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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장의 추억
“ 아따 상귀성님! 이건 제껍니다. 제꺼..”
“ 씁새가…의리 없이 굴래!…방쉐이 같으니..”
장씨 세가의 내원에는 언제나 저녁마다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지금 내원 중 그나마 제일 큰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원래는 보급품 창고였으나 몇 년 전부터 이곳은 낭인대의 차지가 되었다.
군졸들과 같이 군막을 썼다가 피본 군졸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에~잉..하여튼 저것들은 하는 일을 없으면서 돈은 무지 밝혀요. 안 그렇소? 우공자”
오늘도 전리품을 챙겨 잽싸게 전장에서 환전해온 두 사람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곤 우공자의 눈을 힐끗 보며 넌지시 물었다.
“ 하하.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법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분들은 참 개성이 강하신 것뿐입니다. “
“ 히~ 유 하여튼 사람하고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에잉~츳츳”
고죽노인은 이 사람 좋은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 광검,,아까 대장의 일권을 봤나?”
뜬금없는 패도의 대장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구세력은 단단한 얼굴을 굳혔다. 아마도 광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일 것이다. 상귀와 하귀는 먼일인가 싶어 쪼르르 달려와 앉았다.
광검은 고개를 귀찮은 표정을 고개를 끄떡였다. 패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분명 그놈은 맞지 않았다. 일촌정도의 공간에서 대장의 주먹이 막혔다. …대체 그게 뭐냐?”:
“ 호신강기예요”
대답은 광검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있던 비연 화수련이 꽂 같은 입을 벌린 것이다.
패도는 그녀를 보았다. 뭔가 미진했다. 패도의 눈이 비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비연은 피식 웃었다. 패도의 습관이었다. 조용히 노려보면 계속 말하라는 뜻이었다.
“그 마기난타라는 라마는 무의식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 운용했을 겁니다. 무공은 익힌 자의 습성이지요… 그런데 대장의 주먹이 호신강기를 뚫고 타격한 것뿐이지요,,그게 다예요.”
“음 그건 반만 맞은 것 같군”
한쪽팔을 베고 옆으로 돌아 누웠던 광검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목이 아픈지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흐릿한 눈동자로 말하기 시작했다.
“ 정확히 말하자면 호신강기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신강기에 자신이 당한 것이지”
귀찮은 듯한 그는 멍한 눈동자로 일행을 돌아봤다. 눈만 껌뻑이는 그들을 보니 아무래도 설명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다들알다시피…… 대장의 권격은 일종의 와류(瓦流)를 형성하지..이렇게…”
말과 함게 광검은 옆구리로 주먹을 당기며 손목을 돌렸다. 손등쪽이 옆구리에 완전히 붙게, 그리고는 앞으로 주먹을 원위치로 돌리며 앞으로 주욱 뻗었다.
“ 쉬이이~팡!”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게 광검의 주먹은 공중에 멈추어섰다. 순간적으로 방안에 바람이 이는 듯했다.
“ 이런 식의 충격이 그자의 호신강기에 와선형(瓦線形)의 충격을 준거야, 그리곤 호신강기는 되레 권력을 퉁겨낼 뿐만 아니라 안쪽으로 증폭이 되도록 도와준 셈이지….마치 북을 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 그렇지만 그자는 음유한 느낌의 무공이었어요. 튕긴다기 보다는 오히려 권력이 묶여야 정상이지요.. 게다가 호신강기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무공을 익힌 게 아무소용이 없겠네요.
비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을 지키는 호신강기가 자신을 해친다니 듣도 보도 못한 괴사(怪事)였다.
“훗…나도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하는 뿐이야.. 그리고…..오늘 어떤 인간이 그렇게 해냈잖아?…”
“……….”
일행은 말이 없었다. 무정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특별히 무공도, 내력도 없는 게 확실한데 어째서 그런 능력을 보일 수 있는지 정말 의문이었다.
“진짜 우리 대장이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광검은 천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 저인간은 저만큼씩 성큼성큼 나가니…….
“ 만일 양강지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대장하고 안 부딪치는 게 종을 거야”
“………..”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라도 대장의 일 권은 못 막아. 아니 이건 무공수준의 문제가 아니야… 맞는 순간 서서히 골로 가기 시작하는 거야.”
“……!”
일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호신강기에 자신이 당한다….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 또 있겠냐 싶었다.
“ 장문인들과 상대하기에는 내력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
패도 구서력이 이의를 제기 했다. 맞는 말이다. 내력이 낮은 자는 벽에다 주먹질을 한 경우 밖에 되지 못했다. 결국 무정이 아무리 기이한 힘을 갖고 있어도 현격한 내공의 차이는 자신의 손만 부러지게 될 것이었다.
“ 내가 일갑자가 좀 넘는다….”
내뱉듯 던진 광검의 말에 모두들 이채를 띄었다. 일갑자 정도면 장로급은 아니지만 웬만한 장문인들 보다 조금 쳐지는 정도?..
후기지수보다는 높은 정도였다. 광검은 눈을 감았다. 오 년 전, 이곳에 처음와서 무정과 비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대장이 공격이나 방어하는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적어도 나보다 위인 내력을 느꼈다.
“……..”
또다시 방안에 적막이 돌았다. 광검은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들중 최고수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 허투루 들릴 리는 없었다.
패도 구서력은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기껏 대장이 익힌 것은 군인이라면 누구가 가르치는 군대의 권각술과 장창술, 그리고 잡다한 무학정도였다. 그런 것이 그렇게 효과가 있다면 무림인은 누구나 군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특별한 심법? 더군다나 없었다.
시골 촌부도 잘 안하는 온몸을 흐느적거리는 이상한 유가술 같은 양생술과 정말 간단한 토납술(吐納術)만 익혔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실제로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적도 있었다.
헌데 그러한 사람의 내력이 일갑자에 육박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이제 이십대 중반에…..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 에이 시펄,,,, 뭘 그걸 갖고 고민하고들 그래. 그냥 대장이랑 붙을 땐 호신강기 안 쓰면 되잖아. 시펄 안 그러냐 하귀야?”
상귀가 투덜거리며 지껄인 소리에 일행은 퍼득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어이없는 눈초리로 상귀를 쳐다보았다.
“ 무식하면 입이나 다물지…야! 이 덜떨어진 놈아! 호신강기를 뒤흔드는 주먹을 맨몸으로 그냥 막는다고? 차라리 네 배를 째라 배를 째!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게 덜 아플 거다. 이 무식한 놈아. “
고죽노인은 소리를 버럭지르며 다시 곰방대를 잡았다. 상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하는 저 경멸스런 눈초리를 보았다. 심지어 하귀까지도 눈을 크게 뜨며 안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에에미. 쓰벌..아 장난이야 ,장난! 씹새들…난 장난도 못하냐…니미..캬아아아아아악…”
벌개진 얼굴로 상귀는 이 경멸스런 분위기의 반전을 위해 한껏 목을대를 올렸다. 그러나 시원하게 뱉을 수는 없었다.
“ 방안에서 침뱉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칠척이 약간 넘는 저 무시무시한 곰 같은 인상의 패도 구여력의 눈이 흘겨졌다. 상귀는 순간 움찔했다.
“…….꿀걱!……..”
시원하게 목울대가 아래위로 젖혀졌다. 상귀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자랑스레 씨익 웃었다.
옆에 있던 고죽노인은 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심지어 하귀는 슬금슬금 상귀에게서 떨어지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은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광검은 아무이야기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자신과 비무했을 때 …..문제는 그의 권력이 아니었다. 그의 참마도,,,초우…그것이 더 문제였다.
호신강기를 가르고 목에 대어져 있던 그 거대한 참마도, 그는 분명히 보았다. 그 검은 도 주위로 보였던 옅은 묵빛 기류를…..
그렇게 그는 무정에게 패했고 이후 광검이 되었다. 자신이 아는 무공은 다시 시전해보고 또 수없이 수련했다. 이제 검끝에 조금 푸른빛이 돌 정도?…그래도 오 년 전 대장보다도 뒤떨어진 것 같았다.
“아이 쓰벌 근데 대장은 어디 가서 쳐박혀서 안 오는 거야! 피곤하게 스리…”
상귀의 투덜거림만 계속되는 방안이었다.
“서장의 라마승, 그것도 무승이 적의 진지에 있다….확실히 보통일은 아니군.”
“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 어쨌든 삼일후에 총공세는 예정대로 진행될 걸세.”
“……….. 알겠습니다.”
장씨 세가의 접객전에서는 지금 한창 천호 마대인과 무정이 대화중이었다. 무정은 복귀하자마자 마대인을 만났고 결과를 보고 했다. 이미 세작의 보고로 인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마대인은 무정의 보고에 서장과 우량하족의 연수를 기정사실화 했다.
“ 그나저나 궁금하군,,,서장도 서장이지만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야달목차가 연수를 하다니….”
마영령은 책생위에 올려진 찻잔에 손을 올려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뭔가 생각할 때마다 보여지는 그의 습관이었다.
무정은 그런 마대인을 보며 고개를 숙여 무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야달목차는 우량하족의 수장이었다. 당시 남만주의 여진은 건주여진이라고 해서 워더리(斡朶里), 하루아(火兒阿), 나하추(納哈出)의 큰 세부족을 말했다. 그러나 유목민족의 특성상, 그외의 부족들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량하족은 그런 부족들 중에서도 약간 큰 세를 가지고 있는 부족으로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높이 사서 연수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할 줄 모르는 부족이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서장과 한손을 잡다니…
마영령은 이해 할 수 없었다.
하긴 흑룡강(黑龍江)부터 하북성(河北省)에서만 놀던 부족이 하루아침에 이곳 감숙성과 섬서성 인근에 온 것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마영성은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애써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적(敵)이었고 싸워 이기면 그뿐이었다.
“흠…..”
짧은 헛기침소리와 함께 마대인은 상체를 세웠다. 무정도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이번 공격은 거의 총공격이 될 것이네..작전지휘도 ...섬서도지휘사사가 직접 진두지휘 한다네..”
“ 위민왕(爲民王)이 직접 나선다는 말씀이십니까?”
뜻밖의 상황에 무정은 반문했다. 현재 섬서위(衛)의 수장은 영종(英宗)황제의 첩실중 둘째 경인비(敬仁妃)의 소생이다. 무재라기 보다는 문재에 더 가깝다는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단 한 번도 전장에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직접출정을 한다니…무정이 생각했던 용현 천호소의 전병력만으로 하는 총공격이 아니었다. 주변의 위(衛).소(所)병력 모두가 참여하는 상당한 전면전일 것이었다.
“이번 전투에는 이곳 용현천호소의 아홉개 백호소 병력과 섬서의 연중(連中)천호소의 다섯 개 백호소가 나설 것이네…”
“…….”
무정은 왠지 기이한 느낌이 머리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다른 위의 병력을 다 합쳐도 될까말까 한 공격이었다. 보통 백호소 하나의 병력이 약 백십명. 총 천오백명정도의 병력인데, 우량하족은 정예기병만 일천이고 보병이 약 삼천, 총 부족민 수가 오천이 넘는 대부족이었다. 헌데 단 천오백정도의 병력으로 정벌을 한다? 그것도 전투력도 상당한 부족을?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섬서의 연중천호소는 실전경험이 거의 없는 양민이나 다름없었다….
이건….자살행위였다. 그의 뇌리에 퍼뜩 어떤 생각이 들었다.
“위장입니까?”
마다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침중안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 휘하의 낭인대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적지로 스며들게…”
결국 이것이 진짜였다. 요인(要人) 암살..
“ 야달목차를 제거하는 것. 그것이 이번 작전의 목적이네…”
“……….”
무정은 말없이 낮빛을 굳혔다. 길게 내려온 머리칼 사이로 서늘한 눈빛이 흘렀다. 굳게 다문 입술이 벌어졌다.
“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닐세…”
wk조적인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마영령은 알고 있었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그러나 따라야 했다. 이 작전은 자신이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 인물을 떠 올렸다.
위민왕곁에는 책사랍시고 달라붙어 있는 인물이 있다. 멋들어진 수염에 어울리는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사내. 위군성(委君聖)이라는 자였다. 이번 작전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지난주였다. 영중위의 연회에서 싸움이란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며 성동격서(聲東擊西) 어쩌구 하며 술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든 어이없는 책략이었다.
위민왕은 취기가 한껏 올라서 아예 그자리에서 명령서를 작성했다. 마영령은 술기운에 작전을 설마 실전에 옮기랴 했지만 다음날 떠날 때 받은 명령서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긴급히 면담을 요청했지만 면담은 거부당했다. 국무에 지쳐 쉬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영령은 수염을 떨며 분을 삭였고 결국 그가 한일은 일장에 정문의 돌사자 머리를 부서버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무정은 일의 전후사정을 짐작했다. 위민왕을 기억한다. 한번인가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그 옆의 책사도 기억했다. 사실 이제껏 그 책사는 어이없는 작전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마대인이 그 모든 것에 방패막이가 되 주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작은 감숙의 용현천호소를 그 어떤 소보다도 높은 순위에 올려놓게 했던 것이다.
마영령은 탁자에 손을 짚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오늘 무정을 부른 진짜 이유를 말했다.
“정아..명심해라…만일 일이 조금이라도 여의치 않으면 당장 빠져나오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대인”
대답을 들으면서도 마영령은 속이 탔다. 명령이기에 그들은 가야 한다. 그러나 못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이 너무나 높았다. 무정도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렇기에 사실상 명령을 기만하라는 말까지 한 것이었다.
마영령의 눈이 따뜻해졌다. 무정은 부하이기 이전에 아들과 같은 존재였다. 군령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사지에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안색을 풀고 따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글공부는 잘 되 가느냐?”
무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육 년 전…그가 이곳으로 온후부터 갑자기 시키는 글공부였다. 이유는 잘 알고 있다. 한명의 살귀로 만들기 싫었던 마대인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껏 자신의 본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혈귀라는 호칭을 얻은 후로 그는 묵빛기류를 사용하는 무공은 실전에 사용치 않았다. 그래도 충분했던 것이었다. 다만 어쩔수 없을 때만 조금씩 사용했다.
그렇다고 무정이 아예 무공수련을 등한시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묵빛 기류를 이용한 수련은 거의 매일 해왔다. 다만 수련만 했을 뿐 거의 사용을 안 한 무정 이였다.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무정의 대답에 마대인의 고개가 끄떡여졌다. 아무래도 글을 계속 접하면 심성이 올바로 잡힐 것이었다.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데, 부탁이 있다 했느냐?”
무정은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인상의 젊은 얼굴이 한쪽의 검상과 같이 드러났다. 그는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이번일이 끝나면….군을 …떠나고 싶습니다…..”
막 찻잔을 입에 대던 마영령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언젠가 듣게 될 말이지만 막상 듣고 나니 가슴이 떨려왔다.
“ 이유가…무엇이더냐?”
무정은 눈을 감았다. 이유…이유라…이유는 없었다. 가족과 상현촌사람들의 원한?…..굳이 갖다 붙이자면 갚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마대인의 대우도 좋았다. 일반 병사들의 평판도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고 생활하는데 아쉬운 점도 없었다.
오히려 돈은 조금 벌었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무정은 생각할수록 모호해졌다. 이유…그런 것은 …없었다.
“ 없습니다. “
조용하지만 나직하게 힘 있는 목소리가 마대인의 귀를 울렸다. 마대인은 그 소리의 여운을 곱씹었다.
사춘기 소년의 투정도, 세상을 향한 염세(厭世)적인 어투도, 악의(惡意)가 깃든 느낌도 없었다. 그리고 마대인은 이 여운이 굉장이 낯익게 느껴졌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마대인 자신의 소리였었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자신의 목소리였다. 사천성(四川省) 서창(西昌)에 있는 마가장(瑪家莊), 그곳을 나와 군문(軍門)에 투신할 때 자신이 느꼈었고 부모님께 말했던 것, 바로 그것이었다.
마대인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무정은 일행이 있는 내원으로 향했다. 이미 술시가 넘은 시간, 짙은 어둠 사이로 풀벌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무정은 잠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쩌면 마대인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기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대인은 조용히 웃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곤 말했다.
“ 허허….알겠다. 네 뜻대로 하려무나.”
허탈함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무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를 일이다. 그게 연륜(年輪)이라는 것인가? 어느새 무정은 내당 앞에 서 있었다.
노르스름한 유등의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문을 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