碩士學位論文 法華經의 譬喩와 그 思想 硏究 指導敎授 李 永 子 東國大學校 大學院 佛敎學科 金永一 (法性) 1 9 9 7 碩士學位 論文 法華經의 譬喩와 그 思想 硏究 金 永一 (法 性) 指導敎授 李 永 子 이 論文을 碩士學位 論文으로 제출함. 1998年 7月 日 金永一(法性)의 文學碩士學位 論文을 인정함. 1998年 7月 日 委員長______________ 委 員______________ 委 員______________ 東國大學校 大學院 目 次
序 言 1 1. 硏究 目的 1 2. 硏究 方法과 範圍 3 Ⅰ. 佛典 譬喩의 語源과 類型 4 1. 譬喩의 語源과 性格 4 2. 譬喩의 類型 7 1) 표현 방법상의 八種 譬喩 7 2) 외형상의 短喩와 長喩 8 3) 내용상의 總喩와 別喩 9 Ⅱ. 法華經에 나타난 譬喩 12 1. 蓮 華 喩 12 2. 法華 七喩 13 3. 그 이외의 비유들 25 1) 日月의 譬喩 25 2) 作甁者의 譬喩 26 3) 生盲人의 譬喩 27 4) 大王膳의 譬喩 29 5) 三千塵點의 譬喩 29 6) 入海採寶의 譬喩 30 7) 高原穿鑿의 譬喩 31 8) 父少子老의 譬喩 32 9) 五百億塵點의 譬喩 33 10) 大施主의 譬喩 34 11) 海山日月等의 十喩 35 12) 優曇華와 一眼龜 浮木의 譬喩 37 Ⅲ. 譬喩에 나타난 思想 39 1. 蓮華喩에 나타난 思想 39 1) 世親의 出水義와 華開義 39 2) 天台의 蓮華二門六喩 41 2. 法華七喩에 나타난 思想 44 1) 世親의 對治七種增上慢心 45 2) 天台 本迹二門의 開權顯實 52 3. 그 이외 譬喩의 思想 62 1) 一乘思想을 설한 譬喩 62 2) 法華經 流布를 勸하는 譬喩 67 3) 佛難得値를 표현한 譬喩 69 結 語 71 參 考 文 獻 73 序 言
1. 硏究 目的 釋尊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근기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법을 설했는데 敎說의 의미나 내용을 보다 쉽고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비유를 사용하였다. 中阿含의 箭喩經에 나오는 독화살의 비유나 숫타니파타에서 어느 농사짓는 바라문과 釋尊과의 대화에서 석존도 마음의 밭에 농사를 짓는다는 은유적 비유등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들이다. 또한 百喩經, 法句譬喩經, 群牛譬經 그리고 앞에서 말한 箭喩經등과 같이 비유의 말이 경의 제목 자체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비유가 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와같이 佛典과 비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법화경에서도 火宅의 譬喩, 長者窮子의 譬喩등 너무도 잘 알려진 비유들이 나온다. 법화경 寫本이 네팔과 카시미르에서는 물론 중앙아시아에서까지 다량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법화경의 全譯과 部分譯된 횟수가 16회에 이르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법화경이 상당히 폭넓게 연구되고 신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법화경이 그토록 신봉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 크게 두가지로 말한다면, 하나는 대승과 소승의 첨예한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훌륭한 一乘思想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 사상을 쉽고 재미있게 표현한 약 20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譬喩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화경에 나오는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또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비유들이 없이 단순히 불교 교리만이 서술되었다면 과연 그렇게 폭넓게 신봉될 수 있었을까? 법화경의 훌륭한 사상들이 바로 이 譬喩라는 窓을 통해서 보다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그 사상들이 보다 훌륭하게 펼쳐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 논문의 출발점은 바로 이런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글에서는 첫째 법화경에 나타난 비유의 내용을 고찰하고자 한다. 법화경의 비유하면 흔히 法華七喩만을 생각하는데 그 이외의 日月의 비유, 作甁者의 비유, 生盲人의 비유, 大王膳의 비유, 父少子老의 비유등 법화경에 나타난 모든 비유들의 내용을 고찰하고, 비유의 형식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는 비유속에 나타난 사상을 밝히고자 한다. 이것은 世親의 {法華經論}과 天台의 {法華玄義}나 {法華文句}의 비유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하여 비유속에 나타난 사상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곧 이 글에서는 法華經에 나타난 譬喩에 대해서 그 內容과 思想을 중심으로 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2. 硏究 方法과 範圍 법화경 연구의 범주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법화경의 寫本과 譯本등을 대상으로 하는 文獻史的 硏究, 註釋書등을 통해서 본 思想史的 硏究 그리고 법화경의 수용형태을 문제로 한 文化史的 硏究가 있다. 이 글에서는 法華經 譬喩의 內容과 비유가 담고 있는 思想을 주된 대상으로 다루기 때문에 순수한 사상사적인 연구는 아니지만 이 범주에 가장 근접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원전 자료의 범위에 대해서는 鳩摩羅什의 {妙法蓮華經}을 기초자료로 하였고, U. Wogihara and C. Tsuchida의 {改訂 梵文 法華經}과 竺法護의 {正法華經} 및 那堀多와 多의 {添品妙法蓮華經}등을 보조자료로 삼았다. 이 글의 연구 방법으로 Ⅰ장에서는 佛典 譬喩의 語源과 類型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불전 비유의 語源을 통해서 불전에 사용된 비유의 개념을 파악하고, 그 유형을 밝히고자 한다. Ⅱ장에서는 법화경에 나타난 모든 비유에 대해서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가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비유의 형식에 대해서도 고찰하고자 한다. 비유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먼저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다음 類型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형식상의 특징으로 upam 와 aupamya로 분석하며, 그 내용상으로 總喩와 別喩로 분석하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비유에 나타난 사상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그 방법으로 인도의 법화경 주석서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주석서인 世親의 {法華經論}과 중국의 대표적 법화경 주석서인 天台의 {法華玄義}와 {法華文句}등에 나타난 비유의 해석을 중심으로 법화경 비유에 나타난 사상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結語에서는 본론의 내용을 요약하고, 법화경에 나타난 비유의 특징과 그 의의를 간략히 살피고자 한다. Ⅰ. 佛典 譬喩의 語源과 類型
1. 譬喩의 語源과 性格 우리는 佛典 譬喩의 語源을 梵語의 avad na에서 흔히 찾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석존이 설한 교설을 그 형식과 내용에 따라 분류한 十二分敎 가운데 avad na라는 하나의 장르가 있는데, 그것을 중국에서 한역하면서 譬喩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avad na라는 말은 譬喩의 意味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본래의 뜻은 불제자나 경건한 신자의 '영웅적 행위' 혹은 '위업'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法華經 譬喩品도 梵語 原典에는 avad na가 아니라 aupamya로 표기되어 있다. 岩本 裕는 그의 연구논문 {佛敎說話の原流と展開}에서 한역된 譬喩의 梵語 語源에 대해서 upam , aupamya, d nta, avad na 등 4가지로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의 연구 자료를 토대로 譬喩의 語源과 性格을 살펴보고자 한다. upam 는 본래 범어의 upa√m 에서 유래했는데, upa는 접두어로서 가까이(near)의 의미이며 √m 는 비교하다(compare with)의 뜻으로 전체 의미는 '比較', '相似' 혹은 '同一'의 語源을 가지고 있는데, 이 비유의 특징은 어떤 관념이나 존재를 現實속의 事物이나 事態등에 비유한 형태이다. aupamya 이것의 어원도 범어의 upa√m 와 같은 것인데, 그 의미도 '유사성', '동일성' 혹은 '비교'로 동일하다. 법화경 비유품의 原名이 바로 aupamya인데, 이 비유의 특징은 假定의 事實을 상정하고 그 가정의 사실을 근거로 해서 가르친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승 불교가 흥기 하면서 비유의 단순한 사실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 쪽으로 근접하게 되었고 이 때 등장한 것이 aupamya이며 이것은 upam 의 단순성을 벗어난 비유의 이차적 전개라고 할 수 있다. 岩本 裕는 譬喩의 梵語 語源을 설명하면서 {大智度論}35권에 나오는 비유의 종류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것을 인용하면 '譬喩有二種 一者 以爲喩 二者實事爲喩'이다. 곧 첫째 가정의 사실을 가지고 비유를 표현한 것은 aupamya 형식의 비유를 말하며, 둘째 현실의 사물이나 사실을 가지고 비유를 표현한 것은 upam 형식에 해당한다. d nta의 語源은 동사어근 √d 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의미는 '검증하다'(example)는 의미며, 단어 전체의 의미는 명사형으로 '예증' 혹은 '표준'의 의미가 있는데, 그 특징은 '어떤 주장없이 진술이 실례로 증명되는 경우의 비유'로 논리학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가정된 사실을 통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aupamya의 성격과 같지만 aupamya의 비유를 모아 하나의 문헌으로 엮은 것을 d nta라고 하기 때문에 이것은 비유설화집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곧 일반 수사학에서 말하는 본질적인 비유라기 보다는 설화집 속의 기능상의 비유로 볼 수 있다. avad na의 語源은 ava√d (to speak)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의미는 '영웅적 행위' 혹은 '업적'을 말하는 것으로, 語源적으로 볼 때 비유의 意味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 특징은 첫째 avad na의 사용용례를 보면 본래 불제자나 경건한 신자로서의 덕행에 대한 인연 이야기인데, 아바다나라는 語는 원칙적으로 아바다나 설화집 속에 모여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 비유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아바다나의 인연이야기는 주로 계율 제정의 인연담이며 9분교나 12분교의 인연(nid na)과 같은 語根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둘째 avad na의 사용용례에 자타카도 포함되는데 그 예로 '보살의 인연담' 즉 Bodhisattv vad na는 실제로 35편의 자타카 이야기이다. 세째 avad na는 본래 계율 제정의 인연담 혹은 불제자나 덕행있는 신자의 인연담(本事)이었는데, 그 형식이 부처님의 전생담인 자타카와 유사했기 때문에 이것이 자타카와 혼용되어 사용되어지고 결국 자타카를 포함하게 되는데, avad na의 意語가 확대되어 마침내 인도 고전문학에서 설화의 일반적 호칭인 kath 와 동일한 말로 사용된다. 그 예를 보면 '이복형인 Alolamantra왕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는 등 온갖 박해를 당하다가 마침내 여자의 복장을 하고 왕에게 접근하여 왕을 죽이는데 성공하는 Kavikum ra 이야기'는 Kavikum ra-kath 로 기록되기도 하고 Kavikum ra-avad na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이와같이 avad na의 특징은 인연담과 자타카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설화속에 모여있는 이야기로서 그 자체가 비유로서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곧 이것은 일부 설화적인 이야기가 불제자들의 수행이나 신앙생활에 교훈을 주는 기능적인 비유의 역활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 자체가 현실속의 비유로 사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교 문학을 9分敎나 12分敎를 중심으로 크게 3가지의 장르로 나누고 있는데, 譬喩文學과 說話文學 그리고 誦詠文學이다. 說話文學의 범주에는 緣起(nid na), 本事(itivuttaka), 本生(J taka)이 있다. 이렇게 볼 때 avad na는 그 내용상 緣起, 本事, 本生談과 동일하기 때문에 譬喩의 범주보다는 說話의 범주에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며, 불교 설화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설법의 보조 수단인 까닭에 비유적인 기능을 구조적으로 가질 수 밝에 없었다면 당연히 因緣(nid na), 本事(itivuttaka), 本生(J taka)등도 漢譯에서 譬喩로 번역되었어야 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래야만 논리적인 당위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avad na도 그 용례로 볼 때 비유적인 기능은 하지만 본질로서의 비유는 아니며 설화에 해당되는 서사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譬喩의 類型 1) 표현 방법상의 八種 譬喩 大般涅槃經에서는 비유의 종류에 대해서 그 설하는 방법에 따라 8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順喩로 사물의 발생의 순서에 따라 설하는 비유이다. 둘째는 逆喩로 順喩의 逆으로 설하는 비유이다. 세째는 現喩로 현재의 사실을 가지고 하는 비유이다. 네째는 非喩로 假設한 사물을 가지고 하는 비유이다. 다섯째 先喩는 비유할 사항에 앞서 먼저 비유를 설하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 後喩는 비유될 사항의 뒤에 비유를 설하는 것이다. 일곱째 先後喩는 비유의 앞에도 뒤에도 설하는 비유를 말한다. 여덟째 遍喩는 비유 내용이 비유될 사항에 그대로 계합하는 것을 말한다. 이상으로 八種의 비유가 大般涅槃經에 설해져 있는데 이러한 비유는 주로 비유를 어떤 순서로 구성하는가 하는 표현 방법상의 구분이지만, 여기서 현재의 사실을 비유의 대상으로 하는 現喩는 upam 에 상응하며, 假設한 사물을 비유의 대상으로 하는 非喩는 aupamya에 상응함을 알 수 있다. 2) 외형상의 短喩와 長喩 비유의 유형에 대해서 그 외형상의 특성으로 볼 때 크게 短喩와 長喩로 나눌 수 있다. 短喩는 비유가 짧고 간단한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굳은 것을 金剛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해탈을 彼岸으로 그리고 부처님의 맑은 눈을 靑蓮華에 비유한 것등이 모두 短喩에 속한다. 長喩는 하나의 사상과 이야기를 구성하는 긴 비유인데, 법화경에 나오는 火宅喩나 長者窮子喩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短喩는 주로 단순한 사실을 비유로 한 초기경전에서 많이 나타나며, 長喩는 주로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난해한 철학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앞에서 語源을 통해서 밝힌 upam 는 대체적으로 短喩에 속하며, aupamya는 長喩에 해당된다. 3) 내용상의 總喩와 別喩 佛典에서는 總과 別이라는 말을 대단히 많이 사용하는데, 總이란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別이란 부분을 의미한다. 俱舍論에서는 四念處觀의 방법에 대해서 身·受·心·法을 不淨·苦·無常·無我등의 순서에 따라 각기 觀하는 것을 別相念處觀이라 하고, 그것을 종합하여 觀하는 것을 總相念處觀이라 한다.곧 觀의 수행법에 대해서 總과 別의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정토교학의 네 가지 염불 수행법 가운데 觀像念佛에서는 佛像을 관하는 방법에 대해서 불상 그 전체를 觀하는 것을 總相觀이라 하고, 불상의 32상등의 하나 하나의 모습을 觀하는 것을 別相觀이라 하여 總과 別로서 염불 수행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經論에 대해서 그 전체의 내용이나 사상을 해석한 것을 總釋이라 하고 그것을 부분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해 나가는 것을 別釋이라 하는데, 이와같이 佛典에서는 總과 別의 방법으로 수행법이나 經論등을 설명해 나가는 것이 보편적인 분류법이다. 佛典의 譬喩도 결국은 경전의 내용이나 사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경전 전체의 내용이나 사상을 비유한 것을 總喩라 할 수 있고, 그 부분 부분을 비유한 것을 別喩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법화경에서 蓮華喩가 總喩이며, 法華七喩가 別喩이다. 天台의 法華玄義에 나타난 總喩와 別喩는 다음과 같다. "질문하기를 경전속에서 火宅喩에서 醫子喩에 이르기까지 무릇 7가지의 비유(七喩)가 있는데 모두 다 蓮華(의 이치)를 밝힌 것은 아닌데, 그럼 무엇으로써 (법화경의) 제목을 삼는가 하니, 답하기를 七(喩) 이것은 別(喩)며 蓮華 이것이 總(喩)이라 總喩로써 別喩를 포섭하기 때문에 제목으로 삼은 것(冠篇首)이라 한다." 여기서도 總喩와 別喩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지금까지 불전에 나타난 비유의 유형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譬喩의 語源과 性格에 대해서 梵語의 upam , aupamya, d nta, avad na등 4종류가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upam 는 '비교' 혹은 '유사'등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징은 어떤 관념이나 존재를 현실속의 사물에 비유한 형태이다. aupamya는 '동질성','유사성' 혹은 '비교'등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징은 어떤 가정의 사실에 토대를 둔 비유이다. d nta는 본래 '실례','예증' 혹은 '표준'등의 어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명학의 三支作法이나 五支作法등과 연관이 있었다. 그 특징은 가정의 사실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aupamya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비유 그 자체를 말하기 보다는 비유를 모은 문헌을 지칭하여 d nta라 하는 점에서 '본질로서의 비유'가 아니라 '용법으로서의 비유'라 하기도 한다. avad na는 '영웅적인 행위' 혹은 '위업'등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 말로서 원래는 비유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漢譯에서 비유라는 말로 번역된 경위에 대해서 avad na가 불제자 혹은 경건한 신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수승한 행위의 인연을 설명한 것 만으로도 좋은 비유가 될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성격이 같은 因緣(nid na), 本事(itivuttaka), 本生(J taka)이 비유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때 avad na를 譬喩의 범주에 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avad na는 그 용례로 볼 때 비유적인 기능은 하지만 본질로서의 비유는 아니며 설화에 해당되는 서사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佛敎文學의 장르상 因緣·本事·本生과 함께 說話文學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佛典에 나타난 譬喩의 類型을 보면 大般涅槃經에서는 그것을 표현방법에 따라 8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현재의 사실을 비유의 대상으로 하는 現喩는 upam 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假設한 사물을 비유의 대상으로 하는 非喩는 aupamya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비유에 대한 형식상의 갈래로는 外形的 特徵에 의해서 短喩와 長喩로 나눌 수 있고, 內容的 特徵에 의해서 總喩와 別喩로 나눌 수 있다. 短喩는 한 가지 일이나 한 가지 사건을 현실의 사물이나 상태에 견주어 비유하는 것으로 upam 의 형식에 가깝고, 長喩는 가정의 사실을 상정한 하나의 이야기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aupamya 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용상으로 볼 때 總喩는 전체의 내용이나 사상을 비유한 것이며, 別喩는 한 부분의 내용이나 사상을 비유한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법화경에 나타나는데, 곧 蓮華喩는 總喩에 法華七喩는 別喩에 해당한다.
Ⅱ. 法華經에 나타난 譬喩 여기서는 법화경에 나타난 다양한 비유의 내용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비유의 분석 방법으로는, 형식상 upam 형식과 aupamya 형식의 두가지 틀속에서, 내용상의 갈래인 總喩와 別喩로 나누어서 비유를 분석하고자 한다. 비유의 분석 순서는 전체 비유에 대해서 總喩인 蓮華喩를 먼저 다루고 別喩인 法華七喩 그리고 그 이외의 비유들을 차례로 다루고자 한다. 개별적인 하나 하나의 비유에 대해서는 먼저 譬喩의 內容이 어떠한가를 고찰하고 나서, 그것이 형식과 내용상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1. 蓮 華 喩 연화유란 법화경 제목을 지칭하는 비유를 말한다. 법화경의 梵語 명칭은 Saddharma-pu ar ka-s tra이다. Saddharma는 Sat와 dharma의 합성어인데, Sat은 '진실한', '바른' 혹은 '뛰어난'등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dharma는 法을 의미한다. 그리고 pu ar ka는 白蓮華를 말하며 s tra는 經을 뜻한다. 竺法護는 Saddharma를 正法으로, 鳩摩羅什은 妙法으로 번역했고, 竺法護는 pu ar ka를 華로 鳩摩羅什은 蓮華로 그리고 s tra에 대해서는 모두 經으로 번역했다. 竺法護는 Saddharma-pu ar ka-s tra를 正法華經으로 번역했으며, 鳩摩羅什은 妙法蓮華經으로 번역했음을 알 수 있다. 곧 연화유란 '蓮華로서 妙法 혹은 正法에 비유한 것', 또는 '妙法' 혹은 正法을 蓮華에 비유한 것'을 말하는데, 법화경의 제목 그것을 지칭하여 연화유라고 하는 것이다. 법화경의 제15종지용출품에서는 땅에서 나온 수많은 보살들이 수행을 잘하여 신통을 지녔으며 보살도를 잘 배워서 세상에 물들지 않음이 마치 연꽃이 물위에 떠있어도 물에 젖지 않음과 같다는 비유가 나온다. 곧 보살의 덕성을 연꽃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석: 蓮華喩의 내용은 곧 妙法이나 正法을 연꽃에 비유한 것을 말하며, 또한 그것을 실천하는 보살도 연꽃의 덕성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유의 형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꽃을 비유로 사용하고 있는 upam 형식이다. 내용상으로 볼 때 법화경의 전체 사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總喩에 해당하며, 그 이외 法華七喩등의 모든 비유들은 別喩에 해당한다. 2. 法華 七喩 법화경에 나오는 7가지의 대표적인 비유를 法華七喩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출처는 인도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법화경 주석서인 世親의 {法華經論}이 최초이다. 그의 법화경론을 보면 7가지의 增上慢心(아만심)을 없애기 위해서 7가지의 비유를 설한 것이라 한다.이후 중국에서는 이 문헌에 근거해 법화칠유가 보편화되고 있다. 여기서는 법화경에 나타난 법화칠유나 그 이외의 비유에 대한 명칭은 {佛敎比喩例話辭典}이나 {法華經序說}등에 준하여 비유의 명칭을 붙이고자 한다. 1) 火宅喩 제3비유품에 나오는 내용인데 본문은 다음과 같다. "사리불이여 만약 어느 나라의 한 마을에 큰 장자가 있어 그 나이 늙었으나 재물이 한량없이 많고 밭·집·종들이 많으며 그 집 크지만 오직 하나의 문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많아 一百, 二百 내지 五百人이 그 집속에 머무르고 있었고 집과 누각 썩었고 담은 퇴락하였으며 기둥뿌리 부패하고 기둥과 서까래 기우러져 위험한데, 주위에서 동시에 홀연히 불이 일어나 집을 태우는데 장자의 모든 아들 열명, 스무명 내지 서른명이 이 집에 있었다. 장자가 이 큰 불이 사방에서 일어남을 보고 크게 놀라 이런 생각을 하되 나는 비록 이 불타는 집(門)에서 능히 편안히 나왔으나 여러 아들이 불타는 집속에서 노는데 집착하여 깨닫지도 알지도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불이 몸에 닿으면 고통이 몸을 엄습할 것인데 마음에 걱정없고 나가려는 생각이 없었다. 사리불이여 이 장자가 이런 생각하되, 나의 몸에 힘있어 응당 옷담는 그릇이나 책상으로 그들을 집에서 나가게 하리라 하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 집에는 오직 하나의 문이 있으니 좁아서 모든 아이들이 어리고 아는 것이 없어 놀이에 탐착해 있으니 혹 데려나가다 땅에 떨어져 불에 탈 수도 있으니, 나는 그 무서운 일을 말하리라. 집이 불타고 있으니 빨리 나가야 한다. 그리고 불에 타는 피해를 없애야 한다. 이런 생각하고서 이런 생각을 상세히 여러 아이들에게 말하되 너희들 속히 나가라 아버지가 비록 아이들 불쌍히 여기며 이야기와 비유가 뛰어나지만 모든 아이들은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믿거나 듣지도 않으며 두려워 하지도 놀라지도 않고 나갈 생각도 없으며, 또한 무엇이 불이며 무엇이 집이며 어떤 것이 목숨을 잃는가를 알지 못하고 단지 동서로 달리고 놀면서 아버지만 볼 뿐이었다. 이 때 장자가 곧 이런 생각을 하되 이 집은 이미 큰 불로 타고 있는 바 나와 여러 아이들이 만약 지금 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불에 탈 것이다. 내가 지금 방편을 만들어서 모든 아이들이 이 피해를 면하게 하리라. 아버지는 모든 아이들이 우선 마음에 진기한 장난감을 좋아하고 집착할 것을 알아서 이렇게 말하되 '너희들 좋아하는 얻기 힘든 장난감 있는 바 취하지 않으면 후에 반드시 후회하리라' 하며 이런 갖가지 羊車·鹿車·牛車가 지금 문밖에 있으니 가히 재미있게 놀만 하다. 너희들 이 불타는 집에서 속히 나오면 너희가 갖고자 하는 바를 모두 너희에게 주리라 하니 모든 아들들 아버지 말씀 듣고 진기한 물건 그들이 바라던 것이라 각기 마음이 용감해지고 번득여 서로 밀고 다투어 화택에서 달려 나왔다. 이 때 장자가 모든 아들이 무사히 나와 네거리 길 바닥에 앉아 다시 장애없음을 보고 그 마음 태연하고 뛸뜻이 기뻤다. 이 때 모든 아들이 각기 아버지께 말씀드리되 먼저 아버님이 허락한 좋은 놀이개인 羊車·鹿車·牛車를 원컨데 주소서하니, 사리불이여 이 때 장자는 평등하게 각기 모든 아들에게 큰 수레를 하나씩 주었다. 분석: 이것이 유명한 火宅喩인데 법화경에서는 계속해서 이 비유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곧 여기서 장자는 부처님을 의미하며 火宅은 중생들이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바세계를 의미하고, 주겠다던 양거·녹거·우거는 각기 성문승·연각승·보살승등의 三乘을 뜻하며 똑같이 大白牛車를 준 것은 그들에게 똑같이 부처가 되기 위한 가르침인 一乘으로 인도한다는 의미이다. 비유의 형식을 보면 火宅이라는 가정의 사실을 상정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 aupamya 형식이며, 내용상의 갈래로는 연화유가 總喩인데 반해서 그 이외의 모든 비유는 별유에 해당하므로 이 비유도 別喩이다. 2) 窮子喩 제4신해품에 나오는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비유를 들어 이 뜻을 잘 밝히겠나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어린 나이에 부모 버리고 도망가 타국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10세, 20세, 내지 50세에 이르러 나이 이미 많고 또 빈곤 더하여 사방으로 옷과 음식 구하려 다니다가 우연히 점점 본국으로 향하게 되었나이다. …중략… 이 때 장자는 사자좌에 앉아 있다가 아들을 보자 이내 알아보아 마음 크게 기뻐서 곧 이런 생각하되, 나의 재물창고 지금 물려줄 것 있어 나는 항상 이 아들 생각했는데 문득 그를 보니 내 소원 풀렸음이라. 내 비록 늙었으나 (예같이) 재물을 아끼는 까닭에 곧 옆에 있는 사람 보내어 급히 쫓아가 데리고 돌아오게 하니 …중략… (장자가 임종 때 여러 사람에게 말하되) 여러분은 알지니 , 이는 나의 아들이오! 나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라 어느 城에서 나를 버리고 달아나 처량하고 괴롭게 보낸지(伶 辛苦) 오십여년이라. 이 애의 본래 이름은 아무개요 나는 아무개라. 그 옛날 本城에 머물며 걱정하여 찾다가 홀연히 여기서 우연히 그를 만나 같이 살게 되니(得之) 이 애가 실로 나의 아들이요, 나는 실로 그의 아버지라 지금 나의 소유 모든 재산이 다 이 아이의 소유라 먼저 주고받은 것도 이 아이가 모두 아는 바라 하니, 세존이시여! 이 때 아들은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해 일찌기 없었던 일이라 하며 생각하기를 나는 본래 마음에 바라던 바가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 이 보배창고가 스스로 굴러옴이라 했습니다."
분석: 이 비유에서 장자는 곧 부처님을 궁자는 중생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장자가 궁자를 바로 잡아와서 궁자에게 그대가 바로 나의 아들이요 내 재산의 상속자라고 말해보았자 처음부터 이해될 까닭이 없는 것이기에 방편을 써서 우선 천한 일을 시켰고, 점차 좀 나은 일을 시키고, 그 다음 대리인으로 그의 재산을 관리하게 하며 마침내 모든 사람을 불러 놓고 이 아이는 내가 옛날에 잃어버린 나의 친아들이라 말하며 그의 재산 모두를 상속시켜 준다는 것이 비유의 내용이다. 비유의 형식을 보면 장자와 그의 잃어 버린 가난한 아이(궁자)라는 가정의 사실을 상정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 aupamya 형식에 해당된다. 3) 藥草喩 제5약초유품에 나오며 雲雨喩라고도 한다. "가섭이여 비유컨데 삼천대천세계의 산천과 계곡과 토지에서 자란 풀·나무·숲 그리고 모든 약초 그 종류가 많으며 모습이 각기 다른데, 짙은 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덮어 일시에 똑같이 비가 내려 그 빗물이 두루 풀·나무·숲과 모든 약초의 작은 뿌리·작은 줄기·작은 가지·작은 잎이나, 중간 뿌리·중간 줄기·중간 가지·중간 잎이나, 큰 뿌리·큰 줄기·큰가지·큰 잎등을 적신다하자. 모든 크고 작은 나무들은 上中下에 따라 각기 (그 빗물을) 받으며 (비록) 한 구름에서 비가 내리지만 그들의 종류나 성질(種性)에 맞게 (비를 받아들여) 자라며 꽃피고 열매 맺는다. 비록 한 땅에서 자라며 똑같이 비를 맞지만 풀이나 나무들 각기 차별이 있다.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여래 또한 이와같아서 세상에 나옴은 마치 큰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두루 설법하여 세상의 人·天·阿修羅에게 미치게 함은 저 큰 구름이 삼천대천세계를 온통 뒤덮는 것과 같음이라." 분석: 이 약초유의 내용을 보면 삼천대천세계를 덮는 큰 구름이 일어나 일시에 온 세상을 똑같이 적시어도, 약초의 상중하에 따라서 혹은 나무의 大小에 따라서 그 비를 받아 들여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에는 각기 차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도 중생들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설해지지만 단지 중생들이 그것을 근기에 맞게 받아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유 형식에 대해서 갑자기 삼천대천세계를 덮을 만큼 큰 구름이 일어나는 등의 가정의 사실을 가지고 비유를 표현하고 있는 aupamya 형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비가 내리고 약초나 나무가 그 비를 맞고 자라나는 현실의 사실을 가지고 비유의 대상으로 삼은 upam 형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4) 化城喩 제7화성유품에 나오는 비유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여래는 방편으로 중생의 성품 속에 들어가며 중생들이 작은 법을 즐겨 오욕에 집착하는 줄 알기에, 이들을 위해 열반을 설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들으면 곧 믿고 받아지니게 되리라. 비유를 들면 오백유순의 험난한 惡道 있으니 광막하고 인적 끊겨 무서운 곳인데, (이때) 여러 사람들이 있어 이 길을 지나 보배있는 곳에 가려고 했다. 한 인도자가 있어 슬기롭고 험한 길의 뚫리고 막힌 곳 잘 알아서 여러 사람 이끌고 이 곤란을 헤쳐나가려고 했다. 인솔받는 무리들이 중간에 싫증내어 인도자에게 말하되 저희 몹시 지치고 두려워 능히 더 나아갈 수 없고 앞길은 더욱 멀어 지금 돌아갈까 합니다 하니, 인도자 여러 방편이 많아 이런 생각하되 '이들이 가엾도다' 어찌 큰 보배 버려두고 돌아가려 하는가' 생각하고 나서 방편력으로 험난한 길 가운데서 삼백유순 지난 곳에 (신통력으로) 한 성을 만들고 무리들에게 말하되 그대들은 두려워하지도 말고 되돌아가지도 말라. 지금 이 큰 성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할지니 만일 이 성에 들어가면 몸과 마음이 즐겁고 편안하며 또한 앞에 있는 보물 있는 곳에 가려고 하면 능히 갈 수 있으리라 했다. 그 때 매우 피로해진 사람들은 마음에 크게 기쁜 생각이 들어 이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며 우리들은 이제 사나운 길을 면하여 즐겁고 편안함을 얻었다고 생각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이 앞에 있는 幻으로 된 城에 들어가서 이미 惡道를 벗어나 편안하다고 생각하니 그 때 인도자는 이 사람들이 이미 휴식했기에 다시 피로함 없음을 알고 곧 그 성을 없애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그대들은 따라오시오 보물있는 곳이 가까우니'라 하며, 먼저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의 휴식을 위해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라 하였다." 분석: 化城喩의 내용은 한 슬기로운 인도자가 보배가 있는 험난하고 먼 길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할 때, 그들이 두려워하고 나태심을 내어 되돌아가고자 하니 방편으로 하나의 성(化城)을 만들어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한 후에 다시 보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내용이다. 비유를 설한 후에 그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 때 인도자는 곧 부처님을 의미하며 대중들은 생사와 번뇌에 괴로와 하는 중생들을 말하며 보배가 있는 곳은 일불승을 의미함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비유 형식은 인도자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化城이라는 가정의 사실을 상정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는 aupamya 형식에 해당한다. 5) 衣珠喩 제8오백제자수기품에 나오는 비유인데, 衣裏繫珠喩 또는 繫珠喩라고도 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늘 생각하되 究竟의 滅度 이미 얻었다고 했는데, 이제서야 그것이 어리석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이 얻어야 할 것은 여래의 지혜였거늘 다만 적은 지혜로써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어느 사람이 친구 집에 찾아가서 술에 취해 잠들었습니다. 그 때 그 집 친구는 공적인 일(官事)로 외출을 하게되니 값모를 비싼 보배 구슬을 잠자는 친구의 옷속에 달아주고 갔지만, 그 친구는 취하여 자고 있었으므로 전혀 알지 못하고 깨어나서 다시 유랑해 타국에 이르렀는데 衣食을 찾느라 매우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어떤 적은 소득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였나이다. 그 후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니 (寶珠를 준 친구가) 그것을 보고는 (친구에게) 말하기를 아 여보게! 어찌 衣食을 위해서 그와같이 되었는가! 내가 옛날 그대로 하여금 안락하고 五慾을 즐기도록 하고자 어느 해 몇월 몇일에(某年日月) 값비싼 보배 구슬을 그대의 옷속에 맺어 두었는데 지금도 그대로 있거늘, 그대는 그것도 모르고 衣食을 구하기 위해서 고생하고 번뇌하며 구차하게 살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구려! 그대는 이제 이 보배로 필요한 것을 산다면 가히 항상 그대의 뜻과 같아 모자람이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분석: 이 衣珠喩에서 가난한 친구는 중생을 말하며 부호인 친구는 부처님을 의미한다. 그리고 寶珠란 우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불성 혹은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일불승을 말한다. 여기서 비유형식은 한 부유한 친구가 가난한 친구를 위해서 보배 구슬을 그의 옷속에 매달아 준다는 가설의 사실을 상정한 aupamya 형식이다. 6) 珠喩 제14안락행품에 나오는 것으로 頂珠喩라고도 한다. "문수사리여 이 법화경은 무량한 국토에서 이름조차도 듣기 어려운데 하물며 보고 받아지니며 또 읽고 외우는 것이겠는가. 문수사리여 비유하자면 강력한 전륜성왕이 위세로써 여러 나라들을 항복시키려 할 때 여러 小王들이 그 명령을 거역하면 이 때 전륜성왕이 온갖 병사를 일으켜, 토벌하면서 왕이 군사들 중에 전쟁에서 공이 있는 자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그 공에 따라 상을 내리는데, 혹은 밭과 집(田宅)·마을(聚落)·도시를 주며 혹은 의복이나 장신구를 주며 혹은 여러가지 진귀한 보물인 금·은·유리·자거·마노·산호·호박·코끼리·말·수레·남자종·여자종·백성들을 주지만 머리속에 있는 밝은 구슬만은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구슬은 세상에서 왕의 머리 위에 있는 하나 뿐인 것이기 때문이며 만약 이것을 주면 왕의 모든 권속들이 반드시 크게 놀라고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석: 이 비유는 전륜성왕이 자신의 상투속에 있는 보배를 소중하게 간직하다가 가장 戰功이 큰 사람에게 최후로 주는 것처럼, 부처님도 여러 가지의 가르침을 펴지만 온갖 번뇌를 깨뜨린 수행자에게만 비로소 법화경을 설한다는 내용이다. 비유를 설한 후에 이 비유의 은유적인 내용을 계속 설명하고 있는데, 전륜성왕은 법으로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法王인 부처님을 의미하며 戰功이 있는 사람은 수행으로 온갖 魔障을 깨는 수행자를 말하며 보배 구슬은 법화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비유의 형식은 전륜성왕이 그의 명령을 거역하는 소왕들과 싸움을 벌이며 최고의 戰功者에게 보배 구슬을 하사한다는 가정의 이야기를 상정한 aupamya 형식으로 볼 수 있다. 7) 醫子喩 제16여래수량품에 나오는 비유이며 醫師喩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내 비구들에게 이르되 여래를 만나 뵙기가 어렵다고 함이니 이 중생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반드시 만나뵙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어 마음에 연모하는 생각을 품고 부처님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곧 선근을 심으리라. 그러므로 여래는 비록 멸도하지 않았지만 멸도했다고 말하느니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의 법도 모두 이와같아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니 다 진실하며 허망함이 없다. 비유를 들면 良醫가 있어 지혜총명하고 의약에 통달하여 여러가지 병을 잘 치료하였다. 그에게는 많은 자식들이 있어 열명 스물 내지 백명이나 되었는데, (그 아버지) 어떤 사연이 있어서 먼 타국에 갔는데 아이들 뒤에 독약을 잘못 마시고 약 기운이 일어나 답답하고 어지러워 땅에 쓰러져 있었다. 이 때 그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니 여러 아이들이 독약을 마시고 실성하기도 하고, 혹은 아직은 실성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 멀리서 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무릅을 꿇고 절하면서 문안을 여쭈오되 '안녕히 잘 다녀오셨습니까? 저희들이 어리석어 독약을 잘못 마셨으니 원컨데 고쳐주시어 다시 살게 해 주소서' 하니 아버지 자식들의 고통이 이와같음을 보고 여러가지 처방으로 빛과 향과 맛을 다 갖춘 좋은 약초를 구해다가 방아에 찧고 체로 쳐서 화합하여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아주 좋은 약이니 색과 향, 모양과 맛 모두를 갖춘 것이니 너희들 먹어서 속히 그 고통 없애고 다시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라' 하니 그의 아이들 중에 실성하지 않은 이들은 그 약이 색과 향을 갖춘 좋은 약임을 보고 곧 먹어니 병이 모두 나았고, 그들 중에 실성한 아이들은 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 비록 기뻐하고 문안드리며 병 치료를 원했으나 그 약을 먹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독기운이 몸에 깊이 들어가 실성했으므로 이같이 좋은 빛과 향으로 만들어진 약을 좋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때) 아버지 생각하되 이 아이들 가히 불쌍하도다. 독으로 마음이 뒤집혀(顚倒) 비록 나를 보고 기뻐하며 병의 치료를 원하지만 이렇게 좋은 약을 먹지 않으니 내가 이제 방편을 사용하여 이 약을 먹게 하리라 하고는 곧 말하되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나는 이제 늙고 쇠약하여 죽을 때가 되었다. 이 좋은 약을 이제 여기에 남겨두니 너희들은 이것을 복용하되 병이 낫지 않을까 걱정말라 하고는 다시 타국으로 가서 사람을 보내 자신의 집에 돌아가 아이들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라 한다. 이 때 모든 아이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음을 듣고는 크게 걱정하고 괴로와 하면서 이와같이 생각하되 만약 아버님 계셨다면 우리들 가엾이 여겨서 보살펴 주시련만 이제는 우리들 놓아둔 채 멀리 타국에서 돌아가셨구나 하고 스스로 외로워하며 다시는 의지할 데 없음을 생각하고 늘 슬퍼하는 중에 마침내 정신이 들어 이 약 빛과 맛과 향과 모습이 좋은 것을 알고 곧 먹으니 병이 모두 나았다. 그 아버지는 아이들이 약을 먹고 모두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곧 돌아와 그들 모두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 분석: 여기서 良醫는 부처님, 독약을 먹은 아이들은 삼독에 빠진 우리 중생들을 의미하며 妙藥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뜻한다. 여기서 부처님은 중생 제도를 위해서 방편으로 열반을 말하지만 실은 여래의 수명은 한량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만약 중생들이 여래를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善根을 심기 때문이라 한다. 그것을 良醫가 독약을 마신 자신의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자신의 죽음을 알려서 병을 고칠 수 있었다는 비유를 들어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비유 형식을 보면 양의와 그의 아이들을 상정하여 그것을 부처님과 중생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는 aupamya 형식에 해당한다. 3. 그 이외의 비유들 1) 日月의 譬喩 이것은 제5약초유품의 후반에 나오는 비유인데, 藥草喩에 이어서 설해진 것이며 묘법연화경에는 빠져 있다. "부처님께서 다시 대가섭에게 말씀하시되, 여래의 가르침은 평등하여 아무런 차별이 없다. 비유를 들면 마치 햇빛(日明)이 두루 천하를 비추되 그 빛에는 선택해서 비추거나 안비추거나 하는 차별이 없으며, 높고 낮음·깊고 얕음· 좋아하고 싫어함·향과 악취등에 차별이 없는 것과 같다." 분석 : 이것은 약초유에 이어지는 비유로 약초유에서 비가 차별없이 내리지만 중생이 그들의 근기에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이 日月의 비유에서는 비 대신에 해와 달을 비유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곧 여래의 가르침은 日月과 같이 모든 것에 차별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비유의 형식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현상인 日月에 견주어서 표현하고 있는 upam 형식에 해당한다. 2) 作甁者의 譬喩 이것도 제5약초유품의 후반에 나오는 것으로, 日月의 비유에 이어서 계속 설해지는 비유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리되, 삼승이 없는데 어찌하여 보살·연각·성문이 있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마치 도예가가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되 어떤 그릇은 좋은 꿀(甘露蜜)을 담고 어떤 것은 우유제품(酪蘇)이나 기름(麻油)을 담고 어떤 그릇은 술( )이나 음식을 담기도 하나니 진흙은 본래 하나의 평등한 것이나 만든 그릇은 차별이 있어서 담는 것이 같지 않다. 일승법(本際)도 또한 그러하여 하나로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것이지만 각기 수행법에 따라서 上中下가 성립된다." 분석 : 일승법과 삼승법을 설명하기 위해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비유를 들고 있다. 곧 그릇의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듯이, 三乘도 성불하기 위한 가르침이라는 것에서는 동일한 일승법이지만 각기 근기에 맞게 수행하기에 三乘의 차별이 있는 것이라고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비유 형식은 그릇을 만드는 구체적인 사실을 예로 들고 있는 upam 형식으로 볼 수 있다. 3) 生盲人의 譬喩 作甁者의 譬喩에 이어지는 비유이다. "가섭은 다시 묻기를 가령(縱使) 다르게 되어도 구경에는 같아집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마땅히 같아지니 지혜가 있는 사람(明者)은 그것을 이해하리라. 비유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어서 日月과 五色과 十方을 보지 못하면서 그것을 없다고 하니,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對說者)이 있었지만 그 맹인은 믿지 않았다. 이때에 良醫가 있어서 그 사람을 만나 어찌하여 눈이 없는가를 살피보니 본래의 죄(本罪)가 그 씨앗(所種)이라. 明眼과 冥體가 떨어져 나간 중병이니, 중병이라 하는 까닭은 풍(風)·한(寒)·열(熱)·벽(癖)등의 4가지 병이 있기 때문이라. 곧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그 사람의 병은 보통의 약으로는 결코 그것을 고칠 수 없으니, 설산에 있는 약만이 능히 4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첫째는 顯이요 둘째는 良이며 세째는 明이요 네째는 安이니 이 약에 4가지 이름이 있다. 이 때 양의는 그 맹인을 불쌍히 여겨서 방편으로 설산에 들어가 4가지 종류의 약을 채취하여 빻고 찧어서 그 장님의 눈을 치료하니 곧 밝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침과 뜸으로 치료하니 그 사람의 눈동자 안밖으로 통하여 日月의 빛과 五色과 十方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믿음을 내고 스스로에게 꾸짖기를 나는 눈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서 스스로 통달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시력을 얻고 보니 나 자신의 어리석음이 많았음을 깨달았도다. 이제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을 보는데 있어서 나를 뛰어넘을 사람이 없다고 말하니, 이 때에 5가지 신통이 있으며 한가이 지내는 신선(仙人)이 있었는데 보고 듣는 것에 통달하고 몸은 능히 날아다닐 수 있으며 생사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神仙이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스스로를 높여서 통달했다고 자만하지 말라. 그대가 집안에 있으면 벽에 막혀서(自閉) 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밖의 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대는 善惡에 있어서 五里나 十里 밖에서는 그것을 볼 수 없고, 말하는 소리 혹은 二十里 밖에서 북치는 소리도 오히려 들을 수 없다. 가까운 一里나 二里도 건너뛸 수 없고 또한 태어나기 전 배속(胚胎)의 기억을 알(觀) 수 없다. 또한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통달했다고 하며 보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는가? 지금 내가 그대를 살펴보니 어두운 것을 밝다하고 밝은 것을 어둡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묻기를 어떤 방법과 기술(方術)로 그와같은 성스러운 신통을 얻었습니까? 원컨데 지혜를 내려서 가르쳐 주소서 하니 神仙이 답하기를 마땅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조용하고 한가로운 외딴 곳에 머물면서 모든 情欲을 없앤다면 이에 신통력을 얻을 수 있다 하니 즉시 그 가르침을 쫓아서 집을 버리고 바위에서 편안히 머물면서 일심으로 정진하여 그리워함과 즐기는 바를 없애니, 곧 신통을 얻고 이어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본래 자신의 생각(所見)을 살피니 말로는 다할 수 없었는데, 지금 5가지의 신통을 얻고 나니 장애되는 바가 없어 비로소 자신의 본래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분석 : 이 비유가 끝난 다음에 부처님은 비유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良醫는 부처님을 비유한 것이며, 盲人은 無明으로 가려져 一乘法을 배우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있는 우리 중생들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처음 良醫가 맹인을 치료하여 눈을 뜨게 한 것은 三乘法으로 중생들을 인도한 것이며, 5가지 신통을 얻고 궁극의 깨달음을 얻음은 一乘法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비유의 형식은 盲人이 神仙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가설의 이야기를 상정한 aupamya 형식이다. 4) 大王膳의 譬喩 제6수기품에 나오는 비유이다. "만약 저희들의 마음을 아시어 수기를 주신다면 감로수를 뿌려 열을 없애고 시원함을 얻게 하는 것과 같으며, 마치 기근든 나라에서 와서 뜻밖에 임금의 수라상(大王饍)을 만나지만 오히려 마음속에 두려운 생각이 나서 감히 먹지 못하다가 만약 왕의 먹으라는 지시를 받고서야 비로소 먹는 것과 같습니다." 분석 : 지금까지의 모든 비유들은 산문을 중심으로 비유를 고찰한데 반해서 수기품의 산문에서는 비유가 없으며 오직 게송에서만 비유가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을 보면 授記를 주는 것은 마치 굶주린 사람에게 임금의 수라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라는 분부와 같다는 것이다. 비유의 형식은 기근든 가난한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임금의 수라상을 만난다는 가정의 사실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aupamya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5) 三千塵點의 譬喩 제7화성유품의 초반에 나오는 비유이다. "비구들이여 그 부처님(대통지승여래) 열반하신 지가 매우 오래이시니 비유를 들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땅을 어떤 사람이 갈아 먹으로 만들어서 동방으로 일천 국토를 지나서 티끌과 같은 작은 한 점을 떨어뜨리고 또 일천국토를 지나서 한 점을 떨어뜨리며 이와같이 옮겨 가면서 땅으로 된 먹을 다 없애는 것과 같다." 분석 : 내용은 대통지승여래의 열반하신지가 한량없이 오래되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비유의 형식은 가설의 이야기를 말하는 aupamya 형식으로 볼 수 있다. 6) 入海採寶의 譬喩 제8오백제자수기품의 초반에 나오는 비유로 범본·묘법연화경·첨품묘법연화경에는 없고 오직 정법화경에만 있다. "여래는 일체의 이치(本際)를 꿰뚫어 보고 깊고 얕은 因行을 알아서 (그것에 맞는 가르침을) 펼치니, 聲聞에게는 낮은 소승법을 보여서 음욕과 성냄의 허물을 없애서 그것에서 벗어나게 하며 그후 보살의 끝없는 지혜로 인도한다. (비유를 들면) 마치 옛날에 한 導師가 있어서 자비를 행하며 가난하고 곤란에 빠진 사람들을 가엾게 여겼지만 옷과 음식이 충분치 못해서 구하고자 해도 얻을 수 없고 궁핍하여 재물이 없었다. 이에 온나라에 북을 울리며 바다속에 들어가서 보배를 구할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말하니 백성들이 모두 모여 들었다. 다시 다니면서(循) 말하기를 어느 누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으며 처자를 되돌아보지 않고 함께 바다에 들어가서 진귀한 보배를 구할 수 있겠는가? 하니 대중(人民)들이 그것을 듣고 물러나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한 여러 가난한 사람들은 보배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으니 몸을 가릴 옷도 없고 살아갈 재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뭇거리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니 導師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모두 불러서 말하기를 만약 함께 바다로 들어간다면 옷과 양식을 주어서 궁핍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가난한 사람들 기뻐하며 곧 그 명령을 받들어 일시에 배에 올라탔고 바람 불기를 기다려 돛을 올리고 大海로 들어갔다. (사나운) 큰 고기 만나지 않고 (험난한) 지형(山崖) 만나지 않으며 나쁜 귀신이나 나찰 감히 장난치지 못했다. (마침내) 용궁에 이르러 (導師가) 용왕으로부터 여의주를 구하기 위해서 (말하되) '이 사람들 궁핍해서 스스로 생계를 꾸리지 못하여 (보물을) 구하러 멀리서 왔으니 원컨데 은혜를 베푸소서' 하니 용왕은 곧 그 원대로 들어 주었다. …후반부 생략…" 분석 : 여기서 導師는 곧 부처님을 의미하며 가난한 무리들은 중생을 의미하며 바다로 들어감은 경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비유한 것이며, 여의주를 얻음은 여래의 법신인 一乘法(理의 일승법)을 얻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비유의 형식은 한 사람의 導師와 가난한 사람들이 같이 용궁에 들어가서 보배를 얻어온다는 가정의 사실을 가지고 비유를 전개하는 aupamya 형식이다. 7) 高原穿鑿의 譬喩 이것은 제10법사품에 나오는 비유이다. "약왕이여 비유를 들면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 물을 구하기 위해 높은 언덕(高原)에서 땅을 파되 마른 흙이 나오면 물이 아직 먼 줄로 알며 계속해 파서 습한 흙을 보고 마침내 진흙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마음에 물이 가까이 있음을 확신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또한 이와같아서 만약 이 법화경을 아직 듣지도 알지도 못하며 능히 이 경을 닦고 익히지 못하면 반드시 알라 이런 사람은 깨달음에 아직 거리가 먼 것이요, 만약 (법화경) 듣고 이해하며 늘 생각하여 닦는다면 반듯이 깨달음에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으니 왜냐하면 모든 보살의 깨달음이 전부 이 경전에 있기 때문이다." 분석 : 이것의 내용은 법화경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깨달음에 가깝다는 것을 언덕(高原)에서 땅을 파서 물을 구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비유의 형식은 언덕에서 어떤 사람이 땅을 파서 물을 구하는 가설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aupamya 형식임을 알 수 있다. 8) 父少子老의 譬喩 제15종지용출품에 나오는 비유이다. "세존이시여! 가령 어떤 사람이 있어 이 대보살들을 천만억겁동안 헤아려도 다 할 수 없으며 그 (숫자) 근처에도 갈 수 없나이다. 이들은 (틀림없이)아득한 옛부터 한없는 부처님 도량에 온갖 善根을 심어 보살도 성취했으며 늘 梵行을 닦았음이니, 세존이시여 이와같은 일은 세상에서 믿기 어렵나이다. 비유를 들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있어 얼굴이 아름답고 머리카락이 검은 25세의 젊은이가 백살된 노인을 가르키며 이 사람은 나의 아들이라 말하고 그 백살된 노인도 역시 그 청년을 가르키며 이 사람은 나의 아버님이며 나를 낳고 길렀다고 말하니 이런 일 믿기 힘든 것처럼 부처님도 또한 이와같나이다." 분석 : 석존이 계신 곳에 무수한 보살들이 땅속에서 솟아나자 부처님 가까이에 있던 많은 대중들이 놀라게 되며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등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는데 미륵보살이 대중들의 마음을 알고 부처님께 그러한 질문을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땅에서 솟아난 보살들은 자신이 이 사바세계에서 성도한 이후에 제도한 대중들이라 하니 미륵보살이 어떻게 성도하신지 겨우 40여년만에 그토록 많은 보살들을 교화하셨는지에 대해서 子老父少의 비유를 들면서 질문하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비유의 형식은 젊은 아버지와 나이든 아들을 상정한 aupamya의 형식이다. 9) 五百億塵點의 譬喩 제16여래수량품에 나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성불한 지는 무량 무변한 백천만억 나유타겁이 지났으니 마치 비유를 들면 오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 삼천대천세계를 가령 어떤 사람이 있어서 그것을 갈아 티끌로 만들어 동방으로 오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국을 지나서 비로소 티끌 하나를 떨어뜨리고 이와같이 동쪽으로 계속가서 그 티끌을 모두 없애는 것과 같다." 분석 : 비유의 내용은 여래의 성불은 단지 가야성 근처의 보리수 아래서 최초로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무량 무변한 아승지겁 이전에 성불했음을 오백억진점의 비유로써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비유의 형식은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갈아서 티끌로 만들고 그것을 우주 공간에 조금씩 떨어뜨린다는 가설의 내용인 aupamya 형식이다. 10) 大施主의 譬喩 제18수희공덕품에 나오는 비유이다. "미륵이여 그 50번째의 선남자·선여인의 수희공덕을 내가 지금 설하리니 그대는 마땅히 잘 들어라. 만약 사백만억아승지세계의 六趣와 四生衆生인 卵生·胎生·濕生·化生과 모양이 있거나 없는 것·생각이 있거나 없는 것·생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것(非有想非無想)·발이 없는 것과 두 발이나 네 발 또는 여러발 가진 것등의 이와같은 중생들에게 어떤 사람이 福을 구하려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좋아하는 것을 모두 주었다고 하자. 그 하나 하나의 중생에게 이 세상을 가득채울 정도의 금은·유리·자거·마노·산호·호박등의 진기한 보물과 코끼리·말·수레와 칠보로 된 궁전과 누각 등을 주고, 이 대시주자가 이와같이 80년 동안이나 보시를 하고나서 생각하기를 내 이미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보시하여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었지만 이 중생들 모두 이미 노쇠하고 나이 80이 지나서 머리카락은 희고 얼굴에 주름이 많으니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니 내 마땅히 불법으로 그들을 인도하리라 했다. 곧 이 중생들 모아 놓고 법을 펴고 교화하여 이익과 기쁨을 주며, 동시에 모두 수다원도·사나함도·아나함도·아라한도를 얻게 하여 모든 번뇌를 없애 깊은 선정에서 모두 자재함을 얻고 8해탈을 갖추게 했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대시주의 얻은 공덕이 오히려 많겠는가 적겠는가?" 분석 : 비유의 내용은 법화경을 듣고 함께 기뻐하는 隨喜功德이 온갖 財布施와 法布施를 한 저 대시주의 공덕보다도 크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비유의 형식은 aupamya의 형식이다.. 11) 海山日月等의 十喩 제23약왕보살본사품에 나오는 것이다.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칠보로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워 부처님과 큰 보살과 벽지불과 아라한등에게 공양할지라도 이 사람이 얻는 공덕은 법화경의 한 四句偈를 受持하는 福만 못하다. 숙왕화여! 비유를 들면 모든 냇물이나 강물 등의 여러 가지 물 가운데서 바다가 제일이 되듯이 이 법화경 또한 이와같아서 여래가 설한 경전 가운데서 (그 뜻이) 가장 깊고도 크다. 또 土山·黑山·小鐵圍山·大鐵圍山과 十寶山등의 온갖 산들 가운데서 須彌山이 으뜸이 되듯이 이 법화경도 이와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된다. 또한 여러 별들 중에서 달이 가장 으뜸이 되듯이 이 법화경도 그러해서 천만억 가지의 경전 가운데 가장 빛난다. 또한 마치 해가 능히 모든 어둠을 없애듯이 이 경도 그러해 능히 일체의 나쁜 어둠을 없앤다. 또 모든 小王 가운데 전륜성왕이 가장 으뜸이 되듯이 이 경도 그러해 온갖 경전중에서 가장 존귀하다. 또 마치 저 제석이 三十三天 가운데 왕이 듯이 이 경도 그러해 모든 경전 가운데 왕이며, 또 마치 대범천왕이 일체 중생의 아버지 듯이 이 경도 그러해 일체의 현성·학인·무학인 그리고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의 아버지와 같다. 또한 일체의 범부들 가운데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그리고 벽지불이 제일이 되듯이 이 경도 그러해 일체의 여래가 설하거나 보살 혹은 성문이 설한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된다. 이 경전을 능히 수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한 이와같아서 일체중생들 중에서 으뜸이 된다. 일체의 성문과 벽지불 중에서 보살이 제일이 되듯이 이 경도 그러해서 모든 경전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 되니, 마치 부처님께서 모든 법왕이 되듯이 이 경도 그러해 모든 경전 가운데 왕이 된다. 수왕화여! 이 경은 능히 일체중생을 구하는 경이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괴로움을 떠나게 하며 일체중생을 크게 이익되게 하여 그 願을 이루어 준다. (비유를 들면) 마치 맑고 시원한 연못의 물(如淸 池)이 일체의 목마른 자를 만족시키듯이, 추워 떨던 사람이 불을 얻은 것처럼, 벗은 이가 옷을 얻은 것처럼, 마치 저 장사하는 사람이 물주를 만난 것처럼, 아이가 엄마를 만난 듯이, 나루에서 배를 만난 듯이, 병든 이가 의사를 만난 듯이, 어둠속에서 등불을 만난 듯이, 가난한 이가 보배를 만난 것처럼, 백성이 임금을 만난 듯이, 장사하는 이가 바다를 만난 듯이, 마치 햇불이 어둠을 없애는 것과 같이 이 법화경도 또한 이와같아서 능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과 질병을 여의게 하며 능히 일체 생사의 속박을 풀게 한다." 분석 : 비유의 내용은 법화경의 수승함을 海·山·日·月등의 10가지의 뛰어난 것에 견주어서 비유하고 있으며, 법화경이 중생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시원한 연못의 물(淸 池)등 12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비유는 바다와 산 등의 10가지 비유와 시원한 연못물등의 12가지 비유등 총 22가지의 비유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비유의 형식은 법화경의 수승함과 작용을 하나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이나 상태등에 비유하고 있는 전형적인 upam 형식이다. 12) 優曇華와 一眼龜 浮木의 譬喩 제27묘장엄왕본사품에 나온다. "부처님 만나 뵙기 어려움이 마치 우담발라의 꽃이 피는 것과 같고, 또 마치 눈 하나 달린 거북이 바다위에 뜬 나무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분석 : 내용을 보면 부처님을 만나 뵙기가 어렵다는 것을 優曇華와 눈 하나의 거북이 바다위의 나무 구멍을 만나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 aupamya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지금까지 법화경에 나타난 譬喩에 대해서 그 내용을 중심으로 고찰하였고 그 형식에 대해서도 살펴 보았다. 譬喩의 內容을 보면 蓮華, 火宅, 長者窮子, 藥草, 日月의 이야기등 약 20가지에 달하는 譬喩들이 인간과 자연을 소재로 하여 다양하게 설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譬喩의 形式에 대해서는 upam 와 aupamya 형식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고, 내용상 갈래로는 總喩와 別喩로 나누어서 고찰하였다. upam 형식은 대체로 短喩에 해당하며, aupamya 형식은 주로 長喩와 상응한다. 그리고 總喩인 蓮華喩는 upam 형식에 해당하며, 別喩인 法華七喩는 aupamya 형식에 해당함을 고찰하였다. 그 이외의 비유들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은데, 生盲人의 譬喩는 전형적인 aupamya 형식이며 海山日月等의 十喩는 전형적인 upam 형식에 해당한다. 다음 제Ⅲ장에서는 비유에 나타난 思想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Ⅲ. 譬喩에 나타난 思想 譬喩에 나타난 메시지나 思想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그 방법으로 인도의 현존하는 유일한 법화경 주석서인 世親의 {法華經論}과 중국의 대표적인 법화경 주석서인 天台의 {法華玄義}나 {法華文句}를 중심으로 해서 그들이 법화경의 비유들을 어떻게 解釋하고 있는가를 통해서 譬喩에 나타난 思想을 고찰하고자 한다.
1. 蓮華喩에 나타난 思想 蓮華喩란 법화경의 梵語 명칭인 Saddharma-pu ar ka-s tra, 즉 漢譯에서는 正法華經 또는 妙法蓮華經이라는 경전의 이름에 나타난 비유를 말한다. 곧 '正法' 혹은 '妙法'을 흰 연꽃에 비유한 경전이라는 의미이다. 1) 世親의 出水義와 華開義 世親의 法華經論에서는 법화경의 이름에 대해서 17가지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제16번째에 妙法蓮華經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면서 연꽃의 비유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열여섯번째 이름은 묘법연화경이라 여기에는 두가지 뜻이 있으니 무엇이 두가지의 뜻인가? 첫째는 '물에서 나온다'는 뜻이니 소승의 진흙탕 물에서 나오는 것이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뜻은 마치 저 연꽃이 흙탕물 속에서 피어남에 비유한 것이다. 여러 성문들이 여래의 대중속에 들어가 앉아 있음이 마치 여러 보살들이 연꽃 위에 앉아서 여래의 위없는 지혜 청정한 경계의 설법을 듣고 여래의 깊고 신비로운 세계를 증득함과 같기 때문이라. 둘째는 '꽃이 핀다'는 뜻이니 여러 중생들이 대승 가운데 그 마음이 나약하여 능히 믿음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맑고 묘한 법신을 열어 보여서 믿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연화유에 대해서 물에서 나오는 出水義와 연꽃을 피우는 華開義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곧 연꽃이 진흙탕 물에서 나오는 것은 소승의 세계에서 나와 일불승의 세계(여래의 위없는 청정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유이며, 연꽃이 핀다는 것은 여러 중생들에게 일불승(부처님의 맑고 묘한 법신)을 열어 보여서 그것에 대한 믿음을 일으켜서 일승불의 세계에 머물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世親의 蓮華喩 解釋에 나타난 出水義와 華開義는 一乘思想을 의미한다. 2) 天台의 蓮華二門六喩 法華玄義에 나타난 蓮華喩 解釋은 다음과 같다. "法譬을 定하는 것은 權實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연꽃을 빌려 묘법을 비유한 것이다. …중략… 법화의 법문은 청정하고 因果가 미묘하니 이 법문을 이름하여 蓮華라 한다" 천태는 연화유 해석에서 妙法을 연꽃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因果의 미묘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한다. "蓮華는 특별함이 많다. 연밥(연꽃의 열매)이 있으면서 꽃이 피니, 꽃과 열매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비유하면 實(진실)과 함께 하는 權(방편)이다. 또 꽃이 피고 열매가 드러남은 權(방편)과 함께 하는 實(진실)이다. 또한 꽃이 떨어지고 나서 열매가 만들어지거나, 열매가 만들어지고 나서 (꽃이) 떨어지니 가히 비유하면 權(방편)도 實(진실)도 아니다. 이와같이 여러가지 뜻의 편리함(義便) 때문에 蓮華로써 妙法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연화유에 대한 설명은 蓮華二門六喩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연화로서 佛法界의 迹門과 本門 두가지를 비유하니 각기 세가지의 비유가 있다. 迹의 비유는 첫째 꽃이 피면 반드시 연밥(연꽃의 열매)이 있음이니, 연밥(蓮)을 위한 꽃으로 (먼저)연밥은 볼 수 없다. 이것은 實을 가지고(約) 權을 밝힌 것으로 그 의도는 實은 능히 알 수 없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經文에 말하기를 나의 뜻(부처님의 의도)은 가히 측량조차 어려우니 능히 질문자가 없다고 했으며, 또한 말하되 근기 따라 설함(隨宜所說)은 의취(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둘째 꽃이 피기 때문에 연밥이 나타나는 것이니, 꽃이 필요로 함은 연밥을 키우기 위함이며 權 가운데 實이 있지만 능히 알 수 없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 權(방편)을 열어서 實(진실)을 보임은 그 의도가 權을 필요로 하는 것에 있다. 두루 무수한 불법(恒沙佛法)을 인식한다는 것은 단지 實을 이루기 위해서 佛知見을 깊이 (중생들에게) 인식하게 했을 따름이다. 세째는 꽃이 떨어지고 연밥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곧 三(삼승)을 버리고 一(일승)을 드러냄에 비유한 것이다. 오직 일불승으로 바로 도량에 이른다 하며, 보살은 行으로 보는 것이 了了하지 않음이 단지 꽃이 피는 것과 같으며 諸佛은 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는 것이 곧 了了하니 비유하면 마치 꽃이 떨어지고 연밥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음이라. 이 세 가지가 迹門의 譬喩이며 처음 방편에서 시작하여 대승으로 들어가며 결국은 원만해진다. 또한 本門에 3가지의 비유가 있으니, 첫째 연꽃에는 반드시 연밥(열매)이 있고 迹에는 반드시 本이 있으니 迹은 本을 함유하고 있다는 비유이다. 의도는 비록 本에 있지만 부처님의 궁극의 가르침(佛旨)은 알기 쉽지 않으니 미륵보살도 알지 못했다. 둘째는 꽃이 피고 연밥이 드러남이니 迹(방편)을 열어서 本(진실)을 드러낸 것이니 의도는 迹에 있음에 비유한 것이다. 능히 보살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방편을 알게 하고 이미 방편(迹)을 알고 나서는 돌아가서 (다시) 진실(本)을 알아 지혜를 증장하고 생사에서 벗어난다(增道損生). 세째 연꽃이 떨어지고 연밥(열매)이 만들어지는 것은 迹을 버리고 本을 드러냄에 비유한 것이니 이미 本(진실)을 알고 나서 다시는 迹(방편)에 미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法身에서 도를 닦아서 두루 上地를 이룬다. 세가지는 본문을 비유한 것으로 初開에서 시작하여 本地에서 끝난다. 二門의 여섯 가지 비유(六譬)는 각기 비유하는(擬) 바가 있다. 여기서 천태는 꽃과 열매가 동시에 있는 연꽃의 특성은 權實과 妙法을 설명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에 蓮華喩를 설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蓮華二門六喩를 가지고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蓮華二門六喩의 해석을 보면 迹門과 本門으로 나누어 여기에 각기 세가지의 비유를 들어 모두 6가지의 비유로써 연화유를 설명하고 있다. 천태는 법화경을 해석하면서 제1서품에서 제14안락행품까지를 迹門의 開權顯實을 밝히는 것으로, 제15종지용출품에서 제28보현보살권발품까지를 本門의 開權顯實을 밝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이렇게 볼 때 연화유 해석은 법화경 전체 사상을 연화의 비유로써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蓮華六喩와 本迹二門의 내용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迹門의 三喩 첫째, 爲蓮而華는 約實明權에 대한 비유인데, 곧 연밥(연꽃의 열매)을 위한 연꽃은 實(진실)의 입장에서 權(방편)을 밝힌 것이다. 둘째, 華開故蓮現은 開權顯實에 대한 비유인데, 곧 연꽃이 피기 때문에 연밥(열매)이 나타난다는 것은 權을 열기 때문에 實이 드러나는 것이다. 세째, 華落蓮成은 廢三顯一에 대한 비유인데, 곧 연꽃이 지고 나서 연밥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삼승이 사라지고 일승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本門의 三喩 첫째, 華必有蓮은 迹必有本에 대한 비유인데, 연꽃에는 반드시 연밥이 있다는 것은 迹에는 반드시 本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둘째, 華開蓮現은 開迹顯本에 대한 비유인데, 연꽃이 피어 연밥이 드러나는 것은 迹을 열어 本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세째, 華落蓮成은 廢迹顯本에 대한 비유인데, 연꽃이 떨어지고 연밥이 만들어지는 것은 迹이 사라지고 本이 드러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천태는 법화경을 迹門과 本門으로 나누고 그것을 연화6유로써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法華七喩에 나타난 思想 1) 世親의 對治七種增上慢心 世親은 {法華經論}에서 法華七喩를 설하는 이유에 대해서 7종류의 번뇌로 오염된 중생을 위해서 설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그리고 차례로 7종류의 번뇌로 오염된 사람들을 밝히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7종류의 증상만심과 그것을 바로잡는 칠종의 비유(법화칠유)를 밝히고 있는데, 세친의 법화칠유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火宅喩 이것은 세력을 구하는 사람을 바로잡기 위해서 설한 것이다. "첫째는 顚倒되어 모든 공덕을 구하는 증상만심이니, 이른바 세간에서 온갖 번뇌로 오염됨이 매우 심한 증상만으로 사람과 하늘의 뛰어난 경계인 有漏의 과보를 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對治) 화택비유를 설하니 마땅히 알라. …중략… 첫번째 사람(求勢力人)에게는 世間 속의 온갖 선근삼매의 공덕을 보여서 방편으로 (그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 후에 대열반에 들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택유를 설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도되어 온갖 공덕을 구하는 증상만의 사람(求勢力人)에게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화택유를 설한 것이라 하고, 그 방법으로 세간에 온갖 선근의 삼매공덕을 方便으로 그들에게 보여 주어서 먼저 기쁘게 한 연후에 대열반에 들어가게 한다고 하였다. 직접적으로 일승이나 삼승이라는 말이 화택유의 해석에서는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나 示世間中種種善根三昧功德方便令喜라는 문구는 중생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온갖 선근의 三昧功德을 보여서 방편으로 즐겁게 한다는 뜻인데, 곧 그 의미는 그들의 근기따라 좋아하는 성문의 가르침, 연각의 가르침, 보살의 가르침등의 삼승을 보여서 方便으로 그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여기서 善根三昧功德을 삼승의 涅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然後令入大涅槃故는 삼승으로 인도한 연후에 일승의 대열반에 들어가게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세친이 化城喩를 해석하는 글에서도 드러나는데 그것은 '방편으로 涅槃城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니 涅槃城이란 이른바 모든 禪의 三昧城이다. 그 城을 지난 연후에 大涅槃城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다. 곧 여기서 禪의 三昧城은 삼승의 열반성을 말하며, 대열반성은 일승의 열반성을 말한다. 이와같이 화택유의 善根三昧도 화성유의 禪의 三昧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분석하면 세친의 화택유 해석에서 직접적으로 일승이나 삼승의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 내용으로 볼 때 '顚倒되어 모든 공덕을 구하는 증상만심(求勢力人)'을 가진 求勢力人에게 '삼승의 방편을 통해서 일승의 진실로 들어갈 수 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가 화택유인 것으로 볼 수 있다. (2) 窮子喩 이것은 성문의 해탈을 구하는 사람(聲門解脫人)이 一向決定의 增上慢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窮子喩를 설한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둘째는 성문이 一向決定增上慢心을 가지고 말하기를 나의 수레와 여래의 수레는 같아서 차별이 없다고 하니 이와같이 잘못 취한다. 이것을 바로잡고자 궁자의 비유를 설하니 마땅히 알라. …중략… 제2인(聲門解脫人)에게 삼승(三)을 가지고 일승(一)을 삼아서 대승으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궁자유는 聲門解脫人이 가진 一向決定增上慢心을 바로잡기 위해서 설한 것이며, 그 내용은 곧 삼승으로서 일승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세친은 해석하고 있다. (3) 藥草喩 雲雨喩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大乘人이 大乘一向決定增上慢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고자 이 비유가 설해진 것이라 한다. "세째는 대승(보살승)이 一向決定增上慢心을 가지고 별도로 성문이나 벽지불승이 없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잘못 그것을 취하니 이것을 바로잡고자 운우비유를 설하니 마땅히 알라. …중략… 第3人(大乘人)에게 온갖 수레(삼승등의 가르침)는 제불여래의 평등한 설법임을 알리고, 모든 중생의 선근종자를 따라서 싹을 틔우게 하기 위함이다." 藥草喩(雲雨喩)는 보살(대승)이 대승에 대한 자만심을 가지고 성문이나 벽지불승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임을 알 수 있다. 마치 광대한 구름이 삼천대천세계를 덮어 일시에 한가지의 비가 땅을 적셔도 약초나 나무들이 각기 그들의 크기에 따라서 물을 흡수하는 것과 같이, 제불여래는 평등하게 설법을 하며 모든 중생들은 선근종자에 따라서 각기 싹을 틔운다는 것이다. 곧 이 약초유도 일승진실과 삼승방편 사상을 밝힌 것이다. (4) 化城喩 이것은 有定人이 실제로는 없는데 있다는 증상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고자 化城喩를 설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네째는 실제로 없는데 있다고 말하는 증상만심으로, 세간의 삼매와 삼마발제(깊은 삼매)을 가지고 실제 열반이 없는데 열반이라는 생각을 내어 이렇게 잘못 취하니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화성의 비유를 설하니 마땅히 알라. …중략… 제4인(有定人)에게 방편으로 涅槃城에 들게 하기 때문이다. 열반성이란 이른바 모든 禪三昧城을 말하니 그 城을 지난 연후에 大涅槃城으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涅槃城은 二乘이나 三乘의 삼매를 말하고, 大涅槃城은 一乘의 삼매를 의미한다. 따라서 世親은 化城喩도 이전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三乘方便과 一乘眞實이라는 내용을 有定人에게 드러내기 위한 비유로 해석하고 있다. (5) 衣珠喩 繫珠喩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無定人이 散亂증상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고자 衣珠喩(계주유)를 설한 것이라 한다. "다섯째는 산란증상만심으로 실제로는 定이 없으면서 과거에 비록 대승의 선근이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승을 구하지 않고 좁고 낮은 마음에 허망한 생각을 내어 第一乘이라 말한다. 이렇게 잘못 취하니 이것을 바로잡고자 계보주 비유를 설하니 마땅히 알라. …중략… 제5인(無定人)에게 그 과거에 가지고 있던 선근을 보여서 (그것을) 기억하게 한 연후에 삼매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제5인에게' 이하의 문장은 가난한 사람이 자기의 옷속에 매달여 있는 寶珠를 알지 못하고 공연히 衣食을 구하느라 고생하다가, 친구의 말을 듣고 마침내 그것을 자각한다는 衣珠喩의 내용을 의미하는데, 곧 이 비유도 그들이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대승의 선근인 일불승을 자각시키고 無定人에게 그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설해진 것이다. (6) 珠喩 이것은 集功德人이 實有功德의 증상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설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섯째는 진실로 공덕이 있다는 증상만심으로 대승법을 듣고도 대승이 아님을 취하여 이렇게 倒取된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전륜성왕이 자신의 상투를 풀어서 그 속의 보배 구슬을 준다는 비유를 설하니 마땅히 알라. …중략… 제6인(集功德人)에게 대승법을 설하여 이 법문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니(同十地行滿), 제불여래가 은밀히 授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승법을 설하여 여래의 깨달음과 같게 만들기 위해서 珠喩를 설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여래의 授記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전륜성왕이 가장 戰功이 큰 사람에게 가장 귀한 자신의 상투속에 있는 보배를 준다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集功德人에게 그 내용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珠喩가 설해진 것으로 세친은 해석하고 있다. (7) 醫子喩 이것은 不集功德人의 實無功德의 증상만심을 바로 잡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라고 세친은 해석하고 있다. "일곱째는 실로 공덕이 없는 증상만심으로 第一乘에서 모든 선근을 닦고 익히지 않으며, 제일승을 듣고서도 마음속에 취하여 第一로 삼지 않는다. 이와같이 잘못 취하니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의사의 비유를 설하니 마땅히 알라. …중략… 제7인(不集功德人)에게 아직 근기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근기를) 성숙시키기 위해 이와같이 열반(涅槃量)을 보이니 이 뜻을 위함이다." 여기서는 不集功德人이 증상만심으로 일승(第一乘)을 말해도 그것을 듣고도 취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고자 醫子喩를 설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상으로 {法華經論}에 나타난 世親의 法華七喩 解釋을 살펴보았는데, 법화칠유를 설한 이유에 대해서, 7종류의 증상만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을 바로잡고자 법화칠유가 설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7종류의 사람들을 보면, 첫째의 求勢力人은 人과 天의 有漏果報를 구하기 때문에 人乘과 天乘인 범부로 볼 수 있다. 둘째의 求聲門解脫人은 성문으로 대표되는 二乘 곧 聲門乘과 緣覺乘으로 볼 수 있다. 세째의 大乘人은 성문승이나 연각승(벽지불승)을 인정하지 않는 증상만심을 가진 菩薩乘으로 볼 수 있다. 곧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사람은 人乘·天乘·聲聞乘·緣覺乘·菩薩乘의 五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네번째와 다섯번째의 有定人과 無定人은 삼매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여섯번째와 일곱번째의 集功德人과 不集功德人은 공덕을 닦은 사람과 닦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있다. 곧 7종류의 사람들은 三乘은 물론이고 五乘이나 그 이외의 일체 부류를 대표하는 總稱임을 알 수 있다. 7종류로 대표되는 모든 부류의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인 一佛乘을 보여서 그들의 아만심 (증상만심)을 깨닫게 하고, 一佛乘 속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법화칠유가 설해진 것으로 세친은 해석하고 있다. 그러한 해석은 법화경에 흐르고 있는 일체중생은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一乘思想과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授記作佛思想과도 일맥상통한다. 2) 天台 本迹二門의 開權顯實 天台의 法華七喩 解釋을 보면 火宅喩· 窮子喩· 藥草喩· 化城喩· 衣珠喩· 珠喩등의 6가지 비유는 迹門의 비유로서 開權顯實 곧 三乘을 열어서 一乘을 드러내기 위해서 설한 비유이며, 마지막 醫子喩는 本門의 비유로서 開權顯實 곧 중생들 곁에서 살다가신 역사적 인물인 釋尊을 통해서(開近) 常住不滅하는 영원한 부처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顯遠) 설한 비유로 해석하고 있다. 天台의 {法華玄義}를 주석한 湛然의 {法華玄義釋籤}에서도 別喩인 法華七喩에 나타난 사상을 總喩인 蓮華喩에 대해서 각기 (本迹의) 權實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로 해석하고 있다. "7가지의 비유란 첫째 火宅喩, 둘째 窮子喩, 세째 藥草喩, 네째 化城喩, 다섯째 繫珠喩(衣珠喩), 여섯째 頂珠喩( 珠喩), 일곱째 醫子喩이다. 무릇 七喩로써 각기 蓮華(喩) 權實의 뜻에 對하여 곧 總別의 의미를 드러낼 따름이다. 왜냐하면 연화(유) 이것은 단지 實을 위해서 權을 나타낸 것이며 權을 열어서 實을 드러낸 것이다. 七喩도 모두 그러하기 때문에 別(喩)이라 이름한다. 마치 (火宅)譬喩 속에 처음 三車를 施設한 이것은 權(방편)을 나타낸 것이며 후에 大車를 준것은 實(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窮子喩 속에 머슴살이 이전은 權을 나타낸 것이며, 일을 (차례로) 체득한(體業) 이후 이것은 實을 드러냄이다. 藥草喩 속에 三草二木 이것은 權을 나타낸 것이며 한 대지에 똑 같은 비가 내림(一地一雨)은 實을 드러냄이다. 化城喩 속에 피로한 사람들을 위해서(爲疲) 화성을 만든 이것은 權을 나타낸 것이며, (그들을) 인도하여 寶所에 이르게 한 것은 實을 드러낸 것이다. 繫珠喩(의주유) 속에 적게 얻고도 만족함은 權을 뜻하며 후에 衣珠를 보인 것은 實을 드러냄이다. 頂珠喩(계주유) 속에 功에 따라서 상을 준 것은 權을 나타낸 것이며 상투를 풀어서 보배 구슬을 준 것은 實을 드러낸 것이다. 醫子喩 속에 生하지 않으면서 生을 보이며 滅하지 않으면서 滅을 보임은 각기 形聲과 權實의 두가지 이익이 있음이다. 나고 죽음(生滅)은 迹이고, 나지도 죽지도 않음(非生非滅)은 本이다. 그래서 앞의 여섯 가지 비유는 迹(적문)의 입장이며, 뒤의 한 비유(醫子喩)는 本(본문)의 입장이다." 법화칠유는 本門과 迹門의 開權顯實을 드러내기 위해서 설해진 별유임을 나타내고 있고, 앞의 6가지 비유는 迹門의 開權顯實을 마지막 의자유는 本門의 開權顯實을 드러내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라고 湛然은 天台의 {法華玄義}를 해석하고 있다. 법화칠유에 대한 천태의 해석 하나 하나를 통해서 그것에 나타난 法華思想을 고찰하고자 한다. (1) 火宅喩 천태의 화택유 해석을 보면 화택유를 總譬와 別譬 二門으로 나누고 總譬를 설한 이유에 대해서 開權顯實을 간략히 밝힌 비유로, 別譬를 설한 이유에 대해서 開權顯實을 자세히 밝힌 비유라 하여 화택유를 설한 목적은 開權顯實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總譬를 다시 6가지로 나누는데, 첫째는 長者니 곧 석존을 의미하고 둘째는 舍宅이니 火宅을 의미하며 세째는 一門이니 일불승을 의미하며 네째는 五百人이니 중생을 비유하며 다섯째는 火起니 편안하지 않은 법인 五濁과 八苦이며 여섯째는 三十子이니 三乘行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總譬를 六門으로 해석하고 있다. 別譬는 4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는 長者見火譬니 석존이 五濁을 본다는 비유이며 둘째는 捨机用車譬니 석존이 오탁세계를 위해서 방편을 보인다는 비유이며 세째는 等賜諸子大車譬니 석존이 진실상을 보인다는 비유이며 네째는 長者無虛妄譬니 석존이 제법왕이 됨에 비유한 것을 말한다. 이와같이 別譬에는 四門이 있다. 화택유를 그 내용에 따라서 總譬六門과 別譬四門으로 나누어서 해석하지만 그 목적은 開權顯實의 일승법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화택유를 설한 목적에 대해서 특히 '行의 입장'에서 開三顯一(開權顯實)을 밝힌 것이라 한다. 그 이유는 수레는 운반하다는 뜻이며 그것은 行을 비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2) 窮子喩 그 내용을 가지고 다시 5가지의 구체적인 비유로 나눈다. 첫째 父子相失譬니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헤어지는 내용이다. 둘째 父子相見譬니 서로 만나는 이야기이다. 세째 追 諭 譬니 장자가 곁의 사람을 보내 궁자를 데려오게 하는 것이다. 네째 委知家業譬니 집안 살림을 대신 맡겨서 보게 하는 비유다. 다섯째 付家業譬니 집안 살림을 모두 궁자에게 물려주는 비유다. 궁자유의 이 5가지의 내용을 해석하면서 이것을 五味와 五時에 배대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卽遣傍人 傍人所說'의 궁자유 문구는 華嚴時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며 五味중의 初味인 乳味에 배대하고 있다.
'密遣二人 說除糞法'의 궁자유 문구는 鹿苑時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며 五味중의 第二 酪味에 배대하고 있다.
'心相體信 入出無難'의 궁자유 문구는 方等時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며 五味중의 第三 生蘇味에 배대하고 있다.
'長者自知 將死不久' 이하의 궁자유 문구는 般若時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며 五味중의 第四 熟蘇味에 배대하고 있다.
'臨欲終時而命其子者' 이하의 궁자유 문구는 法華涅槃時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며 五味중의 第五 醍 味에 배대하고 있다.
여기서 궁자유를 해석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五時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비유가 단순히 사상이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비유 그 자체를 하나의 敎義 혹은 法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궁자유를 설한 목적은 '人의 입장'에서 開三顯一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그 이유는 품팔이 하던 궁자가 바로 장자의 아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궁자유에 나타난 思想도 一乘法을 보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 藥草喩 비유를 전개하는데 있어서(開譬), 差別譬와 無差別譬 두가지로 나누고, 三草二木은 가늘고 굵음이 같지 않으므로 差別이라 말하며 一地와 一雨는 (각기) 널리 실고 두루 적시므로 無差別이라 한다. 差別譬는 방편의 가르침(權敎)과 방편의 지혜(權智)를 비유하며, 無差別譬는 진실의 가르침(實敎)과 진실의 지혜(實智)를 비유한다.
差別譬는 내용에 따라 다시 6가지의 비유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土地譬, 둘째 卉木(草木)譬, 세째 密雲譬, 네째 注雨譬, 다섯째 受潤譬, 여섯째 增長譬이다. 이것은 곧 약초유의 내용인데, 산천과 계곡의 대지(土地譬)와 거기에 자라는 초목(卉木譬)이 있고 일시에 먹구름이 일어나(密雲譬) 온 삼천세계의 대지를 적시자(注雨譬) 三草二木으로 대표되는 모든 식물들이 각기 그들의 근기에 따라 받아들여서(受潤譬) 자라난다(增長譬)는 내용이다. 그리고 無差別譬는 一地一雨無差別譬를 말하는데 여기에 3가지가 있다. 첫째 一地所生譬, 둘째 一雲所雨譬, 세째 三草二木稟益不自覺知譬이다. 곧 평등한 한 땅(一地)에서 자라나며 똑같이 비를 맞는다는 것과 그러한 이익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크고 작게 자라는 草木에는 비록 차별이 있지만 땅과 비에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一地一雨)는 뜻으로, 중생들의 근기는 각기 다르지만 그들을 교화하는 부처님의 법에는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중생들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약초유는 '差別과 無差別의 입장'에서 開權顯實을 밝히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이다. (4) 化城喩 비유를 전개하는데 있어서(開譬), 導師譬와 將導譬로 나눈다. 導師譬를 다시 5가지로 나누고, 將導譬를 3가지로 나누고 있다. 導師譬 첫째 五百由旬譬니, 제도되지 못한 중생이 온갖 윤회하는 처소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을 비유한다. 둘째 險難惡道譬니, 제도되지 못한 중생이 번뇌의 더러움이 무겁기에 여래의 지혜를 잘 믿지 못하며 잘 이해도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세째 若有多衆譬니, 백천만억 종류의 중생이 모두 의혹을 일으키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중생을 비유한다.
네째 欲過此道至珍寶處譬니, 다시 법화경 강의함을 비유한다.
다섯째 一導師譬니, 열여섯 번째(第十六 )의 왕자를 비유한다. 將導譬 첫째는 所將人衆譬니, 본래는 인연을 맺고 있지만 아직 제도되지 않은 사람이니 본래의 인연을 잃지 않았기에 導師의 인도를 받는다는 비유다.
둘째는 中路懈退譬니, 중간에서 서로 만나 大乘心에서 물러나니 곧 소승의 가르침으로 교화한다는 것을 비유한다.
세째는 滅化引至寶所譬니, 다시 법화경을 설한 것을 비유한다. 곧 위의 導師譬와 將導譬는 화성유의 내용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대통지승여래의 인연담도 비유를 설명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화성유를 설한 목적은 '理의 입장'에서 開三顯一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천태는 해석하며, 그 까닭은 寶所와 化城이 대승과 소승의 두 가지 이치이므로 化城의 이치를 없애면 寶所 진실의 이치가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5) 衣珠喩 비유를 전개하는데(開譬), 크게 醉酒譬와 親友覺悟譬로 나누며 醉酒譬에는 다시 3가지로 親友覺悟譬도 다시 3가지로 나누고 있다. 醉酒譬 첫째는 繫珠譬니 王子結緣을 깨닫는 것이라 해석한다.
둘째는 醉臥不覺譬니 대승에서 물러난 것을 말한다.
세째는 起已遊行譬니 소승으로 교화함이라 해석한다. 親友覺悟譬 첫째는 呵責譬니 動執生疑를 말한다.
둘째는 示珠譬니 숙세인연을 비유한 것이다.
세째는 勸貿譬니 수기를 받아서 성불함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醉酒譬와 親友覺悟譬 이 두가지 비유는 衣珠喩의 내용을 화성유품의 대통지승불의 인연담에 배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술취한 사람은 작은 법에 만족하고 있는 성문등의 二乘을 말하며, 그를 呵責하고 일깨워주는 親友는 釋尊을 뜻하며 寶珠는 그들을 일승법으로 인도하는 법화경을 의미한다. 천태는 이 衣珠喩에 대해서 '理의 입장'에서 開三顯一을 밝힌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6) 珠喩 비유를 전개하는데(開譬), 크게 不與珠譬와 與珠譬로 나누고 不與珠譬에 다시 6가지와 與珠譬에 2가지가 있다. 不與珠譬 첫째 威伏諸國譬니 전륜성왕이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은 여래가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둘째 小王不順譬니 小王은 번뇌를 말하며 그것을 아직 없애지 못한 것을 이름하여 '그 명령을 거역한다'(不順其命)고 말한다.
세째 起兵往罰譬니 小王이 명령을 거역하자 전륜성왕이 갖가지 군사를 일으켜서 그들을 정복한다.
네째 有功歡喜譬니 왕이 병사들의 戰功을 보고 기뻐한다는 비유다.
다섯째 隨功賞賜譬니 그 功에 따라서 賞을 준다는 비유로 해석한다.
여섯째 而不與珠譬니 그러나 (상투속의) 보배 구슬만은 주지 않았다는 비유다. 與珠譬 첫째 有大勳譬니 큰 功(戰功)이 있음을 말한다.
둘째 與珠譬니 (상투속의) 보배 구슬을 준다는 비유다. 여기서 전륜성왕은 석존을 말하며 큰 戰功이 있는 사람은 번뇌나 수행에 방해가 되는 온갖 장애를 부수는 수행자(賢聖)를 말한다. 그리고 상투속의 보배 구슬은 곧 法華經을 비유한 것이다. 천태는 珠喩를 설한 목적에 대해서 상투를 푼 것(解 )은 開權이며, 보배 구슬을 준 것(與珠)은 顯實이라 하여 開權顯實을 밝히기 위해서 설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7) 醫子喩 비유를 전개하는데(開譬), 크게 良醫治子譬와 治子實益譬로 나누고 良醫治子譬에 다시 3가지가 治子實益譬에 1가지가 있다. 良醫治子譬 첫째 醫遠行譬니 과거에 중생들을 이익(益物)되게 하는 비유다.
둘째 還已復去譬니 현재에 중생들을 교화(應化)함을 비유한 것이다.
세째 尋復來歸譬니 미래에 중생들을 교화(應化)함을 말한다. 治子實益譬 여기에 不虛譬가 있는데 곧 양의가 방편으로 자신의 죽음을 알려서 그의 아이들을 고쳐 진실한 이익을 준 것이 결코 거짓이 아니듯이, 석존도 중생들을 위해서 방편으로 열반을 보여서 三世의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지만 그 방편은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비유다. 천태는 여래수량품의 開近顯遠을 해석하면서, 여기에 誡信과 正答 2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正答을 다시 法說과 譬說로 나눈다. 法說을 三世益物과 總結不虛로 나누고 三世益物에 대해서 '지금의 중생들(近情)이 오직 현재 八十의 부처님만을 볼 뿐 과거의 무한한 수명의 부처님과 미래 불멸인 부처님의 수명을 알 지 못하기 때문에 三世의 입장에서 開近顯遠을 밝힌 것'이라 하고, 總結不虛에 대해서 '이와같은 이익은 나(석존) 혼자 그런 것이 아니라 諸佛도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허망하지 않다(不虛)고 결론내린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곧 法說의 三世益物은 醫子喩의 良醫治子譬에 해당하며, 總結不虛는 治子實益譬의 不虛譬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醫子喩는 本門의 開近顯實 思想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임을 알 수 있다.
3. 그 이외 譬喩의 思想 蓮華喩와 法華七喩는 주로 世親의 {法華經論}과 天台의 {法華玄義}나 {法華文句}를 중심으로 하여 비유에 나타난 사상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世親의 {法華經論}에는 蓮華喩·法華七喩·大施主의 譬喩 이외의 다른 비유들은 보이거나 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天台의 {法華文句}등의 주석서를 중심으로 그의 비유 해석에 토대를 두고 蓮華喩와 法華七喩 이외의 다른 비유들에 나타난 思想이나 메시지를 밝히고자 한다. 12가지의 비유에 대해서 그것이 설해진 목적에 따라서 一乘思想·法華經流布·佛難得値등의 세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비유의 사상을 밝히는 방법으로 法華七喩의 解釋과 마찬가지로 迹門과 本門의 틀속에서 그 사상을 논하고자 한다. 1) 一乘思想을 설한 譬喩 (1) 日月의 譬喩 이 비유는 藥草喩品의 후반에 있는 것으로 藥草喩에 이어서 계속 설해진 비유인데, 해와 달이 온 세상을 아무런 차별없이 비추어 주는 것처럼 여래의 가르침도 그와 같아서 아무런 차별이 없지만 각기 그 근기에 따라서 삼승이 생겨난다는 비유이다. 곧 여기서 차별없는 평등한 법은 일승법을 의미하며 차별법은 삼승법을 말한다. 이 비유는 妙法蓮華經에는 없지만 천태의 迹門과 本門에서 보면 迹門에 해당하고 약초유와 마찬가지로 開三顯一을 밝히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이다. (2) 作甁者의 譬喩 이것도 藥草喩品의 후반에 설해진 비유로, 妙法蓮華經에는 없는 비유이다. 日月의 譬喩에 이어져서 설해진 것으로 삼승이 본래 없는데 어떤 까닭에 성문·연각·보살이 있습니까? 라는 가섭의 질문에 대해서 석존은 도예가가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고, 그릇에 담겨지는 음식에 따라서 꿀단지도 되고 우유단지도 되지만 그 재료인 진흙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듯이 인연에 따라서 삼승이 있을 뿐 근원(本際)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별도 없는 것이라 하여 作甁者의 譬喩를 설한다. 결국 이 비유는 평등한 일승법에서 중생의 근기 따라서 삼승법을 설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이며, 천태의 입장에서 보면 迹門의 開三顯一에 해당한다. (3) 生盲人의 譬喩 이 비유도 약초유품의 후반에 나오는 비유로 묘법연화경에는 없는 것이며 作甁者의 譬喩에 이어서 설해지고 있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生盲人)이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면서 사실대로 보고 듣는다고 착각했지만 良醫를 만나서 시력을 회복하고 보니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바르게 사물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이 때 신선(仙人)이 나타나서 그를 꾸짖고 어리석음을 일깨워 준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양의는 석존을 말하며 生盲人은 무명에 가려진 우리 중생들을 비유한 것이다. 처음 양의를 만나 눈을 떠게 되고나서 그것에 자만하게 됨은 삼승이 그 가르침에 깊이 집착하여 일승법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며, 신선을 만나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 5가지의 신통력을 얻고 궁극의 깨달음을 얻음은 일승법의 자각을 비유한 것이다. 곧 이것도 천태의 입장에서 보면 迹門에 해당하고 開三顯一을 표현하기 위한 비유임을 알 수 있다. (4) 大王膳의 譬喩 이것은 어떤 사람이 가난한 나라로부터 와서 문득 임금의 잘 차려진 수라상(大王膳)을 보지만 두려워서 먹지 못하다가 임금의 명령이 있으면 그때서야 먹는 것과 같이 小乘도 일승의 가르침을 듣지만 두려워서 감히 믿지 못하다가 授記를 받고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그것을 따른다는 비유다. 곧 여기서 大王膳은 一乘法을 말하며 授記는 수라상의 음식을 먹어라는 임금의 명령에 해당함므로 일승법에 대한 확신을 소승들에게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천태는 이 비유에 대해서 '비유를 사용하여 수기를 논한 것'이라고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이 비유는 제6수기품에 나오는 것으로 迹門에 해당하며 授記를 통한 一乘法을 밝히기 위해서 설한 것이므로 곧 迹門의 開三顯一에 해당한다. (5) 三千塵點의 譬喩 이 비유는 제7화성유품의 초반부에 나오는 것으로 대통지승여래의 숙세인연을 이야기하면서 그 부처님의 열반하신지가 아득히 먼 옛날이었음을 三千塵點의 譬喩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理의 一乘法'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本迹 二門의 입장에서 볼 때 化城喩品은 迹門에 속하지만 그 내용상으로 볼 때 여래 수명의 長久함을 비유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本門의 開近顯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天台는 이 비유를 설한 목적은 (대통지승여래의) 久遠함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6) 入海採寶의 譬喩 이것은 제8오백제자수기품의 초반부에 나오는 비유로 정법화경에만 있는 비유이다. 한 導師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 보배를 가지고 돌아와서 모든 중생들을 다 이익되게 한다는 내용이다. 곧 여기서 導師는 釋尊을 의미하며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중생들을 말한다. 바다로 들어간다는 것은 가르침의 바다 곧 경전의 세계를 말하며, 그 속에서 최고의 보배인 여의주를 가지고 나와서 온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일체 중생에게 一乘法을 펼친다는 의미이다. 이 비유도 一乘法을 나타내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며, 迹門의 開三顯一에 해당한다. (7) 父少子老의 譬喩 이것은 제15종지용출품의 후반부에 나오는 비유인데, 땅에서 나온 무수한 보살들에 대해서 석존 자신이 모두 교화한 사람들이라고 대중들에게 말한다. 이에 대해서 대중들은 석존의 성도하신 지가 불과 얼마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었는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되고 그것은 마치 젊은이가 나이든 노인을 보고 자신의 아들이라 하고 노인도 그를 자신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과 같이 믿기 어렵다고 이 父少子老의 譬喩를 들어서 말하고 있다. 천태는 이 비유를 밝히면서(開譬), 3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色美髮黑譬니 석존의 성도하신지가 얼마 안된 것을 말한다.
둘째 指百歲人譬니 교화된 사람이 무수함을 말한다.
세째 結譬니 이 일은 믿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곧 色美髮黑譬는 父少에 해당되며 開近을, 指百歲人譬는 子老에 해당되며 顯遠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천태의 법화경 總科에서 보면 本門의 정종분에 해당하며, 이 비유는 本門의 開近顯遠의 思想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 설해진 것이다. (8) 五百億塵點의 譬喩 이것은 제16여래수량품의 초반부에 나오는 비유인데, 석존의 성불한 지가 실은 너무도 오래되어 無量하다는 것을 塵點의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천태는 이 비유를 3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擧譬問으로 비유를 들어서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答으로 그 질문에 대해서 답하는 것을 말한다. 세째는 合으로 (여래수명의) 長遠함을 더러낸 것을 말한다. 이 비유를 설한 목적에 대해서 廢近顯遠이라 하여 석존의 성불하신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없애고 佛壽의 長遠함을 설하기 위한 비유라고 천태는 해석하고 있다.곧 이 비유는 여래의 수명을 塵點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本門의 開近顯遠을 말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 法華經 流布를 勸하는 譬喩 (1) 高原穿鑿의 譬喩 이것은 제10법사품에 나오는 비유로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 高原에서 물을 파되 마른 흙이 나오면 물이 아직 먼 것이며 자꾸 파서 습한 흙이 나오고 마침내 진흙이 나오면 물이 결정코 가까움을 아는 것과 같이, 법화경을 듣지 못한 사람은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먼 것이 되며 만약에 듣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한다면 깨달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최상의 깨달음이 법화경 속에 설해져 있기 때문이라 한다.
天台는 이 비유에 대해서 두 가지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데, 첫째는 觀門의 입장에서 둘째는 敎門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觀門의 해석 : 중생의 마음에 모든 번뇌를 갖추고 있음을 高原이라 하고, 觀智를 닦는 것은 물을 판다(穿鑿)고 하며 진리를 증득(證理味)함은 마치 맑은 물을 얻는 것과 같다. 敎門의 해석 : 흙은 경전의 가르침(經敎)을 비유하며, 물은 中道, 경전으로 中道를 설명함은 흙이 물을 머금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 비유에 나타난 사상은 일승법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담고 있는 법화경을 읽고 실천하면 깨달음에 가까운 것이라 하여 法華經의 流布를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天台는 이 비유가 설해진 제10법사품부터를 迹門의 流通分으로 해석하고 있다. (2) 大施主의 譬喩 이 비유에 대해서 大施主가 행한 온갖 財布施와 法布施는 凡福이기 때문에 聖福(아라한의 복)에 못미치며, 그것은 三乘의 福(體聖福)에 못미치고, 三乘의 福은 삼장교나 통교의 보살이 지은 복(小薩 의 福)에 못미치며, 그 복은 다시 별교 보살의 복(大薩 의 福)에 못미치며, 그것은 다시 법화경을 처음 듣고 기쁘하는 복(初隨喜)에 조금도 못미친다고 천태는 해석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런 것들은 참다운 최상의 가르침(圓敎)이 아니기 때문이라 한다. 곧 법화경의 수희공덕이 대시주의 공덕보다 휠씬 크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대시주의 비유가 설해지고 있으며, 설한 목적은 법화경을 널리 유포시키기 위해서이다. 천태의 법화경 總科에서도 이 비유가 설해진 제18수희공덕품은 本門의 流通分에 해당된다. (3) 海山日月等의 十喩 이것은 제23약왕보살본사품에 나오는 비유로 법화경의 수승함을 海·山·日·月·轉輪聖王·帝釋등의 10가지에 비유하고 있으며, 이 경이 일체중생에게 큰 이익을 주어 그 소원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맑고 시원한 연못의 물이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채우며, 추워서 떨던 사람이 불을 만난다는 등의 12가지 비유를 들어서 표현하고 있다. 천태는 앞의 海·山·日·月등의 10가지 비유에 대해서 법화경 자체(法體)를 찬탄한 것이며, 뒤의 시원한 연못물등의 12가지 비유에 대해서 법화경의 작용(法用)을 찬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품을 해석하면서 제24묘음보살품부터 제28보현보살권발품까지 5품은 법화경으로 중생들을 교화할 것을 권하는 유통분이며, 제23약왕보살본사품은 중생을 교화하는 법사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 것이라 한다. 곧 海·山·日·月등의 十喩와 淸 池等의 十二喩는 법화경과 그 작용을 밝혀서 이 경을 널리 유포시키기 위해서 설해진 비유이며 그러한 경을 설하는 주체인 법사에게 弘法을 밝히기 위해 설한 비유임을 알 수 있다. 3) 佛難得値를 표현한 譬喩 (1) 優曇華와 一眼龜浮木의 譬喩 이것은 제27묘장엄왕본사품에 나오는 것으로 부처님을 만나 뵙기가 마치 우담발라의 꽃을 보는 것과 같으며, 애꾸눈 거북이가 바다에 뜬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비유이다. 천태는 이 비유에 대해서 직접적인 해석은 하고 있지 않지만 비유와 관련된 문구를 해석하면서 간단히 '부처님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주석을 하고 있다. 곧 이것은 부처님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단순히 표현하기 위해서 설한 비유로 볼 수 있다. 이상으로 지금까지 譬喩에 나타난 思想에 대해서 世親과 天台의 註釋書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蓮華喩에 대해서 世親은 出水義와 華開義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天台는 그것을 蓮華六喩를 가지고 一乘法을 설명하고 있다. 곧 開權顯實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라 하여 迹門과 本門에 상응하여 설명하고 있다. 世親과 天台는 蓮華喩 解釋에서 모두 一乘法을 나타내기 위한 譬喩로 인식하고 있지만 天台는 이 譬喩를 단순한 비유가 아닌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이라 하여 十如是등의 敎義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法華七喩에 대해서 世親은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7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일깨워서 一乘法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설한 비유로 해석하고 있으며, 天台는 이것을 迹門과 本門으로 나누어 앞의 6가지 비유는 迹門의 一乘法 곧 開三顯一을 설하기 위한 비유이며, 마지막 醫子喩는 本門의 一乘法 즉 開近顯遠을 설하기 위한 비유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窮子喩에서는 天台의 敎判인 五時說과 연관시켜서 설명하는등 譬喩와 法이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서 譬喩를 解釋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외의 비유에 대해서는 大施主喩를 제외하고 世親의 法華經論에서는 언급된 것이 없기 때문에 天台의 註釋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日月의 譬喩·作甁者의 譬喩·生盲人의 譬喩·大王膳의 譬喩·入海採寶의 譬喩등 5가지는 迹門의 一乘法 곧 開三顯一을 설한 비유이며, 三千塵點의 譬喩·父小子老의 譬喩·五百億塵點의 譬喩등 3가지는 本門의 一乘法 즉 開近顯遠을 설한 비유이다. 그리고 法華經 流布를 勸하는 譬喩로는 高原穿鑿의 譬喩·大施主의 譬喩와 海·山·日·月등의 十喩가 있다. 優曇華와 一眼龜浮木의 譬喩는 부처님 만나기 어렵다는 것(佛難得値)을 단순히 표현하기 위해서 설한 비유로 볼 수 있다. 곧 12가지의 비유중 8가지는 一乘思想을 설한 비유이며, 3가지는 法華經 流布를 勸하는 譬喩이고, 1가지는 佛難得値를 표현하기 위해서 설한 비유임을 알 수 있다. 結 語
이상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요약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序言에서는 法華經에 나타난 譬喩에 대해서 內容과 그 思想을 중심으로 해서 譬喩에 대한 考察을 展開한다고 밝혔다.
Ⅰ장에서는 佛典 譬喩의 語源과 性格 및 그 類型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譬喩의 語源과 性格에 관해 梵語의 upam , aupamya, d nta, avad na등 4종류가 있는데, 본질상의 비유로는 upam 와 aupamya를 들수 있고 前者는 現實의 事實을 가지고 간단히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로 短喩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初期 佛典에서 많이 사용되어진다. 後者는 假定의 事實을 비유의 소재로 택하고 있는데 복잡하고 난해한 사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비유가 설해진다. 주로 長喩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大乘經典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佛典에 나타난 譬喩의 類型을 보면 大般涅槃經에서는 그것을 표현방법에 따라 8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현재의 사실을 비유의 대상으로 하는 現喩는 upam 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假設한 사물을 비유의 대상으로 하는 非喩는 aupamya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비유에 대한 형식상의 갈래로는 外形的 特徵에 의해서 短喩와 長喩로 나눌 수 있고, 內容的 特徵에 의해서 總喩와 別喩로 나눌 수 있다. 短喩는 한 가지 일이나 한 가지 사건을 현실의 사물이나 상태에 견주어 비유하는 것으로 upam 의 형식에 가깝고, 長喩는 가정의 사실을 상정하고 하나의 이야기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aupamya 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용상으로 볼 때 總喩는 전체의 내용이나 사상을 비유한 것이며, 別喩는 한 부분의 내용이나 사상을 비유한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법화경에 나타나는데, 곧 蓮華喩는 總喩에 法華七喩는 別喩에 해당한다.
Ⅱ장에서는 法華經 譬喩의 內容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았다. 內容은 蓮華나 火宅, 長者窮子의 이야기등 모두 20가지의 비유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비유는 upam 형식과 aupamya 형식으로 나눌 수 있었다. upam 는 주로 短喩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aupamya는 주로 長喩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蓮華喩는 前者에 해당하며 法華七喩는 後者에 해당한다. 내용상 갈래는 總喩와 別喩로 나눌 수 있는데, 蓮華喩는 법화경의 전체 내용이나 사상을 나타내는 總喩에 해당하며 法華七喩등 그 이외의 모든 비유들은 別喩에 해당한다. Ⅲ장에서는 譬喩에 나타난 思想에 대해서 世親과 天台의 法華經 註釋書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蓮華喩에 대해서 세친은 出水義와 華開義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천태는 蓮華二門六喩를 가지고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모두 이 비유에 나타난 사상을 一乘思想으로 해석하고 있다. 法華七喩에 대해서 世親은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7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일깨워서 一乘法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설한 비유로 解釋하고 있으며, 天台는 이것을 迹門과 本門으로 나누어 앞의 6가지 비유는 迹門의 一乘法 곧 開三顯一을 설하기 위한 비유이며, 마지막 醫子喩는 本門의 一乘法 즉 開近顯遠을 설하기 위한 비유라고 解釋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외의 譬喩들은 世親의 法華經論에는 大施主의 譬喩를 제외하고는 언급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天台의 註釋書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一乘思想과 法華經流布 및 佛難得値등의 목적을 가지고 비유가 설해진 것임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世親에 비해서 天台는 譬喩와 法이 동일하다는 法譬一如의 解釋을 통해서 비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으며, 十如是나 五時敎判등에 배대하여 敎義化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상으로 지금까지 法華經 譬喩에 대해서 그 內容과 思想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그 의의는 약 20가지에 이르는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비유들이 있었기에 法華經의 思想들을 보다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고, 일반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釋尊이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있어서 난해한 사상이나 이론을 사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설화나 비유등을 사용한 점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參 考 文 獻
Ⅰ. 原典類 U. Wogihara and C. Tsuchida, {改訂 梵文 法華經}, 山喜房佛書林, 1958. 竺法護 譯, {正法華經} 大正新修大藏經 9. 鳩摩羅什 譯, {妙法蓮華經} 大正新修大藏經 9. 那堀多 共譯, {添品妙法蓮華經} 大正新修大藏經 9. 曇無讖 譯, {大般涅槃經} 大正新修大藏經 12. 龍樹 造, 鳩摩羅什 譯, {大智度論} 大正新修大藏經 25. 世親 造, 菩提流支 譯, {妙法蓮華經憂波提舍} 大正新修大藏經 26. 法雲 撰, {法華義記} 大正新修大藏經 33. 吉藏 撰, {法華論疏} 大正新修大藏經 40. ,{法華義疏} 大正新修大藏經 34. 智 說, {妙法蓮華經玄義} 大正新修大藏經 33. , {妙法蓮華經文句} 大正新修大藏經 34. 湛然 述, {法華玄義釋籤} 大正新修大藏經 33. 元曉 撰, {法華宗要} 大正新修大藏經 34. Ⅱ. 單行本類 다무라 시로 공저, 리영자 역, {천태법화의 사상}, 민족사, 1990. 한글대장경 {法華經}, 東國譯經院, 1993. 李元燮 註解, {法華經}, 三中堂, 1993. 李元燮 譯, {法華文句}上下, 영산법화사, 1997. 金倉圓照 編, {法華經の成立と展開}, 平樂寺書店, 1970. 岩本 裕, {佛敎說話の原流と展開}, 開明書院, 1978. 岩本 裕, {佛敎說話序說}, 開明書院, 1978. 洪起三著, {佛敎文學의 理解}, 民族社, 1997. 金雲學著, {佛敎文學의 理論}, 一志社, 1990. 金東華著, {俱舍學}, 寶蓮閣, 1992. 橫超慧日 著, {法華經序說}, 法藏館, 1968. 히라가와 아키라 共著, 차차석 역, {법화사상}, 여래, 1996. {韓國天台思想硏究}, 東國大學校 佛敎文化硏究所, 1983. Ⅲ. 論文類 洪庭植, [法華經 成立過程에 관한 硏究], 東國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74. 徐潾烈, {法華經 方便品에 관한 硏究}, 東國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92. 李芝洙, <佛敎 論理學 入門>, {印度哲學}제2집, 1992. 丸山孝雄, [法華七喩解釋の展開]{法華經の思想と基盤}, 平樂寺書店, 1980. 岩本 裕, [Saddharmapu ar ka における比喩の形式について]{法華經の成立と展開}, 平樂寺書店, 1970. 吳亨根, [法華經 信解品과 會三歸一思想], {韓國佛敎學}제3집, 1977. Ⅳ 辭典類 동아일보사 共著, {BRITANNICA WORLD ENCYCLOPEDIA}, 1993. 이은정 編, {국어학 언어학 용어사전}, 국어 문화사, 1995. M. William, {Sanskrit·English Dictionary}, Oxford, 1988. 森章司 編, {佛敎比喩例話辭典}, 東京堂, 1987. {望月 佛敎大辭典}, 世界聖典刊行協會, 1929. {佛敎學大辭典}, 弘法院, 1990. ABSTRACT A study on the thoughts and Figurative Usages in the Lotus S tra Kim, Young-Il(Bup-Sung) Dept. of Buddhism Graduate School Dongguk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tudy the thoughts and figurative usages such as similes, metaphors and parables in the Lotus S tra. This thesis consists of 3 chapters. In chapterⅠ, I examined the concepts and characteristics of figurative usages through the Sanskrit etymology. So we can say that upam style is similar to metaphor, while aupamya is close to parable. ChapterⅡ. contains figurative usages in the stories found in the Lotus S tra. There are such stories as 'Lotus', 'The burning House', 'The Poor Son' and so on. Styles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one is Upam and the other is Aupamya. The former's main feature is that it is a short metaphor, and the latter is a parable. 'The Lotus' follows the style of Upam and 'The seven parables of the Lotus S tra' follows Aupamya. The figurative usages can be classified into General Metaphor(總喩) and Partial Metaphor(別喩) in terms of content. In chapter Ⅲ, I looked into the thoughts that appear in those metaphors and parables of the Lotus S tra through Sechin's(世親) and Chuntae's(天台) commentaries on it. In terms of 'The Lotus' Sechin(世親) explains it from two points of view, that is 'Out of Dirty Water' and 'Lotus Blossoms', and Chuntae(天台) explains it with 'Six metaphors on the Lotus S tra'. Both of them view that metaphor as the concept, 'The Vehicle of Oneness'(一乘). But in terms of the 'Seven parables of the Lotus S tra', it is interpreted by Sechin(世親) as the parables to enlighten seven kinds of people, who represent all people, into the doctrine of 'The Vehicle of Oneness'. As for Chuntae(天台) he divides that into Ch k Mun(迹門) and Pon Mun(本門). He is saying that the first 6 parables are things that are designed to explain 'The Truth of the one method of salvation of the Three Vehicles.'(開三顯一) and the last is to explain the Buddha's earthly life and the final revelation of the Buddha'(開近顯遠). The other figurative usages are rarely seen in the commentary of Sechin(世親), I chose Chuntae's commentary as main reference, and it contained The Vehicle of Oneness, the doctrine of spreading S tras for the people and one simple rhetoric expression. Unlike Sechin, Chuntae's commentary is characterized by his emphasis on the figurative usages since he believed that 'Dharma is metaphor'(法譬一如). At the same time, he applied those figurative usages to his 'Five periods and Eight kinds of Doctrine'(五時八敎) and systemized them into one theory. In Conclusion, the meaning of the figurative usages in the Lotus S tra is that those different and beautiful metaphors can express the thoughts of the Lotus S tra more effectively and be easy ways to understand Buddhism for the laypeople. Finally, it is meaningful that the Buddha used parables or metaphors rather than abstract theories to teach people since we can better relate these parables or metaphors to our everyday lives |