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1. 22
‘가동 중인 영변 원자로를 폭격하면 방사능 피해범위가 얼마나 될까?’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검토 이후 북한 핵시설 폭격론이 거론됐을 때 종종 제기됐던 의문이다. 실제로 우리 군 당국이 영변 핵시설을 공습 등으로 파괴했을 경우의 예상 피해범위를 전문기관들에 비밀리에 의뢰해 모의실험(시뮬레이션)까지 했던 사실이 2005년 필자의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군 당국의 모의실험 시기는 1998년 북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1999년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무렵이다.
▲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도 북한 핵시설 타격 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미 이지스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모의실험 결과 최악의 경우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일본 등에까지 영향을 미쳐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영변의 8㎿(열출력) 연구용 원자로와 5㎿(전기출력) 실험용 원자로 등 2개의 원자로가 공습 등으로 완전 가동 중 동시에 파괴됐을 경우 사람들이 방사선으로 입는 피폭(被爆) 피해범위는 최대 400~1400㎞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영변 핵시설 반경 10~50㎞ 내에 있는 사람들은 2개월 내 80~100%가 사망하며, 30~80㎞ 지역은 20% 정도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서울은 영변에서 250여㎞ 떨어져 있어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영변에서 400~1400㎞ 떨어진 지역도 방사선 선량이 5rem(렘)으로 국제 방사선 연간 피폭 허용 권고치의 10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또 파괴 후 5년 뒤까지도 반경 700㎞ 지역이 방사능 오염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분석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된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 소식통은 “원자로 등 각종 핵시설의 핵물질량을 최대치로 산정하고 방사성 물질이 모두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가정하는 등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원자로가 가동 중일 경우와 가동 중단 상태일 경우 방사능 물질 누출량의 차이가 크다. 영변 원자로를 폭격했을 경우 그 피해범위에 대해선 분석기관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도 직간접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실제 북 핵시설 타격을 어렵게 하는 현실적인 이유 중 하나다. 1999년 모의실험 결과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어 노 대통령의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의지를 굳히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의 북한 핵시설 타격 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B-2 스텔스 폭격기.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안보 라인을 대북 강경파 중심으로 구성함에 따라 북한 핵시설 등 대북 선제타격을 비롯한 군사적 옵션이 23년 만에 다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미친 개(Mad Dog)’라는 별명을 가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내정자는 지난 1월 12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대북 군사력 사용, 즉 대북 선제타격 옵션을 배제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떤 것도 (논의의) 테이블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원 군사위원회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시설을 격퇴할 능력을 주한미군이 갖추기 위해 취할 조치를 보고하라’는 군사위 요구에 대해 이를 이행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도 2000년 개혁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펴낸 저서 ‘우리에게 걸맞은 미국(The America We Deserve)’에서 북한 핵 원자로 시설에 대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자주 사용되고 있는 선제타격이란 용어와 관련, 선제타격과 예방타격이란 개념을 구별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은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거나 임박한 상태에서 북한 핵탄두 미사일 등 위협을 미리 타격해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 군 당국이 북한 핵미사일을 30분 내에 발견해 무력화하겠다는 ‘킬 체인(Kill Chain)’에는 선제타격 개념이 포함돼 있다.
반면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은 전쟁 발발 가능성이 없거나 낮은 상태에서 위협을 미리 타격해 무력화하는 것이다. 예방타격의 대표적 예는 이스라엘이 감행한 1981년 이라크 원자로 공습, 2007년 시리아 원자로 공습 등이 꼽힌다. 이스라엘은 이들 공습을 통해 이라크와 시리아 핵 위협이 커지기 전에 제거할 수 있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하고 실제로 한반도에 병력과 장비를 투입해 실행에 옮기려다 막판에 중단했던 것도 예방타격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에 대해 북 핵시설이나 미사일 기지를 폭격한다면 예방타격에 해당한다. 예방타격의 대상은 영변 핵시설과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들 시설을 정밀타격할 토마호크 크루즈(순항)미사일, 북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고 침투해 폭격할 수 있는 B-2 스텔스 폭격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적 비난과 북한의 반발은 차치하더라도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외에 우라늄 농축 비밀 시설들을 여러 곳에서 운용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규모가 작고 지하에서 가동할 수 있어 한·미 당국은 이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B-2 스텔스 폭격기 등을 동원해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더라도 다른 비밀 핵시설이 살아 있어 북 핵능력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북한이 예방타격에 반발해 전면전으로 보복할 가능성도 큰 부담이다. 북한이 장사정포와 미사일 등으로 수도권을 공격한다면 수도권에 있는 미군과 가족은 물론 미국 민간인 피해가 생길 수 있는데 이는 트럼프와 미국에도 큰 고민거리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 실제로 북한을 예방타격하려 한다면 사전에 반드시 수만 명의 미군 가족과 민간인들을 수송기 등을 동원해 일본 등지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이 아무리 비밀리에 북 예방타격을 하려 한다 해도 사전에 징후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북한이 ICBM 발사 등으로 도발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종전의 미 행정부보다 강경한 대응을 하겠지만 실제 타격할 경우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실제 때릴 듯이 스텔스 폭격기, 요격미사일 배치 등을 통한 고강도 무력시위를 강하게 실시할 가능성은 높지만 실제 타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원 /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자료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