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역사를 품다 5 」 - 《시조21》 2022. 가을호 연재
다시, 유월에
김덕남
명치로 우는 뻐꾸기가 유월의 금수강산을 맴돈다.
삭지 못한 아픔인가,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들어서는 발걸음은 숙연하다. ‘충성분수대’ ‘겨레얼마당’을 돌아 ‘현충문’ 앞에 섰다. 햇살을 받아 비늘처럼 반짝이는 현충문의 푸른 기와. 6월의 상처를 핥아주려는 듯 뜨거움을 쏟는다. 좌표 잃은 바람이 국토를 종단한 지 72년, 그 바람을 오늘 다시 새긴다. 마침 군인들이 교대식을 하고 있다. 제복의 군인들이 자로 잰 듯 반듯하다. 민족혼의 상징인 그들이 보내는 우국충정의 눈빛은 살아 형형하다.
삭이지 못한 그리움이 한 줌 뼈로 누워있는 돌비 묘역. 이제는 낯설지도 않은 20대의 청춘들이 좌로, 우로 그리고 대각선으로 열을 지어 조국 강산을 지키고 선 모습이 장엄하다. 목숨 바쳐 영원히 사는 이곳, 비석마다 미니 태극기가 경례를 올려붙이고 화병엔 붉고 흰 조화가 나란하다.
현충원은 내가 해마다 유월이면 순례하듯 찾는 곳이다. 두 팔 벌려 반겨주는 31묘역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단에 흰 국화 다발을 꽂고 냉커피 한 잔을 올렸다. 들불보다 뜨겁던 그 날의 얘기를 침묵으로 주고받는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나자 서둘러 추석 차례를 모시고 입대하였다는 아버지. 나에게는 사진으로만 대화를 한 아버지다. 다음 해 양구 ‘피의 능선 전투’를 거쳐 ‘가칠봉 전투’에서 전사할 때까지 생사를 같이한 아버지의 소꿉친구 비석에도 외롭지 말라고 꽃을 꽂았다. 박제된 시간이 돌아오듯 군인들이 지나간다.
연필을 깎아주시던 아버지가 계셨다
밤늦도록 군복을 다리던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에 흑연 빛 어둠을 벼리는 별이 내렸다
총알 스치는 소리가 꼭 저렇다 하셨다
물뱀이 연못에 들어 소스라치는 고요
단정한 필통 속처럼 누운 가족이 있었다
- 김일연 「별」 전문
군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언제나 목숨 하나 문밖에 내놓은 것과 같다. 아마 시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나 보다. 어머니는 밤늦도록 군복을 다리셨고 어린 시인은 숙제를 하고 있다. 숙제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연필을 깎아주시던 아버지, 흑연 빛 하늘에 별똥별이 휘익 내리는 순간 총알 스치는 소리가 저렇다고 도란도란 얘기했겠지. 일선의 깊은 산속, 물뱀이 연못에 들어 소스라치듯 고요하기 그지없는 깊은 밤. 내일을 위해 가족은 필통 속의 연필처럼 단정히 누워 잠을 청한다. 숨결이 들릴 듯 잠든 모습이 보이는 듯 정갈하고 다정하다.
올해는 현충원을 거쳐 DMZ도 찾아보기로 했다. 철원의 고석정에서 간단한 교육과 선도 차량의 안내로 경광등을 단 승용차로 줄을 지어 출발했다. 끝없는 철원평야의 벼포기가 짙푸르다. 길옆의 망초꽃이 목을 빼고 있다. 안타깝게 숨져간 군인들의 그리움인 듯 망연히 차량 행렬을 바라보고 서 있다. ‘두루미로’를 지나 사격장 옆을 달린다. 군인 트럭이 심심찮게 지나간다. 드디어 민간인 통제구역인 양지리 통제초소다. 완장을 찬 헌병들의 검문을 받았다. 전쟁이 나기 전 38선 이북이었던 이곳은 북한 주민에게 1년을 먹이고도 남을 쌀을 생산했다고 한다. 결국 북은 정전협정 후 철원 지역 농업의 젖줄이었던 봉래호의 물길을 황해도 연백평야 쪽으로 돌리고 말았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철원평야를 살리기 위해 저수지를 쌓기 시작해 이곳은 인공저수지가 많다.
‘평화의 거리’ 도로 바닥에는 ‘경적을 울리지 마라’는 글이 씌어 있다. 월동하는 두루미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일 거다. 분단으로 인해 개발이 멈춘 자연 그대로의 숨결이 느껴진다. 몇 개의 탱크 방어벽을 지나 모노레일을 타고 평화전망대로 올랐다. 잠포록한 날씨라 북한의 낙타고지, 초소, 궁예 도성지, 평강고원, 김일성 고지, 선전마을 등을 선명하지는 않으나 망원경으로 당겨 볼 수 있었다. 비무장 너머 완전무장이 눈 붉히고 있는 이곳, 잃었던 어제가 오늘을 발목 잡고 있다.
동송저수지를 거쳐 월정리역月井里驛에 닿았다. 1913년 개통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폐역이 된 월정리역. 서울에서 원산으로 가는 중간역이다. 전쟁 당시 폭격으로 주저앉은 열차 한 대와 ‘4001’, ‘한국철도’라 쓰인 낡은 디젤기관차가 남아 슬픔과 아픔을 동시에 안겨준다. 뼈대만 남아 녹이 슨 해골 같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시위하듯 팻말이 서 있지만, 원산까지 달려야 할 월정리역의 기차는 이렇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기적인가 귀 모으면 두루미들 발 씻는 소리
삼방 눈쯤 묻혀오나 구름도 차게 떠는데
이정표 벌 서는 너머 역사 홀로 삭는 소리
철로가 다 녹도록 헛말들만 녹을 쌓고
하 뜨겁던 손차양들 하마 식는 월정리역(月井里驛)
기적도 울 자리가 있어야 용틀임을 뽑는데
일갈하듯 두루미만 이마를 치며 오가는
철원역←월정리역→가곡역 곧 원산이건만
가곡(佳谷)이 아라사보다 멀다, 곧 가려니 손 놨건만
- 정수자 「달우물역」 전문
이름도 아름다운 ‘달우물역’!
월정리역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팻말 옆에 이정표가 벌서듯 서 있다. 6.25 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으로 기적을 울렸던 열차의 처참한 잔해 앞에서 난 그만 벙어리가 되고 만다. 철원의 곡물을 싣고 용틀임을 하며 달리던 북의 화물열차가 폭격을 맞아 골격만 남았다. 나도 저 이정표처럼 두 팔 들어 벌을 서고 싶다. 새들만 오가는 하늘 아래 철책선은 완강하다. 당시 은행 4곳, 농산물검사소가 있었다는 이곳의 번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철원역←월정리역→가곡역 곧 원산이건만 // 가곡(佳谷)이 아라사보다 멀다, 곧 가려니 손 놨건만”을 가만히 읊조려 본다. 놓아버린 손들은 지금 어느 곳에서 숨을 쉬고 있을까. 기다리다 지쳐 숨을 놓아버렸을까. 곧 만날 것처럼 남북 정상은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오가더니만…. 북쪽의 땅은 바로 눈앞인데도 아득하게 멀다.
또다시 몇 개의 방어벽을 지나 노동당사로 달렸다. 들판의 벼포기는 논마다 출렁이고 백로들이 쉼 없이 날고 있다. 노동당사는 1946년 완공된 러시아풍의 3층 건물이다. 주변의 건물이 파괴되어 사라지고 없음에도 이 건물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견고하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체 군데군데 포탄으로 구멍이 뚫리고 2, 3층의 지붕은 아예 날아가 하늘이 들어와 박혔다. 무너지지 않게 곳곳에 지지대로 보강해 놓은 곳이 보인다. 6․25 전 북한의 노동당사로 쓰이면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의 주민을 수탈하는 중심지이자 공산당에 반기를 든 주민들을 총살, 고문한 장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노동당사 뒤편으로 돌아가면 북한이 급하게 철수하면서 당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엘리트 간부들을 몰살시킨 자리에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심은 무궁화동산이 있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 정문 입구 계단 앞에 섰다. 계단에는 깊이 패인 두 줄의 바퀴 흔적이 있다. 유엔군이 탱크를 밀고 올라간 자국이라고 한다. 저 상흔의 건물이 2001년 2월 근대 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안보관광이 시작되면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가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이제 맡겨둔 주민증을 돌려받아 대마리 백마고지 전적지로 향한다.
적막 한 채 짊어지고 유월에 갇힌 침묵의 언덕, 백마고지 전적지를 오른다. 철원 서북방에 있는 395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로 중공군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고지는 395m에 불과하였으나 세계 어느 전투에서도 볼 수 없는 격전지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이어 10일간 밤낮으로 이어진 전투는 처절한 포격전, 수류탄전, 백병전으로 피아간 약 27만여 발의 포탄이 퍼부어졌다고 한다.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니 그 치열함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전투 끝에 흙먼지와 주검이 뒤섞여 악취가 산을 덮을 정도였고 서로의 포격으로 고지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려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음이 먼 길 떠나 돌아오지 않았지만
천둥 번개 지진 속 파편을 쓸어안아
포화로 녹슨 철모엔 마른 꽃대만 가득하다
말없이 누운 채로 목이 메는 백마고지
눈뜬 버들개지만 바람에 흔들릴 뿐
발걸음 옮길 수 없는 난 망연히 서 있었다
포연은 사라졌으나 쉼 없이 명멸하는
붉은 눈 전광판이 피의 능선 비추는 곳
여린 목 뽑아 올린 채 재두루미 날고 있다
- 하순희 「대마리 전언」 전문
전적지 언덕길의 양옆에는 태극기와 자작나무가 차렷 자세로 줄지어 서 있다. 위령비 입구에는 6시 25분에 멈춰버린 시계탑이 그날을 말해 준다. 모윤숙의 ‘백마의 얼’이라는 추모글이 새겨진 위령비의 비문을 읽으며 조국의 제단에 몸 바친 충혼을 향해 두 손 모았다. 합장하듯 우뚝 솟은 전적비 앞에서 잠시 모자를 벗고 묵념했다. 높이 솟은 국기 게양대에서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인다. 한반도 어디에서나 태극기가 펄럭일 날은 언제일까. 뺏고 뺏기는 삶과 죽음 앞에서 한 명이 남더라도 반드시 저 고지를 차지하자는 힘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적비 뒤쪽 오솔길을 따라가니 언제 어디서나 승리를 뜻하는 상승각常勝閣에 ‘民族自尊 統一繁榮’이라 새긴 종을 달아놓았다. “포화로 녹슨 철모”엔 몇 번의 꽃이 피고 지고 하였던가. “말없이 누운 채로 목이 메는 백마고지”를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죽어갔을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다. 적을 향해 돌진하는 젊은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차마 입을 열 수도 발을 뗄 수도 없다. 그 너머 김일성이 사수를 명령해서 붙였다는 김일성고지가 쭈뼛 솟아있다. 휴전 후 최초로 남북공동 유해 발굴이 이루어진 화살머리고지가 있다는데 어느 산인지 흐릿하다. 저 깊은 산속 어디에선가 엉겅퀴는 곧은 뼈 세워 녹슨 철모를 뚫고 있을 것 같다. ‘비목碑木’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상처를 안고 있는 산하를 이제는 보듬어야 한다. 목숨 바쳐 자유를 지킨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있었기에 반쪽이나마 행복을 누리고 있다. 전투에 참여하여 목숨을 건진 이들은 이제 대부분 구십이 넘었다. 이산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하나 된 조국을 물려줄 날은 언제인가. 하늘에서는 새들이 걸림 없이 철책선을 넘나들고, 땅에서는 해마다 꽃은 제 자리에서 지고 피고···.
김덕남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올해의시조집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등
- 《시조21》 2022.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