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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이테의 의미(2)
『나래시조문학』24호 여름호는 1986년 6월 1일에 발간한다. 여름호에는 17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책을 열면 먼저 회원 명단이 실려 있고, 회칙, 원고 청탁서, 임원 현황, 동인 신작, 후원회원 방명, 주소록, 연혁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참고로 1985-1986년의 임원명단을 밝혀두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는 창회 20주년을 맞는 임원이기도 하고 석주가 나래를 맡은 마지막 시대의 임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회장 정석주, 부회장 리강룡, 유승식, 유윤희, 감사 이대영, 민병찬, 서울지역 회장 정공량, 부산지역 회장 허성욱이다. 그리고 후원회원에는 195명의 방명이 실려 있다. 그 주소를 보면 점촌시청에서 34명, 점촌농협에서 24명, 소심회에서 18명을 비롯하여 점촌시내의 각 행정기관을 거의 망라하다시피 하였으니 나래를 꾸려가기 위한 석주의 노고가 얼마나 컸던가를 실감케 하고 있다. 24호에는, 23호에서 입회하여 작품을 내지 못했던 동인의 작품을 소개하기로 한다.
솔숲에 백로 한 쌍
바람소리 엿듣는다.
멀리 돌아나간
강줄기를 바라보며
이따금,
스스로 깃을 쳐서
솔소리를 모은다.
- 최길하,「백로」전문 -
「길」「백로」「태극문」 3수 중「백로」를 뽑아 보았다. 청솔 숲에 앉은 순백의 백로 한 쌍, 그 기막힌 색의 대조를 많이 보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작품화하기도 하였다. 최길하의 ‘백로’가 여타의 ‘백로’들과 다른 점은 , 그냥 지나가는 중에, 또는 멀리서 한 폭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잡은 그림의 구도 속에 앉아 있는 방외의 소재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로서의 ‘백로’, 말하자면 포커스로서의 백로라는 점이다. 이 작품 속의 백로는 청솔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솔 위에 주인으로 앉아 바람소리를 엿듣고 있는 백로이고, 멀리 돌아나간 강줄기의 흐름을 주시하는 백로이며, 이따금 스스로 깃을 쳐서 솔소리를 모으고 있는 백로이다. 이만하면 데뷔 작품으로는 평가할 만하지 않겠는가.
22. 나이테의 의미(3)
1986년 9월 1일, 창회 20주년 기념호로 25호를 발간한다. 20주년 기념호! 떠들썩한 축하의 소리가 흘러넘칠 만한 자리지만 서두와 후기의 석주의 변은 사뭇 침울하다.
◇ 창회 20년 기념호이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게 되는 본호에는 많은 동인들의 참여를 바라면서 원고 마감을 보름이나 늦추었지만 44명의 동인 중 17명만이 참여로 펴내게 됩니다.(후기 중)
◇ 엽서 한 장이면, 참여든 그렇지 않든 연락이 닿으련만 동인지를 받고도 엽서 한 장의 왕래도 없는 각박해지는 풍토는 누구의 책임인지 모르겠습니다.(후기 중)
◇ 지금까지 전체 동인의 숫자도 80여명이 되었으나 거의 반수가 시나브로 떠나갔고, 지금은 44명의 가족이 있으나 1987년이 되면 또 얼마나 떠나갈지는 당사자만이 알고 있는 일일 뿐이다. (책 머리글 중)
◇ 계간으로 발간되는 동인지에 한 해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 등 회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회칙에 의하여 행렬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 머리글 중)
창회 20주년 기념호 특집으로는 창간호로부터 25호까지의 각종 통계자료를 싣고 있다. 그 자료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창간 서시 및 후기(정석주), ‘80~’83년도《시조문학》지 출신 신예 시인의 신작(4,11,15호), 동인 수상작품(8호), 동청 시조동인회(9호), 부산시조문학회(10호), 비화, 섬문학회(13회), 현역 여류시인, 시조동인 소심회(14호), 나래동인 등단 작품(17호), 제6회 회원전 초대작품(21호), 원로 초대시조로는「겨울 수심가」(정완영. 2호),「 단풍을 바라보며」(리태극.2호),「무제」(정소파.3호),「산정수정」(리정룡.3호),「세월이 외로우면」(정완영.6호),「내 사랑은」(박재삼,6호),「자핫골의 밤」(리태극. 17호),「문경새재」(림영창. 17호),「새재 영시」(정완영. 23호)가 있다. 그리고 산문으로는「빵짜론」(정완영. 5호),「시조의 기본율」(박재삼. 7호),「시조시인의 자긍과 정신」(정소파. 8호),「시조와 작법상의 제 문제」(박영교. 13호) 등이 보인다.
다음은 창간호부터 25호까지의 동인지 발간 현황이 소개되어 있다. 총 쪽수 3,896쪽, 부수 14,300부, 초대시 25명에 28편 48수, 특집 176명에 196편 415수, 동인 615명 2,633편 6,026수이다. 그 다음은 각종 기념패 증정 현황, 회원 작품전 현황 등의 순서로 특집을 짜고 있다.
23. 나래20년사의 간행
1986년 10월 1일, 나래20년사를 간행한다. 題字는 서강 정덕채님의 유연한 휘호로 장식한다. 석주의 발간사에 이어 김동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의 치사가 있고, 정완영 박재삼 양 고문의 축시, 리태극 한국시조시인협회장과 이우종 현대시조시인협회의 축사가 이어진다. 김혜배, 정덕채, 최일환, 이종훈, 박일송, 이상범 등 문필가들의 축화와 휘호가 제자리들을 잡고 앉았다. 격려사를 주신 분들은 호남시조문학회의 정소파 회장, 씨얼문학회의 김광수 회장, 부산시조문학회의 양원식 회장들이고, 고두동 외 14인 시조시인들의 축사가 있다. 다음으로 ‘내가 지켜 본 나래’에서는 호남의 경철 시인 외 6인이 자리를 빛내고 있다. 다음은 동인들의 회고사, 회고시, 자축시가 있고,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정진석 시인의 “동인문학사적으로 본 나래”가 소개되어 있다. 나래를 떠난 시인들의 “나의 나래시절”, 다음으로는 동인들의 “나의 대표작”이 이어진다. 부록에는 회칙, 연혁, 약사, 회원현황, 회원약력, 각종 기념패 증정 현황, 개별 동인들의 동인지에 작품 발표현황, 후원회원 현황, 동인지 발간현황, 회원전 개최현황, 편집 후기 순으로 신국판 290면의 장정이다.
책의 체제 소개에서 보인 바와 같이 석주는『나래20년사』간행을 통하여 나래를 당시 한국 시조시단 내지는 범 문단적으로 소개하고자 노력하였다. 김동리 문협회장을 비롯한 자유시인, 평론가, 후원회원들과 같은 여러 계층의 글들을 소개한 것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24.나이테의 의미(4)
1986년 송년호로『나래시조문학』26호를 발간한다. 송년 수필로『나래 20년사』 발간 자축연에 대한 민병찬의 ‘나래들의 잔칫날’을 비롯하여 유윤희의 ‘외로운 경기를 지켜보며’, 이대영의 ‘나래여 근하신년’, 신진식의 ‘당당한 걸음걸이로’가 있다. 20주년 기념호보다 차라리 30명의 동인이 대거 참여한 송년호가 다욱 뿌듯한 동인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역시 동인지는 동인의 참여가 생명임을 실감하면서, 앞서 일하는 임원진에게는 원고 마감의 기한을 지켜 보내지는 동인의 이름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상기해 본다.
25. 나이테의 의미(5)
- 나래20년사 발간 자축 스케치
1987년으로 넘어가기 전에『나래20년사』발간 자축연의 모습을 스케치해두어야 할 것 같다. 이 내용은 필자가 정리하기보다 동인지 26호에 실린 민병찬의 글을 인용하면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나래들의 잔칫날” - 민병찬
시월상달 초하루. 때마침 아시안 게임의 열기로 들떠있는 서울거리엔 이날따라 쌀랑한 가을바람이 설레고 있었다.
‘나래이십년’을 뒤돌아보고『나래20년사』발간을 자축하는 우리들의 잔칫날-. 이십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일이나, ‘나래20년사’ 발간을 자축하는 일이나 말로 이르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당사자인 나래가족들의 느낌은 형언할 수 없는 감회와 보람과 그 무엇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동대문야구장 건너편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지하 카페 ‘파발마’에는 병상에 계신 김혜배 화백의 축화가 남 먼저 도착해 있었고, 한복 차림의 정회장과 준비를 위해 상경한 문경팀과 재경회원 몇이서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회장의 엄명에 따라 오랫만에 입어본 한복이 다소 거추장스럽긴 해도 무슨 날의 기분을 내기에는 족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보내준 축화와 후원 회원이신 이돈희, 류영애님의 아담한 꽃바구니가 가을과 꽃과 시의 축전을 아늑하게 꾸며주는 가운데, 여성 손님과 회원들의 원색 한복 빛갈이 은은한 빛의 코러스를 연출해 주는듯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드는 손님들과 회원들로 장내는 붐비기 시작하여 주최측의 예상을 뒤엎는 많은 참석자들로 하여 좁은 실내는 말 그대로 초만원이 되었다. 정회장의 상기된 얼굴이 감회색 두루마기에 싸여 유난히 불콰해 보이고 회원들의 얼굴마다에도 성대한 잔치손님의 운집으로 설렘과 당혹의 표정이 역력했다.
오신 손님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한국시조단의 대부격인 월하 이박사, 현대시조의 이우종 선생, 공주사대의 임헌도 박사, 대전의 신기훈 선생, 광주의 경철 선생, 씨얼문학회의 김광수 시인을 비롯해서 권혁모, 김태수 제씨들이 참석해 주셨고, 여류 쪽으로는 이채란님, 박옥금님, 정위진님, 진주의 이월수님, 김남환님, 이일향님, 전연욱님, 송길자님, 홍오선님 등 원로 중진 시조시인들이 망라되었고, 특히 우리들의 뒤를 받쳐주고 계신 류영애, 이돈희 후원 회원님들의 참석은 우리를 더욱 마음 든든하게 해주었다.
나래가족들로서는 우리의 존경하는 고문이신 백수 선생님을 위시하여 정회장, 부산의 이창희, 장정애, 울산의 강세화, 마산의 강호인, 진주의 신진식, 대구의 리강룡, 허민홍, 김시현, 금산의 길일기, 제천의 최길하, 안동의 정광영, 문경의 신후식,장세득, 인천의 이대영, 서울의 남궁영,최광순, 남전희, 방성운, 이철하, 민병찬, 김인숙, 김민정, 유윤희 회원 등 전국각지의 회원들이 모여들어 우리 나래만이 가질 수 있는 거국적인 잔치판이 되었음을 가슴 뿌듯이 생각하게 되고, 그 동안 잠시 우리 곁을 떠났던 남궁영, 허민홍, 최광순, 남전희 님들이 다시금 옛집으로 돌아와 나래의 합창을 함께 하게 된 계기가 된 오늘은 이래저래 기쁜 날이 된 것 같다.
리강룡 부회장의 사회로 열두 시 반부터 식이 진행되었다.
이십 년을 되돌아보고 그 간의 겪었던 갖은 애환을 되새기는 정회장의 기념사는 격한 감격으로 격앙되어 갔고, 결의에 찬 나래인의 의기가 장내를 압도해 나갔다. 특히『나래20년사』발간 비용을 위해 거액을 희사하고도 끝까지 자신을 숨겨달라고 한 어느 뜻 높은 분의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가슴을 감동케 한 듯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이어서 월하 박사님의 분에 넘친 칭송과 격려의 말씀이 우리를 뿌듯하게 해주었고, 이우종 선생의 충정어린 축사와 광주의 불도저 경철시인의 우리 시조단의 화합을 부르짖는 현하지변이 도도히 흐르는 사이사이 김민정 회원의 나래 서시 낭송, 민병찬, 신진식 회원의 자축시 낭송이 곁들여져 시인의 잔치판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었다.
한편 우리 시조시단의 불세출의 명장이시고 나래를 항시 따듯이 감싸주시면서 때로는 따끔한 채찍으로 일깨워주시는 백수 선생님의 차분하고도 절절한 타이르시는 말씀이 이날 식전의 대미를 감명 깊은 여운으로 마무리지어주셨다.
시조가 있는 잔치-.이것은 우리 민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한국인다운 멋의 한판이 아닐까. 식순이 끝나고 주연이 이어지면서 좌판은 도도한 흥취가 감돌기 시작했다. 맥주잔 부딪히는 음향이 곳곳에서 생기 있게 들려오고, 노장과 신진, 남자와 여류들이 한데 어울려 해후의 정을 풀면서 지와 인생과 추억을 이야기하는 동안 어찌 노래가 빠질 수 있겠는가. 마이크를 잡고 십팔 번을 목청껏 뽑아내는 시인의 목소리들이 담배연기 자욱한 실내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날의 모임은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참석한 분들의 비중이나 다양함이나 그 내용의 심도에 있어서, 문단의 어떤 행사보다도 알차고 정겨운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중앙문단의 공식 모임도 아니고 일개 동인그룹의 자축 모임이 이 이상 더 어떻게 성대할 수 있으랴.
나래 이십년을 정회장과 더불어 가장 오래 겪어왔던 사람 중의 한사람으로서 그동안 시정의 오탁, 악세의 먼지를 겹겹이 뒤집어쓰고 살아오느라 변변히 내놓을 시조 한수 열매 맺어 보지 못한 주제이나마 참으로 감격스럽고 흐뭇한 하루였다.(1986.10.1)
26. 돌기둥 무너지던 날
이제 필자는 나래를 위하여 발분망식하던 석주 정환의 시대를 마감하는 1987년 정묘 3월 1일에 발간한『나래시조문학』27호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그만큼 이 동인지는 눈물겨운 동인지이다. 동인지의 머릿글에서 벌써 ‘글힘’이 빠져 버린 석주의 글은 지금도 예사로이 읽을 수가 없다.
뜻 깊은 병인년을 보내고 정묘년 새해를 맞으면서 가지는 정기총회에 정완영 선생님과 박재삼 선생님 그리고 전국의 자랑스런 나래인의 모임에서 인사드리지 못한 채 수자의 글로써 대신함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래는 1987년이 또 다른 비상의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새로운 임원의 선출로 하여 간단없이 발전하는 나래가 되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거기에는 희생과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뜻 깊은 총회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나래인의 훌륭한 문학인 정신을 기대합니다.
종전과 달리, 이처럼 짧은 글 속에도 어법과 조리가 맞지 않는 석주의 약해진 글힘이 지금도 눈시울이 아프게 하고 있다. 그리고 후기에는 신후식의 슬쓸한 글이 흔들리고 있다. 그의 글 첫 단락에서는 “나래시조문학회를 이끌어 오기에 너무 많은 날들을 애태웠던 회장이 와병중입니다. 우리 모두 쾌유를 빕니다.”라고 보고하고 있고, 같은 글 끝 단락에서는 “정석주 회장은 많은 분들의 회생을 위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할렐루야 기도원에서 투병 중 1987년 2월 18일 영면하였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적고 있다.
석주, 그에 대한 마지막 선고는 동대구의원에서였다. 검사 의뢰를 넣어 놓고 기다리는 시간에 나래의 뒷일을 걱정하던 중,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마지막 선고를 들은 누님의 가슴을 뜯는 통곡도 본인은 알지 못한 채 석주는 “곧 나으리라”면서 점촌으로 떠났다. 마지막이었다. 그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평소 먼 거리에 서 있던 하나님을 부르면서 할렐루야 기도원 어느 방에서 소천하였다.
허위허위 점촌 땅 신기리를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그 쩌렁쩌렁하던 목소리와 그 우람하던 몸짓은 간 곳 없고 백국화 향기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친지와 동인들의 흐느낌 속에 어신리 선영에 안장하고 난 얼마 뒤, 오석 돌덩이 하나 동인의 이름으로 무덤 앞에 세우고 ‘석주 정환 시비’라 이름 하였다.
27호에서는 경규희, 길일기, 정공량, 이자영 4인의 동인이 나래를 떠나고 대신 남궁영, 남전희 두 분의 동인이 잠시의 휴식 끝에 다시 복귀하여 42인 가족의 이름이 동인지 첫머리에 실려 있다.
‘86년의 동인 활동에서 특기할 것은 나래도 이제 작품집 발간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감이 든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각종 백일장 입상, 문예지 또는 신춘문예 당선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86년부터는 먼저 등단한 동인이 그 간에 써놓은 작품들을 모아 작품집을 상재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석주의『설야』, 허성욱의『월포리 사설』『하나님의 중력장』, 김시현의『쇠달구지의 노래』, 성덕제의『그대 눈빛에 내 영혼을 담아』, 장정애의『불을 지피며』가 그것들이다.
'86년《시조문학》지 추천완료 신예 시인으로는 박용찬, 신후식, 강호인, 민병찬이 있고, 같은 지면의 초회 추천으로 김인숙 동인의 이름이 보이고 있다.
27. 새로운 飛翔을 기약하며
1987. 1. 18. 석주(石柱)가 갑작스럽게 비명(非命)에 떠나고, 우리는 잠시 그 허탈감에서 깨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계속 슬픔 속에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회칙에 따라 당시 부회장이었던 필자가 나래 제2대 회장을 맡기로 하고, 부회장은 유윤희, 강호인 동인, 감사는 이대영, 김인숙 동인, 서울 지역 회장 민병찬 동인, 부산 지역 회장 허성욱 동인, 1987년 주간은 신후식 동인이 맡아 수고하기로 하였다.
1987년 5월 28일, 나래 28호를 故 정석주 회장의 추모 특집으로 세상에 펴내었다. 지금까지 동인지의 체제를 탈피하여 표지의 지질 파운드를 높이고 새로운 飛翔의 의미로 이제 막 가지에서 비상을 시작하는 鶴 한 마리를 표지 그림으로 선정하였다.
당시 추모 특집에 실은 필자의 책머릿글의 일부를 인용하여 그 때를 잠시 회상하고자 한다.
故 정석주 회장의 영면을 동인 모두의 이름으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나래』28호를 추모 특집으로 발간합니다. 생전에 나래를 위하여 너무도 헌신적이었던 그 분의 유지(遺志)를 받들고 우리들 자신의 더 높은 비상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벼랑 아래로 떨어져 봄으로써 더 큰 비상의 힘을 얻는 독수리의 슬기”를 체득해야 할 때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전국 각지에서 생면도 없이 모여 “동인지 불모”라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특수성의 한 모퉁이를 불식하며, 나래를 그루터기로 하여 신춘문예에서, 문예지의 신인상에서, 추천에서, 전국 규모의 백일장에서 줄기찬 자기 성장의 행진을 계속해 왔습니다. 나래의 성격은 끈끈한 생명력입니다. 왕성한 의욕입니다. “작품도 없는 신인들이 많다”는 작금의 시조단의 이야기는 적어도 우리 나래인에게는 논외일 것입니다. 우리는 쉼 없이 쓰면서 모이면서 서로의 신끈을 메어주며 연면한 흐름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꽃송이야 크든 작든 양광(陽光)과 지하수(地下水)마시고 피워내는 향기로운 생화(生花)의 잔치를 벌여 나갈 것입니다. 식장(式場)에서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 의젓이 서는 가화(假花)의 화한이기 보다는 차라리 사람의 눈에 잘 닿지 않는 산야(山野)의 이름 없는 풀꽃이고자 합니다.
사실 그때 필자는 황당하였다. 그저 작품이나 보내는 것도 무슨 유세나 하는 것처럼 회장의 몇 번에 걸친 독촉을 받고서야 보낼 때가 많았을 정도로 동인회에의 애정이 변변하지 못하였다. 거기다 동인은 이 땅의 다른 동인회와 달리 전국에 산재해 계시고, 동인지는 이 땅 어느 동인회도 추진하지 못하는 계간 발행을 계속해야 하고, 각종 會의 행사를 위한 예산 같은 것은 더더욱 기대할 것이 없었으니, 그 상태에서 회장의 임무를 맡는다는 것이 능력도 책임감도 부족하기만 한 내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어쨌거나 짐은 이미 짊어진 짐이고, 첫 번째로 할 일은 동인지 28호를 고인의 추모 특집으로 발간하는 일이었다.
『나래』28집, 고 정석주 회장 추모 특집의 차례는 필자의 책 머리글, 화보, 고인의 약력, 저서, 낙관, 고인이 도안한 나래 휘장, 유작, 시작 태도 및 방향, 작품 選, 추모시로는 정완영, 박재삼 두 분 고문 외 50명의 전국 시인들이 옥고를 주셨다. 신동철 외 3인의 輓詞-한시(漢詩)-, 박순혜의 추모사, 24명 동인의 추모시, 4명 동인의 추모사, 26명 동인의 신작, 회칙, 방명록, 회원 주소록, 후기의 순으로 Vol 232면의 동인지를 엮었다. 지금까지의 동인지와는 換骨奪胎의 모습을 보이고자 몸부림쳐 보았다.
작품 하나를 들어 본다.
한 자락 바람으로
머리카락 날리다가
새재 골안 쑤꾸기의
피빛 울음 삼키다가
놀빛이 시들어지면
검은 하늘 이고 선다.
- 정석주,「자화상」전문 -
우연찮게 필자가 점촌 땅에 발을 들인지 어언 2년 여, 이제 13년이 흐른 지금 고인이 살던 하늘 아래 와서 고인의 이야기를 쓰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 봄은 왔다고 하나 이화령 잔설을 뚫고 온 봄바람은 아직도 엄동인데 고인의 ‘자화상’을 소개하자니 새삼 /한 자락 바람으로/ 서서 머리카락을 날리고 선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연하고, /놀빛이 시들어지면/검은 하늘을 이고/서 있는 돌기둥 같던 모습, 그 우람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특유의 카랑카랑하던 쇳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새재 비워 두고
경상도 다 비워 두고
나그네 꽃술에 젖어
소식 멀다 여겼더니
그대는 우리 깊은 곳
둥지 틀고 계셨네.
- 전영순,「새재 비워 두고」전문 -
추모시 가운데 한 수를 옮겨 보았다. 전국에서 52명의 시인들이 절절한 추모의 시를 보내 주셨다.
/첨 만난 정석주는 혼자 앉은 바위더니/두 번짼 푸른 산빛 열고 나온 부처더니/이제는 주흘산 뜬구름 자취 없이 가 버렸네/(정완영 1/3),
/그대 가고 없는 지금/그 뻐꾸기 짐 챙기고/이승에 나만 처지네/허무함을 더하네/(박재삼 1/2),
/새재 바람 맞으며 당신을 찾던 날은/첫눈이 내렸던가요 설레이던 마음 가득/육회에 막걸리에다 밤 가득히 새웠더니/(김민정, 1/2),
/까막수리 산발치를 한식날 찾아가니/보슬비가 제 먼저 와 명복을 빌고 있네/삼이웃 작고 큰 산은 진달래를 안겨놓고/(김순한, 1/3),
/나 죽어 조시(弔詩)를 써야 할 문경 새재의 영우시인(嶺愚詩人)/그 육중한 색신(色身)으로 뭐가 바빠 먼저 갔는가/그래도 사나이 일생 할 만큼 하긴 했지/(림영창, 1/3),
/볶은 콩 콩알이듯이 입에 톡톡 털어넣던/쐬줏잔 그 쐬줏잔 놓았는가 못 놨는가/저승도 나래의 일이어서 훌훌 깃쳐 갔을 너/(서벌, 석주 생각, 전문),
/조령관 오솔길을 도란도란 넘자하니/선약(先約)이 있다시며 다음날로 미룬 것이/청천에 치는 벽력으로 귀를 울리는 이 하루(양원식, 1/4),
/님께서 가시다니요 붓 던지고 가셨다니요/그 정열 그 호방을 버리고 가셨다니요/이 「산하」저 언덕일랑 차마 두고 가셨다니요/(이우영, 1/4).
대충 잡히는 대로 몇분의 추모시를 옮기며 그날의 안타깝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석주 가신지 다시 십여 성상, 동안에도 우리는 주위에서 끊임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했고 또 해 오고 있다. 어제도 안중식 동인의 음성을 전파 속에 들었다. 반가움에 겨워 우선 안부를 여쭙는 중에, 물 젖은 음성의,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또 들어야 했다. 예천 땅 고향에 와 계시는데 백씨장께서 운명하셨다고 했다. 아! 교체(交替), 필자는 성탄절 부근의 어느 날 이모부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겨울 상수리나무를 쳐다보며 작년도의 마른 잎이 새로 태어날 잎눈을 지키며 칼바람 앞에 우우우 떨며 흔들리는 것을 보고, 돌아와 /교체(交替)/라는 졸작 하나를 정리한 바 있다. 미물의 교체가 그렇게 아프고 힘들진데 하물며 우리 영장(靈長)에 있어서랴. 간절한 추모의 시를 보내주신 전국의 시인들께 십유 성상이 지난 지금이지만 고인을 대신해서 다시 한 번 간곡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1987년 9월 1일, 나래 29집을 上梓한다. 책 머리글에 필자의 “作風의 確立”이 있고, 작품이 늦게 도착하여 지난 28호 추모 특집에서 싣지 못했던 정소파, 김경자, 장지성, 조병희 네 분의 작품을 실었다. 동인 신작으로는 23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후원회원 김행채님의 작품이 있고, 후원회원 방명을 비롯한 회칙, 회원 명부, 후기 등의 會告가 실려 있다.
29집에는 이기동이란 새 얼굴이 한 분 보이고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온양에 거주하면서 목회에 뜻을 두고 신학을 공부하던 사람이다. 본 호에서는 /흙노래/라는 제목으로 단수 5수와, 청소부, 목공의 노래, 달, 소녀 간호원 등을 보이고 있는 바, 작품들이 모두 비교적 장편들이어서 역량을 달아보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중에 /소녀 간호원/ 한 편을 선보이기로 한다.
가냘픈 꽃술 돋우며/바람에 떠는 촛불
어린 날 꿈꾸던 천사/촉루가 똑똑 지는데
낙화와 함께 지새워 꽃맺이가 불타네
병든 나무 가꾸다/그 뿌리가 되어 보고
절망 이상으로/촉촉히 적시는 봄비
나목(裸木)의 상처를 싸매/신록으로 피었네.
- 이기동,「소녀 간호원」전문 -
아마도 작자가 병원에서 본 간호사는 앳된 간호사인 것 같다. 仁術을 베푸는 간호사의 모습을 비교적 잘 표현하고 있다. 환자, 의사, 병원 등의 제재와 관련한 단어를 한 마디도 사용하지 않고, 환자를 지칭하는 가냘픈 꽃술, 바람에 떠는 촛불, 낙화, 병든 나무, 나목(裸木) 등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첫째 수 중장에서의 /촉루/가 둘째 수 중장에서는 /봄비/로 확대된 점, /촉루/를 통하여 /꽃맺이가 불타/게 되고, /봄비/로 인하여 裸木의 상처에도 신록이 피어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촉루/와 /봄비/는 간호사의 눈물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환자가 앳된 간호사의 눈물을 먹고 소생의 기쁨을 맞이하고 있음을 작자는 자연 현상에 비겨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특히 /병든 나무를 가꾸다 그 뿌리가 되어/ 나무의 아픔을 함께하다가, 마침내 절망 이상의 눈물을 봄비처럼 쏟는 간호사의 모습을 작자는 예리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첫 번째로 보이는 작품으로는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다.
처음 출발하는 분에게 과도한 주문이 되겠지마는 예로 보인「소녀 간호원」외의 「흙노래」「청소부」「목공의 노래」등은 너무 생경한 언어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해 꺼끌꺼끌하였고, 감상적(感傷的) 분위기로 일관한 작품(/달/) 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1987년 12월 1일 동인지 30호를 上梓하면서 다사다난했던 1987년을 마감한다. 필자는 이 원고를 쓰면서 동인지 30호까지의 1987년을 나래史의 한 분기점으로 보고자 한다. 나래의 연륜과 동인지의 號數를 비롯하여 人的 구성의 변화, 그리고 회원의 시적 능력의 성숙 등 다각적인 면에서 30호를 그 분기점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을 30호 책머리에서의 필자의 辯의 일부를 옮기는 것에서 찾고자 한다.
인생도 서른이면 장년기라 합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무지개 빛으로 찬란하던 십대, 外界의 변화에 민감하기만 하고 그에 대처할 힘이 충분하지 못한 이십대, 그 흐름의 구빗길을 돌아 이제, 서서히 나타나는 生涯의 종점도 바라볼 줄 알고 그 동안 世事에서 맛본 甘苦를 바탕으로 주변의 변화에 제법 초연해할 줄도 아는, 그러한 나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중략-
문학을 한다는 것이, 특히 우리의 민족시 時調의 밭을 경작한다는 것이 문학의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뜨거운 가슴이어야 한다면, 더욱이 우리의 깃발이 30호 장년의 뿌리 깊은 깃발이라면, 외계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묵묵한 뚝심으로 한국시조문학사의 한 모퉁이를 개척 또는 개혁한다는 거창함 슬로건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나래에 대한 이제까지의 애정보다도 배전의 애정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진실로 우리의 행진이 시조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召命意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행진이라는 사명감을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한 시조에의 열정으로 매진할진댄 반드시 60배, 100배의 수확은 거두어지리라 확신합니다.
30호의 체제는 “새로운 도약의 時點”이라는 필자의 변을 실었고, 백수 선생의 초대시 /모과/가 빛을 내고 있으며, “4320년을 보내며”라는 題下에 김선영, 림혜미, 성덕제, 신진식, 윤신근, 이기동, 이대영, 이상진, 여덟 분 동인의 송년 수필을 실었다. 이어서 20명 동인의 신작과, 후원회원 방명록, 회칙, 주소록, 후기 등의 순서로 30호를 짜고 있다.
28. 詩人과 詩碑
1988년, 역사적인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는 해, 이 해에 우리는 우리대로 역사적인 한 가지 과업을 수행하였다. 故 鄭會長의 시비를 까막수리 8부 능선 故人의 유택 앞에 제막한 것이다. 그때의 감상과 상황을 필자의 책 머리글에서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한 시인의 세상과의 이별은 참으로 쓸쓸한 이별입니다. 이승 생활의 어느 일 하나 쉬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으리잇가마는 오늘처럼 메커니즘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소외되기 쉬운 시대에 그래도 ‘인간 구원’의 마지막 보루는 예술이라 믿습니다. 그 예술 가운데서도 詩業을 선택하여 한 사람의 시인으로 서기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며, 더욱이 요절한 시인을 가슴아파하는 것은 그 시인의 목숨이 단순히 한 사람의 목숨일 뿐 아니라 시대의 아픈 양심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크나큰 사명을 그의 뜻대로 다하지 목하고 떠나는 데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곳곳에는 그분들의 주옥같은 작품을 새긴 詩碑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말처럼 무한한 時空에 맞 비추면 한 개의 微塵도 못되는 초로인생이 70을 살면 무엇하고 100을 향수하면 무엇하겠습니까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존재로 지어진 인생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변화에 대하여 희로애락의 정한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고 석주님의 시비를 3월 6일, 고인의 외로운 유택지 까막수리 8부 능선에서 제막합니다. 하실 일 가실 길을 창창히 남겨두고 떠나신 분이기에 우리는 더욱 아파하며 동인 제위의 가난한 마음을 묶어 조그만 烏石 하나를 세웁니다. 이것은 생전에 나래를 위해 노심초사, 분골쇄신하시던 고인에 대한 우리의 조그만 정이기도 하고, 뒤대어 흐르는 우리들의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을 채우는 위안이기도 한 것입니다.
31집의 특징은, 동인지의 표지를 모든 동인이 순환하면서 꾸미기로 한 것이다. 28집에 필자가 나뭇가지에서 飛翔을 시작하는 鶴 한 마리를 올린 이후 29, 30집에서는 2도의 평범한 표지로 꾸몄다가, 31집에는 창회 동인인 윤신근이 표지를 꾸미고 있다. 아카시아 나무 높은 꼭대기에 매달린 까치집 하나였다. 윤신근은 그 辯에서 “冬天에 매달려 혼자서 겨울을 감당해 온 까치둥지가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우리 ‘나래’라는 둥지도 나래인의 힘찬 소리를 기다리며 늘 불을 켜놓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차례에도 또 한 가지 특징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공동주제 작품”란을 신설한 것이다. 첫 번째의 공동주제는 “江”이다.
아라리 한 자락을 묻고 사는 강 사람은
바람이 일 때마다 갈대 소릴 내고 산다
가슴 그 갈밭에 내린 철새깃을 줍고 산다
돌아간 저 굽이를 來生이라 이른다면
나는 또 어느 자리에 뉘 목숨을 다시 빌어
전생의 죄된 業들을 물길처럼 풀게 될까.
- 최길하,「江」2-3/3 -
최길하의「江」이다. 구슬픈 아라리 한 자락이 금방이라도 어느 구석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정선의 아우라지강가에서, 아라리 한 자락을 묻고 사는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쓴 작품이다. 시인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갈대 소릴 듣고 있고, 그들 가슴속의 갈밭 한 뙈기에 내린 철새깃을 보고 있다. 다시 눈을 돌려 묵란 한 잎 휘어지듯 흘러가는 강을 보며 /돌아간 저 굽이를 來生이라 이른다면/나는 또 어느 자리에 뉘 목숨을 다시 빌어/전생의 죄된 業들을 물길처럼 풀게 될까/라고 읊으며 깊은 思惟의 강으로 詩想을 확장시키고 있다.
대상물을 보되 카메라의 포커스를 정확하게 맞추어 사물을 여실하게 찍어낸 작품은 아름답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뒷면을 찍어내는 일은 사진사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한 단계를 높여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의 영역이다. 최길하는 江물이라는 소재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그 영역을 소화해 내고 있다.
또 하나 31집에서 특기할 한 가지 사실은 故 鄭會長의 肉筆作品을 지상 전시한 점이다. 이 작업은 32, 33집까지 3회에 걸쳐 연재하게 되는 바, 31집에서는 ‘가을에’ 외 10수를 전시하였다. 고인의 달필을 보면서 다시 기억이 새롭다. 필자의 신춘문예 당선 시상식 때였다. 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정회장이 그 특유의 쇳소리를 내며 환한 웃음을 머금고 나타났다. 손에는 당선 작품을 정성껏 써서 표구까지 해서 들고 나타난 것이다. 작품 당선 시상식 선물에서 이보다 더 값진 선물이 어디 또 있겠는가. 그 작품은 지금도 필자의 서재에 소중히 걸려 있다. 필자에게는 제법 명성 있는 이의 표구도 있다. 필자도 연전에 몇 년간 書室의 末席을 나든 적이 있어 쓰지는 못해도 보는 눈은 조금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바, 작품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 전체가 연출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고인은 어떤 이름난 스승 밑에서 수업을 한 것도 아니며, 다만 그의 先大人 밑에서 서예 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 고인의 작품이, 안목이 좁아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그 “편안한 분위기 연출”면에서 보기 드문 점수를 획득하고 있다. 이 달필을 지금 책에 실려 놓지 않으면 유실의 우려가 있겠다는 걱정에서 이 작업을 서두르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下世한 시인의 유작과 유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詩碑 건립 사업과 일맥상통하는 작업이다.
31집에는 21명의 동인이 신작을 발표하고 있으며, 후원회원으로 宋隱, 松珠 두 분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후기에는 문예진흥원의 동인지 발간 기금 지원을 약속받았다는 공고가 있다.
1988년 6월 1일, 여름호 32집을 상재한다. 표지는 두 마리의 鶴이 파도 높은 바다 위를 힘차게 날고 있는 그림이다. 민병찬은 표지 그림 선정의 경위를 이렇게 읊고 있다. “달 밝아 푸른 밤을 학 울음 듣는 이여/시름 올 엉긴 恨을 창공 아득히 띄워놓고/긴 밤을 함께 울어서 설움 한 장 헹구소서.” 표지 그림에 걸맞게 “공동 주제 작품” 또한 “鶴”을 제재로 선정하였다. 16명의 동인이 공동 주제 작품과 신작을 발표하였고, 필자의 책 머리글과 후기에는 제7회 동인 시화전에 대하여 간절한 會告를 거듭 보내고 있다. 故 石柱 육필 작품 지상 전시회에는 /백록담/ 외 11수를 싣고 있다.
1988년 9월 1일, 가을을 맞으면서 나래 33집을 상재한다. 표지 그림은 선정자에 대한 기록이 없고, 잘 기억도 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때 입회 순서로 선정하기로 하였으니, 그리고 윤신근, 민병찬이 이미 선정하였고 34집의 선정자가 신후식이니 이로 미루어 생각해 본다면 아마 부산의 허성욱일 것으로 짐작된다.
공동주제작품의 제재는「섬」이고 15명이 참여하였으며, 신작에는 18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故 石柱 유작 지상 전시에는「설야」외 11수를 전시하였다.
오랜만에 새로운 이름이 한 분 보이고 있다. 인천에 살던 김선국 동인이다. 김 동인은 뇌성마비로 고생하던 분이었다. 상당히 심한 편이어서 타자기 앞에서 한 타 한 타를 찍어 작품을 쓰고, 편지를 보내곤 하였다. 김 동인의 편지를 받고 나면 항상 마음이 울적했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그 분의 땀과 눈물 아니 방울방울 맺힌 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역경을 거쳐 등단을 하고『천상의 노래』라는 시집도 출간하여 세상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뼈 없는 육신이라
갑옷 한 벌 껴입고도
안절부절 쓸쓸한 걸음
한 평생 옆만 보다가
집게발
무거운 탓에
허리 한 번 못 펴나
- 김선국,「게」전문 -
예로 보인 작품 외에도「모란」「낙숫물」「소나기」「시계소리4」「파리」등을 선뵈고 있다. 작품으로 표현하는 자체도 고행이려니와 활자화하는 데도 고초를 겪어야 하는 김 동인은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아주 열심히 동인활동에 참여하였다. 다만 몸이 불편하니까 회합에는 나오지 못하였다. 비평에 작자의 환경을 알아야 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에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마는 필자 개인의 의견은, 알 수 있다면 작자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 그 작자의 작품 세계를 바르게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자의 가정적, 사회적 성장 배경이나 경제적 문화적 환경이 이러하니까” 하는 선입견을 버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여기 예로 보인 /게/라는 작품 외 다섯 수의 작품에서 감지되는 김 동인의 세계는 좀 무겁다. 詩語의 선택 면에서나 분위기 면에서나 약간은 침중하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그의 작품집 전체의 분위기는 꼭 그렇지는 않다. 하여튼 처음 선을 보인 작품치고는 상당한 수련의 흔적을 읽을 수 있어 기뻤다.
29. 또 하나의 대장정을 마치고
나래 34집 1988년 겨울호는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1일에 상재한다. 1988년은 우리 나래에게는 참 힘겨운 한 해였고 한 굽이의 대장정을 마친 한 해였다. 그것은 3월 6일 故 石柱 정환 회장의 시비 건립과, 동인지의 季刊 발행, 10월 1일부터 3일까지의 제7회 동인작품전을 개최가 그것이다. 제7회 동인 작품전의 상황은 앞의 12장 “때로는 바람처럼, 때로는 파도처럼”에서 언급하였다. 그 때 일일이 소개하지 않았던 방명 중, 文人團體만 잠시 소개하고 장을 넘기기로 한다. 대구광역시문인협회, 경상북도중등문예교육연구회, 대구광역시중등문예교육연구회,영남시조문학회, 경부선문학회, 매일문학회, 영남수필문학회, 영남아동문학회, 以後文學會, 부산시조문학회, 五流동인 등 대구 경북에 적을 둔 많은 문인 단체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강호인 동인의《시대문학》신인상 당선, 김정희 동인의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인숙 동인의《시조문학》추천완료, 이상진 동인의 “洛江전국시조백일장” 입상 등의 경사가 있었다.
제34호 동인지의 표지 그림은 동인의 입회 순서에 따라 신후식 당시 주간이 선정하였다. 새재 제3관문의 雪景 한 폭을 담으면서 한 수 시를 읊어 놓았다. /박달은 새재를 나와 큰애기 손길에 놀고/전나무 하늘 찔러 무너진 세월 마루/추녀 끝 눈을 삭이며 봄 기다린 鳥嶺關/. 제34호의 공동주제작품의 제재는 “情”이었고 16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신작에는 23명의 동인이, 기획 특집 송년수필에는 13명의 동인이 참여하여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30. 못 다한 깃발을 하나 더 올리고
1989년 희망찬 새 봄을 맞으면서 나래 제 35호를 상재한다. 제35호의 표지 그림은 부산의 장정애 동인이 선정하였다. 海棠花 한 떨기를 보내 왔길레 그 중 가장 예쁜 한 송이를 확대하여 표지화로 삼았다. 장정애의 表紙詩를 옮겨 본다. /바다로 가는 길엔 바람 재운 꽃이 있어/갯가 푸른 향내 꽃술로 숨어들고/꽃잎은 파도를 접어 밤을 켜고 있었어/.
창회로부터 계속하여 나래의 숙제로 넘어오던 한 가지 사업이 있었으니 〈나래시조문학상〉 운영이 그것이었다. 회칙 제18조에 기록만 해 놓고 동인 모두가 끙끙 앓기만 해 오던 사업이었다. 문학상 제정에 즈음하여 필자의 제35호 책 머리글을 이용한다.
창회로부터 회칙상에만 제정되어 있던 〈나래시조문학상〉을 금년부터 실시하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문학상이란 것은 그 규모야 어떻든 문학에 뜻을 두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며 채찍질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 회칙에서도 동인 작품의 질적 향상과 문학에로 정진하는 데 격려를 드리고 문학상을 제정은 하였습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그 동안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학회도 35호의 동인지를 상재할 만큼 적지 않은 연륜이 쌓였으며, 또 이와 함께 동인 제위의 소망에 따라〈제1회나래시조문학상〉을 시상하기로 합니다. 본 상은 연간 3회 이상 동인지에 작품을 게재한 동인 가운데서 우수 작품을 생산한 동인에게 시상하기로 합니다. -(중략)- 생각하면, 작품이란 것은 작자 자신의 내면에서 창출된 자신의 소리이기에 외부에서 주는 무슨 문학상 같은 것과는 본질적으로 무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역으로 말한다면 다른 어떤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에만 완전히 몰두할 때 정말로 좋은 작품은 써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래 35집은 또 한 가지 기념할 만한 사업이 있다. 그것은 동인지 사상 처음으로 동인의 회갑 기념 특집을 마련한 것이다.
林惠美 동인의 華甲紀念特輯은 年譜, 作品選, 외부인의 祝賀作品(화가, 디자이너, 친구, 막내 등의 祝畵, 頌辭 등), 동인 축시, 동인 頌辭 등으로 엮었다. 光復되자 바로(1946년) 평양교원대학교에 입학하셔서 졸업 후에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으니 당시로 보면 엘리트 중 엘리트셨을 林선생님, 지금도 고운 모습이지만 이제 甲을 넘기신 지도 어언 11년이다. 먼발치에서나마 늘 강녕하신 여생을 보내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한 수 작품을 인용한다.
휘적휘적 넘는 고개
남태령에 눈이 내리네
아슴히 걸어온 자국
나는 지금 사차원(四次元)인데
표표히 동천(冬天)을 날으는
호접들의 저 군무(群舞)
- 림혜미,「남태령을 넘으며」전문 -
공동주제 작품은 “고향”을 선정하였고, 신작에는 18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167면에는 동인의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10년간에 동인이 펴낸 시조집 및 자유시집은 민병찬의『사모곡』, 허성욱의『월포리 사설』『하나님의 중력장』, 신후식의『빈 마음』, 장정애의『불을 지피며』, 김시현의『쇠달구지의 노래』, 유승식의『꽃밭에서』, 김영상의『용주곡』, 이철화의『해방의 그날 파랑새야』『오! 베트남이여 너는 지금 그 어디에』, 성덕제의『까치소리』『그대 눈빛에 내 영혼 담아』『사랑하여 살아왔음에』, 김진혁의『바람으로 서서』, 정석주의『자유투고가』『산하』『새재』『설야』, 신순애의『노을에 타던 강』『향촌의 목가』, 박영식의『초야의 노래』, 강세화의『손톱, 혹은 속눈썹 하나』등이다.
1989년 6월 1일 나래 제36집을 발간한다. 표지 그림은 박필상 동인이 선정하였다. 두 마리의 백조가 물 위에서 퍼덕이며 나래치는 그림이다. 박필상은 이 그림을 보내면서 /백조에게/라는 한 수 시를 보내왔다. /울어라 새여/울어라 새여/불기둥 솟구치는/온 적막 다 허무는/네 노래/구만리 장천/쩡쩡 울게 울어라/어쩌면 빈 배 같은/어쩌면 먼 섬 같은/안으로 활활 타서/하얗게 앉은 새야/훠어이/멍울진 가슴/펑펑 쏟고 가거라./
제36집의 책 머리글은 필자의 제1회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관계로 이대영 부회장이 쓰고 있다. 그는〈또 하나의 깃발을 올리면서〉라는 글에서 문학상의 시상 경위를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본 문학상은 1988년도 동인지 31호에서 34호까지 수록된 총 334편의 작품 가운데서 年 3회 이상 작품을 실은 동인의 267편을, 지난 시조시인협회 총회시 상경한 임원진이 정완영, 박재삼 두 분 고문님께 드리면서 심사를 부탁드렸던 바 영예스런 제1회 수상작품으로 리강룡 동인의 ‘다부동에서 쓰는 편지’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後聞이지만 필자는 이 상을 수상하고 난 뒤 世間의 문인 몇사람으로부터 “네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네가 수상하면 그 모양세가 무엇이냐”고 핀잔을 들은 바 있다. 솔직히 필자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대영 부회장도 심사의 경위에서 밝혔듯이 필자 자신이 전혀 심사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동인지에 작품은 발표하였으니 주간이 심사 대상자로 선정하였으며, 백수, 박재삼 두 고문 선생님의 심사를 거쳐 발표되기까지 비밀에 부쳤으니 필자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여 찜찜한 채로 수상을 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수상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이야기를 쓰고자 하니 자신의 이야기를 또 써야 하는 난감함이 앞선다. 그러나 어찌하랴. 부끄럽지만 써야 할 것은 써야 하는 것이 역사인 것을. 작품과 수상 소감과 심사 소감의 요지를 인용하여 정리해 두고자 한다.
Ⅰ
바위 하나도 무심히 앉은 것 아닙디다
구르고 깨어지며 몸으로 써둔 비명(碑銘)
피 묻은 한 장 역사를
증언하는 빗돌입디다
Ⅱ
그저 지천으로 피는 들국이 아닙디다
봉축도 묘석(墓石)도 깊이 감춘 산언덕에
야린 듯 질긴 심지 끝
넋이 푸른 등(燈)입디다
Ⅲ
뺏고 또 빼앗긴 서러운 옥빛 능선
차마 발들이기 죄스러운 마음으로
보독솔 양지에 앉아
귀를 주어 봅니다
Ⅳ
손들어 아, 아, 아,……
그대 이름 외쳐 보면
귓가를 간지리는 결 없는 살바람이
「조국은 영원하리라……」
물무늬 저어 옵니다
Ⅴ
봄, 여름 산계(山鷄) 울음 녹여 피운 향(香) 그늘에
오려 송편 신도주(新稻酒)를 살과 피라 이름 하면
올려본 구만 리 거리
남빛 더욱 고운 바다
Ⅵ
산을 내리며 타는 단풍(丹楓)
가슴에도 물이 들면
탄우(彈雨) 멎은 자리마다 꽃은 또 벙그는데
억새밭 휘모는 바람
저 뿌리를 잘라야지.
- 수상작, 리강룡「다부동에서 쓰는 편지」전문 -
이 작품은 당시 필자가 5년간 구미와 대구 사이를 왕래하면서, 그 사이「다부동전적기념비」가 있는 유학산 기슭을 돌아보면서, 차마 발 들여 놓기가 죄스러운 그 「한국의 골고다」에 보이는 능선과 바윗돌과 보독솔과 지천으로 피어 흔들리는 들국화와 간단없이 서걱이는 억새밭 속에 들어 움직이는 바람을 보면서 시상을 일으켜 본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을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가슴속까지 물이 들 만큼 단풍이 익어 있어도, 탄우(彈雨) 멎은 자리마다 꽃은 저리 벙글어도, 빈산을 흔드는 억새밭 속에는 오늘까지도 서걱이는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있으니, 저 깊은 바람의 뿌리를 잘라야 다부원의 고혼들이 편히 잠들 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 답답한 물음을 던지면서 붓을 놓았다. 어쨌거나 난감한 수상 소감이었고, 이제 10여 년이 지나서야 이를 변명할 수 있는 글을 쓰게 되니 한 편으로는 다행스럽고 또 한 편으로는 두 번 죄스러운 마음이다.
정완영, 故 박재삼 두 분 고문께서는 이 작품을 선정하시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평을 써 주셨다. “제1회 수상작을 李康龍 씨의「다부동에서 쓰는 편지」로 결정했다. 다부동은 아시다시피 6.25의 격전지이다. 역사의 자리이다. 거기의 바위, 들국화, 능선, 바람 어느 것이나 다 有感한데 거기 현장에서 잔잔히 얻은 새로운 감회를 읊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역사적 현실을 이렇게 자기의 가락 안에 수렴하고 있는 것은 보통의 능력이 아니다.”
공동주제 작품으로 비(雨)를 선정하여 18명의 동인이 참여하였고, 신작에는 22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36집에는 김은숙, 김주석 두 분의 새로운 방명이 보이고 있다. 김은숙 동인은 강원도에서「탄성문학회」와「물보라」동인회를 이끌고 있고,『강물 위의 시간들』『네가 오기로 한 날에』『작은 나무이고 싶네』등의 시조집도 출간한 바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나래에서도 회장의 중책을 맡아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우리 시조단의 중진이다. 김주석 동인 역시《시조문학》지에 끊임없이 무게 있는 논문을 게재하여 한국 시조시단에 신선한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는 젊은 시인이다. 이 두 분 역량 있는 시인이 우리 나래에서 함께 손을 잡게 된 것은 1989년 여름 제36집이 그 출발점이다. 작품을 보기로 한다.
앞산에/겨울눈이/아직도 그냥인데
세월은 입춘 지나/한 발 앞서 봄이 오고
빈 벽에/울리는 소리/귀에 익은 딸애 음성
네 방/모서리마다/거미줄 같이 서린 애환
가슴속 솔바람만/떨리는 듯 허전한데
이제금/지난 세월이/그리움이 될 줄은---
- 김은숙,「빈집에 앉아」전문 -
김은숙 동인과의 첫 만남이다. 위에 보인 작품 외에도 /비안개/봄길 걸으며/사랑이야기/대밭에 서서/봄길 위에/만경사 저녁/바람에게/ 등의 비교적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 첫 만남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이 기쁘다.
작자는 지금 사랑하는 딸아이가 떠나고 없는 빈방에 앉아 있다. 자녀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정이야 더 일러 무엇하랴.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서 딸아이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아이가 아니라 출가를 하였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하여 상당한 기간을 기약하고 어머니의 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입춘을 지나 한 발 앞서 온 봄은 그 실은 작자의 가슴속의 봄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빈 벽에 남은 딸아이의 음성을 들으면서, 때로는 아웅다웅하던 지난 일들 하나하나가 지금은 그 모두 그리움이 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딸아이를 보낸 어머니의 곡진한 정이 잘 표출되었다. 새봄을 맞으면서 그 빈방에 동그마니 앉아 있는 어머니의 무너지는 가슴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그려져 있다. 대체로 처음 출발부터 시조를 향한 열정의 뜨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다만 선보인 여덟 수 가운데 50%에 해당하는 네 수의 작품에서 “숨결이여, 인연이여, 들녘이여, 사랑이여, 지평이여” 등 “---이여”라는 감탄어의 잦은 사용으로 인하여 과도한 감정의 노출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다.
10여 년이 지난 뒤의 김은숙을 비슷한 주제의 작품에서 다시 만나면 그 세계의 성숙과 확대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운명처럼 만나고/헤어지는/길목에서
산에 들면 산 우는 소리/강에 들면 강 우는 소리
목축여 하늘을 연다/네가 오기로 한/날에.
- 김은숙,「네가 오기로 한 날에」2/3 -
다음은 우리의 젊은 시인 김주석을 만난다. 김주석은 지금 경희대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고, 이미 세종대왕숭모백일장 시조 부문에서 장원,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 『시조문학』 추천 완료, 『현대시조』 신인상 당선 등의 여러 번의 검증을 거쳐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1991년도에는 『시조문학』지에 “조운론-탈출 의식과 자유 구조”로 평론에도 추천되어 현재 평론 부문에 적지 않은 논문들을 써내고 있다.
죽음을/기다림이 고통스레/살아오는
약속 날/오기 전에 제대로나/걸어가서
나중엔/약 없이 견디다/뉘우치며 떠날 거다
갈증은/시원스레 빛나는/그리운 힘
이내 길/접어들면 열리는/깃 속으로
목메는/한 덩이 비스킷/허기만에 녹으리./
- 김주석,「時調」전문 -
김주석의 작품은 태어나면서부터 상당히 주지적이다. 時調를 향한 기다림과 갈증, 기다리다 기다리다 나중엔 결국 약도 없이 견디다가 잘못 들어왔다는 후회 끝에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표출과, 그리고 때로는 /한 덩이 비스킷/이라도 얻게 되면 허기를 녹이기도 할 것이라는 시를 향한 목메인 그리움의 표출로 이해되는 작품이다. 지금 거의 대다수의 시인들이 서정 위주로 흘러가는 경향임을 감안한다면 우리 시조단에 김주석 같은 작시의 경향을 가진 시인은 분명 필요하고 생각한다. 다만, 김주석과 함께 논의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행 구분법이다. 김주석의 출발기의 많은 작품들은 그 행 구분을 자유시처럼 의미의 덩어리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놓고 보니 도대체 시조로 읽혀지지가 않는 것이다. 김 동인도 아마 상당한 고민 끝에 실험적으로 이런 행 구분을 시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자, 이제 김 동인의 시를 행 구분에 따라 읽어보기로 하자.
위 작품 첫 수의 초장을 읽어보면 /죽음을/을 읽고 호흡을 한 뒤 /기다림이 고통스레/를 읽는다. 그런 뒤 다시 /살아오는/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분명 문제는 있는 것이다. 중장과 둘째 수의 초․중장도 마찬가지이며, /강 건너/밭을 매고 고개 넘어 피를 뽑고/(복찻다리, 초장), /침 흘려/맺힌 미소 조여드는 이 하루를/(그물, 중장), /속에서/비롯됨을 밖에서 저어한들/(화장실에서, 초장) 등 김주석의 작품은 아무데서나 뽑아보아도 이러한 행 구분법은 쉽게 잡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10여 년이 지난 뒤 최근의 작자의 작품에서 찾아보자.
살 써는 소리 들었다
비늘 몇 점 벗겨 나가는
베어 나가는 그 자리에
눈물들 가루가루
으깨진 한숨을 보았다
희게 바스러지는.
- 김주석,「파도」전문 -
1989년 9월 1일 나래 제37집을 발간한다. 표지 그림은 필자가 선정하였다. 무엇을 표지화로 할 것인가를 망설이다가 석주 시비를 넣기로 하고, 한 수 시를 읊기로 하였다. /그대/돌기둥이/푸석푸석/웃는 변방(邊方)/풀씨도/키우지 않는/까막수리/황토땅에/산새가/솔숲에 남아/그대/‘연가(戀歌)’를 읊데그려/제목을 “醴泉가서”라고 부쳤듯이 까막수리 고 석주 회장의 무덤을 찾아가 소회를 읊어 본 것이다.
필자의 책 머리글에서는 1989년 여름 총회 보고가 나와 있다. 제1회 나래시조문학상에 시상식을 스케치하고 있고, 이를 축하하고 취재하기 위해 나오신 시조문학사, 현대시조사, 시조생활사, 海東文藝社를 비롯한 내빈들에의 감사와, 과천 관광호텔에서의 전야제 행사, 시상식 스케치, 老軀를 돌보지 않으시고 행사의 시종을 주관해 주신 과천의 림혜미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정이 담겨 있다.
총회 결과 개선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리강룡, 부회장--이대영, 림혜미, 박필상, 상임이사--신후식, 이사--윤신근(서울지역), 허민홍(경북지역), 권갑하(경남지역), 감사--김인숙, 정광영.
공동주제 작품 “바람”은 19명 동인이 참여하였고, 신작에는 20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