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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관점
에너지
우주는 에너지다. 에너지는 계 내부의 압력이다. 압력은 밸런스를 지향하고 밸런스는 공간을 확보하며 그것은 척력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둘이 등을 맞대면 더 쉽게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것이 인력이다. 에너지의 기본은 척력이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척력이다. 인력은 척력이 일정한 조건에서 이차적으로 유도된 것이다.
다양한 압력이 있다. 열압, 유압, 기압, 수압, 전압, 플라즈마압, 중력압이 있다. 파동에도 압이 걸려 있다. 자연의 기세는 압이 걸린 것이며 사회의 권력도 압이 걸린 것이다.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궁극적으로 압력의 작용이다.
물체가 회전하면 구심력이 걸린다. 가장자리가 더 많은 방향전환을 하므로 내부 파동이 잘게 쪼개져서 가운데로 떠밀리는 압력이 발생한다. 구심력은 코어에서 만난다. 구심력이 코어에서 반사되어 가장자리로 되돌아가는 힘이 원심력이다. 물체가 회전할 때는 구심력이 작용하고 깨지면 원심력이 작용한다.
닫힌계 내부에 압력이 걸리면 에너지는 방향성을 획득한다. 전체는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구심력이 코어에 작용하는 것이 질, 코어가 계를 장악하는 것이 입자, 코어가 움직이는 것이 힘, 계가 깨져서 원심력이 외부로 작용하는 것이 운동, 에너지가 외부로 이탈하는 것이 량이다. 계 밖에서는 에너지의 방향이 두 방향으로 바뀌고 서로 간섭되어 소멸한다.
열차의 폐색구간과 같다. 선로의 한 구간에 기차는 한 편성만 들어갈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뒤차가 바짝 쫓아오면 운전자에게 심리적 압박이 가해진다. 어떤 둘 이상이 연결되면 내부에 압력이 걸려서 전체가 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전진은 하는데 후진을 못 한다. 기차가 후진하면 대형 사고가 일어난다.
방향전환
구조는 어떤 둘의 대칭이다. 하나는 존재를 성립시킬 수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반응한다는 것이며, 반응하려면 방향전환을 일으켜야 한다. 외부에서 작용하는 ->에 맞서 <-로 방향전환을 일으키려면 최소 둘이라야 한다. 어떤 하나의 이유 없는 방향전환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긴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무에서 유가 생겨날 수 없으므로 방향전환을 하려면 그 방향이 내부에 잠복하고 있어야 한다. 둘이 -><- 로 계를 이루고 있을 때 외부의 작용 ->에 반작용할 수 있다. 달리는 자동차가 멈추려면 마찰력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줄 도로가 있어야 한다. 의사결정 지점에는 반드시 하나가 더 있다.
어떤 고립된 하나는 의사결정할 수 없다. 어떤 하나가 1이라면 그 1의 방향전환이 1을 추가하므로 2가 된다. 존재는 그 자체로 방향전환이다. 어떤 1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곳에 방향전환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는 존재가 어떤 이유로 방향전환을 일으키는게 아니라 방향전환 그 자체가 곧 존재라는 의미다.
우리가 원자론의 사유를 버려야 한다. 원자는 의사결정 구조가 없으므로 성질을 가질 수 없다. 외력의 작용에 맞서 반작용할 수 없다. 자극에 반응하지 않으면 무無다. 모든 존재 내부에 상호작용 구조가 있다. 상호작용은 둘 사이에서 성립한다.
우주는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방향전환의 연결이며 방향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장의 진동이다. 우주가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이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시뮬레이션 우주론에 도달한다.
거미줄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거미줄에 원자라는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벌레는 없고 거미줄의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교차점이 물질이다.
운동의 이해
우리가 눈으로 목도하는 것은 변화다. 변화는 결과다. 일차적 원인은 운동이다. 그 운동의 원인은? 그 원인의 원인은?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은? 계속 추궁하여 근원에 이르러야 한다. 운동의 원인은 힘, 힘의 원인은 입자, 입자의 원인은 질이다.
환자가 아프다면 그것은 변화다. 변화를 낳는 것은 운동이다. 우리가 원인이 뭐냐고 물을 때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거지만 직접적 원인은 운동이다. 환자의 배가 아프다면 뱃속에서 무언가 움직인 것이다. 보통은 장 내의 가스가 움직인 것이다. 가스의 발생이 힘이라면, 가스를 만드는 물질이 입자, 그 물질을 먹는 식사가 질이다. 잘못 먹은 게 배가 아픈 궁극적 원인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순서로 사건은 전개한다. 우리가 직접 목격하는 것은 량의 변화다. 먼저 량의 원인이 되는 운동을 찾고, 다음 운동의 원인이 되는 힘을 찾고, 다시 힘의 원인이 되는 입자를 찾고, 마지막에 입자의 원인이 되는 질을 찾아야 한다. 오류는 말단의 한 가지 원인을 찾아놓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말대꾸할 문장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지엽적인 원인을 찾으면 일단 말을 받아칠 수 있으니까 되었다고 여기고 더 이상 생각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상대를 자극해서 되돌아오는 반응에서 답을 줍줍 하는 동물이다.
질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다. 운동과 량은 보인다. 방귀 냄새가 량이라면 가스의 분출은 운동이다. 가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리를 듣고 알 수 있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은 힘과 입자와 질이다.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준 상자와 같다. 어린 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생텍쥐페리는 상자를 그려준다. 양은 상자에 들어 있다. 질의 상자에 입자가 들어 있고, 입자의 상자에 힘이 들어 있고, 힘의 상자에 운동이 들어 있고, 운동의 상자에 량이 들어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방향전환이다. 방향을 바꾸려면 그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질, 입자, 힘은 방향을 도출하는 절차다. 질은 구심력으로 계를 이루고, 입자는 원심력으로 코어를 이루고, 힘은 압력으로 코어의 이동을 공간에서 결정하고, 운동은 코어의 이동을 시간에서 진행하며, 량은 그 변화를 외부에 드러낸다. 압력은 최종적으로 외부와 간섭하여 사라진다. 자동차 엔진에 걸린 압력은 바퀴가 지면과 마찰하여 사라진다.
무에서 유가 생겨나지 않으므로 운동은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빅뱅 이후 운동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빛은 정지상태에서 갑자기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자가 만든 장 속에서 실내운동을 하다가 문이 열려서 마당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모든 것은 운동이며 물질은 운동을 가두는 상자다. 우주에는 드러난 운동과 갇힌 운동이 있을 뿐이다. 운동은 교착되어 자기 자신에 갇힌다. 우리는 갇힌 운동을 물질이라고 부른다.
운동은 1차원 선이므로 우주는 긴 실에 무수한 매듭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이 연속적으로 풀리는 것이 운동이라면, 힘은 매듭을 푸는 힘, 입자는 매듭, 에너지는 실의 연결이다. 에너지는 댐에 가둬진 물, 입자는 수도관, 힘은 수도꼭지, 운동은 노즐을 통과한 물줄기, 량은 물이다.
에너지의 구조
운동이 무엇인지 설명한 사람은 없다. 뉴턴은 갈릴레이에게 떠넘겼고 갈릴레이는 단서를 남겼을 뿐이다. 운동을 설명하지 못하므로 운동을 담고 있는 상자가 되는 힘과 입자와 에너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구조로 보는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뉴턴은 힘과 운동의 관계를 셈했을 뿐이다.
에너지 - 능력(질) - 전력
물질 - 동력(입자) - 전류
힘 - 압력(힘) - 전압
운동은 계의 방향전환 횟수다. 힘은 대칭을 통한 방향의 지정이다. 입자는 대칭의 축이다. 에너지는 대칭을 성립시키는 장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방향전환이다.
양 떼와 같다. 한 마리는 량, 양들은 운동, 무리는 힘, 우두머리는 입자, 울타리는 에너지다. 부분을 보느냐 전체를 보느냐의 차이다. 보통 능력과 동력과 압력을 구분하지 않으므로 헷갈리게 된다. 활몸의 힘과 활시위의 힘과 화살의 힘은 다른 것이다. 전력과 전류와 전압의 차이는 관측자가 회로의 어느 부분을 보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무엇이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있다는 게 뭐지? 건드려서 반응하면 있는 거다. 건드리는 힘의 방향이 전환된다. 질량은 내부의 절대적 방향전환이고, 가속도는 외부에서의 상대적 방향전환이다. 힘은 둘의 곱이다. 야구공 내부 방향전환과 외부 방망이 방향전환의 곱이 홈런을 만든다.
존재는 궁극적으로 장의 진동이다. 진동은 방향전환이다. 내부의 진동이 겉으로 드러나면 파동이다. 파동이 계에 감추어지면 입자다. 계 내부에 숨은 진동은 질량, 겉으로 드러난 파동은 가속도다. 결국 모든 것은 계의 방향전환이다. 질량과 물질과 공간과 시간은 방향전환을 설명하는 부속품들이다.
우주에는 오직 방향전환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처음부터 있었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주는 화살표 ->다. ->와 <- 가 충돌하면 계가 성립하고 가운데 균형점이 도출된다. 계의 모순에 따라 방향전환이 일어나고 외부에 전달된다. 우리가 무언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와 <-가 -><-로 교착된 것이다. 건드리면 방향을 바꾸며 반응한다.
유체의 성질
우주 공간에 큰 상자 하나가 있다. 상자 속에는 많은 새가 있다. 상자 속 사방에는 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모든 새가 특정한 나무에 날아와 앉으면 상자는 그 방향으로 이동한다. 새들은 동료와의 충돌을 피하여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쪽으로 중력이 작용한다. 정지한 물체는 상자 안의 새들이 사방의 나뭇가지에 균일하게 흩어져 앉은 것이고, 낙하하는 물체는 어떤 자극에 의해 새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장의 진동이나 빛의 파동은 유체의 성질을 가진다. 물질은 궁극적으로 유체다. 유체는 결맞음을 일으켜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중력은 유체의 진동과 파동이 결맞음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물이나 기름이나 공기나 열이나 플라즈마는 유체다. 물질의 중력과 사회의 권력도 유체의 성질을 가진다. 미시세계에서는 모두 유체가 된다. 고체라도 의사결정의 코어에서는 유체다. 유체는 상자 안의 새들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도미노는 한 방향으로 쓰러진다. 하나라도 다른 방향으로 쓰러지면 간섭되어 흐름이 끊어진다.
뱀은 몸을 S자로 꼬아 짧은 파동을 만든다. 뱀이 긴 파동을 짧은 파동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그 역은 없다. 짧은 파동을 긴 파동으로 만들면 압력이 0이 되어 움직일 수 없다. 모든 동력은 개구리가 점프하기 전에 몸을 S자 모양으로 움츠리는 것이다. 개구리든 뱀이든 몸을 움츠린 상태가 유체다. 내부에 압력이 걸리면 유체다.
긴 파동을 짧은 파동으로 쪼개면 내부에 압력이 걸린다. 대칭의 균형점을 이동시키면 파동이 쪼개져서 내부에 압이 걸린다. 동력에서 압력으로 바뀌면 운동이 격발된다.
돌고 있는 팽이가 쓰러질 때는 큰 원을 그린다. 짧은 파동이 긴 파동으로 바뀌면서 죽는다. 긴 파동이 짧은 파동으로 바뀌면서 사건의 원인이 될 수는 있어도 반대로 짧은 파동이 긴 파동으로 바뀌면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 경우는 활의 줄이 풀린 것이다. 화살을 날릴 수 없다. 활은 활시위의 긴 파동을 반으로 쪼개서 화살을 쏜다.
자연은 언제나 내부의 압력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기는 힘이다. 자연이 결 따라 가는 것은 이기는 힘의 안티 엔트로피다. 반대로 운동에 의한 간섭의 결과로 압력이 감소한다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안티 엔트로피의 힘 - 원인 측은 방향전환으로 계 내부의 압력을 높여 힘을 조직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운동 - 결과 측은 힘의 작용에 따른 운동에 의해 압력이 낮아진다.
총을 쏘는 곳은 언제나 압력이 높고 총알이 떨어지는 곳은 언제나 압력이 낮다. 압력이 제로가 될 때까지 운동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동이 멈춘 상태를 확인하므로 엔트로피가 증가한 지점만 목격한다.
지렛대는 파동이 짧아지는 만큼 외부에 전달되는 압력을 증가시킨다. 건설 현장에서 쓰는 쇠지레를 떠올릴 수 있다. 빠루라고 한다. 긴 쪽을 잡고 짧은 쪽에 힘을 전달한다. 지렛대를 누르는 사람의 팔이 각도가 작은 긴 파동이라면 쇠지레에 의해 뽑히는 못은 각도가 크고 짧은 파동이다. 언제나 긴 파동을 짧은 파동으로 바꾼다.
공을 던지는 투수의 몸에서 어깨를 거쳐 팔로 손목으로 손가락으로 갈수록 파동이 짧아지고 압력은 증가한다. 투수의 손끝에서 압력은 최대가 된다. 투수의 체중이 능력, 팔로 전달된 힘이 동력, 손가락에 걸린 공의 RPM이 압력이다. 운동은 그다음이다.
의사결정
원인은 내부에서 조직되고 결과는 외부에 전시된다. 배가 아픈 것은 내부의 사정이고 설사가 나오는 것은 외부의 전시다. 아기의 임신은 내부에서 결정되고 출생은 외부에 알려진다. 씨앗이 싹트는 원인은 땅속에 감춰지고 과일이 익은 결과는 외부에 전시된다. 원인의 인因은 사각형 안에 갇혀 있다. 원인은 언제나 내부에 있고, 결과는 언제나 외부에 있다.
어떤 하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질량보존의 법칙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1은 계속 1에 머물러 있다. 원인이 변해서 결과가 되는 게 아니고 원인이 부러져서 결과의 파편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1은 부러질 수 없다. 2는 마디가 있으므로 부러진다. 그것은 없는 것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도 유전자가 있다. 결과의 가능성은 원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총에서 총알이 나오듯이 장전된 것이 튀어나온다. 그러므로 원인은 어떤 둘의 관계라야 한다. 관계는 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격발되기 때문이다.
모든 원인은 내부구조에 있고 내부를 만드는 것은 상호작용하는 2다. 세상은 집합된 원인 2의 균형에서 원소 된 결과 1로 진행한다. 엄마와 아빠 2에서 자녀 1로 진행한다. 활몸과 활시위 2에서 화살 1로 진행한다. 원인 측은 언제나 2고, 결과 측은 언제나 1이다. 세상은 작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 큰 것은 해체다. 우주는 빅뱅 이후 계속 해체되어 빅 프리즈로 간다.
원인은 내부다. 존재는 내부다. 구조는 내부다. 내부가 없다면 존재가 없다. 원자를 쪼갤 수 없다는 말은 내부가 없다는 의미다. 내부가 없는 존재는 부정된다.
양자역학은 세상이 디지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존재는 유한이며 단위가 있다. 단위가 있다는 것은 내부가 있다는 것이다. 구조가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의 어원은 손가락이다. 우리는 가리키는 손가락과 지목되는 객체 사이를 봐야 한다. 숫자 1은 객체 1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 사이를 잇는 회로 1이다. 디지털은 어떤 둘의 사이를 잇는 회로다. 회로는 관계다.
자연의 모든 것은 공간에서 시간으로 가고, 내부에서 외부로 가고, 원인에서 결과로 가고, 2에서 1로 간다. 결맞음에 의해 한 방향으로 휩쓸려 간다. 2의 연결이 능력, 둘의 밸런스가 동력, 밸런스의 붕괴가 압력을 성립시켜 운동을 격발한다.
등가원리
우리는 에너지라는 말을 폭넓게 사용한다. 잠재적인 에너지와 현재 작용하는 힘을 구분하지 않는다. 댐에 고인 물도 에너지라고 하고,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는 힘도 에너지라고 한다. 전력을 말하는지, 전류를 말하는지, 전압을 말하는지 헷갈린다.
에너지는 일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인데 엔트로피의 법칙에 와서는 갑자기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라는 말이 등장하여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앞뒤가 안 맞잖아? 일로 전환할 수 있다며? 일차전지와 이차전지를 헷갈리는 것과 같다. 방전된 전지도 충전하면 다시 쓸 수 있지만 당장은 쓸 수 없다.
에너지는 계의 진동이다. 진동은 방향이 없다. 방향이 없는 계 내부의 진동을 일정한 방향을 가진 외부의 파동으로 유도하는 것이 동력이다. 파동은 진동이 깨진 것이다. 진동은 계 내부에 균형점이 있다. 파동은 균형점이 외부로 이동한다. 파동은 진동하는 계 내부의 평형이 깨졌을 때 균형점의 이동에 의한 각운동량 보존이다.
에너지는 계 내부 공간에 감추어진 장의 진동이 계 밖으로 드러나는 시간의 파동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공간에서 시간으로 진행한다. 사건은 동력이 압력으로 모습을 바꾼다. 내부에 숨은 것이 외부에 드러난다. 전류가 저항을 만나 전압이 된다.
에너지 = 능력 > 동력 > 압력
(원인 측) 능력 > 동력 > 압력 > 파동 > 일(결과 측)
활쏘기 = 활몸 > 활시위 > 화살 > 비행 > 과녁
진동을 띠는 장으로 이루어진 에너지의 계가 깨졌을 때 외부로 이동할 수 있는 준비된 상태가 압력이다. 동력이 엔진 내부에 감추어진 힘이라면 압력은 파동의 형태로 엔진 밖으로 전달되는 힘이다. 모든 변화의 모든 원인은 직접적으로는 압력이다.
기압, 수압, 유압, 전압은 쉽게 알 수 있다. 열압과 에너지압, 플라즈마압은 모른다. 압력은 유체의 결맞음에 따른 경로다. 고체의 움직임은? 고체 역시 균형점에 의사결정압이 걸린다. 고체든 유체든 열이든 에너지든 공간과 시간의 등가원리에 의해 내부 진동을 외부 파동으로 바꿔서 각운동량을 보존한다.
등가원리는 공간의 거리와 부피를 잃은 만큼 시간의 속도로 보상받는 각운동량 보존이다. 채찍을 휘둘러보면 알 수 있다. 파동이 진행되어 끝으로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채찍이 가늘어진 만큼 속도로 보상되기 때문이다.
위치에너지 상실이 가속도 증가로 나타난다. 1킬로그램의 물체가 1미터 아래로 떨어졌다면 위치에너지 손실이다. 그 손실은 물체가 얻은 가속도로 보상된다. 공간에서 잃은 것은 시간에서 복구한다. 크고 느린 것과 빠르고 작은 것은 같다. 느리고 큰 파동이 작고 빠른 파동으로 분할된다.
등가원리 - 거리를 잃은 만큼 방향전환 횟수의 증가로 보상된다. 공간을 잃고 시간을 얻어 더 많은 의사결정 기회를 가진다.
큰 힘은 한 번만 쓸 수 있고 작은 힘은 여러 번으로 나누어 쓸 수 있다. 더 많은 기회를 잡을수록 힘의 크기가 약해지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공간이 에너지의 방향 결정이라면 시간은 방향의 전환이다. 공간과 시간의 등가원리야말로 우주를 움직이는 근원의 동력이라 하겠다. 존재의 엔진이다. 무겁다는 것은 내부에서 더 많은 방향전환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질량은 거리와 방향전환의 곱이다. 많은 에너지는 많은 방향전환이다. 방향전환은 보존된다.
진동과 파동
세상은 단순한 것의 집합이다. 원리는 단순하고 응용은 복잡하다. 전기는 단순하다. 스위치만 켜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그런데 복잡하다. 전류, 전자, 전하, 전압, 전력, 양공, 저항 등 알아야 할 용어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된다. 사실 전기는 단순하다. 전기는 자기장이 빛을 쏘는 것이다.
무엇이든 원리는 간단하다. 난해한 용어는 전기를 운반하는 그릇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전기라고 믿는 전자의 이동은 매개다. 전기는 장의 진동을 파동으로 바꾼다. 우리는 진동하는 장의 실체를 모른다. 우리가 아는 자기장은 그림자다. 우리가 찾는 소립자는 매개자다. 진짜는 더 높은 곳에 있다.
전기는 활이다. 자기장 활이 빛 화살을 쏜다. 그게 전부다. 에너지는 단순하다. 입력과 출력이 있을 뿐이다. 에너지는 활을 쏘듯이 압력을 쏜다. 전달되는 것은 파동이고, 내부에 감추어진 것은 진동이다. 그것을 흔드는 것은 장이다. 그 사이에서 교통정리 하는 것은 유체의 결맞음이다.
공기는 기압이 걸려 있고, 물은 수압이 걸려 있고, 열은 열압이 걸려 있다. 모든 에너지는 내부에 압력이 걸려 있다. 분자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물질의 플라즈마와 지구의 중력과 사회의 권력도 압력이 걸려 있다. 압력은 공간의 거리를 좁힌다. 거리가 좁아지면 속도가 빨라져서 각운동량이 보존된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공간의 압박을 시간의 속도로 바꾼다.
주사기 입구를 막고 밀대를 누르면 실린더가 뜨거워진다.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공간을 잃은 대신 분자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공간에서 잃은 것을 시간에서 보상한다. 열은 분자의 진동이다. 브라운 운동을 하는 분자들의 RPM이 올라갔다.
우주는 장의 진동이다. 입자는 없다. 우리가 입자라고 믿는 것은 진동의 균형점이다. 진동은 균형점이 내부에 있고 파동은 균형점이 외부에 있다. 진동이 깨지면 파동이 된다. 물질은 여러 개의 진동이 꼬인 것이다. 그것을 꼬는 장의 결맞음은 인류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다.
압력의 탄생
원인은 언제나 압력이다. 압력이 힘을 쏜다. 활을 쏘듯이 쏘아 보낸다. 쏘는 것은 방향이 있다. 사건은 대칭의 균형점을 이동시켜 긴 파장을 짧은 파장으로 바꾼다. 파장이 짧아진 만큼 코어 위치가 이동한다. 코어가 이동하므로 1이 아니라 2로 표시되는 것이 방향성이다.
사건은 언제나 큰 파장 하나를 작은 파장 둘로 바꾸어 압력을 증가시킨다. 반대로 짧은 파장을 긴 파장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균형점을 닫힌계 외부로 이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파장이 짧아졌다는 말은 대칭을 조직하는 닫힌계 크기가 작아졌다는 말이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면 팔뚝의 대칭에서 손가락 대칭으로 범위가 작아진다. 큰 하나의 닫힌계가 작은 여러 개의 닫힌계로 분할된다.
사람의 동작은 골반을 회전시키거나, 어깨를 움직이거나, 팔꿈치와 손목을 움직이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균형점 이동이다. 신체 밖으로 나가면? 공이 날아간다. 진동은 몸 안에서 되돌아오고 파동은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파동은 진동이 부서진 것이다.
큰 것 하나를 작은 것 둘로 바꾸면 압력이 증가하는 것이 각운동량 보존이다. 속도가 증가한 것이 압력의 증가다. 큰 개 한 마리를 키우다가 작은 개 두 마리로 바꾸면 공간이 부족해져서 서열 싸움을 한다. 권력의 탄생이다.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이 하나의 원리를 사용한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교환하는 데 따른 압력 증가를 권력으로 이용한다.
닫힌계 안에서 대칭의 조직에 따른 압력의 증가를 사용할수록 대칭의 크기가 작아져서 더 많은 의사결정 횟수를 요구하는 게 엔트로피 증가다. 큰 금덩이 하나를 작은 은덩이 여럿으로 바꾸면 권력이 생기는데 그럴수록 관리 비용이 증가한다. 지도자가 권력을 휘두를수록 욕을 먹는다. 리스크가 커진다.
사건의 이해
공간의 물질은 인간의 관념에 불과하다. 느낌이 그런 것이다. 답은 시간에 있다. 사건은 시간을 따라간다. 존재가 곧 사건이라는 대전제를 생략하므로 헷갈리게 된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시작에서 종결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공간에서 시간으로, 2에서 1로 갈 뿐 그 반대로 가지 않으므로 사건은 예측가능하다.
원인 -> 결과
전체 -> 부분
시작 -> 종결
공간 -> 시간
수렴 -> 확산
필연 -> 우연
압력 -> 간섭
2 -> 1
사건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므로 단계가 있다. 우리는 단계적인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그냥 활을 쏘는 게 아니라 매기고, 당기고, 겨냥하고, 쏜다. 사건의 메커니즘에 따른 절차가 있다.
사건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의 변화다. 변화 그 자체가 조건을 구성한다. 변화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외부와 단절되므로 강력한 조건이 걸린다. 사건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비용을 조달해야 한다는 제한이 걸린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축구 시합을 할 수 없다. 사건은 변화를 반영하고, 변화는 조건을 구성하고, 우리는 그 조건에 의한 제한을 근거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은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만약 똑똑한 사슴이 머리를 써서 늑대를 따돌린다면 결과적으로 생존확률을 낮춘다. 어떤 사슴이 지혜로 늑대를 따돌렸다면 달리기 연습을 게을리해서 멸종하게 된다.
모든 기업은 극단에 몰려 있다. 최대한 이윤을 짜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자가 몰려들어 레드오션이 된다. 뭐든 점차 선택지가 감소한다. 결국 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사건은 예측가능한 변화다. 확률개념이 사건을 다루지만, 결과에 주목할 뿐이다. 구조론은 과정의 경로를 예측한다. 계의 통제가능성에 주목한다. 사건은 그 사건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어난다. 존재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연에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무슨 결정을 할 때마다 곤궁해진다. 밸런스가 사건을 극단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수영하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운전하면서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 사건은 균형을 따라가고 균형은 그 자체로 극단이며 자연은 언제나 극단에 몰려서 조금의 여유도 없다. 그러므로 법칙을 따른다.
옛날에는 이중포탑을 가진 전차도 있었다. 하나의 전차에 여러 개의 대포를 장착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주포의 진동과 포탑의 회전 때문에 부포를 쏠 수 없었다. 사건이 단계를 따라 진행할수록 이런 식으로 간섭에 의한 제한이 걸린다. 그러한 제한을 추적하면 사건이 진행되는 경로를 알 수 있다.
어떤 하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반드시 둘이라야 한다. 사건의 원인은 밸런스의 해체인데 밸런스는 혼자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밸런스의 배ba는 둘이다. balance는 천칭 저울의 접시가 둘이다. 자전거bicycle도 두bi+바퀴cycle다. 밸런스는 곧 둘이므로 결코 하나일 수 없다.
변화는 A에서 B로 간다. 이미 둘이다. 공간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만약 위치가 유지된다면 변화가 계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겉에서 보이지 않아도 속에서 변했다.
원인=둘의 균형이다. 자연의 모든 원인은 둘 사이다. 남녀가 아기를 만들든, 활몸과 활시위가 화살을 쏘든 둘 사이다. 만약 1이 혼자 무언가를 만든다면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긴다. 변화는 방향전환인데 1은 방향전환이 불가능하다.
활동하는 둘이 공존하면 둘 사이에 압이 걸린다. 그 압이 변화의 원인이다. 내부에 만들어진 균형점이 움직여서 넓은 파장을 좁은 파장으로 바꾼다. 종이를 접는 것과 같다. 종이가 안으로 말릴 수는 있어도 밖으로 펼 수는 없다. 펼친 상태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밸런스의 의미
자연의 움직이는 것은 그것을 멈추게 하는 방해자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움직인다. 멈춘 것은 밸런스다. 움직이는 ->는 방해자 <-를 만나 밸런스는 -><-를 만들고 멈춰서 진동을 내부에 감춘다. 사건은 닫힌계 내부 모순에 의해 밸런스가 깨지고 또다른 밸런스에 도달할때까지 진행된다. 계의 진동이 깨져서 파동으로 전달되다가 방해자를 만나 다시 진동하면서 멈춘다. 우리는 방해자를 투입하여 파동을 멈추게 하고 거기서 곁다리로 일을 빼먹는다.
우주의 엔진은 밸런스다. 닫힌계 안에서 진동에 의한 밸런스의 붕괴와 복원을 반복하는 영구운동이 일정한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우리가 목도하는 자연의 존재다. 팽이가 돌듯이 겉으로는 멈추어 있지만 내부에서는 쉬지 않고 움직이며 주변과 상호작용한다.
눈에 보이는 공간의 대칭이 있을 뿐 아니라 등가원리에 의해 각운동량이 보존되는 시간의 대칭이 있다. 시간의 대칭은 보이지 않아서 헷갈린다. 긴 파동 하나를 짧은 파동 둘이 커버하는 게 시간의 대칭이다. 시간의 대칭은 여럿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압력을 이룬다. 그것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이다.
에너지는 닫힌계의 교착된 -><- 상태에서 방향이 없고 대칭의 균형이 깨지면서 ->의 방향을 획득한다. 사건이 격발되면 에너지는 수렴에서 부분적인 확산으로 바뀐다. 닫힌계 -><-에서 부분적인 열린계 <-->로 바뀌어 파동이 밖으로 튀어나온다. 거기서 떨어져나온 파동 ->가 외부의 방해자 <-를 만나 또 다른 -><-를 만드는 과정이 일이다.
원인 : 내부 모순에 의한 밸런스 붕괴
의사결정 : 균형점의 이동에 의한 파동의 격발
결과 : 방해자에 의한 파동의 소멸과 일의 획득
우리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결과 측을 향한다. 우리의 사유는 먼저 결과를 확보하고 나중 원인을 찾는 귀납추론에 맞추어져 있다. 원인 측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는 외부에 전시되지만, 원인은 닫힌계 내부에서 작동한다. 사건을 쏘는 밸런스는 둘 사이에 상호작용의 형태로 있다. 핑퐁을 주고받다가 공이 경기장 밖으로 튕겨 나간다. 관객은 탁구대 바깥만 볼 수 있다.
우리는 자동차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밖에서 바퀴가 도는 것은 알 수 있다. 원인은 내부, 결과는 외부다. 우리의 시선은 항상 결과를 주목하게 된다. 관측의 편의에 의해 왜곡되는 것이다.
원인 - 내부에서 결정한다.
결과 - 외부에 전시된다.
원인은 내부, 내부는 둘 사이다. 둘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있다. 우주 안의 모든 원인은 상호작용하는 2의 균형이다. 활을 쏜다면 활시위와 활몸 2의 상호작용이 원인이다. 거기서 파동을 격발한다. 총을 쏜다면 뇌관과 공이 사이의 2가 파동을 격발한다. 반드시 격발장치가 있으며 그 장치는 2의 상호작용으로 되어 있다.
상호작용
사건이 일어나면 원인을 찾아야 한다. 사건을 인지한 시점에서 결과는 이미 확보되어 있다. 우리는 막연히 어떤 1을 지목한다. 2를 찾지 않고 1을 찾는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원인은 결과와 대칭된다. 결과가 1이므로 원인도 1이다? 틀렸다. 원인은 결과보다 커야 한다. 원인이 결과를 이겨서 사건을 격발하기 때문이다. 총은 총알보다 크고 활은 화살보다 크다.
한강 둔치에서 사람이 죽었다. 죽은 것은 결과다. 원인은 가해자다. 둘을 대칭시킨다. 그냥 한 사람을 지목한다. 그 사람은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틀렸다. 원인은 언제나 어떤 둘의 사이다. 우리는 사이를 살펴보지 않는다. 특별히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조론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원인은 무조건 2다.
둘 사이에는 강물이 있고, 물속에는 발목까지 빠지는 뻘밭이 있고, 거기서 신발을 잃었다면, 신발을 찾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둘의 사이를 살펴보지 않는다. 등잔 밑을 살펴보지 않는다. 특별히 훈련하여 사이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우주 안의 모든 원인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둘 사이에서 성립하는 상호작용의 밸런스다. 사이는 밖이 아니고, 안이다. 안을 봐야 한다. 결과가 밖에 있으므로 원인도 밖에 있다고 여겨진다. 틀렸다. 원인은 언제나 안이다. 성냥불을 켜는 것은 유황과 적린 사이, 아기를 만드는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다. 그것은 안이다. 항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사건의 자궁이 있다. 그 자궁은 외부에서 관측되지 않으나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방향성 :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합쳐진 하나의 화살표 ->로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면 원인과 결과의 분리 자체가 잘못이다. 둘이 아니라 하나다. 원인과 결과 둘이 아니라 하나의 화살표로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사건은 하나의 방향성 ->로 존재한다. -> 안에 원인도 있고 결과도 있다. 머리도 있고 꼬리도 있다.
존재의 엔진
우주를 작동시키는 엔진은 상호작용의 밸런스다. 내부의 2를 압축하여 외부의 1로 전시한다. 그것이 용수철을 누른다. 우리가 자연에서 목격하는 사건은 다시 2로 되돌아가는 복원과정이다. 압축된 용수철이 도로 펼쳐지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 측이다. 반대편의 엔트로피 감소는 내부에서 일어나므로 볼 수 없다.
우리는 존재의 엔진이 2를 1로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없다. 그것은 2의 사이에서 일어난다. 아기가 탄생하는 과정은 볼 수 없다. 자궁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인류문명은 반쪽짜리가 되었다. 문명사 1만 년 동안 인류는 절반만 보고 살아왔다. 사건은 원인 측과 결과 측이 있는데 우리는 결과 측만 보고 있었다.
연역과 귀납이 있다. 구조론은 연역이다. 엔트로피 증가는 귀납이다. 엔트로피를 연역적으로 이해하기다. 귀납은 결과를 단서로 원인을 찾는다. 연역은 원인의 방아쇠를 당겨서 결과를 쏜다. 무질서도 증가는 결과다. 원인은 무질서도 감소다. 닫힌계에서 무질서도는 감소하지 않으므로 원인은 열린계다. 외부에서 누가 개입해서 무질서도를 줄여놓은 것이 원인이다.
화살이 날아간 거리만큼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다. 무엇이든 증가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증가했을까? 사실은 다른 데서 감소한 것이 여기서 복원된 것이다. 눌려 있던 스프링이 원위치 하였다. 누가 스프링을 눌렀을까? 누가 시계태엽을 감았을까? 누가 활을 당겼을까? 열린계에서 누가 개입했다.
무질서도는 빅뱅 이후 감소한 적이 없지만 국소적으로는 감소한다. 화약을 제조하여 총알 속에 넣은 자가 있다. 무질서도라는 화약을 탄피에 채우고 탄두를 박았다. 총을 발사하듯이 무질서를 발사하는 대포가 있다. 존재의 엔진이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압력에 의해 일어나고, 압력은 균형점의 공유에 의해 성립하며, 균형점은 둘 사이에 있다. 큰 파동이 작은 파동으로 나누어지면 균형점의 수가 증가한 만큼 압력이 증가한다. 의사결정 기회가 증가한다. 100킬로 체중을 가진 사람 하나가 살던 방에 50킬로 체중을 가진 사람 두 명이 살면 권력이 발생한다. 공유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우주
존재는 장의 방향전환이다. 양자역학이 말하는 물리량의 불연속성과 통한다. 궁극적으로 입자의 존재는 부정되며 오직 장의 방향전환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입자라고 부르는 것은 거쳐 가는 중간단계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위치를 찍으려는 것이다. 장의 진동이 결정하므로 그 위치는 없다.
라부아지에의 열소Caloric와 같다. 그것이 있다고 가정하면 계산이 잘 된다. 플로지스톤도 마찬가지다. 잘 안되면 플로지스톤이 음의 질량을 가진다고 둘러대면 된다. 과학계에서 한동안 열소가 각광받은 것은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틀렸다. 원자는 잠정적으로 유용한 개념이지만 틀렸다.
음양설, 오행설, 사원소설도 봉건시대에 잠정적으로 유용한 개념이었다. 당시에는 그것으로 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사원소설은 불을 물질의 일종으로 본다. 틀렸다. 주산을 버리고 컴퓨터를 쓰듯이 더 좋은 것이 나오면 낡은 관념을 버려야 한다.
원자론의 우주관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거미줄에 물질이라는 벌레가 걸려 있는 모습이다. 원자 가설의 문제는 물질 외에 시간과 공간을 별도로 해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컴의 면도날과 배치된다. 구조론으로 보면 벌레는 없고 씨줄과 날줄 사이의 교차점이 물질이다. 거미줄은 모두 풀려서 긴 한 가닥의 선이 된다. 선은 당겨진 것이고 놓으면 점으로 축소되어 사라진다. 구조론으로 보면 에너지와 물질과 공간과 시간과 정보가 모두 하나의 성질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측자 위치에 불과하므로 간단하다.
하나의 방향전환이 하나의 존재다. 고대와 중세의 철학자와 연금술사가 사원소설을 내세우면서 원소들에 기대한 성질, 혹은 근대의 과학자들이 원자 가설을 세우며 원자 개념에 기대한 것을 방향전환은 모두 반영하여 훌륭하게 작동한다.
열이 궁극적인 단계에서는 슬그머니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방향전환에 의해 활을 쏘듯이 불연속적으로 발사된다. 이 관점은 양자역학과 통하므로 많은 사고실험을 할 수 있다. 난해한 열역학이나 전기의 여러 가지 특성이 쉽게 받아들여진다. 오컴의 면도날처럼 위력적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단번에 밀어버리고 핵심을 찌른다.
양자역학의 최신 성과는 디지털 우주론을 향해 나아간다. 우주가 방향전환이라면 방향은 정보이며, 정보는 계산할 수 있으므로 우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같다. 이론적으로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방법으로 우주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다. 고수는 바둑알이 없어도 바둑을 둘 수 있다. 원소나 원자가 없어도 우주는 작동한다.
자극하면 반응하는 것이 존재다. 반응한다는 것은 반대로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존재는 외부의 작용 <- 에 대해 내부의 ->로 맞선다. 반응하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구조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갑자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계 내부에 미리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있었고 생겨나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다. 내부에 감추어져 있다가 자극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방향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