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백두대간] 제 1회차
2023. 3. 11.(토)
3년 2개월만이다.
2017년 8월 26일 진부령을 출발하여 남진을 시작한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제 18기의 대장정이 끝난 것은 2020년 1월 11일 지리산에서였다. 그때의 감격은 생각만 해도 벅차다.
56회차 도상거리 684km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개근으로 마쳤다. 그 뒤로 3년 2개월이 흘렀다. 그 시간은 코로나 시기와 겹친다.
오늘 다시 그 길에 나선다.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제 21기와 함께 간다. 백두대간 출발을 학수고대한 사람들 많았다고 한다. 사실 대간이 끝나고 장거리 산행을 많이 하지 못하였다.
내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큰 일이 한 차례 있었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일, 중환자실에 입원을 한 것이다.
백두대간과 같은 산행을 계속 하였다면 뇌경색으로 입원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다.
가도 되는지 많이 망설이다가 가기로 했다. 아내는 내가 근교의 짧은 산행도 아닌 백두대간을 가도 되는지 가서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닌지를 걱정했다. 갈 만 하니까 가는 거라고 말은 했지만 무리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6개월 전에 퇴원을 하며 썼던 나의 시를 여기에 옮긴다.
다짐 1 / 윤광주
누워서 죽지 않으리라
서서 죽으리라
순수가 사라진 시대
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홀로 죽으리라.
서서 죽지 않으리라
걷다가 죽으리라
마당을 쓸다가 고귀한
청소부로 죽으리라.
걷다 죽지 않으리라
뛰다가 죽으리라
죽으면 가루가 될 몸
아끼지 말고 남김 없이
쓰다가 죽으리라.
일찍 출발하여 30분 전에 양재역에 도착하였다. 자광님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계셨다.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8기 때 나랑 단둘이 개근을 하신 분이다. 7시 20분쯤 고속도로를 들어서는데 좌측으로 얼굴을 내민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설레임이다. 반가움이고 고마움이다. 진짜 출발이다.
전북 남원군 권포리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출발한다. 18기에서 했던 것처럼 대간 56회차의 첫발을 떼는 순간이다. 감회가 새롭다.
몇 번을 참가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인생을 어찌 알겠는가?
내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을 할 것이라고 5년 반 전에 진부령을 출발할 때 상상이나 했는가.
저 멀리 여성 세 분이 봄나물을 뜯는지 밭에서 고개를 숙이고 계신다. 한 분이 잘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드신다. 감사한 마음으로 나도 손을 흔들어 주는데 밭 옆에는 산수유가 활짝 웃는다.
모두 발걸음도 가볍게 산행을 시작한다.
대간 산행은 초반 30분 내지 1시간은 그야말로 빡세게 올라가야 한다.
30분쯤 걸은 뒤 가져온 사과를 꺼내서 한쪽씩 나눠 먹는다. 대간 18기 때 과일가게 아저씨라는 얘길 종종 들었다.
1시간쯤 오르니 오늘의 최고봉 고남산이다.
정상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하여 여원재로 향한다. 여원재 도착하기 전에 자광님께서 예전에 여기 지나갈 때 눈보라가 쳤다고 회고하신다. 또렷이 기억이 난다. 2019. 3. 23.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여원재를 지날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졸시 [수종사에서 1]을 여기에 옮긴다.
수종사에서 1 / 윤광주
수종사에 가면
저 아래로 두물머리가 보이는
마당 한 귀퉁이에
묵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팻말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느니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이 풍광 바라보며
야, 좋다! 라는 감탄사 말고
더 무슨 말을 할까?
대웅전 앞 자목련은
사나흘 뒤에나 활짝 웃을 모양이다
벗들과 함께 찾은 햇볕 좋던 봄날도,
가족과 함께 *삼정헌에서 차를 마신 여름날도,
오백년 은행나무 샛노랗게 물든
가을날도 한결같이 좋았더랬는데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홀로 찾아간 어느 겨울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내리는 눈에 실어 생각을
내려 놓으니
욕심이 함께 사라진다
살면서 그런 날 또 있으려나!
적막강산.
*삼정헌 : 수종사의 무료 다실
그때가 대간 36, 7회차 쯤이고 당시까지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은 나는 그 무렵에 '개근으로 대간을 마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당시 눈보라를 뚫고 노치마을을 거쳐 고기리까지 갔다.
과연 끝까지 안 빠지고 개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를 한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나서 산행이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로 몇 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눈 내렸던 그날과 오늘 산행 코스가 같다.
여원재에서 발바닥이 아프다는 곽청님에게 더 이상 가면 안 된다며 하산하라고 했다.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
나는 오늘 산행을 하는 동안 배낭을 들어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비짜루님, 허접몽님, 거북이님, 뚜벅삿갓님이 배낭을 대신 들어 드리는 걸 보면서도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배낭 들어드리는 걸 포기했다.
모두들 배려와 헌신이 몸에 밴 모습들이다. 더없이 든든한 길벗들이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무사히 대간 산행을 마쳤다. 장장 7시간의 산행은 노치마을에서 끝이 났다. 이곳에서는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 네 그루가 맞은 편 지리산 서북능선을 마주보고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저 소나무들처럼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가슴 가득 품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
오늘 산행 코스는 다음과 같다.
통안재~고남산~여원재~입망치~수정봉~노치마을~고기리, 도상 거리 16km, 7시간
처음으로 하는 백두대간이 끝날 때쯤 썼던 시를 옮긴다.
그때 나는 백두대간 있었다 1 / 윤광주
하루 아침에
추워지는 게 아니고
하루 밤 사이에
더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그것을
머리가 아닌
발로 알게 된 때,
그때
나는 백두대간에 있었다.
♡ 졸시.
아! 잊지 못할 나의 첫 백두대간
2017. 8. 26.~2020. 1. 11.
(진부령~지리산 천왕봉, 총 56회)
2017. 8. 26. 진부령에서 (사진)
이상은 두 번째 백두대간 첫날의 기록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근심과 염려를 이제 내려 놓아도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과 초기 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를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ㅡ마태복음 6장 34절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ㅡ[숫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