓰는 보람을 찾을 수 있겠다. ‘갈 길 놓친 왜가리의 구불텅한 목덜미’로 노숙의 아픔을 그린 「왜가리」, ‘치솟는 빌딩에 가려 빛을 본 지 오래인’ 지하철의 구걸인 「공」과 「포갠다는 것」, 비정규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하는 그늘 속의 사람들을 그린 「귀표 혹은 코뚜레」, ‘면발에 구르는 눈물’을 ‘고명으로 얹는’ 「라면 먹는 남자」, ‘트럭의 짐칸에서 바닥 잡고 흔들리’는 「꽃몸뻬」가 이를 말해준다.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다문화가족의 ‘어눌한 말씨에도 씨눈을 틔워보’는 「하루」, ‘웃자란 눈썹 자르다 송두리째 파낸 기억’의 치매노인을 다룬 「요양원 일기」 등에도 눈길을 돌린다. 어느 날 피붙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거울 속 분칠하는 한 여자가 그를 본다
웃자란 눈썹 자르다 송두리째 파낸 기억
흐릿한 눈동자에 갇힌
새 한 마리 파닥인다
외계인이 찾아왔나, 어느 별을 헤맸더냐
눈시울에 얹혀있는 낯선 자식 바라보다
기억 속 창밖을 향해 더듬더듬 읊는다
꽃신을 신던 발이 자꾸만 재촉한다
뒷산의 뻐꾹새가 저리 운지 오래라고
철침대 난간을 잡고
허물 벗는 꿈을 꾼다
- 「요양원 일기」 전문
여기 요양원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한 여인이 있다. 우리들의 어머니일 수도 언젠가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거울 속 분(粉)칠 또는 분(糞)칠하는 여인, 눈시울에 얹혀 있는 자식을 보고도 ‘외계인이 찾아왔나, 어느 별을 헤맸더냐’고 낯설어 하고 있다. 이미 세상의 분별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철침대 난간을 잡고/허물 벗는 꿈을 꾸’는 이 막막한 현실은 기억의 상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생을 벗고 재생의 길로 들어서는 몸바꿈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이 시조가 쉽사리 비관적 정서에 물들지 않은 것은 존재의 틈을 벌리는 기억의 망실이 거추장스러운 허물을 벗고 새 생명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염창권 시인은 평을 한 바 있다. 힘들지만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여고시절 생활기록부의 취미 또는 특기 란에 ‘공상’이라 쓴 적이 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공상은 취미가 될 수 없다. 차라리 고상이라 적어라’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공상이든 망상이든 상상의 나래를 접을 수는 없었다. 그 ‘공상’이 내 문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본다.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샐러리맨들의 외줄타기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체득했다. ‘바늘구멍 면접으로 겨우 잡은 밥줄 하나’를 놓칠까봐 ‘뼛속도 속내도 비워’내야 겨우 죽지를 펼 수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날마다 ‘바람의 숨결 타듯 허공을 걸어가듯’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지만 ‘하얏차! 날아 오르’고 싶은 희망을 「줄광대」에 담아 보았다.
3. 율격과 여백을 담다
시조는 함축미, 절제미, 율격미에다 시대정신을 담아야 하며, 그 이면에 많은 뜻을 담는 여백을 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여백 즉 글 밖의 글에서 독자들은 무한의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글 밖의 글에서 길을 찾거나 아하! 하고 무릎을 칠 수 있다면 그 또한 글 쓰는 사람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시조가 창에서 비롯되었듯 그 리듬은 매우 중요하다. 時節歌調란 바로 그 시대 삶의 노래이다. 그 삶에는 흐름이 있고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유유히 흘러가다가도 소용돌이치거나 천척절애에 내리꽂히는 폭포 같은 삶도 만난다. 그처럼 흐름의 낙차를 리듬감 있게 살려내기 위해 한 편의 작품을 써서는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소리 내어 읽어본다. 물결이 흘러가듯 출렁출렁하는지, 걸리는 데는 없는지 읽고 또 읽어본다.
울음낭 터뜨리고//나 대신 누가 우는가//가을을 끌어안고//밤새워 누가 우는가//그믐달//새벽이슬 밟으며//한 사람을 보낸다
- 「귀뚜라미」 전문
호륵 호륵/호로리요우//숲속의 초록 방언//분수가 솟구치듯/실로폰을 딛고 간다//온 산이/가슴을 푸는//탱탱한/오월 한낮
- 「꾀꼬리」 전문
혀 같은 새순 나와//톱니가 되기까지//한 생을 엎드린 채//푸른 별을 동경했다//서릿발//밀어 올리는//조선의 저 무명치마
- 「냉이」 전문
4. 나와의 대화를 하다
수행자가 둘레를 깨끗이 하고 참선에 들 듯 시를 쓰는 과정도 수행의 과정이라고 본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우고 자신을 들여다본다. 삼라만상이 잠들면 별들은 더욱 반짝거린다. 전두엽 후두엽 측두엽까지 최대한 열어놓고 심장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내 전생과 후생까지도 끌어오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 극점에서 오두막에 살던 뒤뜰의 댓잎소리가 사운거리며 나를 찾아 올 때 나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나 죽어 한 필부의 젓대로나 태어나리
노래로 한세상을 달래어 살다가도
그리움 지는 달밤엔 가슴으로 울리라
그 다음 생 또 있다면 빗자루로 태어나리
티끌 먼지 쓸어내어 이 세상을 맑히다가
해 지면 거꾸로 서서 면벽수행 하리라
화살이나 죽창은 내 뜻이 아닌 것을
속 비워 어깨 서로 기대며 다독이다
생애에 단 한 번 꽃으로 경전 피워 보리라
-「대[竹]의 기원」 전문
시의 재료가 고갈될 때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간다. 소설이나 영화로 다양한 삶을 접해 보는 것도 나를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여행은 정신을 살찌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주산지로 문학기행을 간 적이 있다. 왕버들이 물속에 몸을 담근 채로 수백 년을 수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물에 비친 그림자는 물속에 또 다른 신비한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중 다 썩고 밑둥치만 남은 나무에서 순탄치만은 않았을 나무의 길을 생각해 봤다. 단지 정경만으로는 시의 정신을 살리지 못한다. 물속에 몸통을 내린 정진의 길을 생각하니 나무도 저렇듯 ‘눈비도 달게 받고 달빛도 고이 받아 / 향기는 나비에게 뿌리는 버들치에게 / 마지막 남은 한 획에 물잠자리 앉’히는 길을 걸어가고 있구나. 그렇다, 너와 나의 구별도 욕망도 자아도 다 내려놓고 왕버들처럼 살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보며 얼른 메모를 했다.
5. 죽은 자와 소통하다
나는 신들의 도시,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 경주는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울려 소통하며 살고 있다. 수많은 고분이 오늘도 산 자를 불러 모은다. 때로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불러내어 역사를 재생하기도 한다. 역사물에 관심이 많은 것은 태어나고 살아 온 곳과 무관치 않으리라. 핏줄의 내력인지도 모르겠다. 꽃다운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산화한 아버지라는 그 이름은 역사의 산 증인이자 명치끝에 매달린 가족사의 통증이다. 그래서 ‘볼 붉은 혼’을 찾아 탐방하듯 순례하듯 역사의 현장을 찾기도 한다.
뉘 고르듯 잡풀 뽑는 왕릉 위의 저 여자
켜켜이 쌓인 시간 호미질로 불러낸다
한 생이 소금꽃 피어 속살이 내비치는
솔 향 담뿍 풀어 어질머리 앓는 한낮
베이고 뜯겨져도 감싸는 풀잎처럼
비바람 끌어안는다면 다시 천년 못 가랴
굽 높은 접시 가득 제단에 올리는 땀
스란치마 한 자락을 찰찰 끄는 그날 바라
덩두렷 봉분에 앉아 알 하나를 품는다
- 「알과 여자 – 오릉에서」 전문
오릉은 난생신화를 간직한 박혁거세와 그의 왕비 알영부인 등 신라 초기 박 씨 왕들의 무덤이다. 현재의 여인은 신성한 봉분에 앉아 잡풀을 뽑지만 실은 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삶을 하나의 선상에 놓으니 풀 뽑는 여인이 알영부인으로 현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신화적 모성으로 역사를 재생한 것이다. 지금은 풀을 뽑아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스란치마 한 자락을 찰찰 끄는 그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자 하였다.
이렇듯 내 시조는 자연 속에서,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역사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체험 공간을 산책하면서 태어난다. 그러나 두렵다. 내 시에 영혼이 따라오지 않을까봐. 몸만 불쑥 나가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나를 다독이며 채근한다. 몸과 영혼이 함께 가자고. 또한 사물에 현미경을 들이대듯 드릴로 이면을 뚫듯 시의 세계를 확장하면서 깊이를 갖고 싶다. 그리하여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날 때까지 시조를 향한 내 발걸음을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