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조상은 경작 및 목축 등으로 굶주림에서 해방됨으로써 짐승의 범주에서 벗어났다.그리고 자연의 두려움을 이기고자 신을 만들었고 그를 닮아 아름다움을 창조 하면서 인간으로써 역사의 기원을 이루었다.그 이후 모든 인위적 흔적은 역사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즉 아름다움의 흔적인 암벽화는 현존 역사의 가장 오래된 유물 중의 하나이다.
중국의 회화예술도 마찬가지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찍이 5 6천년 이전에 중국의 조상들은 도기에 무늬나 간단한 동물 식물의 도안을 그렸는데, 그것이 중국의 원시적인 회화예술이라 할 수 있다.
노예사회 시기에 이르러 생산력의 발전을 따라서 회화예술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전국(戰國) 초묘(楚墓)에서 출토된 백화(帛畵) ≪용봉인물도(龍鳳人物圖)≫ -69-龍鳳仕女圖 - 帛畵 ≪어룡인물도(御龍人物圖)≫ 는 선이 세련되고 형태가 생동감있는데, 이는 중국의 초기 회화가 이미 비교적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 진한(秦漢)시기에 회화예술은 더욱 발전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한대(漢代)의 백화(帛畵)와 벽화가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에서 출토된 서한(西漢)의 채색 백화(帛畵)와 벽화 속의 신화전설은 무덤 주인이 살아 있던 동안의 호화로운 생활과 사후의 승천을 바라는 주제를 표현한 것으로 형상이 매우 생동감있고 정채로우며 감동적이다. - 86 서한- 등(燈)을 들고있는 시녀상-청동에 금도금 - 94 서한- 飛衣 -마왕퇴 -104 서한- 옥으로된 壽衣 - 옥조각을 금실로 궤맴.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불교가 흥성하여 종교예술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암벽에 석굴을 파서 불상을 조각하고 벽화를 제작하는 것이 시대적 기풍이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돈황벽화(敦煌壁畵)이다.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은 서기 366년부터 천년동안 파고 조각하여 현존하는 동굴은 492개이고 벽화는 약 45,000㎡에 이른다. 이 벽화들은 중국의 전통적인 화풍이 외래예술을 흡수 융합한 기초 위에서 새롭게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사찰과 석굴 벽화 외에도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고개지(顧愷之) 조불흥(曹不興) 대규(戴逵) 육탐미(陸探微) 위협(衛協) 등과 같은 문화적 수양이 풍부한 뛰어난 사인(士人) 화가들이 많이 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최초의 화론(畵論)인 사혁(謝赫)의 ≪고화품록(古畵品錄)≫도 출현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회화가 하나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음을 의미한다. - 고개지 -116 洛神賦 圖卷, 118 女史箴 圖卷-견수채- 당대 모사본 수당(隋唐)부터 송대(宋代)(959-1127)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회화예술은 지속적으로 흥성하였다. 당화(唐畵)는 여전히 벽화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불교를 제재로 삼은 회화가 세속화(世俗畵)로 발전해 가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 천녀(天女) 보살 등이 인간의 미녀처럼 그려졌다. 인물화가 대단히 번성한 동시에 산수화조도(山水花鳥畵)도 뛰어난 작품이 많이 출현하였다.
唐代(617-907)의 오자도는 용필법, 예를 들면, 수대(隋代)(581-617) 전자건(展子虔)의 ≪유춘도(游春圖)≫는 현존하는 최초의 산수화 작품이다. 오대(五代) 양송(兩宋)시기에는 인물화가 여전히 발전하고 산수화조도(山水花鳥畵)가 더욱 완미해졌다. 게다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와 같은 걸출한 장권(長卷)의 사회 풍속화가 탄생되었는데, 이것은 북송 수도 개봉(開封)의 번화한 풍경을 형상적이고 세밀하며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李成(청만수사도)-오대, 范寬(계산행려도), 郭熙(조춘도)(郭思-林泉高致),沈括(蒙溪筆淡-원근법),李唐(만목기봉도-斧劈?),牧谿(소상팔경도),米友仁(운산도),黃居寀(산자극작도),趙伯駒(강산추색도),
수(隋)에서 송(宋)에 이르기까지 가장 유명한 화가로는 전자건(展子虔)-유춘도(수), 염립본(閻立本) 위지을승(尉遲乙僧) 오도자(吳道子)-용필법,이사훈(李思訓) 왕유(王維) 장훤(張萱),,,주방(周昉),,,장택단(張擇端)-청명상하도,,,동원(董源)-소상도, 범관(范寬)-계산행려도,,,유송년(劉松年),,,마원(馬遠)-산경춘행도, 조창(趙昌),하규(夏珪)-계산청원도 등이 있다. -132p 당 이사훈? 明皇幸蜀圖 청록산수 -162 당 -한간 韓幹- 조야백 照夜白 현종의 애마 지수- 입체감. 머리 외 후대에 補筆. -161 송 휘종-도련도 搗練圖-견수채 등장인물 표정 표현. -185 송 고굉중-한희재 야연도 - 견수채 - 사실적 내면표현 우수함. -186 송 李公麟-아용면 오마도五馬圖 지수채, 백묘법白描法 도교적 仙境-묵필선 -188 북송 -곽희 조춘도 견수채 1072년 林泉高致(郭思) 이상적 사실주의, 운두준법 -191 송초 동원 소상도 견수채 파묵기법, 윤곽선 생략,서정성-‘그림으로 작가 의경 파악’ -196 송 이당 만목기봉도 부채 견수채, 부벽준 창시 -198 송 마원 산경춘행도山俓春行圖 견수채 시각,정서적 호소력- 북송에서 변함.
원(元)왕조 시기에는 산수화조도(山水花鳥畵)의 성취가 두드러진다. 황공망(黃公望)-부춘산거도, 왕몽(王蒙)-동산초당도, 예찬(倪瓚)-용슬재도, 오진(吳鎭)-묵죽 네 사람을 대표로 하는 산수화가를 "원사대가(元四大家)"라 칭한다. 그들이 창작한 산수화는 순전히 수묵(水墨)을 사용하여 그린 것으로 어떠한 색채도 입히지 않고 필묵(筆墨)의 정취를 추구하였으며, 시를 그림에 담을 것을 강구하여 평담하고 자연스러우며, 그림의 내용과 정신을 표현하는데 치중하여 새로운 산수화 풍격을 창시하였는데, 이것은 후대의 중국 산수화의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천選-왕희지관아도,조맹부-작화추색도,唐?-한림귀어도,李?-묵죽, - 원 조맹부 鵲華秋色 도권, 1295년작, 지수채-고아하고 속기 제거 함. - 원 예찬 용슬재容膝齋도 화축, 지본수묵, 고아 간결 표현,배에 기식, 강소성-수묵만 사용 명청(明淸) 시기에 이르러 중국의 회화는 기본적으로 원대의 산수화조도(山水花鳥畵)의 전통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동시에 새로운 시대적 영향을 받아 많은 풍격의 유파가 출현하였다. 예를 들면, 명대(明代)에는 대진(戴進)-어락도,을 대표로 하는 "절파(浙派)",-마하파를 승계하고 방작을 많이하면서 실제보다 장점만 취함,비화원적 자유분방. 심주(沈周)-倣倪瓚산수도,湖上歸路圖, 문징명(文徵明)-松石圖, 당인(唐寅)-彈琴圖, 구영(仇英)-?陽別意圖,을 대표로하는 소주(蘇州)의오문화파(吳門畵派),-원4대가을 승계하고 명암대비가 강열하고 선대의 그림을 방작하여 자기화에 성공함
서위(徐渭)를 대표로 하는 사의화조화파(寫意花鳥畵派), 변경소(邊景昭) 여기(呂紀)-雪岸雙鴻圖,를 대표로 하는 공필화조화파(工筆花鳥畵派)가 있었다. 石銳-누각산수도,董其昌-靑弁山圖, 吳彬-산수, 邵彌-산수화책 - 명 대진 어락도, 권, 지수채, 산수화 속에 인물 표현. - 명 동기창 청변산 靑弁山 도, 화축 지수채, 남종화 청대(淸代)에는 홍인(弘仁) 곤잔(?殘) 석도(石濤) 주답(朱 ,팔대산인)의 "4대화승(四大畵僧)"이 있었고, 정판교(鄭板橋) 금농(金農) 등을 대표로 하는 "양주팔괴(揚州八怪)", 임백년(任伯年) 오창석(吳昌碩)을 대표로 하는 상해화파(上海畵派) 등이 있었다.
곤잔(?殘,石谿)-추경산수도,石濤-도원도,爲禹老道兄作山水冊,왕휘(王?)-倣范寬산수도,왕원기-倣倪瓚산수도,金農-매화, 운수평(?壽平)-추향, 吳歷-청산백운도, 화암(華?)-화조도, 黃愼-도연명賞菊圖, 焦秉貞-耕織圖, 袁江-倣劉松年산수도, 弘仁-冷韻圖, ?賢-千巖萬壑圖, 朱沓(八大山人)- 방동원산수도,쌍조도.陳洪綬-백거이초상, 郎世寧-百駿圖, -280 청 공현 千岩萬壑圖, 화축,지본수묵, 황량하고 페쇄적 근대에 접어들어 신중국 성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 회화는 다시 새로운 발전을 하였다.
이와 동시에 서양의 유화 판화 만화 및 그림책 세화(歲畵)도 발전하여 백화제방(百花齊放)의 국면이 출현하였다. 가장 유명한 화가로는 제백석(齊白石) 서비홍(徐悲鴻) 반천수(潘天壽) 황빈홍(黃賓虹) 이고선(李苦禪) 이가염(李可染) 왕설도(王雪濤) 유해속(劉海粟) 관산월(關山月) 엽잔여(葉淺予) 석노(石魯) 등이 있다.
중국의 회화예술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중국 전통화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즉 제재상에서는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花鳥畵)로 나눌 수 있고,
기법상에서는 공필화(工筆畵: 密 )와 사의화(寫意畵)로 나눌 수 있다.
공필화(工筆畵)는 묘사가 깔끔하고 착색이 정교한 그림을 가리킨다. 사의화(寫意畵)는 간결하고 거친 필묵을 사용하여 물체의 형상을 그리고 작자의 의경(意境)을 표현하는데 치중한 그림을 가리킨다.
전체적인 면에서 중국의 전통화와 서양의 전통화를 비교한다면
중국의 전통화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현저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선이 두드러진다. 중국의 전통화는 시작부터 선에 의존하여 형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후래에 이르기까지 선에 의존해서 그리지 않은 작품은 매우 적다. 따라서 중국의 전통화는 기본적으로 선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전통적인 유화와 수채화는 형상의 표현이 주로 색채의 명암에 의존하여 심지어 선은 완전히 보이지 않아도 된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서양화는 색채의 칠과 배합을 특별히 강조하지만, 중국화는 필묵의 운용, 즉 "필묵기법(筆墨技法)"을 매우 중시한다.
둘째, 신사(神似)에 치중한다. 남조(南朝) 때에 중국 최초의 화론가(畵論家) 사혁(謝赫)은 "회화육법(繪畵六法)"을 주장하였다. 그 중 제1조는 물체의 기운(氣韻)과 생명 표현에 대한 요구이고, 제2조는 붓을 운용할 때에 내재적인 웅건한 필세가 있어야 할 것에 대한 요구이며, 제3조가 비로소 그리는 대상의 정확함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신사(神似)"를 제일 앞에 놓고 "형사(形似)"를 그 다음 위치에 놓았던 것이다. 사혁(謝赫)의 회화이론은 중국 회화예술의 법칙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인물화를 그릴 때는 단순히 인물의 외모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외모의 묘사를 통하여 인물의 정신 성격을 그려내어 인물을 내면이 더욱 풍부하고 더욱 생동감있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서양의 전통회화는 구도상에서 인물이나 경물(景物)의 빛과 색의 변화, 낮과 밤 및 실내와 실외 등의 시공 효과를 추구하여 입체감과 사실성이 더욱 풍부하다.
셋째, 시(詩) 서(書) 화(畵)의 결합이다. 서양에서도 시와 그림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예술이지만, 그리고 그림 자체에 매우 풍부한 시의(詩意)가 있지만, 그림 위에 시를 적은 것은 매우 적다. 그 원인은 서양에서는 시와 그림 사이에 서예처럼 조화 작용을 일으키는 매개물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예는 그 자체에 예술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서예를 사용하여 그림 속에 시를 조화시키고 시(詩) 서(書) 화(畵)를 결합하여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는(畵中有詩, 詩中有畵)" 효과를 창출해 내었으니, 단순한 그림에 비해 의경(意境)과 감화력이 더욱 풍부하다. 회화예술은 비록 중국과 서양에 모두 있지만 풍격 화법은 확실히 다르다.
중국의 회화예술사와 중국 서양 회화의 특징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중국의 회화라는 이 문화 유형에 대한 인식을 더욱 심화시키고 예술 감상 능력의 향상을 촉진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