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과 반복, 그리고 소통의 길
박지현
.... 전략
나 죽어 한 필부의 젓대로나 태어나리
노래로 한 세상을 달래어 살다가도
그리움 지는 달밤엔 가슴으로 울리라
그 다음 생 또 있다면 빗자루로 태어나리
티끌 먼지 쓸어내어 이 세상을 맑히다가
해 지면 거꾸로 서서 면벽수행 하리라
화살이나 죽창은 내 뜻이 아닌 것을
속 비워 어깨 서로 기대며 다독이다
생애에 단 한 번 꽃으로 경전 피워보리라
- 김덕남, 「대(竹)의 기원 전문(《시조세계》 2013. 봄호)
중부이남 지방에 잘 자라는 대(竹)나무는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생활 깊숙 이 어우러져 그 향을 이어왔다. 문사들의 손에서 생명을 얻는 일은 허다했고, 대개 집 뒤쪽을 따라 울타리로 심었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불러와 대청마루를 식혔다. 필요에 따라 빗자루의 용도로, 가재도구나 대소쿠리 등 살림살이에도 널리 이용되었다.
그러나 대금이나 피리 같은 악기로도, 여름이면 부채나 죽부인으로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반면 대나무는 전쟁이 나면 거칠고 날카로운 무기로도 활용될 수 있는 부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대나무를 보고 할 말이 아주 많은 듯하다. 우선 '젓대'로 태어나 '그리움 지는 달밤에 가슴으로 울'고 싶은 간절함을 내보이기도 한다.
몸으로 울고 싶은 젓대의 상황은 곧 시인의 또 다른 소망이 간절히 표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또 다른 생에서 는 '빗자루'로 태어나서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얼룩을 쓸어내고 지워내는 세정의 역할을 몸을 던지고 싶다. 빗자루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의 손에 이끌려 시키는 대로 제 몸의 근육을 쭉쭉 뻗어 집 안팎의 먼지를 쓸어내어 '해 지면 거꾸로 서서 면벽수행'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생애에 단 한 번 꽃의 경전을 피워 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내몰린다. '젓대', '빗자루', '화살', '죽창'을 넘어서 단 한 번 '꽃'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희망은 시인이 죽어야만 가능한 것이 된다. 독자에서 재생과 반복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게 된다.
이상 일곱 편의 시들을 통해 보여준 소망과 경험들은 개인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독자에게 반복되고 재생되어 새로운 경험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단절의 벽을 허물고 소통의 세계로 이끄는 시인의 능동적 행위는 극히 일상적이면서도 각별하다. 일상은 개인의 경험적 세계이다. 그 세계는 개인적 상상의 세계를 확장시키며 경험을 통해 시적 세계를 재구성하게 된 다. 봄을 지나 여름이 오듯 반복과 재생이라는 순환논리가 전혀 낯설지 않고 독자 에게 다가오는 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시인의 경험이 독자의 경험으로 새롭게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 박지현 1996년 ≪시와시학>(시), 2001년 서울신문,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집으로 저물 무렵의 詩」, 「바닥경전」 외 4권과 논문 「일제강점기 저항시의 주체 연구 등이 있다. 2001년 지 용신인문학상 수상, 2008년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2010년 청마문학상 신인상 수상 아주대, 경희대 강사.
- 《시조시학》 2013.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