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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조를 잘 쓰려면
2. 제목, 주제, 대상, 소재
3. 제목 붙이기, 연과 행 가르기
4. 선택과 배열, 구성
5. 이미지, 전경과 배경
1. 시조를 잘 쓰려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흔히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한다고 한다. 여기에 많은 경험을 추가하기도 한다. 다독, 다작, 다생, 다험이다.
애초부터 시조는 음악이었고 문학이었다. 음악이 곧 문학이었다. 시조시를 노랫말로 해서 부르는 곡이 가곡과 시조창이 있는데 가곡은 시조시를 5장 형식으로 부르고 시조창은 3장 형식으로 부른다.
시조는 음악이기 때문에 다른 운문과는 달리 율격에 맞게 의미를 잘 살려내야한다. 6개의 구, 12개의 소절로 시조 한 수를 완성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미지의 압축은 필수이다.
율격을 익히기 위해서는 좋은 고시조와 현대 시조를 많이 읽고, 많이 외우는 게 필요하다. 율격이 자연스럽게 체득되기 때문이다. 읽는 것보다 써보는 것이 더 좋고 써보는 것보다 외우는 것이 더 좋고 외우는 것보다 창작해보는 것이 더 좋다. 시조의 율격을 익히기 위해 읽고 쓰고 외우고 창작하는 작업을 쉴새없이 반복해야한다.
현대 시조의 대가 가람 이병기는 “시조 문학을 하시면서 스승으로 모신 분이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황진이의 시조 한 수가 나의 스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는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야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황진이 시조
아, 내 탓이여 난들 그리워할 줄 모르겠는가.
있으라고 하면 구태여 가겠느냐.
보내고 그리워하는 정은 나도 정말 모르겠구나.
가장 빛나는 고시조 한 수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것은 후학들에게 시사할 만하다. 이 시조 한 수를 스승으로 모셨으니 시조 한 수가 지금의 시조의 대가 가람 선생님을 만든 것이다.
좋은 시조를 자꾸 읽고 외우는 가운데 시조의 율격은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좋은 시조를 자주 접하게 되면 좋은 시조를 잘 쓸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율격을 익히고 나서 시조를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병행할 수도 있고 그렇치 않을 수도 있다. 순서가 그렇다는 것뿐이다.
시조는 3장 6구에 12소절을 앉혀야하는데 이는 바둑판에다 바둑돌을 놓는 것과 같다. 바둑은 포석이 중요하다. 한 개의 돌이라도 아무렇게나 앉힐 수 없다. 하나의 바둑돌이 승부를 결정하듯 시어 하나가 시조의 운명을 좌우한다. 시조의 생명은 바로 함축이라는 돌 하나에 달려있다. 시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맞는 시어를 선택해야한다. 12개의 소절로 하나의 작은 우주를 만들어야한다. 좋은 시조는 욕심 부린다고 해서 써지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고심 끝에 얻어지는 땀과 희열이어야 한다. 빼어난 절구는 재능보다는 대부분 고된 수련 끝에 얻어진다.
수련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김제현은 시조를 쓸 때 삼불가를 들었다. 능력 이상으로 잘 쓸려고 하지 말며, 게을리 하지 말며, 구차스럽게 억지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욕심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이다. 능력 만큼만 쓰면 되고, 부지런히 쓰면 되고, 억지로 쓰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좋은 작품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의 좋은 작품을 모방해서 쓸 필요가 있다. 모사해서는 안되겠지만 모방하다보면 왜 좋은 작품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스타일이나 기술, 언어를 다루는 솜씨 같은 것을 모방하면서 습작을 하면 되는 것이다.
훈련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작업 끝에 얻어진 피사체가 결국엔 좋은 시조임을 알게 된다. 감명 깊은 대목을 다른 시어로 대체해본다든가, 소재를 바꿔본다던가, 배경을 바꿔본다든가 제목을 바꾸어 본다든가 등등 여러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시어를 빼기도 하고, 보태기도 하고, 변용시키기도 하는 등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 습득해가면 된다. 특별한 공식같은 것은 없다. 체계적인 학습 과정과 꾸준한 노력이면 된다.
불빛은 무얼하는지 밤새 켜져 있고
바람은 무얼하는지 밤새 창을 흔든다
어둠은 무얼하는지 밤새 문을 기웃거린다
-신웅순의 「사랑은 30」
햇빛은/무얼하는지/밤새/숨어있고//
달빛은/ 무얼하는지/ 밤새/나돌아다닌다//
순이는/무얼하는지/밤새/문을 기웃거린다//
모방시 1
햇빛은/밤새/무얼하는지/밤새 숨어있는데//
달빛은/무얼하는지/밤새/나돌아다니는데//
순이는/무얼하는지/밤새/문을 기웃거린다’
모방시 2
초·중장의 ‘숨어있고’를 ‘숨어있는데’로 ‘나돌아다닌다’를 나돌아다니는데‘로 어미만 변형시켜 보았는데도 의미 또한 달라졌다.
필자의 견해 하나 덧붙인다. 시조 쓰기는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침계 윤종현으로부터 호 ‘침계’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예서로 쓰려고 했으나 한비 예서에 ‘침’자가 없어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담아두었다가 30년이 지난 후에야 옛비의 필의를 모방해 해서와 예서를 합체로 해서 썼다. 가슴 속 오랜 동안의 숙성이 ‘침계’라는 명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쓰는 것은 순간일지 모르나 과정은 이렇게 오랫 동안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서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나면 행화촌엔 살구꽃이 핀다.
살구꽃 피는 마을 피는 꽃이 저리 곱다
피는 꽃 그 아래로 지는 꽃도 어여쁘다
목숨도 오가는 날이 저리 꽃길이고저
- 김상훈의 「행화촌」
시인은 피는 꽃도 저리 곱고 지는 꽃도 저리 어여쁘다 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목숨이 오가는 날쯤일까. 그런 날 저리 꽃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고결한 철학. 달관한 인생이 이런 시조를 만들어 냈다.
시인은 50년 전 출퇴근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행촌 마을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있다 반백년이 흐른 후에야 이 작품을 형상화시켰다고 한다.
반 백년 후에야 작품을 썼다니 무르익은 세월이 그 얼마인가. 세월이 명작을 만들어 냈다. 꽃이 피고 지는 것, 목숨이 오고 가는 것이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비가 내리는 저녁 행화촌의 막걸리 한 잔의 여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꽃이요 바람이요 시이다. 인생이 이렇게 곱고도 어여쁜 꽃길일 수 없다. 살아가는데 정감있는 이런 시조 한 수 말고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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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목, 주제, 대상, 소재
글쓰기에는 반드시 제목, 주제, 대상, 소재 등이 있어야한다.
제목은 작품 이름이다. 작품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독자들과의 첫만남이기도 하다. 주제일 수도 있고 대상, 소재일 수도 있으며 상징적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제목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작가의 전적인 권한이다.
제목은 주제나 대상, 소재와도 구별되며 은유, 환유, 상징 그 어떤 수사와도 구별된다. 작품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면 된다.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최적의 메시지로 한 줄의 빛나는 광고 문구와 같은 것이면 된다. 제목은 같은 텍스트라도 문구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나 느낌이 달라질 수 있어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외줄기 받침대로 버티는 다릿목에서
잠겨도 젖지 않는 연두빛 꿈을 품고
개나리 제목을 놓고 글짓기 하는 여울
- 김경자의 「봄 아이들」
위 시조를 ‘봄아이들’ 대신 ‘송사리’로 제목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송사리들이 다릿목의 여울에 모여 물 위로 머리를 들고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 모습이 옹기종기 모여 글짓기 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송사리들이 글짓기를 한다니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고 연상은 할 수 있으나 ‘봄아이들’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느낌이 맹맹하다. 제목을 ‘봄아이들’이라고 하면 감칠맛과 함께 분위기가 환기되면서 느낌의 정도가 확 달라진다. 봄에 열리는 백일장을 연상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제목 하나가 전혀 다른 분위기와 메시지를 연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목은 처음부터 붙일 수도 있고 다 쓴 뒤에, 도중에 붙일 수도 있다.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붙일 경우도 있다.
주제는 작품의 중심 사상, 작가가 작품 속에 나타내고자 하는 관심이나 내용을 말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이에 해당된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글을 쓴다. 주제는 제목, 대상, 소재 등 외의 온갖 것들이 동원되어 창조해낸 또 다른 차원의 것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중심 생각이다.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영양소와 같은 것이며 보이지 않는 교훈과 같은 것들이다. 독자들이 감동으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또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주제는 영감이나 모티프 같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지만 처음에는 안개와 같아서 구체적인 형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확고한 주제로 정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생각을 가다듬다보면 처음의 추상적인 영감이나 모티프는 점점 구체화되고 결국엔 작가가 말하고 싶은 중심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글을 쓴 후 독자들이 감동으로 만나게 되는 주제가 되는 곳이다.
다 저문 강마을에 매화 꽃, 떨어진다.
그 꽃을 받들기 위해 이 강물이 달려가고
다음 질, 꽃 다칠세라 저 강물이 달려오고…
-이종문의 「매화꽃, 떨어져서」 부분
떨어지는 매화꽃을 받들기 위해 강물이 달려가고, 다음에 질 꽃이 다칠세라 또 저 강물이 달려온다고 했다. ‘낙조’, ‘낙화’와 ‘강물’ 같은 소재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여기에서는 ‘받들고’, ‘다치지 않게 하려고’ 가 키워드이다. 낙조와 낙화는 소멸을 의미하나 재생을 의미하기도 하는 중의적인 뜻을 갖고 있는 소재들이다. 꽃이 져야 단단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강물은 달려와 소멸하는 것들, 낙조와 낙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치지 않도록 경건하게 받들고 있는 것이다.
재생을 위한 소멸의 경건함이나 아름다움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중심 주제가 아닐까 싶다.
시조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한다. 대상 없이 시조를 쓸 수는 없다. ‘무엇에 대해, 무엇을 갖고 쓸 것인가’가 이에 해당된다. 그 대상은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고, 제목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대체로 글 쓰는 대상은 하나가 일반적이다.
대상과 소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대상은 그 많은 소재 중에서 글쓰기 위해 선택된 중심 소재이다. 주제를 나타내는데 대상과 소재들이 동원되는데 대상은 주소재이며 소재들은 부소재이다. 대상을 제재라고도 하는데 제재는 작품의 바탕이 되는 주재료로 대상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때로는 대상이나 제재가 제목으로 쓰여지는 경우도 있다.
주연이 대상, 혹은 제재요, 조연이 소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떤 제목으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 글을 쓸 때 한 대상과 여러 소재들이 함께 동원된다. 쓰고자 하는 대상은 대체로 하나이지만 여기에 동원되는 소재들은 여럿이다. 하나의 대상에 다양한 소재들을 얼마든지 가져다 보조 재료로 쓸 수 있다는 얘기이다. 대상과 소재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생선 아줌마가 날마다 이고 오는 아침 바다
‘오징어,갈치,고등어 가자미도 왔습니다’
찌들은 골목길을 말끔히 씻어주는 파도소리
-진복희의 「아침」전문
제목은 ‘아침’ 이며 대상도 ‘아침’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느 바닷가 동네의 아침 풍경’이 그 대상이다. 소재들은 ‘생선’, ‘아줌마’, ‘바다’, ‘오징어’, ‘갈치’, ‘고등어’, ‘가자미’, ‘골목길’, ‘파도 소리’ 등이 동원되었다. 주제는 ‘아주머니의 희망찬 의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주제를 향해 제목과 대상, 소재들이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 있다. 대상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 배치된 소재들 역시 중요하다. 대상과 소재들은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찌들은 들길을(골목길을) 말끔히 씻어주는 바람소리(파도소리)
‘골목길을’을 ‘들길을’로, ‘파도소리’를 ‘바람소리’로 소재를 바꾸면 위 시는 순간 맥이 풀려버린다. 소재들의 선택과 배치가 잘못 되었거나 소홀히 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반드시 그 자리에 그 소재가 선택되어야 하고 그 자리에 그 소재가 배치되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소재들의 적재적소가 작품의 질을 결정해주는, 이는 글쓰기의 기본이기도 한 것이다.
주제 ←제목 ← 대상(제재) ←소재 1 소재 2 … 소재 n
3. 제목 붙이기, 연과 행 가르기
시조 창작에서 맨 처음 해야할 일은 ‘무엇을 쓸 것인가’이다. 주제이다. 그 다음은 ‘무엇을 갖고 쓸 것인가’이다. 대상이다. 주제와 대상은 글쓰기 전에 반드시 정해져 있야 할 필수 품목이다. 주제는 작품의 중심 사상이고 대상은 중심 소재다. 이 두 요소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다. 바늘과 실이 없이 바느질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숨죽여 살금살금 나무에 다가가서
한 손을 쭈욱 뻗어 잽싸게 덮쳤는데
손 안에 남아 있는 건 매암매암 울음뿐
-김양수의 「매미」전문
주제는 ‘매미를 잡지 못한 아쉬움’이다. 대상은 ‘매미’이다. 주제인 ‘매미를 잡지못한 아쉬움’을 대상인 ‘매미’를 통해 상을 잡아냈다.
주제와 대상이 정해졌으면 그 다음은 제목 붙이기이다. 제목을 붙이고 쓰는 경우가 있고 쓰는 과정에서 붙이는 경우가 있고 다 쓴 후에 붙이는 경우가 있다.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쓰기는 작가의 체험을 형상화해 가는 작업이다. 물론 동기가 있어야 글을 더 잘 쓸 수 있다. 글은 체험, 동기, 쓰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대상은 제목과는 상관 없이 먼저 정해져있어야하고 분명해야한다. 그래야 통일성 있게 글을 전개해나갈 수 있다. 대상은 먼저 정해져야 하지만 제목은 나중에 붙여도 된다.
예방 주사 놓으려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왁자한 교실 안이 금세 꽁꽁 얼어붙고
차례를 기다리는 가슴이 콩닥콩닥 방아 찧는다.
뾰족한 바늘 끝이 반짝하고 빛날 때면
다른 아이 비명 소리에 내 팔뚝이 더 아프고
주사를 맞기도 전에 유리창엔 내 눈물이……
-서재환의「주사 맞던날」전문
‘주사맞던 날’의 정황이 실감나게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주제, 대상이 명확해 먼저 제목을 정해놓고 쓰기에 좋은 시조이다.
주제의 통일을 기하기 어려운 시조도 있다. 메시지 전달에 의미를 두지 않는 존재 시조나 사물 시조 같은 것들이다. 그런 시조들은 작업 과정에서 붙일 수도 있고 완성 후에도 붙일 수 있다. 제목을 정해 놓고 쓰면 동원된 시어들이 방해가 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고도한 상징성을 요구하는 작품이면 또 다른 상징을 유발할 수도 있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다. 제목 붙이기는 순전히 작가들의 몫이다.
한 송이 사과꽃이 순수히 명을 받은 뒤
피로 빚은 시간을 지상에 막 놓고 간 저녁
잘 익은 죽음으로 향하는 생이 온통 향기롭다.
-정수자의「생이 향기롭다」전문
비밀 투성이다. 행과 행 사이도 연으로 독립되어 있어 행간에 숨기고 있는 사연을 독자들은 알 수가 없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생과 죽음 사이의 신비를 독자들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위 시조는 작품이 완성된 후에 제목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비록 맨 뒤의 시구절이 제목으로 쓰이기는 했지만 제목 붙이기가 쉽지 않다. 다른 제목을 붙이면 또 다른 상징을 유발해 같은 작품이라도 얼마든지 차원을 달리할 수 있다.
원래 고시조, 개화기 시조는 한 줄이나 석 줄 등으로 시조를 표기해왔다. 현대에 와서는 장을 행으로 가르기도 하고 연으로 가르기도 한다. 이를 섞어서 가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한 음보를 연으로 가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연, 행 가르기는 새로운 이미지 창출을 위해, 정서 환기를 위해 필요하고, 의미 부여를 위해, 리듬감 형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할 수 있다. 지나친 연, 행갈이로 인해 시조 본연의 의미나 리듬, 시조의 정체성을 해쳐서는 안된다.
梨花雨흣날닐제 울며잡고離別한님
秋風落葉에져도 날생각는가
千里에 외로운꿈만 오락가락하돗다
-부안명기계량
고시조는 시조 제목도 없고 시조 한 수가 한 줄로 되어 있다. 고시조는 가곡 5장으로 부르기 때문에 장이 정해져 있어 연, 행 구분에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 일부러 장을 연과 행으로 갈라 창의 흐름을 단절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이영도의 「비」전문
현대 시조이다. 초장․중장은 2행으로 이를 각각 연으로 독립시켰고 종장은 3행으로 연을 독립시켰다.
초장은 비오는 밤의 정황을, 중장은 자신의 심정을, 종장은 풀어가는 사연을 각 장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현대시조의 일반적인 배연 배행 형태이다.
피면 지리라 지면 잊으리라
눈 감고 길어 올리는 그대 만장
그리움의 강 져서도 잊혀지지 않는 내 영혼의 자줏빛 상처
초장은 2행으로 중장은 1행으로 종장은 3행으로 갈랐다. 그리고 시조 전체를 1연으로 처리했다. 5개의 최소 의미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장에서는 피면 지고 지면 잊으리라는 각기 같은 비중을 가진 의미를, 중장은 만장 그리움의 강에 대한 의미를, 종장은 잊혀지지 않는 내 영혼과 내 영혼의 자주빛 상처로 동등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의미로 행갈이를 한 형태이다.
귀뚜라미 잠시 울음을 그쳐다오
시방 하느님께서 바늘귀를 꿰시는 중이다
보름달 커다란 복판을 질러가는 기러기떼
- 이해완의 ‘가을밤․1
각 장을 한 연으로 처리하면서 초․장은 4행으로 배열해놓고 종장은 7행으로 배행하고 있다. 초․중장은 음보별 배행을 했다. 종장은 특히 ‘기러기떼’를 하늘을 질러가는 것처럼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각 글자를 여러 행으로 길게 세로줄로 처리하고 있다. 독특한 배행 형태이다.
시조창은 3장으로 부르지만 음악성을 떠난 현대 시조에 와서는 굳이 3장 3행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의미에 따라 나름대로의 배연, 배행을 하면 되는 것이다. 지나친 배연, 배행으로 인해 시조의 정체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4. 선택과 배열, 구성
시조에는 세로축에 12개의 언어군이 있다. 12개의 소절들이다. 이 언어군에서 각기 단 하나의 언어를 선택해야한다. 선택된 12개의 언어를 결합하면 3장 6구 12소절의 시조 한 수가 된다.
그 누가 나를 보고 꽃 한 폭을 치시라면
선지보다 더 하얀 바람 한 필 끊어다가
저 핏빛 내 가슴을 적시는 당신만을 치리라.
김옥중의 「홍매화 그늘 아래에서」
야콥슨은 언어의 시적 기능은 등가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로축에서 단어를 선택해 이를 가로축으로 결합해가면 하나의 문장이 완성된다.
선택축
선지보다 더 하얀
바람 한 필 끊어다가
종이보다 가장 깨끗한
훈풍 두 필 베어다가
도화지보다 덜 맑은
북풍 세필 찢어다가…
↑ → 결합축
선택의 축을 은유의 축, 결합의 축을 환유의 축이라고도 한다. 선택축은 같은 계열의 어군층에서의 선택이다. 같은 어군층에서 주제에 맞는 가장 적합한 어휘를 선택하면 된다.
‘선지보다’는 ‘종이보다’, ‘도화지보다’, ‘…’ 등의 어군층에서, '더 하얀’은 ‘가장 깨끗한’,‘덜 맑은’,‘…’ 등의 어군층에서 선택했으며, ‘바람 한 필’은 ‘훈풍 두 필’, ‘북풍 세필’,‘…’ 등의 어군층에서, ‘끊어다가’는 ‘베어다가’,‘찢어다가’,‘…’등의 어군층에서 선택했다.
각기 어군층에서 선택된 어휘는 ‘선지보다’,‘더 하얀’,‘ 바람 한 필’,‘ 끊어다가’이다. 이를 결합하면 ‘선지보다 더 하얀 바람 한 필 끊어다가’의 명문장이 되는 것이다. ‘선지보다’ 대신 ‘도화지보다’를, ‘더 하얀’ 대신 ‘덜 맑은’을 선택하거나, '바람 한 필’ 대신 ‘북풍 세필’를, ‘끊어다가’ 대신 ‘베어다가’를 선택했다면 ‘도화지보다 덜 맑은 북풍 세 필 베어다가’라는 문장이 된다. 주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바뀌게 되어 작가의 중심 생각을 나타낼 수가 없다. 언어의 선택과 결합은 씨줄, 날줄과 같아 한 올의 실수도 허용될 수 없다. 좋은 시조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시어를 짜맞추는 기술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시인이 날을 새면서 금맥을 찾는 것도 주제를 향한 시어가 제대로 짜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맞는 언어만을 찾아내어 배열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 해야할 일이다.
시조는 많은 돌이 필요없다. 반드시 맥점에 두어야하는 12개의 돌이면 된다. 녹록치가 않은 것이 돌의 위치이다. 시조는 채도와 명도가 들어 맞아야하고 담묵의 정도가 적정선이어야 한다.
시조의 의미는 초장· 중장· 종장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또 2개의 작은 단위로 나누어진다. 이를 구라하고 이 구는 또 다시 2개 단위로 나누어진다. 이를 소절이라 한다. 3장은 3개의 소문장과 6개의 어절, 12개의 낱말로 하나의 시조를 이루고 있는 셈이 된다.
시조의 형식은 3장 6구 12 소절이다. 이 형식에 맞게 언어를 선택하고 배열해야만 한다.
소절 구 장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시조는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의미 자체도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장은 시작하거나 들여오는, 시상을 일으키는 ‘기’ 부분이고 중장은 이를 받아 전개, 발전시켜가야하는 ‘승’ 부분이다. 종장은 이를 토대로 전환, 반전시켜 끝을 맺어야하는 ‘전결’ 부분이다.
시조는 내용의 핵심이나 주제가 주로 종장부에 있는 3단의 귀납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귀납식이 일반적이긴 하나 현대 시조에 와서는 연역, 병렬, 반전, 연쇄, 대우 등 여러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구성들도 효과적인 결구를 위해 필요한 변형 형태로 보아야한다.
어떤 구성이건 언어의 선택과 배열이 제대로 배치되어 있어야한다. 주제, 제목, 대상, 소재 등의 선택도 구성법에 따라 달라져야하고 그에 따른 언어 선택이나 배열도 달리 처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절구를 얻을 수 있다.
문학은 민족의 사고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3장의 3의 숫자나 종장의 첫음보 3음절의 3의 숫자는 우리 민족의 사고태의 표상이다. 특히 천여년을 민족과 고락을 같이해오면서 얻어진 우리만의 철학적 원리이기도 하다.
귀납은 개개의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명제나 법칙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갈매기는 부리하나로 수평선을 물어올린다
갈매기는 나래깃으로 성난 파도 잠도 재우고
빙그르 바다를 돌리면 하늘 끝도 따라 돈다
- 정완영의 「갈매기」전문
초장에서 갈매기가 부리로 수평선을 물어 올린다고 실마리를 잡았다. 중장에서는 나래깃으로 성난 파도를 잠재운다고 사례를 들어 제시했다. 종장에 가서는 빙그르 바다를 돌리면 하늘 끝도 따라 돈다고 결론을 맺었다. 초장․중장을 거쳐 종장에 가서야 이야기가 완성되고 있다.
가을 하늘은 독수리도 탐이 나서
먼 산 위에서 뱅 뱅 맴을 돌며
며칠째 파란 하늘을 도려낸다 자꾸만
-조규영의 「가을하늘 」전문
글은 반드시 글쓰는 순서에 의해 차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몇몇 과정들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경우도 있고 한 과정이 처리되지 않아 글이 엉성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글은 순서에 따라 써져야한다. 순간의 시구라도 순서가 무시된 채 써지는 것은 아니다. 몇 단계가 생략된 채 순식간에 처리되기도 하는 것이 글쓰기이다.
귀납은 개개의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명제나 법칙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위 시조의 초장은 독수리도 가을 하늘이 탐난다고 했다. 그래서 중장은 독수리가 뱅뱅 먼 산 위에서 맴을 돈다고 했다. 그리고 종장에 가서는 도화지를 오려내듯 파란 하늘을 자꾸만 도려낸다고 했다.
초장․중장의 탐내며 도는 것은 종장의 도려내기 위한 결심과 사전 행위이다. 종장의 명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구체적인 결심과 행위를 열거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시조는 연역 구성의 예이다.
필시 내 속에도 저런 슬픔 있을 테지
뜨지도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못하면서
저문 강 검푸른 물결에 속절없이 휘감기는
-한혜영의 「저공으로 날아가는 밤 비행기」전문
연역은 일반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특수한 원리를 이끌어 내는 추리 방법이다. 초장에 결론이 있고 중장, 종장에서는 이를 부연, 설명하고 있다.
초장에는 필시 자신의 가슴 속에 슬픔이 있다고 했다. 중·종장에서는 그 슬픔은 뜨지도 가라앉지도 못하는 것과 종장의 검푸른 물결에 속절 없이 휘감기는 것이라고 했다. 초장에서의 일반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중·종장에서는 두 가지의 특수한 원리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구성 원리에 의해 언어를 선택 배열하고 있다. 슬픔을 뜨지도 가라앉지도 못하는 밤 비행기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밤하늘을 저문 강, 검푸른 물결로 은유한 것도 밤 비행기라는 제목과 주제에 맞기 때문에 선택된 시어들이다.
세상을 가리키기에 너만 한 것 있으랴
세상을 떠 받히기도 너만 한 것 있으랴
세상을 두드리기에 너만 한 것 있으랴
-이정환의 「지게 작대기」전문
병렬 구성이다. 병렬은 초․중․종장이 같은 무게로 의미를 배열시키는 것을 말한다. 초장은 가리키고, 중장은 떠받히고, 종장은 두드리는 것이 작대기의 의무라고 했다. 작대기만큼 세상을 가리키고 받히고 두드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대상, 소재 같은 시어들이 등가의 값으로 배치되어 있고 각 장도 같은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
어지러운 마음속에 신호등 하나 있었으면
머물고 떠나감이 꼭 그 좋은 때 되어
들끊는 무분별함을 잡아줄 수 있다면
어두운 마음속에 촛불 하나 있었으면
몸 사뤄 밝혀주는 미더움에 뜨거워져
절망의 빗장을 푸는 그런 빛이 있었으면
-나순옥의 ‘그래 그랬으면’ 전문
위 연시조는 각 연의 장들이 대구가 되어 의미가 되풀이되고 있다. 대우식 전개이다.
첫째수 초장의 ‘어지러운 마음 속에 신호등 하나 있었으면’과 둘째수 초장 ‘어두운 마음속에 촛불 하나 있었으면’이, 첫째수 중장의 ‘머물고 떠나감이 꼭 그 좋은 때 되어’와 둘째수 중장의 ‘몸 사뤄 밝혀주는 미더움에 뜨거워져’가, 첫째수의 종장의 ‘들끊는 무분별함을 잡아줄 수 있다면’과 둘째수의 종장 ‘절망의 빗장을 푸는 그런 빛이 있었으면’이 서로 의미의 짝을 이루어 대우를 형성하고 있다.
시조는 귀납식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사안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도 구성할 수 있다. 외에 반전, 연쇄 등의 구성이 있으나 어떤 구성이 적당한가는 전적으로 시인의 어깨에 달려있다.
시조 몇 수를 제시한다. 시조의 여러 3단 구성을 생각하면서 창작의 토대를 마련해보록 한다.
깎아지른 듯 돌아앉은 절벽의 등 뒤에서
무릎뼈 하얗게 꺾으며 애원하는 파도
사랑을 얻는 일이 저랬던가 내 젊음의 자욱한 자해
-서숙희의 「감포에서」전문
제일 외로운 곳에 놓여 있는 빈 잔
그 바람 소리 듣는 이 아무도 없는 빈 잔
달빛이 가져가 제 눈물도 담을 수 없는 빈 잔
-신웅순의 「빈 잔」전문
섬진강, 그 가난한 마을 속으로 밤 기차가 지나간다
섬진강, 그 가난한 마을 속으로 마지막 버스가 지나간다
내 설움, 여기쯤서 그만 둘 걸 그랬다
-김영재의 「추석 전야, 어머니」전문
5. 이미지, 전경과 배경
이미지
시조는 시보다 이미지 압축이 더 요구된다. 시조에 있어서의 압축은 시조의 생명이다. 12개의 소절로 시상을 완성해야하기 때문이다.
데이 루이스는 이미지는 '언어로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하였다. 마음 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감각적 형상이다.
'사랑'을 표현해야하는데 ‘사랑’ 이라고 쓸 수는 없다. 구체적인 모양이나 사물로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실감이 난다. 사랑의 표현을 장미로 제시했다면 독자들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와 사물이라는 구체적인 장미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야한다. 그래야 독자들은 '아, 이것이 사랑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이미지=추상적인 단어 + 구체적인 사물 → 의미
플레밍거는 이미지를 정신적 이미지, 비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의 셋으로 나누었다.
정신적 이미지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관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심상을 말한다.
달과 별이 숨었어도 스스로 차는 밝음
나무들 하나같이 뿔 고운 순록이 되어
한잠 든 마을을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조동화의 「눈내리는 밤」 일부
눈내리는 밤 나무를 순록의 뿔로 표현하고 있고 그 순록이 수레를 끌고 깊이 잠든 마을을 끌고 간다고 했다. 동화의 세계처럼 그 광경이 눈에 환히 뵈는 듯하다.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달, 별, 나무, 순록, 마을 같은 시어들을 동원시키고 있다.
작품을 시각적으로 처리할 것인가, 청각적, 혹은 후각적, 미각적으로 처리할 것인가는 작가의 마음에 달려있다. 하얗게 덮힌 앙상한 나무 가지는 마치 순록의 뿔과 같아 눈 내리는 밤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다. 소복이 눈에 덮힌 하얗게 잠 든 마을을 순록들이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다. 눈 내리는 밤 나무를 대신한 순록 뿔의 시각적 이미지는 매우 감동적이다.
비유적 이미지는 직유, 은유, 의인, 환유 등을 말한다.
비유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개념과 매개념이 필요하다. 그런데 원개념과 매개념은 동질적이든 이질적이든 어떤 상관 관계도 없다. 두 사물은 낯설기 때문에 문맥 속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긴장을 해소시키기 위해 두 사물은 타협을 하게 되는데 이는 유추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때 두 사물은 서로 상호 침투 되면서 문맥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를 문맥화라 한다.
눈물로도 사랑으로도 다 못달랠 회향의 길목
산과 들 적시며 오는 핏빛 노을 다 마시고
돌담 위 시월 상천을 등불로나 밝힌거다
-정완영의 「감」일부
감을 등불로 환치시켰다. 원개념은 감이지만 매개념은 등불이다. 감을 등불로 은유했다. 감과 등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감은 먹는 과일이고 등불은 불 밝히는 기구이다. 이 두 이질적인 요소가 한 문맥 안에 들어와 상호 침투되면서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문맥 안에서 감은 시월 상천을 붉게 밝혀주는 등불로 표현되어 있다. 이 때 독자들은 감과 등불인 두 사물을 떠올리며 또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상징적 이미지는 원개념이 생략된 채 매개념만 드러나 있다. 원개념이 명백하지 않아 의미를 찾아낼 수가 없다. 사람마다 달리 읽어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또한 상징은 가시적인 사물을 통해 불가시의 정신세계를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은유처럼 한 문장 안에서는 의미를 읽어낼 수가 없다. 전체의 문에서 읽어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유와는 달리 고차원의 유추 과정이 필요하다. 지적 수준과 사회적 약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런대는 소문 마냥 먼데 눈발은 치고
애굽어 아스라이 철길을 비켜가듯
욕망도 희망도 없이 또 그렇게 저무는 하루
그 하루를 다 못채우고 그예 누가 떠나는지
낮게 엎드린 채 확, 번지는 진눈깨비
더불어 살 비비던 것 먼 길 끝에 남아있다.
저물 무렵 한때를 떠도는 영혼처럼
덜 마른 건초더미 어설픈 약속처럼
찢어진 백지 한 장이 가슴 속으로 날아든다
- 이승은의 「설일雪日)」
이 시조는 고도한 상징으로 이루어졌다.
눈 내린 풍경을 바라보며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다. 낮게 엎드린 채 확 번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하루를 못채우고 떠나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 하루를 못 채운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더불어 살 비비던 것은 또 무엇을 상징하며 찢어진 백지 한 장은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전부다 어떤 정신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이미지만 제시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짐작하거나 유추할 뿐이다. 영혼처럼, 약속처럼 찢어진 백지 한 장이 가슴 속으로 날아든다 했으니 더더욱 의미 천착이 쉽지 않다. 의미를 미루면서 유보해둘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전경과 배경
어느 해변가에 건축업자와 시인이 놀러왔다. 건축 업자는 같은 해변을 보면서 모래의 굵기는 어떻고 건축에는 어떤 쓸모가 있고 등을 생각하고, 시인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밀물과 썰물을 보면서 인생과 삶 등의 의미를 생각할 것이다. 제1차적 수준에서는 똑같이 해변의 모래를 보고 있으나 제2차적 수준에서는 보이지 않는 해변의 배경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이 보는 풍경은 똑 같은데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사물을 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경제적 의미에서, 다른 한 사람은 인생의 의미에서 해변을 보고 있다.
대상은 동일하나 생각은 다르다. 출발은 일상적 지각이나 도달은 미적 지각이다. 미적 지각에서 서로 해석이 엇갈린다. 일상적 지각은 실용문의 영역이요 미적 지각은 시의 영역이다. 시는 바로 제 2차적 의미 즉 미적 지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상적 지각 → 미적 지각(시)
1차적 관조의 대상을 전경이라 하고, 2차적 관조의 대상을 배경이라고 한다. 직접 보이는 것은 전경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배경이다. 하르트만은 예술 작품의 미적 가치는 배경층이 전경층으로 오버랩되면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실사적인 전경과 비실사적인 배경이 교차되면서 생기는 통일 현상이다. 이것이 미이다.
전경은 실제로 눈에 띄는 물리적 층위이나 배경은 실제로 있지 않은 정신적인 층위이다. 예술 작품에서는 하나의 전경에 하나의 배경만이 아닌 여러 배경들이 겹쳐 나타난다. 여러 층 위로 배경이 분열되어 경이로운 현상으로 현현되는 것이다. 하나의 전경에 여러 개의 배경이 오버랩되어 나타난다면 의미의 크기는 그만큼 넓고 전경에 한 두 개의 배경이 떠오른다면 의미의 크기는 그만큼 좁을 것이다. 전경은 소재는 될 수 있어도 의미는 될 수가 없으며 배경은 의미는 될 수 있어도 소재는 될 수 없다.
멍든 살을 깎아 모래를 나르는 파도
천 갈래 바닷길이여, 만 갈래 하늘길이여
옷자락 다 해지도록 누가 너를 붙드는가
-홍성란의 「섬」전문
전경에서 배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동원시켜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의미 분열이 시작된다. 파도가 멍든 살을 깎아 모래를 나른다든지, 바닷길은 천갈래, 하늘길은 만갈래가 된다라든지, 옷자락 다 해지도록 섬을 붙든다라든지 하는 것들이 섬인 전경에서 분열된 배경들이다.
의미가 전경에서 배경으로 이동할 때 시인과 독자는 서로 타협을 하게 된다. 이 타협이 어느 시점에서 멈추게 되는 데 이 곳이 바로 의미가 형성되는 지점이다.
텍스트는 시인과 독자 간의 거리를 최소화시키며 새롭게 타협해가는 창조적 공간이다. 일단 활자화되면 시인의 생각은 순간 거기에서 정지된다. 이 정지된 화면에서 서로 다른 배경들이 오버랩되어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를 어떤 식으로 재생산하고 재창조하느냐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분열의 크기가 크다고 해서 감동이 크고 분열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감동이 작은 것은 아니다.
주목하고자하는 것은 전경과 배경이 얼마나 유리되어 나타나는가이다. 이 거리는 전경에 대한 배경의 분열 크기로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여러 의미들이 왔다 가면서 남겨놓은 면적들이다. 이것이 크다면 ‘대상을 보는 눈이 새롭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감동의 문제와는 다른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너를 범하는 것은 참으로 간단하다
가벼운 칼질 몇 번에 몸뚱이가 해체되고
바다를 지탱한 은비늘도 사정없이 벗겨지고
뜨거운 냄비 속을 욕심으로 들여다본다
짠 내를 토해 내며 공유하는 너를 본다
죽어서 더 향기로운 식탁 위의 갈치여
나도 우려낼 그 무엇이 남아있을까
접시 속의 네 뼈처럼 고요할 수 있을까
자꾸만 밥상 앞에서 무릎 꾾는 이 저녁에
- 김종렬의 「갈치 찌개를 끓이다」 전문
시인은 전경인 갈치 찌개를 바라보고 있다. 갈치 찌개가 죽어서도 향기로운 갈치로 배경이 분열되더니 나중에는 화자 자신의 모습으로 분열되고 있다. 갈치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 갈치의 뼈처럼 고요할 수 있을까라고 시인은 반문하고 있다. 고요를 해탈(?)의 경지로 보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갈치 찌개라는 평범한 음식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갈치만도 못한 자신이라고 생각해 갈치라는 음식 앞에서 엄숙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조는 일종의 알레고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하찮은 것에 대해서는 무릎을 꾾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평범한 일상의 밥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느끼지 못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에 대한 질타일 수도 있다. 언제나 의미는 남기 마련이어서 나머지 배경은 작가와 독자들이 타협하면서 채워갈 수 밖에 없다.
시조를 쓴다는 것은 같은 전경을 보고 다른 특성을 발견해내는 일이다. 날카로운 눈을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주관적이나 누구나 감동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배경이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시조를 쓸 수 있다. 시조는 12개의 돌로 3장이라는 3개의 주춧돌을 세우고 훌륭한 한 수의 정자를 지어야한다.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나그네가 쉬어갈 수 있는, 강과 산을 멀리 조망할 수 있는 그런 정자를 지어야 한다.
어린 염소 등 가려운 여우비도 지났다.
목이 긴 메아리가 자맥질을 하는 곳
마알간 꽃대궁들이 물빛으로 흔들리고.
부리 긴 물총새가 느낌표로 물고 가는
피라미 은빛 비린내 문득 번진 둑방길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이 한창이다.
-유재영의 「둑방길」전문
「둑방길」은 ‘염소, 여우비, 메아리, 꽃대궁, 물총새, 비린내’ 등의 소재들과 같은 일반적인 경치만을 나열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어린, 가려운, 목이 긴, 마알간, 부리 긴, 피라미 은빛, 문득 번진, 마른 손 같은’ 등의 수식어들과 ‘자맥질하는, 흔들리고, 물고 가는, 문득 번진, 한창이다’ 등과 같은 서술어들을 제시해놓고 있다. 이 수식어와 서술어들 때문에 평범한 소재의 전경이 독특한 파스텔톤 배경으로 분열되고 있다. 이것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의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에는 텍스트와 또 다른 텍스트가 있다. 텍스트의 세계는 1차적인 전경화된 텍스트요 또 다른 텍스트는 2차적인 배경화된 텍스트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전경 속에 숨어있는 분열된 배경들을 읽어내는 일이다. 이것이 감동으로 오랫동안 남아 명작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