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그 수명을 다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법시험을 되살리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법시험을 가난한 사람들이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는 ‘희망 사다리’라고 부르며,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서민의 자녀들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막힌다고 한다.
법조인 선발제도로서 사법시험을 대체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설치는 사법시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사법시험이 계층 간의 이동을 위한 제도로서의 역할을 못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닌 법조인의 선발제도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시험 존치의 논의는 법의 지배를 받는 국민의 시각에서 사법시험이 과연 훌륭한 법조인을 선발하는 제도로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느냐는 점과 사법시험이나 그 이전의 고시 제도에 의하여 선발된 법조인들이 우리 굴곡진 현대사에서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였느냐는 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필자가 과문하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력이나 경력을 따지지 않고 한 번의 필기시험으로 법조인이 되는 제도는 최소한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고시제도에 의하여 생산된 법조인들이 권력의 편에 서서 주어진 특권을 누리기만 하였을 뿐 그 공익적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음은, 법조인들이 일제 강점기 시절의 민족독립운동이나 인권 침해가 극에 달하였던 군사정부 시절의 민주화운동에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슬픈 현대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고 해서 신분이 상승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인 말이다. 법조라는 것이 누구를 출세시켜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존치론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이전에 사법시험이 가난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는 법조인을 선발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임을 논증하여야 할 것이다.
로스쿨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서민들이 진학하기 어렵다는 말이나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도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언뜻 그럴듯하기는 하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이고, 법조인이 될 만한 지능이나 자질을 가진 사람은 혜택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닐 정도의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최근의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서도 고졸 출신은 거의 없으며, 사법시험을 존치한다고 해도 그 응시자는 대부분 명문대 출신의 수재들이지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로스쿨의 비싼 학비는 장학제도의 확충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며, 이는 나라에서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의 유지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의 일부만 투입하여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두 제도의 어색한 병존은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사법시험 출신들에게 부당한 우월의식을 가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앞으로 우리 법조에도 치유될 수 없는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법과대학이 없어진 지금에는 사법시험 응시자들은 학교에서 법학을 정상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시험의 목적으로만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이어서 아무런 기본적 소양이나 사회의식도 없는 책상물림이나 공부기계를 선발할 가능성이 높아 종래의 고시제도의 폐해를 더 깊게 할 것이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사법시험을 이제 와서 되살리겠다는 사람들의 의식에는 사법시험을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지만, 이러한 향수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퇴영적인 것일 뿐 아니라 건강하지도 못한 것이다. 개천에서 억지로 용을 만들려 애쓸 것이 아니라, 개천이란 곳이 있다면 다 같이 개천을 없애려고 노력하여야 할 일이다.
결국 사법시험은 법조인 선발제도로서 이상적인 것도 아니며, 한정된 시기에 그 소임을 다하고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제도인 것이다. 법조인을 뽑는 제도를 계층들 사이의 이동의 수단으로 보는 낡은 생각도 같이 사라졌으면 한다.
출처 이재동 대구변협 회장
첫댓글 제갠적 생각으론...맞는 말씀인듯...
멋진 글이네요!
사법시험은 없애되 변호사시험 예비시험 제도를 두는 방안도 생각해 볼 만한 듯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