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글 고현정 / 기획 오연호]
누가 우리동네의 주인인가? 뉴타운 지역 곳곳에서 이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8월12일, 서울시와 노원구는 상계뉴타운 개발계획안을 최종 확정됐다. 2016년까지 상계3,4동을 고급아파트 등이 들어선 뉴타운으로 변신시킨다는 계획이다. 상계뉴타운의 시발은 지난 2005년 12월 서울시가 이곳을 3차뉴타운으로 지정하면서부터.
그러나 이곳에 살고 있는 상당수의 주민들은 3년전의 뉴타운 최초 지정과 최근의 개발계획안 확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동네의 주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노원구 상계뉴타운 예정현장에 가보면 여기저기 곳곳에 걸려있는 뉴타운환영 플랜카드와 뉴타운사업설명회 포스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외부인이라면 ‘아, 상계주민들은 뉴타운을 반기는구나’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을 뛰며 만난 주민들의 상당수는 뉴타운을 반기지 않았다. 그 핵심적 이유는 “주민들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뉴타운 계획이 발표됐다”는 점이다.
상계뉴타운 예정2구역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한임씨(58)는 “없는 사람은 그냥 살고 싶어요”라고 말문을 꺼냈다. 주민들이 찬성했기에 뉴타운이 된 건 아니냐고 묻자 김씨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여기가요 원래 다 판자집들이었는데 10년전에 연립주택 붐이 일었어요. 다른 사람들 다 하는데 우리집도 안 할 수 없어서 빚내서 건물 올렸는데, 그렇게 올리고 나니 뉴타운이 된다는 거예요. 이러니 안 황당해요?”
김씨는 “이럴 줄 알았다면 집도 올리지 않았을 거”라고 한탄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이 뉴타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이곳저곳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4구역에서 만난 신경자(66)씨는 “어느날 갑자기 뉴타운이 지정됐다”면서 “(구청이나 동에서) 뉴타운 찬반에 대한 주민쪽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지은 지 10~20년 정도의 연립주택이 빼곡한 골목길
그렇다면 대체 누가 상계뉴타운을 추진한 것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노원구청 도시개발팀에 문의했다.
(이하 ‘Q' 오마이뉴스, 'A'상계뉴타운 담당공무원)
Q. 누가 주축이 되어 서울시 뉴타운 사업에 상계동을 신청했는지 알고 싶은데요.
A. 구에서 신청했죠. 낙후지역 기준에 맞는 곳을 골라서 시에 신청하는 거죠. 노원구에서는 상계와 월계를 신청했는데 1구에 1구역이라서 상계만 된 겁니다.
Q.상계동이 뉴타운으로 신청되기 전에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가부를 물어보셨는지 궁금한데요.
A. 주민 동의율은 지구지정에 관해서는 아예 필요하지 않아요. 계획과 수립은 구청이, 승인은 시청에서 할 뿐이지 주민동의율은 필요 없어요.
Q. 전체적인 뉴타운 추진과정에서 보면 주민들이 뉴타운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정기적인 설명회 같은 건 없나요.
A. 저희쪽에서는 설명회보다는 홍보물 위주로 알려드리고 있구요. 얼마전에도 절차와 관련된 설명문을 집집마다 돌렸어요. 각 동사무소에 총 10000매를 보냈거든요. 9천세대 정도니까. 통장분들이 돌렸을 겁니다.
Q. 구청쪽에서 홍보가 잘 안되는 건 아닌가요.
A. 솔직히 우리 모두가 정치에 관심있는게 아니듯이 주민분들도 그래요. 연령층도 높으셔서 말해도 금방 잊어버리시구요. 그런 한계점이 좀 있어요. 저희쪽에서는 법으로 규정된 공청회와 주민공람을 진행했구요. 주민공람 때 오시면 안내원들이 다 안내해주고 설명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데도 아직도 잘 모르는 주민들이 있다면 그건 너무한거죠.
Q. 그렇다면 이번 2008년 1월에 열린 주민공청회는 주민이 뉴타운 여부에 대해서 찬반을 왈가왈부할 권리가 아예 불가능한 거였겠네요? 공청회에서는 뉴타운계획설명만 듣게 되는건가요?
A. 그렇죠. 찬반은 불가능하죠. 진행되는 것,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이었구요. 구민회관 900좌석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주민들이 오셨어요.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에 마이크 잡고 지지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다 조합원 되실 분들이죠.
노원구청은 “관련법을 참조해보라”라고 했지만 그 법은 주민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법이었다
이렇듯 지역주민이 뉴타운 지정과 관련해 찬반을 놓고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저소득층인데다가 노인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계3․4동은 바쁜 생계 때문에 공청회나 주민공람 등을 찾아가볼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2구역의 슈퍼주인 김한임씨는 바쁜 와중에서도 시간을 쪼개 공람을 찾아봤지만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우리를 위해 해준다는 건 아니다”라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동네 주민’들은 주인행세를 못했을까? 뉴타운법이라 불리는 도시재정비촉진특별법 때문이다. 이 법에 의하면 구청장은 뉴타운 지정과 관련 주민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14일 이상 주민에게 공람하고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은 후” 이를 신청서에 첨부하기만 하면 된다. 결정은 서울시가 한다.
상계동 '희망촌'의 모습. 희망촌에는 뉴타운 지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다.
달동네 난곡 재개발 후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약 8.7%뿐, 최근 입주한 은평 뉴타운도 15%전후로 알려지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동네의 주인’ 역할을 해온 서민층 원주민을 내쫒고 4,5억짜리 아파트에 입주할만한 외지 사람들만 혜택을 주는 뉴타운 사업.
첫 시작부터 현지 주민이 개입할 수 없었던 뉴타운의 결과는 어쩌면 뻔해 보인다. 정든 이웃과 집을 떠나야 했던 달동네 난곡 원주민들의 비극을 우리는 또 다시 상계동에서도 마주할 것인가.
뉴타운 사업으로 철거대상이 된 상계동의 달동네 희망촌에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 말한다. “여기서 다시 쫒겨나면 어디로 가란 말이여, 희망촌이 망할촌이 되어가고 있다니깐!”
"동의 없어도 생각대로 하면 되고" '화끈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2장 재정비촉진지구의 지정
제4조(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의 신청) ①시장·군수·구청장(자치구의 "구청장"을 말한다. 이하 같다)은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도지사(이하 "시·도지사"라 한다)에게 재정비촉진지구의 지정을 신청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재정비촉진지구의 지정을 신청하고자 하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서류 및 도면을 첨부하여 시·도지사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1. 재정비촉진지구의 명칭·위치와 면적
2. 재정비촉진지구의 지정목적
3. 재정비촉진지구의 현황 (인구·주택수, 용적률, 세입자 현황 등)
4. 재정비촉진지구 개발의 기본방향
5. 재정비촉진지구에서 시행 중인 재정비촉진사업 현황
6. 개략적인 기반시설 설치에 관한 사항
7. 부동산 투기에 대한 대책
8.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
③시장·군수·구청장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재정비촉진지구의 지정 또는 변경을 신청하고자 하는 때에는 14일 이상 주민에게 공람하고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은 후 이를 첨부하여 신청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미한 사항을 변경신청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주민공람 및 지방의회의 의견청취 절차를 거치지 아니할 수 있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