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알파고
최고만 고집하는 초읽기의 성과였어
묘수를 넘어서라 귀엣말이 쟁쟁했지
당신은 이미 알았어, 배신이 온다는 걸
당신을 빚어놓고 보기 좋다 하신 그분
선악과를 따먹어라 뱀들이 유혹할 때
그분은 모른 척했지, 당신 눈을 밝히려
알파가 가고나면 베타가 온다는 걸
칼에 베인다고 칼에 죄를 묻겠는가
진정한 고수를 향해 당신을 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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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게임
머리를 쏙 내밀자 망치로 치고 있는
강서를 조준하자 강동이 헤헤 웃는
널뛰는 의사봉 아래
민초들만 터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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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잔치
“저놈의 난봉끼 내사 마 몬 살 끼다”
다다닥 칼등으로 도마질 하다말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아이고를 연발하던
백구두 흙 묻을라 골라 딛던 우리 아재
나락은 타든 말든 매미야 울든 말든
꽃분홍 만나러 가지, 읍내 다방 미스 킴을
자글자글 눈웃음에 립스틱도 바알갛게
손자 손녀 앞세우고 아지매가 노래한다
“뚜욱 뚝, 구두소리 오델 가시나~,
그 가시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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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채련곡*新采蓮曲
한 송이 연꽃 꺾어 그대에게 던질까요
한 번쯤 돌아볼까 마음을 졸입니다
걸어간 발자국마다 여윈 발을 포갭니다
차가운 달빛 아래 이마 자주 뜨거워요
바람을 달래어서 시 한 수 보냅니다
가슴속 샘을 판다면 그대 모습 비칠까요
* 채련곡采蓮曲 : 허난설헌의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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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도棧道*
한 발은 이승에서 또 한 발은 저승에서
하루치 목숨 늘여 밑줄 치는 붉은 이름
수천 길 낭떠러지에 선반 하나 매단다
길은 늘 양지보다 음지가 길었었지
흡반처럼 달라붙는 어둔 길 지워보려
허공에 발을 딛는다, 먹구름을 밀어가며
메아리 돌아와도 풍문은 흩어질까
웅웅 우는 산을 돌아 무릎 꿇는 외진 밤
산짐승 울음 보탠다, 돌아갈 날 있을까
*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 맨 길로 중국 삼국시대 전쟁 이동통로로 시작, 잔도를 낼 때는 사형수를 일부 투입하여 완공 후 형을 감해주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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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
다리를 건너는 건 당신을 건너는 일
여기에서 저기까지 한평생 딛고 가는
바람에 몸을 싣거나 출렁출렁 흔들리거나
내 안의 모난 길을 물결에 궁굴리는
낮달의 기울기가 뭉게구름 걷어내는
물비늘 반짝이는 곳, 당신께로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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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
동굴을 휘돌아온 부드런 그대 음색
달팽이관 간질이며 가슴 쿵쿵 울린다
내 몸을 관통하는 떨림
도플갱어로 가는 봄
노도처럼 태풍처럼 천둥으로 지진으로
그리움이 질주한다, 사무침이 폭발한다
솟구친 눈물무대엔 하트 하트 축포를
이제는 금빛 날개 마음껏 펴는 거야
구성지게 꺾어가며 한세상 풀어야지
사는 건 신바람이듯
굽이굽이 한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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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처진소나무
구름문 들어서자 확 펼친 일산 아래
장구도 북도 없이 국창이 앉으셨네
깊숙한 뿌리를 돌아 구음으로 유장한
열두 말 막걸리에 넌출넌출 춤을 추다
걸림도 매임도 없이 낮게 낮게 퍼져가는
목청도 다 내려놓고 푸른 그늘 드리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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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조人面鳥*
캄캄한 하늘 질러 천년을 날아왔나
마른 목 축여주는 설원이 눈부시다
예맥족 숨결로 빚은 마중물을 붓는다
함성과 탄성으로 박차는 힘을 모아
세상 끝 달려가서 별자리 잡을거나
은하에 씻은 몸으로 마중불을 댕긴다
쪽물 든 반도기로 백두대간 종단하다
봄 햇살 활짝 풀어 얼음장 녹일거나
쩌엉 쩡 몸 푸는 소리, 봇물 왈칵 터진다
* 고구려 벽화 등에 나타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새로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고 함. 평창올림픽 개·폐막식에 등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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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그것은 헛소문이야
한때의 바람이야
밤마다 날 버려도
보란 듯 날 버려도
까맣게
박아논 첫정
갈수록
더 박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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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아리랑
총성은 멎었어도 의족의 피, 아직 붉다
평상 위 깽깽이가 아리랑을 타는 소리
십리도 못 간다는 사랑
구만리를 건넜다
수척한 그림자로 선율이 흐느낀다
이방인을 세워둔 채 속눈썹 떨고 있는
깡통에 곤두선 동전
넘어질 듯 조아린다
지뢰밭에 잃은 다리 습관처럼 저려온다
벼랑끝 짚어가듯 엇박으로 절룩이듯
바이욘* 돌탑을 돌아 세마치로 흐른다
* 캄보디아에 있는 사원, 정부는 상이용사들에게 연금을 주지 못해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허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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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를 걷다
그림자 나를 따라 해시계를 도는 사이
남천의 물결 위로 한세상 흘러간다
전생의 약속이었나, 꿈꾸듯이 오시던
풍덩 빠진 그 사랑에 나도 그만 첨벙했네
팽팽한 현을 골라 아들 하나 낳고 싶던
월정교* 난간대 위로 달이 뜨는 저 소리
손가락 끝 보지마라, 달을 보라 이르시던
시간을 질러가도 가는 길 아득하여
휘영청 월성을 돌아 천년토록 걷는다
* 신라 왕궁인 월성 앞을 흐르는 남천의 다리로 2018년에 복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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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간 새
옻으로 물을 들인 머플러를 둘러주고
긴파람 불어주던 새 한 마리 날아갔다
고요턴 나뭇가지가 떨잠처럼 떨었다
열꽃 솟은 목둘레는 화약을 안았는지
물집인가 화농인가 냉찜질로 달래봐도
콕콕콕 가슴 깊은 곳 새소리로 박혔다
옻물에 손을 담가 꿈속을 그리던 새
구름 속 붓길인가 아득한 채색의 길
내 한생 눈이 멀었네, 없는 새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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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길
개미도 탑 올리는 사원으로 가는 길
맨발의 뒤꿈치엔 실금이 가득하다
내딛는 발자국마다 살아나는 슬픈 왕조
계단을 비껴 앉은 여인이 손 벌린다
축 처진 애기 안고 쳐다보는 동공에는
우물이 깊게 파였다, 낭떠러지 숨었다
소쿠리에 담겨있는 땡볕이 적막하다
하루를 산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
앙코르 석수장이가 잠든 신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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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거주춤
- 서운암에서 하룻밤
“여긴 해우소요, 여기서 찍어 바르다니”
느닷없는 바람인가 뒤통수 울리는 소리
거울 속 불쑥 내민 얼굴, 부처님의 제자닷!
선불을 맞았는가, 엉거주춤 홧홧하다
립스틱 거머쥐고 오지랖아 날 살려라
불화살 등에 꽂은 듯 등짝이 얼얼하다
간밤의 축제 미몽 아직도 꿈결인데
어둠 깨는 목탁소리 정수리 땅땅 친다
소리의 바깥쪽으로 몰아내는 저 미망
소리 찾아 더듬더듬 발자국 옮겨간다
엇! 거울 속 스님이닷! 돌아설까 따라갈까
내가 곧 미망인 것을
바람끝의 먼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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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씻다
천방지축 뿌려놓은 명함이 궁금하다
누군가 밟고 간 뒤 어디로 쓸렸을까
명함 속 이름 부르며 상류 찾아 나선다
텅 비운 두 손으로 얼룩을 씻어본다
문질러 헹굴수록 자모字母만 헝클린 채
그토록 닿고자 했던 나의 상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